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프란츠 카페에

EP 8. [망고바나나 스무디 한 잔]

술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개판이었던 상인연합회였지만, 놀랍게도 오고간 이야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새벽 두 시 쯤 대충 파장인 대학교 축제이니, 새벽 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가게 영업을 마친 로시니가, 새벽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야행성인 라벨이, 그리고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는 하이든이 사고 안 나게 골목 주변을 자체적으로 지키고 있기로 한 것이었다. 또 축제 기념 해서 요식업들은 할인도 좀 해 주고 말이다. 로시니 같은 경우에는 헨델호프에서 오는 푸드트럭까지 관리해야 해서 바쁠 예정이었기에 알바생에게 가게를 맡기려 생각중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엘가와 베르디가 손사래를 치며 아니아니 그건 안 된다, 무슨 고등학생한테 가게를 맡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라, 새벽 두시 쯤 잔뜩 취한 대학생들 사이에 고등학생을 혼자 놔두겠다는 이야기냐, 차라리 우리가 가게 맡아주겠다-라고 하면서 그곳 알바생은 점주 없이 혼자 가게를 지킬 운명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뭐 어쨌든, 그런 고로 하이든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서 깨진 유리병 조각과 삐끼가 뿌리고 간 나이트 홍보 (대체 이런 걸 왜 여기에 뿌리지? 여긴 그냥 건전한 상가뿐인데) 전단, 담배꽁초를 쓸어담고 있었다. 아, 거기에 더해 토사물과 가래침도 걸레로 빡빡 닦아야 했다. 거기에 다른 가게 유리에 립스틱인지 틴트인지 뭔지 모를 걸로 글자를 써놓고 가는 심리는 또 뭐란 말인가? 대학생들은 정말이지 답이 없는 생물이라 생각하며 하이든은 피오리 베르디 유리창에 적힌 저속한 글자를 물 묻힌 수건으로 지웠다. 글자를 지우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자 오래지 않아 슈베르트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래그래. 들어오면서 혹시 밖에 봤니?"

"네, 축제한 것 치고는 꽤 깨끗하던데요?"

하이든의 어깨가 약간 으쓱해진다. 그래, 이렇게 누군가가 노고를 좀 알아봐줘야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로시니랑 라벨은 대체 왜 여기 앞을 안 치운 건가. 자기 가게 아니라고 그렇게 막 안 치우는 거 아니란 말이다. 어? 어쨌든 거리라는 건 공동으로 쓰는 곳이잖은가. 아니 생각을 해보니까 조금 짜증이 나는군. 하이든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리스트도 들어온다. 끅,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와 리스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쪼은 아침이에여..."

"아오! 와! 어후! 술냄새!"

출근하자마자 리스트를 보고 슈베르트가 내뱉은 말이었다. 하이든도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리스트는 무슨 매실장아찌 절이는 마냥 소주와 맥주의 불쾌한 향에 절어 있었다. 하이든조차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스트는 머쓱하게 죄송합니다~ 하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하이든은 월급 깎지 않을 테니까 제발 술 좀 깨고 옷 싹 빨아오라는 극단의 조치를 내린다. 두 시간 뒤 리스트는 깨끗하게 빨아온 하얀 셔츠와 까만 슬랙스 차림으로 돌아오고 슈베르트와 하이든은 그제서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실은, 리스트만 이런 건 아니다. 슈베르트가 술에 쩔어서 오는 날은 없었지만 옷에서 소주 냄새가 진동하는 날이 있음은 굳이 숨기지 않겠다.)

"아니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근무일인 거 뻔히 알면서."

리스트는 머리를 묶어올리며 죄송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어제가 학교 축제였거든요. 그래가지고 학과 애들이 다 와라, 와라 너 와야 우리 주점이 산다 그러는 거 있죠? 학과를 하나하나 다 돌면서 한잔한잔 받아먹다가 그만. 취하지는 않았는데 많이 마시긴 했죠."

하이든은 본인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사범대학교가 그렇게 재미있는 주점을 했던 기억은 없다. 아, 중고등학교 교실 컨셉으로 주점을 만들어 놓고서 운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시절이었다. 한창 공부하던 하숙집 딸이랑 사랑에도 빠져 보고...첫사랑이었지. 아마 '너 와야 우리 주점이 산다' 라는 말도 그놈의 사랑, 사랑 때문일 테다. 리스트 저 놈이 좀 잘 생겼어야지 말이다. 어딜 가나 여자를 구름처럼 몰고 다니다 보니 카페에 여자 고객들이 늘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내색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내색하지 않기가 쉽지 않았다. (참고로, 리스트만 고객을 끌어오는 건 아니다. 어느새 단골이 되어 버린 쇼스타코비치랑 멘델스존도 꽤나 여자들을 데리고 오는 편인 듯했다. 리스트랑 다르게 그 둘은 본인들이 인기가 많다는 자각이 전혀 없긴 했지만.)

"젊음이 좋긴 하구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슈베르트도 딱히 늙은 나이는 아니다. 고작 스물아홉이다, 스물아홉. 어리다 못해 애기다. 앞자리가 2라는 점에서 이미 마치 자기가 늙었다는 듯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었다. 하이든은 그 뭐냐, 6학년 3반이란 말이다. 어디 은퇴까지 한 사람 앞에서 젊음을 논하는가. 슈베르트도 슈베르트 나름의 '늙었다' 라고 느끼는 포인트가 있겠으나 역시나, 노친네 하이든으로서는 '젊음이 좋긴 하구나' 라는 말 외의 다른 모든 지점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도 옛날에는 와인은 한잔 두잔씩 했는데. 한두잔은 건강에 좋다 그러길래 말야. 한 행동에 책임만 질 수 있으면 상관없겠지, 너네가 뭐 애기도 아니고 다 컸는데 말려봐야 듣겠니."

하이든은 웃으며 포르타필터를 물로 씻는다. 원래 말리면 말릴수록 더 하는 법이다. 적당하게 풀어줘야지 조금이라도 덜 한다.

"그쵸그쵸, 저 아직 그 정도로 감당 못 하진 않습니다."

리스트는 웃으며 제빙기의 얼음을 꺼내 냉동실에 옮겨담은 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제빙기를 빡빡 닦기 시작한다. 축제가 끝났으니 대학생들은 대부분 집에 갔을 테고 오늘은 한가하겠거니-하고 하이든은 카운터에 턱을 괸다. 아마 지금쯤 다들 본가에 가서 토하고 아주 난리가 났겠군 싶었다.

그때 하이든의 예민한 귀가 빠르게 어떤 말소리를 포착한다. 쌍욕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가게 앞에서 쌍욕을 하는 거야?! 하고 소리치기 직전 하이든은 그 쌍욕의 주인이 예상치 못한 인물임을 알게 된다. 결코 크지 않은 체구의 멘델스존이 자기보다 머리 반 개는 큰 사내를 업고 가게로 들어오고 있었다. 세로로는 머리 반 개, 옆으로는 사람 몸뚱아리 반 개 분량이 더 붙어 있는 체구의 사내를 등에 지고 낑낑거리며 어깨로 카페 문을 미는 모습은 마치 관광객들을 위해 짐을 잔뜩 지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네팔의 포터와도 비슷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벌개진 얼굴과 가쁜 숨소리로 봐서 아마 꽤 먼 거리를 저렇게 사람 하나를 지고 온 모양이었다. 멘델스존은 사내를 벽 쪽 의자에 집어던지다시피하며 내려놓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하이든은 (본인이 마시려고) 내리던 커피를 멈추고 눈을 깜박인다. 하얀 면 티셔츠에 추리닝, 삼선슬리퍼는 평소 멘델스존에게서 보기 힘든 차림이었다. 멘델스존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뒤적이며 카운터로 다가온다.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 이게 오늘 여는 카페가 별로 없어서 여기로 올 수밖에 없었는데... 염치불구하고 한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유 그럼, 물론이지."

"혹시... 망고랑 바나나 있나요? 바나나 스무디랑 망고랑 둘 다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있지. 왜 그러니?"

"메뉴판에 없는 걸 알지만... 망고바나나 스무디... 한 번만 만들어 줄 수 있으세요?"

멘델스존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카운터 아래로 기어들어가려 하는 듯하다. 하이든은 귀까지 빨개진 멘델스존을 바라본다. 그리고 벽쪽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사내도 본다. 원래 대부분의 가게들에서는 메뉴판에 없는 메뉴는 잘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걸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한 번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와서 더 만들어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난번에 이미 슈베르트는 라 바르바야타를 로시니에게 만들어 줬다. 그리고 별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차피 하이든이 사장으로 있는 가게인데 본인이 책임만 지면 별로 상관없을 것 같았다. 멘델스존이 바그너 같은 진상도 아니었고, 상관없...겠지? 그래서 하이든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미소지어준다.

"못만들어줄 거야 없지."

"감사합니다! 돈은 두 배로 드릴게요."

멘델스존은 귀찮게 해서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하이든을 간절하게 바라본다. 자, 망고 스무디가 4,200원이고 바나나 스무디가 3,700원이니까 더하면 7,900원 정도 되겠군. 수고비로 돈을 두 배 더 받긴 해도, 들어가는 노동의 양은 똑같았으니 추가로 더 받은 돈은 비상금으로 살짝 꽁쳐놓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이든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느릿느릿 묻는다.

"꼭 망고바나나여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평소에는 단 거면 아무거나 잘 먹잖니."

"아아... 제가 마시려는 건 아니고요. 저 친구 때문에..."

멘델스존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긴다.

"어제가 학교 축제였던 건 아시죠? 그때 얘가 주점을 했는데, 독어독문학과 주점이었죠... 제가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나서 로베르트가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자기 좀 재워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고서 데리러 갔더니 토해버려서... 그러고는 제 방에 뻗었죠."

멘델스존은 얼굴을 찌푸린다. 멀쩡하게 서 있는 걸로 봐서 학교 축제에도 불구하고 멘델스존 본인은 과음하지 않은 모양이다. 멘델스존이 왜 저렇게 허름하게 입고 있는지도 납득이 갔다. 아마도 로베르트라는 친구가 또 토할 때 버려도 상관없는 옷을 입고 있어야 해서 아닐까.

"원래는 그냥 편의점에서 아무거나 사주려고 했는데, 아니 미친 편의점이 숙취해소 음료가 하나도 없다는 거 있죠! 어떻게 여명 808이랑 헛개차랑 아무것도 없냔 말예요!"

멘델스존은 한탄을 쏟아내고서 본인이 너무 따발총처럼 불평을 쏟아냈음을 깨달았는지 부끄러워하며 입을 닫는다. 잠깐 침묵이 흐르고, 한숨 뒤 멘델스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염치없게 부탁드려요."

하이든은 눈을 껌벅인다. 사실 하이든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숙취가 좀 심하게 왔다 싶으면 쓰던 방법은 늘 계란후라이 하나 부쳐먹기였다.

"망고랑 바나나가 숙취에 좋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하이든은 고개를 끄덕이고 (뭐 어쨌든 돈은 준다니까) 망고랑 바나나를 잘라서 믹서기에 넣는다. 멘델스존은 자리로 돌아가서 로베르트라는 친구를 살살 흔들어 깨운다. 머리가 덥수룩한게 삽살개 꼴이었다. 어쩌다가 멘델스존같은 바른생활 청년이 저런 친구를 얻었는지도 궁금했다. 믹서기 너머로 드문드문 말소리가 들렸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아니 화가 났다기보다는 미묘하게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걱정스러운 투인 것도 같고, 조급한 것도 같고, 당혹스러운 투인 것 같기도 한 멘델스존의 목소리였다. 하이든은 바나나 반 개와 망고 반의 반 개를 잘라넣어 믹서기에 집어넣는다.

"아니, 갈 거면 하숙집으로 가지 왜 나한테 연락을 해요."

"..."

"쫓겨난 건 아니죠?"

"..."

로베르트 쪽 말이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말을 안 하고 있는 건지.

"설마?! 당신 설마?! 아니라고 말해줘요! 아니 어떻게 하숙집에서 그럴 생각을 해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궁금해 미치겠는데 멘델스존이 언급하는 대신 '그럴' 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봐서 전연령가 수준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일 테다.

"..."

이번에는 뭔가 말을 했던 모양이다. 곁눈질로 슬쩍 훑어보니 당황해서 귀가 한 차례 더 불타오르는 멘델스존이 로베르트의 입을 막고 있었다.

"내가 당신 때문에 미치겠다 진짜... 술 좀 끊어요, 응?"

믹서기를 멈추고 하이든은 숟가락으로 음료를 긁어 컵에 담아준다. 상대편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는데 대충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만했다. 코스터 위에 잔을 놓고 쟁반을 들 때쯤에는 두 청년 모두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망고바나나 스무디 나왔습니다."

하이든은 삽살개처럼 덥수룩한 머리를 아주 산발로 하고 있는 청년의 앞에 잔을 놓아 준다. 청년은 고개를 까딱하고 고마움을 표하고 멘델스존도 목례한다. 얼굴과 귀 끝이 죄다 빨개져 있는 멘델스존을 보니 어제 일어났을 법한 일에 대한 짐작이 점점 굳어져갔다.

멘델스존의 반대편에 있는 청년은 히피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머리길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복장은 히피라고 하기에는 얌전했지만 글쎄 그건 전날 토한 옷을 멘델스존이 빨아주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줬기 때문이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피라고 한 건 단순 머리길이뿐은 아니고 눈동자가 뭐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 한 사람처럼 몽롱했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베를리오즈랑 느낌이 비슷한 것도 같았는데, 그에 비해서는 좀 더 문학청년, 시인, 뭐 그런 감수성이었다. 또라이성은 좀 약해 보였다.

어쨌든 이상한 사람이었다.

"와인이 맛있는 건 인정해요. 맥주도 좋죠. 근데 그걸 왜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시냔 말이야. 돈도 없는데 그 돈을 왜 자꾸 술에 써요 정말!"

원, 저게 친구인지 엄마인지. 하이든은 믹서기 날을 분리하고 날에 묻어 있는 스무디를 닦아낸다. 멘델스존의 잔소리가 배경에 백색 소음처럼 잔잔하게 깔렸다. 그리고 로베르트라는 친구 쪽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부터 로베르트 슈만, 어디 루프탑 바든 칵테일 바든 어디서든 당신이 꽐라됐다는 소식 들어와 보기만 해요. 당신 어머니한테 A4 용지 다섯 페이지 분량으로 당신이 학교를 얼마나 개판으로 다니고 있는지 꼼꼼하게 보고해 드릴 테니까."

이야, 우리 와이프도 저렇게 해 준 적 없었는데. 돌이켜 보면 하이든의 아내는 하이든이 집에 코카인을 들고 와서 하루종일 빨아댔어도 한 마디 하지 않았을 테다. 그 정도로 하이든이랑 아내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결혼을 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이혼했으니 그걸로 오케이였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슈만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하이든은 미소를 지으며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해 다시 믹서기를 조립한다. 다시 포스기 앞에 서자 팔짱을 끼고서 자못 엄한 표정으로 슈만을 노려보는 멘델스존이 눈에 들어왔다. 하이든 눈에는 일곱 살이 다섯 살을 혼내는 꼴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저 둘은 꽤나 진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술!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슈만의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터져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정확하게 문제라니까 그게! 처음에는 당신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종국에는 술이 당신을 마시는 법이라니까요!"

그러는 멘델스존도 당 중독이 아닌가 의심되는 날이 가끔 있긴 했지만 말 자체는 맞는 말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알콜중독 기미가 보이면 싹수가 노랗다. 어릴 때 시작하면 어릴 때 시작할수록 끊기가 어려운 법인데, 아마 지역 특성상 슈만이라는 친구는 십대 중반 때부터는 자연스럽게 물 마시듯이 술을 마셔왔을 테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술이든 담배든, 습관을 끊기는 어려워진다.

"하지만 괴로워..."

"하이고오오, 힘든 거 나도 알지 알죠. 근데 그걸 자꾸 술 마시면서 풀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세상에 술보다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나도 와인 마시지만요, 로베르트, 정말 맹세컨대 와인이나 맥주보다 좋은 게 세상에는 많다고요."

멘델스존은 유리 막대로 스무디를 저어서 슈만 쪽으로 밀어주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어 슈만이 짓는 표정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죽상이 됐을 테다. 술을 마시는 사람과 당 중독인 사람의 심리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모르는 걸까? 본인이 술과 단 음료를 둘 다 좋아해서 차이를 못 느낀 걸까?

손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하이든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들어와서 행복하게 음료를 음미하다가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나가는 인사를 하는 멘델스존과 저 우울해 보이는 슈만 친구는 뭔가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하이든의 카페에 와서 달달한 음료를 찾는 사람들은 그 달콤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긴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그 기억 또는 다른 기억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또 마신다. 알콜중독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니까, 슈만과 멘델스존은 아마 경우가 매우 다를 것이다. 잊고 싶어하는 사람과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슈만이 빨대로 스무디를 쪼오옥 빨아들였다. 하이든은 카운터에 턱을 괴고서 두 대학생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하이든의 카페에는 어쩐지 괴짜들과 이상한 사람만이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은 조금쯤 이상한 사람일 테다. 각자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지금까지는 하이든이 그저 '괴짜들' 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짜로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맛없는데."

슈만이 말했다. 멘델스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미간을 찌푸리며 티스푼을 하나 갖고 가더니, 스무디를 한 스푼 떠마신다.

"이걸 마시고 맛이 없다고? 당신 미뢰는 대체 어디로 도망간 거야?"

취향이 좀 다를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독설을 퍼부을 것까지야...

"도망가지는 않았어..."

슈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멘델스존과 슈만을 본 건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벌써 눈에 빤했다. 아무리 봐도 슈만이 압도적으로 지는 관계였다. 뭐, 대화가 통하고 있다는 건 슈만이 슬슬 술이 깨고 있다는 소리니까 멘델스존이 도움이 되는 친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슈만네 부모님은 아직 슈만이 알콜중독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알았더라면 멘델스존에게 '우리 아들을 빛의 길로 인도해 주어 고맙다' 라는 말이나 그와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

"로베르트 슈만, 내 말 잘 들어요. 이거 지금 못 고치면 평생 가. 당신 이렇게 살면 시험 망치는 건 물론이고, 여자들도 당신 안 만나 줘. 인생이 망가진다고요. 당신 걱정해서 하는 소리예요. 로베르트, 친구들이 맨날 술 먹자, 이자카야 가자, 치맥 하자 이런 이야기들 한다고 좋은 친구가 아녜요. 내가 좋은 친구라고 자신은 못하겠지만, 당신 건강을 생각해 주는 사람들을 먼저 가까이에 둬요. 당신이 술 먹고 재밌는 이야기 한다든가 술 먹고 날뛰는 모습 지켜보면서 즐거워 하는 사람들 말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군.

하지만 로베르트는 여전히 죽상이 되어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스무디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이었다. 멘델스존은 턱을 괴고서 안타깝다는 듯이 슈만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잔을 본인 앞으로 가지고 온다.

"알겠어요. 이건 내가 마실게요. 그치만 술은 끊어야 해요, 당신이 망가지는 꼴을 계속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당신이 이런 사람 아닌 거 아는데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어... 오지랖이라고 해도 좋아요! 하지만 정말로. 술은 안 돼요. 알았죠?"

멘델스존은 슈만의 손을 꼭 잡고 스무디를 쪼옥 빨아들였다. 잔의 절반이 한 모금에 비어버린다. 슈만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가만 그 광경을 옆에서 똑같이 턱을 괴고 지켜보고 있던 리스트가 하이든에게 속삭인다.

"근데 점장님. 편의점 음료가 다 털렸다고 해도 약국에 있는 숙취해소제는 남아 있지 않았을까요? 보로딘 씨가 '대목'이라고까지 말씀하셨었는데."

"...그러네."

친구를 위한 멘델스존의 따스한 오지랖은 아주 약간... 불필요한 수고가 들어간 오지랖이었던 것 같았다. 조금 더 편한 방법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몇 분 만에 멘델스존은 잔을 비워버리고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다. 둘이 가게에 들어온 지가 30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멘델스존은 탁자에 두 손을 탁,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빨리 이발소에 가서 머리부터 다듬고, 그러고 나서 빨래방에서 옷 찾아서! 완전히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거예요!"

의욕적인 오지랖. 제 왼쪽에서 턱을 괴고 있는 누군가가 참 떠오르는 멘델스존의 행동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프란츠 카페, 바버 헤어, 하얀빨래방까지를 거치는 멘델스존의 의욕적인 계획에 슈만은 의외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준다. 어딘가 멘델스존에게 끌려다니는 듯하지만 딱히 멘델스존의 오지랖에 저항하지도 않는 슈만은 트레이를 반납하고 하이든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목례한다.

"또 오세요."

하이든도 미소지으며 슈만에게 인사한다. 멀어져가는 삼선슬리퍼 한 켤레와 운동화 한 켤레를 바라보며 하이든은 슈만이 또 올지 아니면 또 오지 않을지, 슈베르트와 만원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이든의 그런 흐뭇한 미소 뒤에 배경음으로 슈베르트의 욕설이 깔린다.

"망할! 왜 남의 가게 앞에 토를 해놓고 지랄이야!"

...제발 술 좀 끊어라, 망할 대학생들아. 토할 거면 최소한 집에 가서 토하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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