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산책 한 걸음.

  • 모브 캐릭터 다수 등장합니다.

  • 벨져의 행방불명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입니다. 사망언급 주의!

  • 2024년 5월 3일 이전까지 풀린 사이퍼즈 스토리를 가지고 연성하였습니다.


꽃이 피는 봄의 시작은 오래전이였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찬 바람이 콧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참지 못한 재채기가 넘어와 주변에 울려퍼져나갔다. 근처엔 그 누구도 없음에도 나는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난 다시금 발걸음을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번엔 어느 곳으로 가야 되는 것일까? 더이상 생각이 나지않아, 아쉬움과 복잡한 마음에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근처 마을을 찾아 여관에 들어가 휴식을 선택한 나는 우선 더러워진 몸을 씻고 나왔다. 배가 고파, 나는 시장에서 간단히 먹을 만한 음식을 사왔다. 음식을 먹으며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전장이 사라진 이후, 난 나의 새로운 여정 길을 택하고, 모두 앞에서 사라진지 어느덧 4년이 지났음을 깨달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4년 전 나는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끝에 내 첫 발걸음은 그와 처음 만난 장소로 향하였다. 그 뒤론 그에게 기대감을 품었던 그 장소를 찾아가보아도 잃어버린 제 빛, 벨져 홀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식의 문을 닫을 모든 계획은 너무나도 완벽했고, 그 완벽함 덕분에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그 뒤로 여러 갈등도 없잖아 있었지만, 전쟁은 끝이났기에 나에겐 평화로운 세상이 돌아왔음에 행복했었다. 그런데, 마음은 너무나도 아팠다. 내게 반드시 평범한 일상을 돌려주겠다고 말했던 나의 작은 기사님은 그의 코드명 섬광처럼 멈출줄 몰랐지만, 마지막 임무에선 그 어떠한 빛 능력자들 보다 더욱더 반짝이며, 커다란 문과 함께 이 세상에서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하아- 큰소리를 치며 반드시 찾아서 돌아오겠다고 말했지만, 대체 언제쯤이면 만날 수 있는 것이오. 벨져-”

나는 오늘도 아무런 득을 보지 못해, 일기를 써내려가던 중 잠시 복잡한 마음이 생겨 펜을 내려놓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한결 기분은 나아졌지만, 언제쯤이면 나는 벨져를 다시만나,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는 그 곳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있을 까? 이 생각은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복잡한 마음이 들면, 안된다고 언제나 피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되었다. 그래… 마음을 다시 잡고자 나는 게이트를 열었다.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 이곳은 내가 언제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오는 장소였다. 언제나 이곳에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이제 나는 옛 일을 기억하기 위해 찾아왔다. 잠시 두 눈을 감고 나는 우선적으로 벨져가 사라지기 전의 일의 기억부터 꺼내보았다.

[벨져릭] 산책 한 걸음.

벨져가 사라지기 전의 어느 날의 밤. 그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내게 찾아왔다.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어 컨디션을 최선으로 올려야한다며, 보기드문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내게 내일 아침까지 이 물건을 홀든가에 전달해달라며, 고운 천으로 꽁꽁 싸맨 무언가를 내밀었다. 보기만해도 커다란 물건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무엇이냐고 질문해보았지만, 극비의 물건이니 궁금하면 홀든가에 가서 풀어보라며 물건을 내게 건내주었다. 제법 무거웠던 물건은 한손으로 들기 버거워 양손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러면 게이트를 열 수가 없다고 말하는 나를 무시한 채, 벨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러면 나는 쉴수가 없겠다 생각해 나는 우선 물건을 바닥에 두었다. 그리고 게이트를 홀든가로 연결하여, 물건을 질질 끌고 갈 생각이었지만, 귀중하고 또 깨지는 물건이면 어쩌지 싶었다. 그래, 홀든가에 사람들은 다들 나보다 건장하니, 부탁을 하자 싶어 나는 우선 내 몸부터 홀든가로 옮겼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이 넓은 저택 안 어느 곳에도 사람 하나 없었다. 그렇구나,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내일을 위해 서있겠구나 싶어 나는 우선 벨져의 부탁을 완수해야겠다 싶어. 되돌아갔다.

“역시, 네겐 무거웠나?”

“아… 음, 하하- 아무래도?”

“도와주지.”

“쳇, 진작에 같이 가주면 좋잖소.”

“게이트나 열도록.”

벨져는 내겐 너무나도 무거웠던 짐을 한손으로 가볍게 들고선 함께 열린 게이트를 너머갔다. 저렇게 가냘펴보여도 튼튼한 벨져가 조금은 부러웠다. 내가 연결한 곳은 그래,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벨져의 방이였다. 아무래도 이곳으로 여러번 불려지기도 했고, 또 사적으로도 찾아가곤 했으니, 벨져는 나름 잘 연결했다며, 무거운 짐을 창가쪽에 놓여진 커다란 테이블 위에 살며시 올려두었다. 대체 무엇이기에 저렇게 소중히 감싼 것일까? 나는 무척 궁금해졌다. 홀든가에 도착하면 열어도 된다했지? 열어볼까? 나는 물건 가까이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벨져는 창 너머 달을 바라보더니, 산책이나 하자며 나의 손목을 붙잡고서 막무가내로 밖으로 나갔다. 이 도련님이 왜이럴까? 아, 혹시 그대라도 조금은 두려운 것일까? 마지막 전투의 쐐기돌이 되는 일은 아무리 벨져 홀든이라 해도 두려운 것일까?

밖으로 나온 우린 아무말 없이 넓은 정원을 가볍게 걸었다. 여전히 그에게 잡혀있는 손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처음 그에게 잡혔을땐 어땠더라? 무지 아파서 몇 주 동안은 손목을 가리고 다녔어야했지. 하지만, 그대가 언제나 앞과 하늘을 향했던 눈의 방향은 어째서 땅 아래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조금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벨져, 내일부터 시작될 전투가 두려운 것이오?”

“전혀 두렵지 않다.”

“흠- 그런것치고는 그대의 표정이 좋지않아.”

“제대로 잘 못 보고 있군.”

잠시 발걸음이 멈춘 벨져의 눈을 나는 마주했다. 그래, 올곧은 푸른 호수처럼 아름다운 눈은 그대로였다. 그래, 역시 내 착각이였군.

“하하- 미안하오. 역시 내가 잘못 봤소. 그댄 분명 잘 해내겠지?”

“그래, 네 녀석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완벽하겠지.”

“밉다. 미워- 하지만, 역시 난 그대에게 고마움뿐이오.”

“당연한 생각을 이제서야 말하다니, 한심하군.”

“고맙소. 벨져, 내일이면 우리는 어찌 될까? 계획은 완벽에 가까우니까- 성공이겠지?”

“그래, 그 교수의 이론은 완벽하고 또 단기간에 많은 이들이 제 실력보다 성장하여 견디고 있어… 그럼, 우린 일을 끝맞추면 된다.”

우리의 일… 그래, 내일 있을 전투에 나의 일은 언제나 비슷했다. 벨져를 정확한 위치에 보내준다. 이번엔 시간과 위치 모두를 만족해야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며칠동안은 벨져와 함께 휴식을 취하였다. 우린 처음엔 각자의 시간을 보내었다. 예상된 전투를 일주일 앞둔 이때부터는 여러곳을 함께 동행하였다. 가볍게 여행도 다니고 또 여러 휴양지에서 휴식도 보내며, 전투 준비중인 다른 능력자들과도 만났다. 모두 잘해낼거란 말과 함께 힘내자는 응원과 언제든지 끝까지 도와주겠단 반가운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단 한사람은 지나가는 우리에게 말을 했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나? 설마… 벨져? 그 질문에 벨져는 코웃음을 치며, 남 걱정할 시간보다 물품 지급에 힘쓰라며,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뒤로 우리는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우리와 함께할 이들이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날엔 홀든가에 왔다. 나름 특별한 이 장소… 나는 처음 이 홀든 저택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모두가 친절히 나를 반겨주었다. 나와 벨져의 관계 또한 이해해주었다. 그렇기에 나의 또다른 집.

산책을 끝낸 나와 벨져는 씻고 나왔다. 나는 벨져에게 다시 돌아갈까? 질문을 하니, 아침이 되면 돌아가자며 대답해주었다. 나는 벨져의 의사를 존중해, 창가에 기대어 무엇인가 적어내려가는 벨져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쓰고 있는 것일까? 편지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게가 제법있는 노트에 일기라 생각한 난 황급히 자리를 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사각이는 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저택, 나는 모두 어디로 간걸까? 이정도는 벨져도 답해줄거라 믿으며, 그에게 물었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이냐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고용인들에게 자유를 주었을 뿐이다.”

“그럼, 그대들은 이 전투가 끝나도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오?”

“뭐, 형이라면 돌아오겠지. 살아서 돌아온다면?”

“살아돌아온다라… 다들 내일 있을 전투에 목숨을 걸고 있군.”

“그럴수밖에 없지. 설마, 목숨을 걸어야한단 말에… 이제서야 두려운가?”

“음- 아니, 분명 예전의 나라면, 두려웠겠지? 하지만, 이제 아니야- 내가 지친다해도 그대와 함께한 기사단원들이 도와줄것이고 또- 무엇보다 그대가 내 곁에 언제나 있잖소? 두렵지 않아.”

진심인 이 말이 벨져는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그럼 되었다며, 펜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 앞에 포장된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물건을 건내주었다.

“으- 설마 또 이걸 어디로 가져다 달란 부탁이오? 이번엔 또 어디오?”

“무슨 소리지? 이건 네것이다.”

“어? 내것?”

“풀어보고 싶음 풀어봐도 좋다.”

그 말에 나는 즉시 리본을 풀어 내용물을 확인해보았다. 작은 쿠키가 담긴 병에 나는 고개를 기울렸다.

“쿠키? 표면이 스테인글라스처럼 반짝이는데?”

“설탕으로 꾸민 쿠키라고 하더군.”

“흐음- 왜 내게 갑자기 쿠키를 선물하지? 평소같았으면, 살 빼라고 하지 않았소?”

“싫으면, 버려라… 기껏 생각해서 사왔건만, 한심하긴.”

“아니, 안 버릴것이오!! 평생 간직해야지. 벨져가 처음으로 선물해 준 쿠키니까…”

“썩어 버리겠단 뜻인가?”

“참… 농담도 그대 외모처럼 예쁘게하면 덧나오? 그럼 좀 재미있게 봐줄만 할텐데-”

나의 헛소리가 담긴 말에 벨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보았지만,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싫은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이 무척 좋았다. 항상 감정을 삼키고 있던 그가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나는 이 말은 굳이 벨져에게 남기지 않았다. 남겼다간 어떤 말이 내 귓가에 들려왔을지 뻔하였으니까- 나는 대신 벨져에게 내일 내게 주어진 일들을 다시금 되물었다. 생각을 다시 가다듬을 겸, 내 의지를 다시 잡을 겸… 난 내일부터 벨져의 근처가 아닌 후방에서 전투에 임해야했다. 후방에서 전투를 돕고 부상자가 생기면 그들을 이동시키며, 인식의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이 되면, 벨져의 곁으로 돌아가, 게이트를 열면 되었다. 간단하였지만, 인식의 문이 어디로 열릴지는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알겠지? 그래서 난 내일부터 문이 열리는 그 날까지 벨져의 곁을 잠시 떠나, 그의 동생인 이글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의 시력은 빗나가는 일이 없을 테니…

“있지, 벨져- 내가 만약 다른 능력을 지닌 능력자였다면, 난 그대와 만났으려나?”

“만났더라도 분명 넌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 중 하나가 되었겠지?”

“흠- 그렇단 뜻은 난 커다란 풍경이오?”

“너도 내가 그렇지 않은가, 여행자?”

“하하- 정답이오. 그래, 내가 이 능력을 갖게 된 이후로 두 번째로 만족스러운 순간이군.”

“바보같긴- 지금 당 첫번째로 바꾸어라.”

“음- 싫소. 역시 첫번째는 처음 능력을 발견했을 때야.”

우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이어갔다. 우린 겨우 4시간정도 눈을 붙인 이후, 마지막 전장으로 향하였다. 벨져의 말따라 치열하였다.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승리와 자신들의 세력을 잃고 싶지 않은 안타리우스간의 싸움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이 또한 계획 중 하나였다. 인식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혼란을 만들고 모두가 힘을 합해 전투를 펼치며 문이 열릴때를 기다리는 이 무모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이 계획은 순조로웠다. 그렇게 전투가 치열해지고 모두가 긴장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갑자기 커다란 빛이 보였고, 때가 되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난 벨져의 곁으로 가기 위해 게이트를 열려던 찰라… 이상하게도 벨져는 내 눈에도 보일 만큼 아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며, 또한 커다란 인식의 문 앞에 바로 서있었다. 커다란 문이 굉음을 내며 열리던 그 순간, 벨져는 빛 속을 향해 들어갔고, 그 이후 커다란 빛이 크게 일렁이더니 문은 사라졌다.

“어째서? 벨져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벨져는 문앞에 자신을 보내주고 또 닫기만 하면 된다하였다. 하지만, 어째서 벨져는 문 너머로 들어간 것이지? 어째서? 이런 복잡한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주변의 소음을 점점 더 커져갔다. 자신들의 그동안 쌓아올린 일이 무너져 화가난 듯한 안타리우스 세력과 계획 된 일이 진행됨에 있어 기쁜 마음을 애써 누른채, 이 혼동을 잠재우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은 여러 세력들의 전투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짐에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에 난 단 하나만이 내 마음속에 박혀서 빠지지 않았다. 벨져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생각에 사로잡힌 이후, 나는 충격으로 인함인지 아님 타인에 인해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이 새까맣게 변하였고, 눈을 떠보니 고급진 천장과 곱게 차려입은 단정한 어느 중년의 여성이 나를 보며 황급히 어디론가 떠나가는 문소리를 들었다. 익숙해, 이곳- 그래… 여긴 홀든 저택의 벨져의 방이었다. 이곳이 어딘지 알게된 나는 안심이 되어 이제서야 내 온몸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어깨가 뚫렸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온몸이 아파,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뒤로 여러 발소리가 들려왔고, 뿌옇게 변한 내 시야엔 익숙한 얼굴들이 묵묵히 나를 바라보다가 벨져의 뜻에 따라, 내가 안정 될 때까지에 여러 지원을 할 것이란 말과 동시에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말고, 그저 재활에만 신경 쓰란 말을 남긴 이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방을 나갔다. 이후로 아직 나가지 않은 다른 이는 형들이 줘야할 사과는 자신이 대신 하겠다며, 몸이 다 나으면 술이나 사주라며, 제 의사는 듣지도 않고 떠나갔다. 그리고… 설마했지만, 그래… 그는… 벨져 홀든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 현실속에 나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나는 몸이 다시 원래의 상태가 되었음에도 나는 이 자리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 곳엔 아직 그의 향이 남아있고, 지금이라도 저 커다란 문을 박차고 내게 사뿐히 다가와 게이트를 열라고 명령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 정말 다들 답답해서 원! 이봐, 형씨! 몸 따윈 다 나았지? 자, 약속대로 술 사줘야지?”

아무도 오지 않던 곳에 누군가 찾아왔다. 내가 잃은 것과 닮았지만, 다른…

“미안하오. 나중에 사줄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오.”

“대체 그 말만 몇 번째야? 그러다 나도 30대가 되겠다고…”

이글은 내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고, 그저 팔다리 멀쩡하고 상처 다 아물었으니 괜찮겠지란 말을 한 이후, 나를 끌고 어디론가 향하였다. 가는 도중에 말리는 고용인들 앞에 칼을 내밀면서 지나갔기에 날 구해줄 이는 이제 없음을 더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분명 그가 있었다면… 벨져…

“어때? 이 곳 나름 분위기 있지?”

“…그래, 그대와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야.”

“너무한데? 이래보여도 나도 나름 명문가의 도련님인데?”

평소 그와 술은 몇 번 마셨지만, 언제나 즐거운 소음이 가득한 곳이였기에 다소 어색하였다. 조용한 분위기의 바에는 잔잔한 재즈 음악과 화려한 의상에 잘 어울리는 여러 장신구로 몸을 치장한 이들이 앉아있었다. 그들과 달리 이제 막 침대에서 끌려나온 내 모습과 제 앞에서 와인을 즐기는 이글의 모습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터치하지 않고 눈치도 주지 않은 것은 역시 이글 때문이겠지?

“가끔 이런 곳의 술이 땡길때도 있단 말이지-”

“…날 데려온 것을 보아하니, 무엇인가 할 말이 있나보오?”

“역시, 눈치가 빠르네? 그래서, 작은 형이 데리고 다닌걸까?”

“너무한데, 아픈 곳을 너무나도 잘도 찌르는 군.”

“아, 미안-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건데? 작은 형도 이 모습을 바라진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난 그의 말에 그저 긴 한숨으로 답해주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이글이 나를 이곳으로까지 끌고 온 이유라면, 이제서야 홀든에선 벨져를 보내주기로 결정이 확정 된 듯 하였다. 반발하는 이글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냉담하지만 한편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다이무스의 언쟁을 문너머로 듣곤 하였다. 나도 인정해야하나? 벨져가 이제 더이상 이 세상엔 없은 사람으로서…

“근데, 형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정말 작은 형이 사라진건 분명해, 하지만 죽은 건 아니잖아.”

“그대 생각도 틀린건 아니오. 하지만,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죽은 것과 다름없지.”

“헤? 실망이야… 적어도 형씨는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 생각 했는 데-”

“같은 생각? 그래, 그대도 벨져는 사라진 것 일뿐이라 생각하고 있었지…”

“어, 그래서 이것저것 조사를 해봤어- 그 과정속에 알아낸게 있고…”

“알아낸 것?”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우선 장소를 이동하자는 이글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들어선 안되는 일인가? 그를 따라 간 곳은 다름 아닌 지하 연합의 옛 아지트였다. 지금은 형태만 고스란히 남았으며, 그 안은 전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다. 그저 그리움을 잊지 못한 몇 명의 인원만 찾아오고 떠나가는 장소가 되었다. 이글은 아지트의 가장 안 쪽의 방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그 곳에는 몇번 마주친 다른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대부분 옛 연합 사람들과 그랑프람의 사람들, 몇명의 헬리오스 소속이였던 능력자들… 그리고 내게 벨져의 욕을 실컷했던 몇 명의 기사단원들도 있었다. 이글은 자신의 두 눈으로 판단해서 믿을 만한 이들만 모인 새로운 비밀연합이라 말하며,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벨져 홀든의 행방을 찾는 것.

“다죽어가는 작은형 놀리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뭐, 그 속에서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아야 내 속이 시원할 거 같단 말이야-”

“아마… 버티고 계시지 않을까요? 단장님은 그래도 강인하시니까…”

“하지만, 단장님이 사라진지도 벌써 반년이라고? 그러니 난 시체라도 찾으면 좋을 거라 생각해.”

“자자- 다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구요. 분명, 그곳에서 너머온 자들도 그 공간엔 시간의 흐름이 없다했으니, 적어도 살아는 있겠죠.”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보니, 모두의 바람은 역시 죽어있든 살아있든 벨져의 행방을 찾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하나 둘 공유하기 시작했다. 전 안타리우스에서 활동했던 자들의 말로는 문은 닫혀도 또 언젠간 다시 열릴 것이며, 허나 이번에 열린 문 안으로 액자를 들고 들어갔으니, 우리가 살아있을 만한 시대엔 다시 열리지 않을 것이라 말하였다. 액자를 대신할 무엇인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상은…

“그렇다면, 액자를 대신할 무엇인가를 만들 셈이오?”

“우리로선 액자의 탄생 과정을 모르니 그럴 순 없어요. 하지만…”

“하지만?”

“문의 발버둥이라고 해야하나요. 곳곳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단 보고가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이상현상은 지속되는 것이오?”

“네, 물론 전처럼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겠지만, 그 근처에 능력자가 다가가면 능력에 변화가 생긴다고 합니다.”

“능력 변화? 지금 시점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분명 세상은 또 큰 갈등이 번지겠군요.”

“저… 이거, 비능력자 입장으로서 말씀드리는 건데, 제 주변 사람들은 몇 달전에 일어난 전쟁으로 능력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있어요.”

“맞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안타리우스가 손을 뻗었던 이들에 대한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되구요.”

이들가 찾은 정보와 현재 세상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내 생각과 달리 세상은 전보다 안정되지 않고 오히려 다른 혼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타리우스만 사라진다면, 인식의 문만 닫으면, 액자만 제자리에 되돌려주면 다 끝날 일이라 생각했던 것 모두를 고쳐야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째서 벨져의 행방을 찾는 것이오?”

제 질문에 모두가 고요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정적을 먼저 깬 건… 아주 오래전 내게 벨져에 대한 불만을 잔뜩 낸 기사였다.

“그저 살아있는 지, 죽어있는 지 그걸 확인하고 싶어요. 살아있다면 그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 그 말을 전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후회 속에서 살아 갈 것 같아요. 자, 그럼 이제 동생님이 한 마디 해보세요-”

-후회 속에서…?

“뭐어? 나? 난 그냥~ 재미있잖아? 작은형이 가는 길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 투성이라- 그럼 다음은 너가 말해라.”

-흥미로워…?

“저? 저요? 아… 전… 그냥 그동안에 지켜봐주신 것에 대해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제가 흔들릴 때마다 쓴소리를 잔뜩 하셨는데, 이게 돌이켜보니까, 제가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더라구요. 그래서 고맙단 말씀을 꼭 전하고 싶어요.”

-고마워…?

모인 모두의 말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와닿음에 나 또한 그들과 마음이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말해주었다. 벨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대들의 가능성을 요약하자면, 문이 발버둥 치는 그 위치에 내가 찾아가 능력을 사용한다면, 어쩌면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연결 될 것이란 말이오?”

“물론…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지? 아마 지금 남아있는 신도들도 문의 발버둥에 눈치를 채고 있을 지도 몰라. 비능력자가 많다해도 능력자가 아에 없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아마 형씨가 가겠다고 한다면, 그 길은 형씨 혼자서 행동해야해.”

벨져를 다시 만날 가능성? 이 순간 바람 한점 없은 밤바더처럼 어둡고 고요했던 내 시간이 바람을 타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비밀리에 모인 이들을 제외한 연이 닿아있던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나처럼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로서 살아가겠다고- 당분간은 못해본 여행을 실컷 다녀올 것이라 만남은 어려워도 언젠간 다시 돌아올것이라 말을 하니. 모두 아쉬운 마음 그리고 응원을 하며 나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는 가벼운 산책이라 생각하며, 벨져를 찾아 떠났다.

그렇게 홀로 벨져를 찾아 떠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때에 나는 어느 능력자가 변화를 느낀 장소에 닿아보기도 하였지만, 한참 늦은 후였다. 아쉽지만 나는 멈춰선 안되었다. 그 뒤로 나는 여행자로서 여행을 즐기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정보를 모았다. 세상에는 내가 만났던 능력자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 중에선 자신이 가진 신기한 힘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능력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들은 무척 신기해하며 자신들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이곳을 기억해두었고, 훗날 벨져를 찾으면, 이곳에 데리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저런 많은 일들과 실패와 또한 작은 성공도 맛보다 보니 어느새 4년이 지났다.

그래- 벨져가 떠난 이후 충격으로 허공으로 보낸 시간과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을 위해 준비 기간 까지 합쳐서 5년이 지나 있었다. 5년이라…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간 벨져의 27살 그때 그 시간에 멈춰 있겠지만, 내 시간은 계속 흘렀기에 어느덧 나의 나이는 40대를 앞두고 있었다.

“흠… 생각해보면, 벨져가 그대로라면 좀 곤란한데, 7살차이도 사귀면서 많이 불안했는데- 이젠 12살 차이?”

‘괜한 걱정하지마라 릭 톰슨. 넌 그저 나의 연인임에 감사함만 갖도록.’

순간 들려온 벨져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랬다. 저 대사는 분명, 예전에 내게 고백했던 벨져의 말이였다. 나 역시 벨져와 같은 마음이였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난 그의 고백을 받아드리기 망설였을 때- 내가 벨져에게 했던 모든 변명들에 대한 답변이였다. 그때 상황을 다시 생각하면 할 수록 역시 벨져는 뻔뻔하고, 얄미운 말을 해주었지만, 내 변명과 고 모두를 단 번에 베어낸 말이기도 했다. 그뒤로 나는 그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일들을 하나 둘 머릿 속에서 꺼내보았다. 우린 반짝이는 은하수를 배경 삼아,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 그리고 또 피로를 견디지 못한 난 게이트를 잘 못 연결해 얼떨결에 인적없는 이름모를 꽃밭에 떨어져, 벨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위로 꽃잎이 잔뜩 묻었던 때도 있었고, 임무를 마치고 숙소를 향하던 중 마주친 고양이를 보고 굳어버린 벨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한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벨져는 고양이 같은데… 고양이 같이 털이 복실복실한 동물들을 싫어했지…”

어째서일까? 이렇게 벨져를 생각하고 있으니, 꼭 다시 제 옆에 벨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있다는 가정하에 정리된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 벨져- 나 결심했소.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 여행을 끝낼 생각이야…”

정돈된 내 마음을 털어놓고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욱씬 거렸다. 하지만, 나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도 그대를 만나지 못한다면, 난 그대를 마음속에 품고서 평범하게 살아갈께. 미안하오. 하지만 어쩌겠어- 그대가 택한 평범한 사람이오. 나는…”

혼잣말을 마친 나는 어쩐지 기분이 편해짐을 느껴, 게이트를 열었다. 예측대로라면 이 근방 어딘가에 문의 발버둥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진 나는 잡아둔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작은 구슬처럼 영롱한 빛을…

이 빛은 대체 무엇일까?

분명 이상한 현상임에도 나는 의심을 하였지만, 경계하지 않은 채, 나도 모르게 그 빛으로 내 손 끝을 올려보았다. 따뜻함이 전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빛은 무척 차가웠고, 점점 크기를 키우더니, 찰라의 강한 빛을 비추어 내 눈을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력을 되찾은 나는…

어느 새하얀 장소에 서있었다.


-다음편은 벨져의 시점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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