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ham_Springfield

누구를 위한

G - N

comu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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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들어보는 총의 격발음, 세상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진 듯한 비명, 제 어미를 찾아 우는 울음, 먹이를 발견해 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욕망에 찬 눈빛. 끔찍한 것들만 한 곳에 모아 섞어놓은 듯한 공간에서 나는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침착하기만 하면 살아남을 것이라는 교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두려움, 공포, 분노, 슬픔, 복수심 따위의 감정이 서로 얽힌다. 모두 가장 원초적인 욕망만이 남아서 목숨을 구걸하던 그날 곁에서 내 이름을 묻던 이는 목숨을 잃었다. 정신차리라 소리치던 이의 머리는 마수의 꼬리에 날아간다. 편안한 자세로 누운 몸에서는 치가 홍수 난 댐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사라진 이는 어디로 갔을까. 텅 빈 관에는 군번줄 하나 넣을 수 없었다. 만약 그날, 네가 그들과 섞이지 않고 별의 아이인 것을 모두 드러내고 싸웠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은 살았을까.

닉, 프리든, 존, 레이나

전선은 항상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 계속 후회만 남는 공간 속에서 자신이 마모되어감을 느끼지만 그곳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제껏 받아온 것들에 대한 책임감이 제 발목을 단단히 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이대로 이곳을 떠나버리면 그동안 함께 싸워온 전우들은, 더 이상 웃고 떠들 수 없는 전우들은 어디로 가는가. 땅 아래로 묻히고 사라진 이들의 넋은 누가 기억할까. 불합리한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도망치면 누군가가 분명히 죽을 것이다. 그곳에서 맞서 싸운다고 한들 누군가는 죽고 만다. 경험이 쌓이고 능력이 강해지고 근력도 순발력도 그 모든 것들에서 강해졌다고 느꼈지만 제 손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은 어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치 그 장소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만약 그것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이능력으로 꺼낼 수 있을 만큼 역겹고 추악하고 끔찍한 공간이지 않을까. 그곳에 서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어딘가가 망가져 있었다.

제 아무리 사격 실력이 좋아도, 그 누구라도 친하게 지내더라도, 홀로 고독하게 제 살길을 찾아 움직이더라도 모두, 덧없이 사라졌다. 사람을 살리려 해도 죽었다. 그게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인지, 혹은 할애된 이야기는 오직 거기까지라고 단정 지어진 것인지. 어떠한 거대한 힘에 의해서 그렇게 정해졌다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단순하게 운이 나빠서 그들이 죽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람의 생이 스러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자 그곳에 이유를 붙였다. 그들은 그들이 모자라서 죽은 것 또한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동정했고 지금의 상황에 분노했다. 그래서 모두 제 책임으로 두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그들의 사인이 정해지니까. 선배이자 후배이자 동기인 별의 아이가 무능했기에 그들은 죽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전, 모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단 말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제정신이 아니란 건 알겠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그 사이비 광신도 집단을 도대체 왜 감싸는 겁니까! 그들만, 그들만 당신이 버리면 자유로워지는 것 아닙니까..."

그들만 버리면 자유로워진다. 지금 느끼는 죄책감도, 고통도, 베개에 누웠다 하면 떠오르는 목소리도, 모습도 모두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몫이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을, 스스로에게 하지도 못 할 말을 제 앞에 선 불쌍한 신도에게 얘기한다. 네 죄는 네 것이 아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해야 할까. 왜 인간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것에 힘들어할까.

손등이 뜨겁다. 저를 바라보는 뱀이 무어라 속삭이나 동물 따위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꺼져.' 그것이 무슨 말을 하든 필요하지 않았다. 붉은 선혈이 손등을 타고 손바닥을 적셨다. 조금 미끄러워지는 것이 대수일까 조금이라도 더 힘을 주어 풀어내려 했으나 이내 검은 뱀이 사라지고 오로지 당신만이 남았다. 주저앉아서 괴로워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내뱉는 말이지만 그것이 불쾌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자꾸 술렁이는 기분 나쁜 감촉은 사라지질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의 그레이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라 외친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죄를 범했기에 벌을 받는 게 아닙니다. 벌을 감수해서라도 달콤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3년, 1년... 그동안 저는 별의 아이들끼리 지내는 시간이 그 이전의 시간보다 훨씬 달콤하고 즐거웠습니다. 아닙니까? 그게 왜 잘못된 겁니까. 사람이, 그저 사람과 만나서 지내는 일이. 우리를 만나는 것이 죄라면, 그건 우리가 죄인이라서가 아닙니까? 대답해보십시오.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면 왜 우리를 만나는 일로 벌을 받아야 합니까. 벗어나십시오. 제발, 그 갑갑하고 멍청한 광신도 집단에서 왜 그렇게 고통받고 계시는 겁니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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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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