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愛

3. 확인

과거는 마치 보물찾기 지도와 같아서

바람이 불었다. 초여름의 밤바람은 제법 시원했다. 바람에 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검은 원피스의 치맛자락도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사찰은 고요했다. 한 밤 중이었으니 고요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울음소리, 스님의 불경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TV소리 등 생명력과 생활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리 하나 없는 상태라면 분명 이상한 상황인 거겠지. 사찰을 맴도는 고요함은 그런 류의 것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적막 뿐인 공간이었다. 그녀는 그런 곳에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칠흑색으로 반짝이는 두 눈이 정확히 학교 쪽으로 향했다.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나? 저쪽은 보지는 못할 뿐 느꼈을 수도 있다. 아니, 분명 느끼고 있겠지. 그렇다면 참으로 다행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제법 어렵고 서툰 일이라, 의도한 바가 통했다면 그걸로 만족스러웠기에. 다른 이들에겐 아직 알려주고 싶진 않았다. 특히 특별한 눈을 가진 자들의 따가운 시선은 슬슬 지겨울 때가 되긴 했다. 그래서 그랬다.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하게 된 이유.

 

“안녕, 스쿠나.”

네가 알아야 했기에.

짧게 인사했다. 들렸을까?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많은 인사를 나눴으니까. 그러니까 바로 다른 이에게 인사를 건네도 화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표정과 눈빛에 미처 지우지 못한 감정들을 기억한다. 그것이 퍽이나 귀여워서 모른 척 넘어갔던 날들이 반짝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모른 척을 하기로 했다. 질투가 많다는 건 알지만, 사이가 좋았으면 하니까.

 

“안녕, 유지.”

 

어리게만 봤던 아이는 잘 성장해서 건강한 소년이 되었다. 아니, 아이는 여전히 어렸다. 그 천성은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녀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성장하지 않은 것과 일맥상통했다. 그녀는 변하지 않는 것을 사랑했다. 그러면서도 변하는 것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이번에도 그녀의 가슴이 뛰었다. 제게 심장이라는 기관이 있기는 할까? 그렇지만 이 고동은 진짜였다. 그러니까, 영혼이 떨리고 있다, 라고, 그런 걸로 하자. 그녀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고동이 울릴 때면 그녀는 소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소녀가 될 생각이었다.

자, 다시 움직일 시간이야. 그리운 추억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시간이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유지도, 스쿠나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特愛(특별한 사랑)

3. 확인

 

 

 

스쿠나가 일으킨 파장은 매우 컸다. 무려 현대 최강의 주술사라 칭해지는 고죠 사토루의 사고를 멈추게 했으니까.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 슬쩍 안대를 들어 올려 자세히 봤으나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스쿠나의 말은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라는 뜻이었다. 의심하고 싶어도, 가문에서 무려 400년을 기다린 제 눈에 대한 신뢰가 잠깐 떨어지긴 했지만, 온화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이냐고~’

 

고개를 돌리면 꽤 오랫동안 만난 제 제자, 후시구로 메구미의 얼굴은, 고죠도 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한, 경악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은 눈이었다. 잠시 현실을 부정하며 의식이 우주 저 너머로 날아간 것 같은 제자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뭐, 그렇겠지.’

 

고죠는 가볍게 으쓱했다. 저주의 왕에게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말은 천 년 전 주술사가 들어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니. 오히려 더 두려워하지 않을까? 혹은 생각과는 반대로 기회라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주의 왕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고죠는 제게도 들어온 정신적 데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실없는 생각을 했다.

 

"질문은"

 

이걸로 끝인가, 시선을 다시 고죠에게 돌린 스쿠나가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죠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을 얹으면 깍둑 썰기를 당하는 건 주령이 아니라 학교 건물이 될 테니까. 고죠는 손가락을 튕기며 웃었다.

 

"궁금한 건 끝났어!"

 

고죠는 다른 질문을 이어서 하지 않기로 했다. 궁금한 것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질문을 한다고 명쾌한 답을 해줄 것 같지 않았으니까. 서적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던 료멘스쿠나의 새로운 일면을 알게 된 것 같아서 오랜만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고죠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건 다른 쪽이었다.

고죠의 말을 들은 스쿠나는 그걸로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두 눈을 감았다. 고죠가 생각하기에도 슬슬 주도권을 이타도리 쪽으로 넘길 시점이었다. 주술은 기본적으로 등가교환, 아무런 조건 없이 주도권을 바꾸는 건 스쿠나에게도, 육체의 주인인 이타도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 몸에 헛짓거리는 하지 마라."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스쿠나는 쥐고 있었던 주도권을 전부 놓아 이타도리 유지에게 넘겼다. 불길한 검은 문신이 사라진다. 동시에 번쩍 호박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어라, 이야기는 잘 끝났나요?”

 

의식도 멀쩡했다.

 

“물론. 평화롭게 잘 나눴지!”

 

고죠는 유쾌함을 숨기지 않으며 유지에게 엄지를 세웠다. 유지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시구로를 보며 유지가 물었다.

 

“그건 나중에!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야~”

“해야 할 일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유지가 다시 물었다. 고죠는 답을 해주는 대신 검지와 중지를 모아 유지의 이마를 가볍게 툭 쳤다.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유지는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까무룩 기절했다. 쓰러지는 몸을 받아 그대로 어깨에 둘러멘 고죠를 보며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후시구로가 다급하게 물었다.

 

“스쿠나의 말, 믿으시는 건가요?”

“정신 차렸네, 메구미~그리고 안 믿을 내용도 아닌걸?”

“그렇지만 상대는 그 저주의 왕이라고요!”

 

후시구로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저주는 교활하다. 그리고 료멘스쿠나는 그 이명에 어울리는 교활함까지 가졌다는 내용이 여러 문헌에 적혀 있었다. 고죠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죠는 스쿠나의 말을 신뢰했다. 스쿠나의 말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고죠 사토루는 료멘스쿠나가 잠시나마 보인 어떠한 감정을 신뢰했다.

 

“사랑만큼 왜곡된 저주도 없거든, 메구미.”

 

사랑에서 비롯된 수많은 저주를 목격했다. 사랑이 만든 특급 저주를 바로 작년에 발견했다. 그렇다면 사랑이야말로 저주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가장 어울리는 감정이지 않겠는가. 난간 너머를 바라보는 스쿠나의 표정에서 작년에 입학한 사랑꾼 제자를 떠올렸던 고죠는 스쿠나를, 그 사랑을 믿기로 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이타도리 유지의 처분은?”

“…스쿠나의 말이 사실이고, 그래서 호의적으로 구는 거라 해도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주술 규정에 따르면 사형이고요.”

 

정석적인 답변이 후시구로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후시구로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번에 처음 만난 이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어 특급 주물까지 삼켰던 유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후시구로는 선인(善人)을 좋아했다. 그리고 유지는 후시구로의 기준에서 보면, 그가 알고 있는 다른 한 명과 같은 충분한 선인이었다. 그렇기에

 

“죽게 놔두고 싶지 않습니다.”

 

후시구로는 정석이 아닌 답변을 내뱉었다.

마음에 들었나 봐? 고죠가 짓궂게 웃으며 물었다.

 

“어느 쪽이든 어떻게든 해봐요.”

 

후시구로는 뾰족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제자의 존경이라곤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시선을 익숙하게 무시한 고죠는 아까 스쿠나가 바라보던 쪽을 보며 말했다. 바라본 쪽은 마을의 풍경이 넓게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고죠는 스쿠나가 단순히 마을의 풍경을 본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스쿠나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라는 표현보다는 누군가가 맞으려나. 대체 시력이 어떻게 된 거냐며 혀를 내두르다가도 제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봤다는 것에 호기심이 들었다.

 

“메구미, 상처는 다 나아서 멀쩡하지?”

“…이타도리 덕분에요.”

“그럼, 주술고전 서고에 들어가서 자료 좀 구해줄 수 있어?”

“스쿠나가 말한 것 때문인가요?”

 

정답! 고죠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스쿠나가 말했다. 이타도리 유지의 몸에 헛짓거리하지 말라고. 그러나 주술계를 이끄는 상층부는 분명히 유지에게 사형을 내릴 것이다. 이대로면 스쿠나의 손가락을 전부 삼키고 죽는다는, 일종의 사형 유예를 받는 것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스쿠나가 어디까지 허용을 해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사형 유예도 피해야 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고죠에게 있어서 피곤한 일이지만, 상층부에게 이타도리 유지가 사형을 받아선 안 되는 존재임을 인지 시켜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쿠나의 말로는 부족하다. 녹음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증거로 남겨진 것도 없을 뿐더러 그저 ‘말’뿐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라고 나오는 순간 이쪽의 패배였다. 자칫 잘못하면 저주의 왕에게 놀아났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만 씌워질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말’에 신뢰를 줄 확실한 ‘증거물’이었다. 물론 증거가 있다고 해서 상층부에게 통할 거라고 고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협상하기 편했기에.

 

“나도 가문 서고에서 조사를 해볼 거니까.”

“네.”

 

고죠의 말을 이해한 후시구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죠는 하늘을 바라봤다. 시리도록 푸른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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