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마

[사두하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너무 좋아해서 상대를 ○○해버리는 단문

백업용 by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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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 미화, 고어 묘사, 이상 성욕 주의. 픽션은 픽션으로만 소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손끝에 소름끼치는 감각이 스친다. 숱하게 느껴온 녀석이다. 그것이 손을 타고 척추를 거슬러 올라 비로소 머리에 닿으면, 하람은 사고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당겨 빼낸다. 성급한 움직임에 피가 울걱인다. 중심을 잃고 힘없이 기울어지는 육체를 겨우 달려가 받아낸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람은 책망한다. 물음은 두 사람을 향한다. 날카로운 창에 반쯤 꿰뚫린 복부에서 장기가 딸려 나오고 있었다. 제가 저지른 짓인가? 아니면서도, 맞다. 쏟아질 듯 비져나오는 장기를 구멍에 집어넣으며 힘주어 눌러 지혈하면 신음이 샌다. 사두는 이따금 ‘피가 끓는다'며 무리한 싸움을 강행하고는 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각인지는 잘 알지 못했음에도 자신이 느끼는 기이한 만족감과 비슷하지 않을까 넘겨짚어왔다. 지금 그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멈출 생각 않는 피가 델 듯이 뜨겁다. 당장 부글거리며 끓어도 이상하지 않을 온도같다. 사람의 피가 어떻게 끓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런 멍청한 생각이 하람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뭐하자는 거냐니까. 하람은 대답 없는 상대를 다시금 부른다. 거친 숨을 불규칙적으로 몰아 쉬며 그제야 사두가 눈을 치켜뜨고 웃는다. 하, 하하. 바람 빠져 웃는 소리에 맞춰 복부에서 다시 피가 쏟아진다. 지혈하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하람은 속이 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되짚을 정신따위는 없지만 사고는 제멋대로 튄다.

…두 사람의 대련은 대부분 합을 주고 받는 수준에 그쳤지만 종종 격해지기도 했다. 젤라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도탈에게 투쟁심이란 본능에 가깝다. 본능을 따라 무기를 부딪다 보면 살이 타거나 터지며 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고통에 몸을 가누기 벅찰 때까지도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사두는 일찌감치 그것을 삶의 이유라 칭한 바 있다. 윤회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찬란한 순간에 부서져야 했다. 그 순간에 가까워질수록 영혼이 반짝인다고 했던가. 피가 끓는다는 표현과 마찬가지로, 하람은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기이한 만족감과 맞닿아 있을까 넘겨짚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사두는 사랑을 찬미했고 하람은 그것이 좋았다. 오래전부터 하람은 누군가의 조건 없는 애정을 믿지 못했다. 많은 것이 그랬으나 특히 애정이 그러했다. 이유를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버릇으로 굳은 지 오래다. 그런 하람에게, 사두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사랑을 노래했다. 친애하는 나의 전사여! 하람은 언젠가부터 그것이 그저 좋았다. 그래서는 안 됐던 걸까. 의미 없는 후회가 하람의 머릿속을 스친다.

사두는 어떤 이유에서든 싸울 때마다 마력으로 몸을 둘러 보호했다. 투사와 주술사가 동등한 조건에서 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번 깨진 보호막은 재구축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을 하람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 끝에 에테르가 부서지는 것이 느껴지면 잠시간 급소를 타격하는 것은 피했다. 사두는 반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정하는 이를 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안전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

하람은 속으로 충분한 시간을 더했다. 오히려 넘쳤으면 넘쳤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환술이든 주술이든. 하람은 에테르와 마력을 관찰하거나 다루는 일에는 영 서툴었다. 직접 부딪치기 전까지 보호막이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명백한 사두의 고의였다.

사두는 손을 들어 하람의 뺨을 쓴다. 놀랐나? 대답 대신 되묻는 말이 짓궂다. 하람은 그제야 피와 땀, 눈물로 제 낯이 얼룩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각하면 눈물이 더 쏟아진다. 눈가를 훔치는 사두의 손끝이 떨린다. 입으로 역류하는 피를 몇번 울걱이고 나서야 사두는 제대로 된 언어를 드문드문 뱉는다. 제 욕심이자 오랜 숙원이었다느니. 너와 싸우고 영혼이 채워지는 걸 느끼면서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느니. 하람은 말 없이 절규한다. 그런 대답을 바란 게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에게서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건지 알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 탓하는 말. 전부 아니었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두의 숨은 조금씩 꺼져간다. 도탈 카로 가자. 지금 돌아가면 살 수 있어. 그러니까…. 순간 하람의 입이 막힌다. 사두는 남은 힘을 그러모아 양손으로 하람의 뺨을 감싸고, 그대로 끌어당겨 입을 맞춘다. 입술을 비집고 들어간 혀가 치열을 훑는다. 비좁은 틈으로 거친 숨과 뜨끈한 혈액이 샌다. 사두가 지탱할 힘을 잃고 떨어진 탓에 제멋대로인 입맞춤은 길지 못했다. 하람은 힘없이 뒤로 젖혀진 사두의 고개를 조심스럽게 받쳐 다시금 시선을 마주한다. 이제는 손 쓸 도리가 없다. 그저, 그가 오래도록 바라왔다는 순간을 지켜볼 뿐이다. 사두의 육신은 이내 굳는다. 하람은 그의 마지막 말을 기억에 되새긴다.

하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랑하는 나의 전사여.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다.

이기적인 사랑이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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