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愛

2. 문답

나는 질문하고 너는 답하고

”고죠 선생님!“

”엉망진창 당했네, 메구미! 기념 촬영~“

찰칵, 찰칵. 핸드폰으로 메구미를 여러 각도로 찍는 인물, 고죠 사토루를 보던 유지는 그제야 메구미의 이마를 적신 피를 발견했다. 흘린 피의 양만 봐도 상처가 얼마나 클지 짐작되었다. 아까 전 손가락을 노렸던 거대한 괴물-주령에게 당한 상처인게 분명했다. 그 괴물은 자신이 손가락을 삼키고 몸을 차지한 녀석에게 깔끔하게 처리되었지만.

메구미가 고죠와 옥신각신하고 있는 동안 유지는 메구미 이마로 손을 뻗었다. 상처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좀 진지하게 들으라고요! 료멘 스쿠나가 깨어났다니, 윽!?“

노란빛이 유지의 손에서 반짝였다.

”어?“

”어?“

상처가 순식간에 나았다. 상처의 주인이었던 메구미도, 빛의 근원지인 유지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놀랍도록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구미는 매우 놀라서, 유지는 매우 당황해서 지은 표정이었지만.

”정말이네.“

섞여 있잖아? 적막을 깨고 고죠가 유지를 보며 말했다.

”거기다가 아까까지만 해도 비술사였다면서?“

”에? 그, 그렇죠?“

유지는 더듬더듬 답했다.

고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급 주물을 삼켜서 주력이 생겼다고 해도 시작부터 반전 술식을 쓰다니, 메구미 말대로 재밌는 녀석이네?“

”제거 언제 재밌는 녀석이라고!“

”아하하! 어쨌든 재밌는 녀석인 건 맞으니까~“

”저, 저기“

제가 정말 무지 중요한 물건을 삼켜버린 건데, 괜찮나요? 걱정스러운 말투로 유지가 물었다.

문제없어! 고죠가 자신 있게 답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어서 메구미가 바로 부정했다.

”스쿠나랑 바꿀 수 있겠어?“

”스쿠나?“

”네가 삼킨 손가락의 주인이야. 그래서 할 수 있겠어?“

”에, 아마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불러줄래?“

고죠는 들고 있던 짐을 메구미에게 맡기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메구미는 아직 가시지 않은 얼떨떨함과 익숙한 불안감에 거리를 살짝 벌렸다.

유지는 눈을 감았다. 무언가 잡고 있던 것을 놓으니 곧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지나쳐 위로 올라가는 형체를 보았다. 저게 스쿠나? 나오지 않는 물음을 입에 가득 담고 유지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스쿠나는 다시 한 번 느리게 눈을 떴다. 닫혀있던 아래쪽 눈도 느긋하게 열렸다. 이타도리 유지였을 땐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귀찮음과 거만함이 바로 새어 나왔다. 하하, 이거 진짜 인재일세? 유지와 스쿠나의 상태를 본 고죠가 유쾌하게 웃었다. 고죠가 그러거나 말거나 스쿠나는 팔짱을 끼고 말없이 고죠를 지켜봤다. 전혀 덤벼들 것 같지 않아서 오히려 맥이 빠진 고죠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안 덤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야 나는 주술사고, 그쪽은 저주의 왕이니까?“

”그래, 그래서다.“

왜 내가 너희 주술사들을 일일이 상대를 해줘야 하지? 스쿠나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죠에게 반문할 뿐이었다.

特愛(특별한 사랑)

2. 문답

주술사란 족속들은 귀찮다.

스쿠나 또한 주술사로 태어났기에 말할 수 있었다. 주술사란 족속들은 귀찮기 짝이 없다. 주제도 모르고, 분수도 모른다. 약한 주제 덤벼든다. 두려워하면서 달려든다. 대의라던가 복수라던가, 혹은 순수한 욕심이었던가. 이유는 다양했고, 그 열렬한 사랑을 받은 스쿠나는 친히 귀찮음을 무릅쓰고 그들의 몸도 정신도, 욕심도, 전부 남김없이 몰살했다. 비명도 울음도 없이. 무엇 하나 남지 않도록 가루로 만들어서. 그리하여 스쿠나가 나타난 장소는 피로 젖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재앙이 땅을 적시고 원한이 하늘을 가렸다. 그리고 스쿠나는 그 모든 것을 감내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눈앞의 하얀 놈은 강했다. 싸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오판하여 덤볐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를 만난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겉보기만 보고 얕보다가 처참히 짓밟힌 경험은 한 번이면 족했기에.

“볼일은 이것으로 되었느냐, 주술사.”

그리고 지금 스쿠나는 꽤 기분이 좋았다. 주도권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불려진 것임에도 약간의 자비를 보여줄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천 년 동안 그렸던 그녀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겠지, 스쿠나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이해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것도 아니었기에 스쿠나는 가볍게 넘겼다. 그녀와 관련이 있던 일 중에서 어처구니가 없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사랑하는 쪽이 지는 법이라 하지 않던가. 스쿠나는 제 손에 도륙난 이들이 들었으면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승에서 기어올랐을 지도 모를 생각을 했다.

“에, 그렇다면 몇 가지 질문해도 될까, 저주의 왕님?”

도발에 걸려들지 않는 스쿠나에 완전히 맥이 빠진 고죠는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두 번째 단계로 바로 넘어갔다. 스쿠나는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지금 쓰고 있는 몸의 주인과 가족 사이였나요~!”

고죠는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을 던졌다. 메구미만 옆에서 이마를 짚고 짜증을 낼 뿐이었다. 고죠는 저주의 왕의 답을 기다렸다. 답이야 고죠가 예상한 답이 나오겠지만 혹시 또 모르지 않겠는가. 고서에 적혀있던 내용과 상반된 반응을 보여준 것부터 고죠의 예상에서 많이 벗어났는걸. 그러니 이번에는 어떤 기상천외한 답을 꺼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스쿠나의 입에서 나온 답은 고죠가 예상한 답 중 하나였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멍청한 것.”

 

물론 말의 형태는 곱지 않았지만.

 

“그러면 처음에 메구미에게 한 말은 무슨 의미? 설마 첫눈에 반했다던가?”

“장난치지 마시고 진지하게 제대로 된 질문을 하세요!”

“에, 이쪽은 진지하게 묻는 거라고?”

“선생님!”

 

촌극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며 스쿠나는 고죠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적절한 단어들을 골랐다. 그녀에 대한 건 언급 하고 싶지도 않고, 언급할 생각도 없다. 현 시대의 주술계가 그녀를 알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스쿠나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방해할 순 없다. 방해하게 둘 생각도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회피성 답변을 하기엔 이 육체가 맞이할 운명은 제 손가락을 삼킴으로써 정해진 상태였다. 주술계가 천 년 전과 수준이 비슷했다면 이 육체의 가치는 높았으리라. 특급 주물을 아무런 부작용 없이 담을 수 있는 육체는 귀하니까. 능력을 최대한 개화할 수 있도록 끝까지 살려두고 사후에 파괴가 불가한 특급들을 봉인하는 주물로 만들겠지. 하물며 삼킨 것이 제 손가락 주물이 아닌가. 만약 지금의 그릇이 자신의 사후에 태어났다면 자신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정성스레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진한 인간 하나가 주술계라는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그 시대의 주술사들은 그만큼 미쳐있었고, 그만큼 대의를 중시했기에.

하지만 수준이 한참이나 낮아 보이는 이 시대의 주술계가 과연 이 육체의 가치를 이해하고 끝까지 살려둘까?

 

‘어림도 없지.’

 

사형, 이 애송이가 맞이할 운명은 사형 뿐이다. 설령 사형을 피하게 될 지라도, 자신을 죽이는 거에 혈안이 되어 온갖 공작을 펼칠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손을 뻗겠지. 거기까지 사고가 닿자, 스쿠나는 더욱 단어들을 골랐다. 그녀를 위해서,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이 몸은, 이 애송이는 어쨌든 살아야 했다.

마침 눈앞의 하얀 놈은 좋은 뒷배가 될 만한 강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군.’

 

만족스러운 답을 완성한 스쿠나가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참고로 내가 추천하는 건 생크림이 들어간 완두콩 맛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왜? 담화를 나눌 때 뭐라도 먹으면서 하는 게 좀 더 편하잖아?”

“쫌!”

 

스쿠나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는 어느새 콩트로 넘어간 듯했다.

 

“답을 들을 생각은 있는 거냐, 네놈들.”

“아, 맞다. 그래서? 답은?”

 

본론으로 돌아온 고죠를 보며 스쿠나는 잠시나마 정말 이놈을 뒷배로 둬도 괜찮을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주어진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귀찮은 일들은 믿음직스러운 부하가 처리줬던 지난 날들이 잠깐 그리워진 스쿠나는 한숨을 내쉬며 준비한 답을 뱉었다.

 

“이 애송이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뭐?”

“일단 천 년 전의 약속이라고만 해두지.”

 

약속, 그리고 해야 할 일.

고죠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아무리 고죠라도 저주의 왕이 한 발언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현대까지 전해지는 문헌에는 ‘료멘 스쿠나’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있지는 않았다. 전해지는 건 오직 ‘저주의 왕’이라는 이명과 술식, 그리고 그 이명에 어울릴 만한 끔직한 악행들 뿐.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왜 악행을 저지른 건지 후대의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이제와서 악인이라고 알려진 이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을 거고. 즉, 천 년 전의 주술사들이라면 몰라도 현대의 주술사들은 스쿠나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사자가 있다. 천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에 강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당사자가 천 년 전에 누군가와 맺은 약속 때문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육체를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약속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속박’이다. 아무리 최강의 주술사라 하여도 속박을 무시할 수 없다. 속박에 대해 모르는 이는 천 년 전에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속박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저주의 왕이, 결코 타인과 맺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 속박을 맺었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고죠는 예상치 못한 소득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직 약속의 내용도, 이타도리 유지가 해야 할 일도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차차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제 고죠가 알아내야 하는 내용은 하나뿐이었다.

 

“약속을 맺은 상대는 역시?”

 

고죠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질문을 했다. 스쿠나는 예상했던 물음에 준비해 둔 다음 답변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전부 말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면 충분했다. 거짓이 아니지만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그러면 상대는 그 진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지금의 스쿠나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이 다음은 제 몫이 아니었기에.

스쿠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익숙한 감각이 그를 건들지 않았다면. 스쿠나는 급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난간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봤다. 시선의 끝에 닿는 건 없다. 주력으로 시력을 강화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애초에 그녀는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쿠나는 개의치 않았다. 보이지 않아도 저 너머에 존재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천 년 전처럼 달은 시리도록 푸른 빛을 내고 있었고, 그녀는 언제나 아름다운 흑발을 바람에 흩날리며 고고하게 서서―――――――

 

“………뭐, 뻔하지 않더냐.”

 

스쿠나는 생각을 바꿨다. 그녀를 감추기 위한 진실 아닌 진실은 가치를 잃었다. 그녀의 존재를 깨달은 이상 거짓이 섞인 말을 뱉고 싶지 않았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알아버렸으니까. 느껴버렸으니까.

그녀가 이 땅 위에 발을 내딛었음을 어찌 느끼지 못할 수가 있는가.

 

“내가 사랑하고 있는 상대다.”

 

그녀가 이 마을에 있다.

스쿠나는 제 표정에 힘이 풀렸음을 감각적으로 느꼈다. 아마도 타인이 보면 기겁할 만큼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경악한 어린 주술사의 표정을 보는 것으로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이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제가 내뱉은 말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 지도 알 바가 아니었다. 스쿠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감히 소망했다.

언젠가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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