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愛

7. 다짐

어떠한 다짐은 저주가 되기도 해

이타도리 와스케의 마지막은 적적했다. 화장터로 옮겨진 이타도리 와스케의 몸은 염을 하고 수의로 갈아입힌 뒤, 그의 몸에 딱 맞는 나무 관에 가지런히 눕혀졌다. 쭈글쭈글하게 늙은 남자는, 산 사람의 온기가 떠났음에도, 마치 깊은 잠에 든 것 처럼 보였다. 유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부르면 시끄럽다며 몸을 돌릴 것만 같았다. 이번 잠자리는 왜 이리 좁냐고 짜증을 낼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유지는 그런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딱딱한 몸을 아무리 힘껏 흔들어도 굳게 닫힌 눈은 이제 영영 열리지 않으리라.

장례식은 진행하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내뱉는 순간까지 혼자였던 남자가 자신의 장례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타도리 유지는, 할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손자는 아니었지만, 이번 만큼은 착한 손자가 되기로 했다. 대신 병문안 때 샀던 꽃을 할아버지 몸 위에 뿌려줬다. 죽은 자는 강을 건넌다고 했던가? 강을 얼마나 건너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꽃점이나 보며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였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대락 열 송이 정도 뿌려주자 꽃잎에 얼굴이 파묻혔다. 꽃잎 때문에 코끝이 간지러워서, 그것 때문에 벌떡 일어나 화를 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지는 그것이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다.

유지는 유리창 너머 화장로에 들어가는 관을 바라봤다. 화마는 이타도리 와스케의 모든 것을 태울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혔던 병과, 그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던 검은 그림자까지 전부. 남는 것은 화마로도 태우지 못한 뼈와 재 뿐일 것이다. 이타도리 와스케는 일반인이었으니 저주라던가 주령 같은 것이 태어날 일도 없었다.

“여!”

유지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상한 안대와 위로 솟은 머리, 고죠 사토루였다. 고죠는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유지에게 다가갔다. 다리가 긴 만큼 보폭도 커서 열 발자국 걸을 거리를 다섯 발자국으로 걸어온 것 같았다. 혹시나 자신이 도망갈 것을 우려해서 찾아온 듯 했다.

“장례식은?”

“치루지 않았어요. 고집불통의 부탁이 있어서.”

“아? 아하~”

고죠는 이해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전부였다. 그것이 그만의 배려였음을 눈치챈 유지는 그에 대한 평가를 고쳤다. 경박하지만, 보기보다는 책임감이 높은 사람인 걸로.

유지는 시선을 다시 돌려 화장로를 바라봤다. 고죠도 유지의 옆에 서서 조용히 있었다.

화장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침묵 속에 잠겼다.

特愛(특별한 사랑)

7. 다짐

모든 걸 태윘던 화마가 남긴 이타도리 와스케는 새하얗고, 노릇노릇했다. 유골함을 들고 수골실에 들어온 유지는 짙은 탄 냄새에 잠깐 숨이 막혔다. 도망가고 싶고 한없이 눈물을 쏟고 싶은 기분이 들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습하는 것도, 미련없이 보내는 것도. 그럴 준비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유지는 생각했다.

생각을 해보면,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고 유지는 생각했다. 저주라던가, 주령이라던가, 주술사라던가, 료멘스쿠나라던가. 가족의 죽음 하나만으로도 일상이 뒤바뀌는데, 비현실적인 일들이 연이어서 찾아왔으니 일상이 뒤바뀌다 못해 인생이 뒤집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흡, 후우”

유지는 숨을 크게 들이키다가 천천히 뱉었다. 뱃속에서 울렁이던 감정이 곧바로 내려갔다던가, 두근두근 뛰던 심장을 진정시킨다는 그런 효과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진 않지만, 적어도 목 안쪽에서 맴돌던 울음을 겨우 삼킬 수 있었으니 충분히 필요한 행위였다.

유지는 오른발을 들었다. 의식적으로 들려고 했다. 여전히 숨이 막히고, 발은 무거웠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지만, 유지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하나씩 발을 옮기며 유지는 겨우 할아버지 앞에 설 수 있었다. 유골함을 열고 걸려있는 집게를 집었다. 모든 것이 무거웠다. 제 몸도, 유골함도, 집게도.

‘죽음이란 건 이렇게나……’

무겁구나.

“괜찮아?”

뒤에서 따라 들어오던 고죠가 유지에게 말을 걸었다. 타인의 목소리가 끼어드니 수골실의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진 것을 느낀 유지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고죠는 길다란 허리를 굽혀 유지와 눈을 마주쳤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안대 때문에 그의 눈이 보이지 않지만, 유지는 그와 눈을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유지는 가벼워진 집게를 사용해 유골을 유골함에 하나씩 옮겨 담았다. 그렇게 유골함의 반이 채워졌을 즈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정숙한 분위기가 다시 견디기 힘들어진 유지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저기”

“응?”

“저주로 인한 피해가 꽤 많나요?”

“피해라. 이번 일은 특수한 케이스이긴 하지.”

“특수한 케이스?”

유골을 옮기던 손이 멈췄다.

“피해 규모만 따지자면 수두룩 하거든.”

고죠는 가볍게 말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하는 말인 탓에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저주와 조우했는데 평범하게 죽는다면 운이 아주 좋은 거고, 묵사발이 되더라도 시체가 발견된다면 그것도 그나마 나은 편이야.”

“…”

“스쿠나 손가락 수색에 참여하게 된다면 처참한 현장을 보는 일도 생길거고, 주술사는 기본적으로 3D 직종이라 네가 그런 꼴이 안 될 거라는 보장도 없어.”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고죠는 설명을 마무리했다.

“…그럼”

그 외의 피해는요? 유지는 다른 질문을 했다.

“응?”

“저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저주 외 다른 이유로 인한 피해요.”

집게가 다시 움직였다.

“인명사고나 자연재해 같은 거?”

“음, 그런 건 아닌데……”

유지는 입 안을 맴도는 단어를 굴리며 말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곧 결심을 한 유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살면서 이상한 걸 본 적 있으신가요?”

“뭐?”

고죠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자신이 안대를 쓰는 이유가 뭔지 이 소년은 알기나 할까?

“저는 보여요.”

하지만 유지의 다음 말은 차원이 다른 듯 했다.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어린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걸 본다는 이야기. 저는 지금도 보이는 거라 경우가 다를 수도 있긴 한데……”

“에?”

“가끔, 사람들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보여요.”

유지는 제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고죠에게 전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까지 전부. 믿을지 말지는 그의 몫이지만, 유지는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 일을 겪으니까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에

“누군가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림자는 무조건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장 후시구로 메구미가 다쳤을 때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보이는 이유도, 보이는 기준도 모르는데 어떻게 사람을 구하려는 거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고 유지는 생각했다. 구하는 방법도 우연히 이구치와 접촉하면서 알게된 거였으니까. 그 방법도 어쩌면, 스쿠나의 손가락을 먹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일반인으로서의 이타도리 유지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을 겪지 않고, 그래서 방법을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된다고 해도”

너는 강하니까 사람들을 도와라

그런 유언을 들어버린 탓에.

“저는 사람을 구하기로 했으니까.”

내뱉은 말은 다짐과 같아서.

유골함이 전부 채워졌다.

함의 뚜껑을 덮은 유지는 고죠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죠는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손가락을 건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중에 고죠는 이 일에 대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손가락을 건네받은 유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크게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삼켰다. 텁텁하고, 끔찍하게 쓰린 맛이 혀를 마비시키고, 굵은 마디가 식도를 압박하는 것을 참으며 겨우 넘긴 유지는 갑작스럽게 덮치는 고동에 가슴을 부여잡고 벽에 기대어 웅크렸다.

“크윽, 큭, 흐흐, 흐하하…”

고죠의 손이 움찔했다.

“우웩! 더럽게 맛없어! 웃음이 다 나오네!”

손끝에 맺힌 살의는 눈 깜짝할 새 기화되어 사라졌다. 고죠는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너 뿐일 걸?”

고죠는 유쾌하게 웃었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고죠는 유지가 메구미에게 행한 반전술식을 떠올렸다. 그가 가진 눈은 분명 반전술식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유지가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지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거니까. 유지가 설명한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결심을 했다고 보면 될까?”

눈 앞의 소년은

“스쿠나의 손가락은 제가 전부 삼킬 거에요. 스쿠나랑 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과 관련이 없었어도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유지의 능력은 RPG 게임에서 주로 봤던 상태창 같은 거라, 유지를 통해 죽을 사람도 죽지 않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로웠다. 가뜩이나 주술계는 인력난이라, 지킬 수 있다면 지키는 것이 좋았다.

“좋아~즐거운 지옥이 될 것 같네!”

“그렇게 말하니 도망치고 싶은데요.”

“늦었어! 유지는 도망 못 가.”

“그런!”

수골실을 나가면서까지 두 사람은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문이 닫혔다. 산 사람이 없는 수골실은 적막하기만 했다.

“───그래, 유지.”

적막을 깨는 이가 꼭 산 사람 뿐인 건 아니지만.

“너는 분명 많은 사람을 구할 거야.”

검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러니 안심하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와스케의 사진을 바라본다.

“네 할아버지는 무사히 도달했으니까.”

미소를 짓는다.

“다음에는 직접 꽃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

다시 적막.

수골실에 언제 소리가 있었냐는 듯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와스케의 사진 앞에 없었던 하얀 꽃이 놓여져 있다는 소소한 변화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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