망선忘羨
4권 스포일러 소량 O
2019년 12월 3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포스타입에서 이전해오는 김에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재업로드합니다
남망기가 돌아온 건 술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위무선은 하루 종일 남망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시에 돌아오겠다 한 남망기는 유시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그 전날 매우 격정적인 밤을 보낸 위무선은 술시도 되기 전에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위영."
남망기는 나지막이 제 도려의 이름을 불렀다. 13년, 얼마나 긴 시간이었으랴. 그리 긴 시간을 지나 자신에게 온 도려의 모습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였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이불이 들렸다 내려가는 모습은, 마치 곤히 잠든 아기 동물을 연상케 하였다.
"어...남잠? 언제 들어온 거야?"
"방금."
아하하, 꽤 늦었네! 웃으며 저를 반겨 주는 위무선은 무표정하다는 남망기마저 미소 짓게 만들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자, 위무선은 남망기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전날 밤도 꽤 힘들었지만, 남망기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는 대로 욕망을 표출하는 때는 그 때와 술을 마셨을 때 밖에 없어 위무선은 그런 그 좋아했다.
"남잠?"
"응."
"언제까지 '응.'이라고만 대답할 거야?"
남망기는 말이 없었다. 제 도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었기에, 긍정의 대답 외에는 거의 나올 수 없단 이유였다. 위무선은 작게 실소를 터트리곤 팔로 남망기의 몸을 감았다.
"있잖아, 오늘이 서방의 나라에서는 신이 태어난 날이래."
사실 위무선은 할 말이 없었다. 매일 말이 없는 남망기를 대신하여 정실의 소리를 채우지만 그래도 할 말이 없는 때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내뱉고 보니, 며칠 전 남사추에게 들은 말이었다. 서방에서는 석가탄신일처럼, 그 신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큰 연회를 열어 성대하게 축하한다는 이야기. 듣고 보니 얼추 석가탄신일과 비슷한 듯했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큰 연회를 여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서방에서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렇다는데, 남잠."
말을 끝마친 위무선은 남망기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지극히 단순한 대답에 불과했다.
"이제 곧 해시가 돼, 위영."
이러면 재미 없지. 위무선은 남망기를 더욱 골려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위무선은 조금 더 심하게 남망기에게 교태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평소보다 더 귀엽게 아양을 떠는 위무선의 모습에 남망기의 눈은 갈 곳을 잃었다. 위무선은 한 술 더 떠서 옷가지를 어깨에 걸치게 살짝 내렸기에, 더욱 색정적으로 보였다.
"남가 둘째 오라버니, 나한테 선물 안줄거야? 선선이는 선물 받고 싶은데, 응?"
"...시시해."
"또, 또! 시시하다 하는 거 금지. 이런 건 가규에 추가 안 되나? 어쨌든, 간단한 거라도 좋으니까. 응? 오늘 반나절 동안 나 없이 돌아다녔으니... 도려를 혼자 두기 금지. 이건 가규석에 적혀있지 않았어?! 아니, 그런 것 보다, 남이공자. 선물 줘!"
위무선은 보다 확실하게 선물을 요구하였다. 그 사이 정실의 밖에서는 눈이 조금씩 날리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문하생들은 걸음을 재촉하고, 토끼들은 제 보금자리를 찾아 통통 튀었다. 새하얀 털 뭉치들이 마구 뛰어다니니, 그것을 본 남망기는 위무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암, 내 목소리 안들려? 남잠, 남망기, 남이공자!"
"선물, 있어."
정말 있다고? 사실 위무선은 반쯤 장난으로 던진 말이었기에, 남망기가 정말로 선물을 준비할 줄은 몰랐다. 그는 남망기의 얼굴의 볼을 부비며 입을 맞췄다.
"망기 형, 내 평생 네 노예가 돼도 좋을 것 같아!"
"도려로 충분해."
남망기는 특히 '도려' 두 글자에 힘을 주어 말하였다.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그리 말하니,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그 차가운 얼굴로 도려에 대한 소유욕이라니. 다른 문하생들과 남계인이 듣는다면 기함을 할 이야기였다.
"그래서, 선물은 뭔데?"
그러자 남망기가 정실 구석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들고 왔다. 냄새로 보아 연근갈비탕이었다.
"와, 둘째 형...이런 건 어디서 났어?"
"만들었어."
둘째 형, 최고! 를 외치며 그릇을 들어 탕을 먹기 시작한 위무선은 그 맛에 또 한번 놀라 눈물을 글썽였다. 놀랍도록 제 사저가 만들었던 연근갈비탕과 비슷한 맛이었다. 글썽거리는 눈물을 남망기가 소매로 닦아주었다.
"남잠,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배운 적 없어."
정말? 짐짓 놀라는 투를 한 위무선은 제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 남잠! 그렇지 않아 남잠이 오기 전에 잠들어버려서, 저녁밥을 못먹었거든! 사추가 깨웠다는데 나는 기억에 없더라. 그렇게 피곤했나? 어쨌든...남이공자, 먹는 선물은 받았는데, 내가 받아야 할 게 또 있는 것 같아."
남망기는 의아한 듯 했다. 표정에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더 받아야 할 것이 뭔데?' 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 표정을 본 위무선은 키들키들 웃더니, 이내 남망기의 말액을 풀었다. 그의 눈이 평소보다 배는 커졌다. 위무선은 그런 남망기를 보고 자신의 머리끈을 풀어 남망기의 손에 쥐어주었다.
"자, 남잠, 이게 내가 받고 싶은 거야. 알겠지? 참고로 남잠한테 주는 선물은 그거!"
남망기는 위무선을 향해 따스히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하던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웃는 얼굴을 꽤 자주 보게 된 위무선이었다. 처음 본 건 관음묘였는데. 위무선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남망기가 자신 외에 다른 이에게 웃음을 내보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속으로 기뻐했다. 위무선은 제 도려의 뺨에 입을 두어 번 맞췄다.
"위영, "
"응! 나 여기 있어!"
오늘 밤도 제법 긴 밤이 될 것이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목에 팔을 감았다. 남망기는 그 위로 그대로 엎어졌다. 눈발은 점점 거세졌고, 정실의 문은 닫혔다. 이제 아무도, 둘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게 되었다.
*
'저기, 남잠.'
'응.'
'그때 네가 현무동굴에서 나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곡명이 망선忘羨 이라고 했지?'
'응.'
'그 이름으로 정했을 때, 무슨 생각이었어?'
'....'
'응? 남이공자.'
'...너와, 이 곡을 합주했으면 했어.'
'와, 엄청 남잠다워. 그럼 이거 합주해 볼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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