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세계관

사랑에 빠진 마법사, 전장에 서다 - 3. 하우윈과 아나뎀

하우윈은 선수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았다. 소금기 있고 시원한 물빛의 바람이 그의 프릴 리본 블라우스를 펄럭였다. 하늘은 파랗고 맑았으며, 구름은 해가 없게 바람이 모는 양처럼 떠갔다.


“거기 있으면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소.”


선원의 말에 하우윈은 머쓱하게 내려왔다.


“그렇지만 바닷바람이 너무 좋은걸요.”


“선원 일 한두 해 하시면 이제 바람길은 좀 읽습니다. 예마 님께서는 선원은 생각 없으십니까?”


하우윈이 호호호 하고 웃었다.


“아쉽지만 이 배에 실은 보석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걸요. 그래도 이번 무역이 잘 돼서 국제 기업이 된다면 여러분과 한 번 더 일해볼 생각이 충분히 있어요.”


“어휴, 그래 주시면 고맙겠구려. 우리 함께 하루 종일 돈 세며 즐겨봅시다.”


“듣기만 해도 너무 좋네요! 그러면 저는 선실로 가서 쉬다 와도 될까요?”


“예, 얼마든지요.”


하우윈은 배의 손님용 선실에 들어가서 집에서 가져온 아이스 뱅쇼를 마시며 주얼리 신문을 읽고 있었다. 신문에는 합성 다이아몬드 산업의 고공행진이 1면에 실려있었고, 양쪽에 급매 보석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있고, 그 뒤에는 디퓨전 처리(무색 사파이어나 채도가 낮은 커팅된 저가 사파이어 표면에 착색층이 형성되도록 표면에 확산처리 하는 것)된 사파이어와 루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사설 한 편이 있었다. 맨 뒷장은 구인 구직 광고로 끝났다. 구인 쪽에서는 세공사를 뽑는 곳이 많았고, 구직에서는 주얼리의 3D 프린트 기사들이 많았다.


하우윈은 어느 쪽이었냐면, 주얼리 3D 프린팅 기사였다. 하우윈은,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을 ‘얼음 틀에 물 부어서 얼리고 언 다음에 얼음판에서 떼는 것’으로 비유했다. 3D 프린팅 기사란, 디자인된 주얼리를 보고 적절한 두께와 너비, 폭으로 프로그램을 통해 모델링하는 일이었다. 이쪽은 하우윈이 구직을 시작한 5년 전에도 신입을 거의 뽑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하우윈은 여기에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디자인하고 모델링한 것을 샘플 생산하여 미리 만들어 둔 쇼핑몰에 주문 제작으로 올리자, 커스텀의 다양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제법 많이 주문했다. 종자금에서 순수익을 제법 낸 하우윈은 친절하고 좋은 주얼리 공장(디자인한 반지를 다듬고 연마해 세팅할 보석이 있다면 세팅하는 곳)을 알아냈다. 하우윈은 6년 뒤 오프라인에도 제1호 슬라브니아점을 열었다. 고객들은 커플링과 목걸이, 반지, 팔찌, 발찌 등 여러 주얼리를 사 갔고, 고객들과 하우윈 모두 행복했다.


사실 이 일은 하우윈의 양친들이 반대했었던 일이다. 주얼리 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던 것은 양친이 하우윈이 군인이나 군 소속 마도 공학자가 되기 싫다고 하자 대학 등록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아서 악을 쓰고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하우윈은 집안이 유복했으나 저 스스로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하우윈이 세운 회사가 잘되자 그제야 인정을 해주었다. 물론 하우윈은 지원을 한 푼도 못 받았기에 양친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하우윈이 신문을 읽고 책을 집어 들자, 그는 너무 졸려서 책을 수면안대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하우윈은 고된 마도 공학원 시간을 떠올렸다. 마도 공학도는 거의 80퍼센트가 엘프족이었고, 20퍼센트는 다른 종족이었다. 그 비 엘프족들은 서로 똘똘 뭉쳐서 다녔지만,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때에는 교과서가 모두 사라지는 마법이 벌어졌다. 물론 보나 마나 엘프의 짓이었다. 하우윈과 그의 의형제(가 되었다.)들은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 가던 트럭에서 사용감이 있는 그들의 교과서를 구해내서 힘겹게 받아냈다. 그리고 별안간 똑똑똑 하는 소리가 났다. 하우윈은 귀를 의심했고, 바로 꿈의 수면으로 떠올라 다시 현실 세계로 왔다. 똑똑똑하는 소리는 여전했다.


“누구세요?”


문을 열자, 선원이 급박하게 하우윈을 불렀다.


“잠드실 새, 날씨가 좋지 않아 바다 풍랑이 거세어서 잠시 항로를 이탈한다는 게 그만 제 실수로 닐사민로사의 영해를 침범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닐사민로사의 해적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하우윈은 기겁했다.


“이 배, 무장되어 있진 않죠?”


“선원들이 총을 좀 쓸 줄 압니다만, 해적과 대결해서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하우윈은 결심했다.


“좋아요. 내가 가서 담판을 짓죠.”


“무슨 담판 말씀입니까? 저희도 모르는 무예나 마법 기술을 갖고 계십니까?”


하우윈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내가 믿을 건 내 머리와 혀밖에 없죠.”


선원은 만류하며 두 손을 펼쳐서 흔들어 보였다.


“정말로 나가시겠습니까? 저희도 거칠게 여기신 예마 님께는 해적들이 더 거칠어 보일 겁니다. 산적을 상대할 때는 도망칠 수라도 있지만, 바다에서는 도망치기 힘든 것이 실족하여 바다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죽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우윈은 고집불통이었다.


“당신들의 고용주로서의 명령입니다. 날 해적들과 대면하게 해주세요.”


선원은 하우윈의 새파란 눈에서 결연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우윈은 선원의 안내에 따라 갑판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이미 제 집처럼 해적이 배 위에 올라가 있었다.


“당신들이 내 배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해적이냐?”


“그래. 그래서 어서 이 배의 화물을 전부 내놔. 목숨만은 살려주지.”


“싫다면?”


“‘보이지 않는 손’ 마법으로 한 명 한 명 집어서 바다에 빠뜨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주지.”


하우윈은 코웃음을 쳤다.


“해적단에 마법사라고? 이거 허세 아…”


하우윈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치여 앞으로 넘어졌기 때문이었다. 순간 하우윈의 비명과 퍼졌다.


“아악!”


“이 자식들, 감이 예마 님을 공격해?”


하우윈은 생채기가 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가만히 있어요. 조금 긁혔을 뿐이에요.”


하우윈은 닐사민로사에 대해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국가 차원에서 해적들을 보호하면서 슬라브니 배만을 주로 상대로 하는 대신 국가에 수입의 일부를 바친다는 ‘야만적인’ 바다의 나라.


“해적질을 국가사업으로 하는 녀석들에게 더 볼 일은 없죠.”


하우윈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말했다.


“좋아요. 이 배의 주요 화물인 귀금속과 주얼리들을 모두 줄게요. 대신 내 선원의 목숨은 살려줘요.”


“예마 님…! 어떻게 그런…!”


“예마님, 안 됩니다. 차라리 정면 승부를…!”


하우윈은 당당히 말했다.


“정면 승부를 해서 보석을 지킨다고 치죠. 그럼, 나한테는 뭐가 남죠? 난 내 사람인 당신들의 피 묻은 보석을 팔고 싶지 않아요.”


“예마 님…”


“예마의 해외 진출은 좀 미뤄도 돼요. 당신들을 기다리고 이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요.”


“감사합니다, 예마 님. 이건 어떻게 갚아야…”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때가 올 거예요. 그러면 모두, 화물을 갑판으로 싣고 와요.”


해적이 덧붙였다.


“예마라고 했나, 네 녀석? 화물을 다 싣는 동안 인질이 되어야겠다.”


“그래요. 내가 인질이 될게요.”


하우윈은 해적선에 승선했다. 해적 중 한 명이 조금 건성으로 하우윈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그동안 하우윈은 어마어마한 양의 금은보화가 자루로 담겨 해적선 화물칸에 실리는 광경을 보았다. 뼈아프고 배속이 뒤틀렸지만, 이 희생으로 선원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더 큰 고통을 겪어도 되었다.


해적선의 화물칸이 다 채워지자, 하우윈의 선원들이 말했다.


“이제 예마 님을 풀어줘.”


“그래.”


그러자 고심하고 있던 하우윈이 선언을 했다.


“나는, 이 사람을 따라갈게요.”


선원들이 기겁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우윈은 꿋꿋이 말했다. 


“사장님은 오늘부터 자리 비움이에요. 가서 전해요. 하우윈은 이곳에서 사업을 다시 일으켜 이곳에 닐사민로사점을 만들 거라고.”


선원들은 그래도 좀… 하는 표정이었지만 하우윈의 뜻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부디 무사히 귀국하세요.”


하우윈은 잠시 자신의 배로 가 선원 모두에게 악수하고는 해적선으로 돌아갔다.


“자, 그러면 가보실까요, 닐사민로사로.”


하우윈은 해적선에서 내려서 닐사민로사의 풍광을 즐겼다. 바다 뒤에 있는 섬들은 다리로 엮어 연결했고, 여러 층으로 되어있어서 복잡했다. 하우윈은 광장 한편에 있던 관광 지도를 보면서 찾아가도 길을 헤맬 때가 부지기수였다. 가만 보면 한눈에 봐도 길을 잃은 것 같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아, 이곳은 입국이 자유로운 편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우윈은 간신히 입국 확인소를 찾아갈 수 있었다.


하우윈은 자신의 성을 지을 때 조금 고심했다. 가족들이 물려준, 가족끼리 쓰던 ‘나 슬라브니 국민이요’하고 말하는 슬라브니어 성을 쓸 수는 없었다. 하우윈은 고심 끝에 ‘블루젬’이라고 하였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무사히 입국을 마친 하우윈은 수중에 지갑 하나밖에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그것도 적국인 슬라브니의 화폐밖에 없는. 하우윈은 어째야 할지 모르다가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나오는 하늘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보이자 냅다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환전소 있나요?”


“있습니다만, 어느 국가의 화폐를 어느 국가의 화폐로 바꾸시나요?”


하우윈은 최대한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슬라브나 망명자로서, 슬라브니 화폐를 닐사민로사 화폐로 바꾸고 싶어요.”


청년은 잠시 하우윈을 보더니, 제 지갑을 열었다.


“그런 것이라면 내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슬라브니 화폐는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기 힘듭니다. 국가 간 감정 사유로.”


하우윈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도와주실 수는 없겠죠?”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우윈은 놀랐다.


“네? 하지만 방금 슬라브니 화폐는 여기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다고…”


“그럼, 개인적인 이유로 도와드리고 싶어져서.”


청년의 표정은 읽기 힘들었다.


“아, 감사해요. 그럼…”


하우윈은 지갑을 열어 청년에게 돈을 주었다. 청년은 자기 지갑을 꺼내 금화를 거의 반이나 꺼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우윈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의 이름을 모르는군요.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하우윈. 하우윈 블루젬이에요.”


하우윈은 아까 전 지은 성을 붙여 말했다.


“아나뎀 블루로즈입니다. 닐사민로사의 마법사 길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네, 앞으로 신세 갚을 일 있으면 찾아가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좋은 오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우윈은 마법사 길드에 등록해 아나뎀의 마법학개론을 들었다. 하우윈은 이 청년에 대해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녔다. 엘프인데도 엘프들에게 특혜를 주는 슬라브니 제국에 가서 살지 않는 것도 궁금했다. 그의 씀씀이 또한 어딘가 수상했다. 슬라브니가 대화의 화제에 오르면 표정이 슬퍼 보였다. 하우윈은 단도직입적으로 아나뎀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아나뎀은 그것을 알면 자기에게 실망할 거라며 거절했다. 하우윈은 그의 선행이 이유가 있다는 것밖에는 알 수 없었다.


하우윈은 하던 보석 장사를 계속하고 싶었다. 지금은 사업에 필요한 종자금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하우윈은 종잣돈을 벌 계획을 세우려 했지만, 어디에서 돈을 벌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심정이었다. 하우윈은 혼자 멍하니 광장에 앉아있었다. 이럴 거면 슬라브니로 그냥 돌아갈걸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 눈앞에 우연히 아나뎀이 보이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열심히 불러보았다.


“아나뎀!”


“예?”


아나뎀은 서류 뭉치를 안은 채 하우윈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서 제일 돈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요?”


아나뎀은 고심했다.


“으음, 일단 내가 있는 마법사 길드에서 ‘보석의 마법’을 들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다음 주에 개강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보석 박힌 지팡이나 연마 전의 원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실전 마법은 그걸로 사용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우선 초급반부터 들어보십시오.”


“다행이에요. 감사해요.”


하우윈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우윈은 마법사의 역할 중 공격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들끓는 다혈질적인 마음을 실어 적을 공격하여 날려버리고 싶었다. 


“서리 폭풍이여, 모든 것을 얼려버릴지어다!”


하우윈은 보석 하우윈 반지를 낀 상태에서 손을 뻗어 서리 폭풍 마법을 사용하였다.


“괜찮군요. 나쁘지 않습니다.”


아나뎀은 칭찬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은 뭔가요?”


“블루젬 님이 방금 시전한 마법입니다.”


아나뎀은 은 지팡이로 ‘서리 폭풍’ 주문을 다시 한번 시전해 교실 전체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군요.”


많던가…? 하고 생각하던 하우윈은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그의 미소에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우윈은 아나뎀과 천천히 가까워졌다.


“아나뎀 선생님, 과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때는 중간고사를 2주 남겨둔 시점. 닐사민로사의 마법 학교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자비 없는 아나뎀은 학생들에게 거의 2~3일마다 한 번씩 과제를 주었고 그것은 중간고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과제가 어려운 것은 누구나가 다 그럴 겁니다. 우리는 모두 시작점이 같으니까요.”


하우윈은 푸욱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가보겠습니다.”


“잠깐만, 블루젬 님. 힌트를 드리죠 60페이지의 ‘마법을 사용하는 수단’에 대해서 주의깊게 읽고, 또…”


하우윈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우리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지만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요?”


“아뇨, 내일 수업 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거니까 상관없습니다.”


하우윈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우리가 조금 가까워진???' ‘가까워진???’ 그 말을 왜 했지???


마침내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오전에는 필기, 오후에는 실기 시험이 있었다. 하우윈은 벼락치기로 교과서를 외워버리는 바람에 응용문제에서는 조금 막혔으나 이내 잘 풀어나갔다. 시험 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러자마자 하우윈은 펜을 내려놓고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100점 나올 것 같다!! 하우윈이 전직 보석상이라 보석의 특징을 달달 외우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하우윈은 밖에 나가서 고르곤졸라 피자 작은 판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실기시험 준비를 해두었다. 미리 손동작과 주문 등을 끊임없이 연습했다.


하우윈은 실기 시험장에 갔다. 긴장한 모습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간 그는 토네이도 마법을 자신의 주변 대상으로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뭐가 문제였는지 자신 주변이 아닌 감독 선생님들의 자리에서 생겨 교수 중 한 사람의 가발을 벗겨버렸다. 대형 사고를 친 하우윈은 마법을 멈추려 했지만, 사람들의 박장대소가 커지면 커질수록 하우윈의 얼굴은 파래져 갔다. 하우윈은 그때 아나뎀의 표정을 보았다. 태어나서 생전 보는 깔깔깔 하는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우윈은 항의하는 시선으로 아나뎀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아나뎀이 갑자기 딸꾹질하며 바람을 사그라들게 하였다.


처음 하는 실기시험 이후로 하우윈은 아나뎀에게 한마디도 안 하고 수업 후에 찾아오지도 않았다.


“요즘은 왜 수업 끝나고 오지 않습니까? 질문할 것이 없습니까?”


하우윈은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아나뎀 선생님이 내 실수에 대해 실컷 깔깔대니까 내가 싫은 표정 하니까 그제야 수습해 준 거냐고요!”


아나뎀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든지 잘 해낼 것 같이 생각한 블루젬 님이 실기시험을 망친 것이 귀엽고 웃겨서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블루젬 님을 비웃은 게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하우윈은 마음을 풀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음에는 내가 어려움에 빠져있으면 좀 도와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제 당분간 아나뎀 선생님 거예요.”


하우윈은 자른 종이를 아나뎀에게 들려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백지 소원권이에요. 여기 사인해요. 나중에 아나뎀이 가능한 선에서 제 부탁을 들어줘야 해요?”


아나뎀은 왜인지 모를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소원권에 사인하고 돌려주었다.


백지 소원권을 쓸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왔다. 하우윈이 그날의 일에 대해 아나뎀에게 근사한 곳에서 좋은 식사 한 번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그 결과로 닐사민로사의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인 ‘웨일스’에 갔다.


“와, 엄청나게 기대되네요! 여기가 그 시장도 줄 서서 먹어야 하는 레스토랑이 맞나요?”


아나뎀은 부스스 웃었다.


“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크림 바질 리소토,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샹그리아를 먹고 마셨다. 평범한 음식들이었으나 괜히 ‘닐사민로사에서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게 아니었다 바질 향과 크림의 고소함과 면발의 꼬들꼬들함, 마늘의 풍부한 향과 고소한 기름, 고급 포도주에 오렌지와 레몬을 넣어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아나뎀 선생님, 되게 잘 먹네요. 여기가 고향이에요?”


농담으로 얘기한 것이지만 아나뎀은 침묵했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질문이라고 생각한 하우윈은 그가 입을 여는 순간 끼어들어 “말하기 싫은 거죠? 나도 이해해요.”라고, 이야기했다. 아나뎀은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이 땅의 외지인인 티를 팍팍 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 나라는 항구 도시로서 발달한 만큼 외국인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우윈은 내심 아나뎀이 자신에게 솔직히 말해주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파괴로서 생존하는 불이여, 이 대지를 뒤덮을지어다!”


하우윈은 반지를 낀 손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지만, 엉뚱한 곳에 놓인 장작이 타올랐다.


“이번 실기시험도 실패인가…”


하우윈은 그날 이후로 이번 실기시험에서는 제대로 마법을 부리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마법은 공간지각력과 암산을 요하는데, 하우윈은 공간지각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우윈은 아나뎀과 카페를 가며 그의 앞에서 주문과 손동작의 암기를 했다. 아나뎀은 이미 출제를 끝낸 모양인지 하우윈에게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아나뎀은 하우윈에게 시험 문제의 힌트조차 입 벙긋하지 않았다. 하우윈이 가족한테도 안 했던 애교 3종 세트를 부려봐도 아나뎀은 정신적으로 콧방귀 뀌는 표정으로 하우윈을 보았다. 열받은 하우윈은 커피를 물처럼 마시며 공부했고 실험 범위의 재복습을 마친 채 날이 밝는 것을 보았다.


“공기여, 바람이 되어 서로 휘감을지어다!”


하우윈은 카페인으로 인해 붕붕 뜨는 정신으로 마법을 펼쳤다. 토네이도가 경기장 중앙에서 제시된 정확한 폭과 길이로 발생했다. 하우윈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고, 아나뎀은 축하와 기쁨의 손뼉을 쳤다. 그러나 그것을 시기의 눈으로 보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다흐울 거상의 딸 플라티나 화이트였다.


“저번에 쓴 토네이도 마법과 똑같은 거 했으면서 아나뎀 선생님이 저렇게 대놓고 편애하는 건 처음 보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선생님의 내연녀?”


“그딴 거 아닌데요. 내 명예를 짓밟았으니, 결투를 신청할게요.”


하우윈은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결투 신청용 장갑을 플라티나의 뺨에 던지며 선전포고했다. 


“이 자식이 해보자는 거야?”


“무서우면 항복하던가요.”


“내가 그깟 거 못 할 것 같아?”


“좋아요.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쏴요. 알겠죠?”


플라티나는 합성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백금 지팡이를 꺼내 들어 ‘마탄’ 마법을 고수준으로 시전했다. 하우윈은 보석 하우윈 반지를 낀 손을 높이 들어 플라티나의 몸의 모든 수분을 빼앗아 가려고 시도했으나, ‘마탄’ 마법을 다섯 번 맞고는 집중이 깨져 주문도 깨지게 되었다. 하우윈은 마탄에 걷어차여서 머리에서 피를 흘렸다. 이제 죽나 싶었는데 아나뎀이 달려왔다.


“뭐 하는 짓입니까, 두 사람! 사람이 죽을 뻔했지 않습니까!”


아나뎀은 그답지 않게 격앙된 어조로 두 사람을 꾸짖었다. 아나뎀은 하우윈의 환부를 어루만지듯 조금 떨어져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머리의 찢어진 피부가 봉합되어 흉터 없이 아물었다. 그러고는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었다.


“아나뎀 선생님… 그러면 손수건이 더러워져요…”


“상관없습니다. 그러라고 갖고 다니는 거니까.”


플래티나는 죄송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하우윈은 저 눈물이 자신이 아나뎀의 시선을 독점하지 못해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장담했다. 하우윈은 그런 행동이 사람 참 피곤하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나뎀에 대한 호기심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하우윈은 혼자였다. 그리고 플래티나는 인기가 많았다. 그것은 무슨 뜻이었냐면, 하우윈의 학업 생활에 시련이 닥쳤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갑자기 자기 가방이 열린 채 허공으로 솟구쳐서 뒤집혀 속에 있는 내용물을 모두 내뱉는다던가, 책을 펼쳤는데 사진 속 역사 인물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비오는 날 챙겨온 멀쩡한 우산의 방수천이 비 맞으면 젖는 일반 천으로 바뀌어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뜻이다.


하우윈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차에, 누군가 등을 톡톡 두들기는 것을 느꼈다.


“누구세요?”


뒤돌아서 보니 이름만 알고 대화해 보지는 않은 학우였다.


“플라티나가 엄청나게 괴롭히죠?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도움이 될 만한 마법을 알고 있어요.”


하우윈의 안색이 달라졌다.


“뭔데요?”


“‘사물의 기억’ 주문이에요. 주변 사물 중 하나에 마법을 걸면, 마치 그 물체가 보고 들은 듯이 영상을 재생하게 할 수 있어요.”


“손동작은요?”


그 학생은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고마워요. 알려주신 것 잊지 않을게요. 감사해요.”


“뭘요.”


그 학생은 다른 수업을 들으러 사라졌다.


하우윈은 자신의 필통에 ‘사물의 기억’ 주문을 사용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하우윈은 아나뎀의 집무실로 갔다.


“무슨 일입니까?”’


“보여줄 게 있어요.”


하우윈은 아나뎀의 앞에서 하우윈의 필통에 부양 마법을 거는 플래티나 일행의 모습을 똑똑히 보였다.


“‘사물의 기억’ 주문이로군요.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어 가르치지 않은 주문이지만 이 경우는 허용합니다.”


“현장을 습격하죠.”


“좋습니다.”


하우윈과 아나뎀은 부리나케 현장을 급습했다. 플래티나와 그의 친구들이 가방에 주문을 걸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급습에 당황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아나뎀은 교실 문을 잠가버렸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짓거리들을 하지 마십시오. 한 번만 더 이러면 퇴학시키겠습니다.”


아나뎀은 단호히 말했지만, 하우윈은 어쩐지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다시 말하자면, 하우윈은 혼자였다. 하우윈은 그때 선원들이 무사히 돌아갔으면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타지에서 고생하고 있었을 때니까. 하우윈은 제 아랫사람 아낄 줄 아는 자였고, 그가 빈털터리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쩌면 슬라브니에서 같은 이등 시민 취급 받는 인간들이라서 끈끈한 유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고. 하우윈은 그 사람들이 그리웠다. 자신이 버리고 온 양친은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우윈은 자신이 결정한 타지에서 새살림을 차려보자는 것은 자기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누구 탓할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따돌림당하는 것은 바란 적이 없었다. 


하우윈은 자기도 모르게 하얀 벽을 등 쪽으로 하고, 스르륵 등을 붙이고 내려가 주저앉았다. 한 번 터진 울음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뒤에서 하우윈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나뎀이었다.


“...선생님이 여긴 무슨 일이에요?”


아나뎀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에 놀라서 달려왔습니다.”


“아나뎀 선생님.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나뎀이 하우윈을 제 겉옷으로 포근히 감싸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플래티나가 주동해서 날 괴롭히는 것도 싫고, 아시다시피 난 슬라브니 망명자인 만큼 타향살이도 고달프고, 도망쳐 온 이곳은 낙원이 아니었어요.”


“사람 사는 곳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아나뎀의 첼로 같은 중저음은 하우윈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래요. 내가 떠나온 게 잘했어요. 플래티나만 조용히 살면 좋을 텐데.”


“그는 내가 잘 설득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입니다만…”


“네. 뭘 묻고 싶어요?”


“블루젬 님은 슬라브니 망명자라고 하셨죠. 여기에 온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나는 슬라브니 북부에서 태어났어요. 내 본명은 하우윈 예마고요. 내 양친은 나를 연구원으로 만들기 위해 마도 공학원에 입학시켰지만 잘 어울리진 않더라고요. 아무래도 공학이 아주 어렵다 보니. 아무튼 나는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때의 경험과 용돈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종잣돈을 가지고 ‘예마’라는 보석상을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내 실력이 우수했던 모양인지 내가 디자인한 보석들은 인간과 엘프를 막론하고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어요. 회사가 커지자, 해외 진출을 꿈꾸게 되었는데,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떠돌다가 닐사민로사의 영해를 침범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우리를 반겨준 건 닐사로민사의 해적선이었어요. 국가 차원에서 해적들에게 사략을 허용하는 터라 별 보상도 못 받았죠. 하지만 나는 닐사로민사에서 새 출발을 해 종잣돈을 만들어 고향으로 당당히 돌아갈 거예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블루젬 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내가 배에 싣고 온 모든 금은보화를 주고서 구해낸 선원들로, 해외 진출을 꿈꾸기 위해 필수적으로 뽑은 내 회사의 직원들이었죠.”


아나뎀은 미소했다. 그러고는 따스하게 하우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정말로.”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플래티나가 잡초에 건 ‘사물의 기억’’에 의해 실시간으로 플래티나의 방에서 송출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저 녀석이 아나뎀 선생님께 꼬리 치고 있잖아…!”


플래티나는 너무나도 분노하면서 물건을 던졌다. 그의 하녀들은 행여나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용감한 하녀가 방안을 내놓았다.


“블루젬의 과거를 이용해 그의 명예를 끌어내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플래티나는 간신히 자신을 다잡았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의견 고마워.”


늦잠을 자서 지각한 하우윈은 어쩐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교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우윈은 다급히 문을 열었다.


“국가 차원에서 해적들에게 사략을 허용하는 터라 별 보상도…”


하우윈은 날카롭게 플래티나를 쏘아보았다.


“저거, 당장 끄지 못해?”


“글쎄? 공익을 위해서 모두에게 보여주는 거야. 슬라브니 출신인 사람들이 악하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아?”


하우윈은 망연자실해서 주위를 돌아봤다. 적개심이 어린 표정들.


“난 슬라브니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이등시민으로 정해지면서, 정책에 영향을 끼칠 방법이 없었어요. 즉 나는 슬라브니가 이 나라에 가한 피해에 대해 사과할 의무가 없어요. 나 자신이 국가를 대표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과하겠어요?”


냉랭했던 분위기는 더 싸늘해졌다. 마침 아나뎀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교실에는 침묵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저 녀석이요, 아나뎀 선생님을 유혹했어요. 저 녀석은 슬라브니 제국을 지지하는데 아닌 척 속이고 여기로 왔어요.”


아나뎀은 냉정하게 플래티나를 쳐다보았다.


“화이트 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블루젬을 괴롭히십니까?”


“빈털터리인 저 녀석이 거상의 딸이 나보다 좋아요? 대체 왜?”


아나뎀의 표정이 슬퍼졌다.


“이런 일을 초래하다니…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모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아나뎀은 도망치듯 교실을 나가버렸다.


얼어붙은 분위기. 그 냉각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플래티나의 “안 돼!”라는 비명이었다. 하우윈은 침착해지려 애를 쓰며, 여관으로 돌아가 황급히 짐을 쌌다. 하우윈은 빈털터리였을 때 후불로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 준 여관 주인에게 숙박비를 치르고는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밖으로 나왔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었다. 그저 높이 올라가면 아나뎀의 행방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직감에 따라 비행 마법을 사용하여 위로 올라가자, 중립국 베나에로사 행의 배를 탄 아나뎀을 발견했다. 하우윈은 허공에서 천천히 내리다 배를 타고 선장에게 뱃삯을 냈다. 그러자 배가 떠났다. 어디서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오나 방향을 보던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플래티나였다. 플래티나는 점점 육지에서 멀어지는 배를 보자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질렀다. 하우윈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플래티나에게 과장되게 정중한 작별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아나뎀은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데 왜 나를 따라왔습니까?“


“대체 무엇이 선생님을 그렇게 힐난하는데요?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으악!”


하우윈은 제가 한 말에 자기가 놀라서 양손을 입으로 가져가 버렸다.


두 사람은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물었다.


“왜 나를 사랑합니까?”


“당신은 닐사민로사의 등대 같은 존재였어요. 그러니 새가 어미를 따르듯이 당신을 따르는 건 당연하고, 무엇보다 강의도 잘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이라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나뎀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는 말했다.


“나는 누구와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죄 많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죄가 뭔데요?”


아나뎀은 고심하다가 물었다.


“중립국 베나에로사를 통해 슬라브니에 도착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하우윈은 그가 슬라브니를 언급한 때부터 무언가 미심쩍음을 느꼈으나 굳이 묻지는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베나에로사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국적으로 화려한 건물들이 일품이었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울긋불긋한 천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낯선 풍경에 하우윈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 저기 너무 예뻐요! 건물 전체가 푸른색이에요!”


“신기하군요. 블루젬 님도 푸른색을 좋아하십니까?”


“당연하죠!”


그렇게 도시의 골목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인파에 서로 멀리 떨어질 뻔했다. 하우윈은 아나뎀을 따라가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을 꼭 붙잡았다. 아나뎀은 깜짝 놀라지만 하우윈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여기서 길 잃어먹어서 나 국제 미아 만들 일 있어요?”


하우윈은 그렇게 뻔뻔하게 말하고는 손을 더 꼭 붙잡았다. 하우윈의 당돌한 행동 때문에 아나뎀의 귀가 빨개졌다.


“닐사민로사 시절에 ‘선생님’이 이렇게 귀여운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별로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나뎀의 부끄러워하는 어조에 하우윈이 킥킥거렸다.


“아참, 여기 맛있는 음식점 알아요?”


아나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마음 끌리는 대로 가보죠!”


저녁으로 두 사람은 여러 음식을 먹으며 잘 지냈다. 디저트를 먹으며 아나뎀은 제법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날이 밝는 대로 슬라브니로 떠날 겁니다.”


“왜죠? 어째서 적국으로?”


“그건…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우윈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대신 그때 가면 꼭 알려줘야 해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근처 여관의 각자 방으로 들어가며 여독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다음 날 새벽. 아나뎀이 무슨 말을 해줄지 겁이 나고도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어 새벽까지 잠을 못 잔 하우윈과, 원래 새벽에 일어나는 아나뎀이 복도에서 마주쳤다. 


“좋은 아침… 새벽… (하암) 이에요.”


“좋은 새벽입니다.”


“우리가 슬라브니로 가는 이유를 이제 들을 수 있나요?”


아나뎀은 심란한 듯 이마를 짚었다.


“우선, 내 방에 들어가서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요.”


하우윈은 아나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깔끔한 상태였다. 하우윈은 침대 근처 소파에 앉았고, 아나뎀은 침대 한편에 앉아 이불을 껴안으며 말할 준비를 하였다.


츠베토크 슬라브니는 슬라브니 제국의 왕세자이자 모든 식민지를 관리하는 대총독이었다. 그의 군대는 중부 대륙의 평야에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이곳은 금과 은, 백금 등 귀금속이 풍부한 지역이니 꼭 쟁취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늘은 양쪽 군대의 편을 둘 다 들어주지 않았다. 양쪽 군대가 전쟁을 벌이다가 레어에서 잠을 자고 있던 레드 드래곤을 깨운 것이었다. 레드 드래곤은 하늘로 날아올라 츠베토크의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태워버렸다. 츠베토크는 작전상 후퇴를 명령하였으나, 이미 군인들은 명령 따위는 듣지도 않고 제각기 도망치고 있었다. 그 또한 전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로 향했다. 그는 마침내 닐사민로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가명을 대어 도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나뎀은 고민이 되었다. 다시는 군인 같은 건 하기 싫어서 제외. 그러다가 마법사 길드에서 마법을 배운 학생을 찾는다며 전단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아나뎀은 전단을 받아 들고 마법사 길드로 향했다. 그것이 바로 아나뎀의 인생 제2막을 열어주었다.


하우윈은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가 아나뎀에게 물었다.


“당신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나요?”


아나뎀의 뺨을 타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


“당연히 있습니다. 그들이 타들어 가는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만 아니었다면, 내 오판만 아니었다면 그들이 떼죽음을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죄책감으로 인해 불면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항상 악몽을 꿉니다.”


하우윈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슬라브니에는 뭘 하러 가나요?”


“슬라브니 인들의 양심을 자극해 혁명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반성하고 있다고 느꼈다면 그 혁명을 꼭 성공시켜요.”


“블루젬 님도 해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하우윈은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슬라브니의 엘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이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에 대해, 그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책임감을 느끼는 몇 안 되는 엘프이기 때문이에요.”


“알겠습니다. 분에 넘치는 사랑 감사드립니다.”


그 ‘분에 넘치는 사랑’ 좀 받아들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하우윈은 꾹 참았다. 언젠가는 받아들여 주겠지.


두 사람은 제국 외곽으로 가서 열차를 탔다. 약간의 깔깔거림과 맛있는 식사와 함께 시작한 여행은 관광 여행과 미묘하게 달랐다. 이 여행에는 긴장감이 있었고, 츠베토크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하우윈은 솔직히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츠베토크는 혁명에 소질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우윈은 자신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보석상 부하 직원들과 하우윈에 의해 목숨을 부지한 선원들과 이 혁명을 도모하는 게 어떻겠냐고. 츠베토크는 자신의 직속 하인들은 자기 뜻에 도움을 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이 젖먹이였을 때부터 키워준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우윈은 그들 중 변절한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츠베토크는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하우윈과 츠베토크는 아나뎀의 성 근처 풀숲에 숨었다. 츠베토크는 망명할 때 소중히 간직한 휴대전화로 집사 이반을 불렀다.


“이반, 납니다. 아직 성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아, 그렇군요. 그러면 하인들을 좀 모아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장소는 성 정원으로 합시다.”


조금 기다리자, 이반을 포함한 십여 명이 정원에 모였다. 그들은 아나뎀에게 오랜만이라며 소리 없는 격한 환영을 하였다.


“옆에 서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우윈은 멀거니 서 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하우윈 예마에요. 츠베토크와는 마법 선생과 제자 관계였죠.”


“반갑습니다!”


그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나서야 하우윈은 놓여날 수 있었다.


“잠시만요. 츠베토크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어서요.”


츠베토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음? 나 말입니까?”


“네, 잠시만요.”


하우윈과 츠베토크는 숲의 입구에서 속삭였다.


“이제 슬라브니에 왔으니 내 고백에 대합 답을 해줘요.”


츠베토크는 정말로, 엄청나게, 심사숙고하더니 하우윈을 바라보았다.


“내 과거를 듣고 실망하지 않았으니, 연애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우윈은 츠베토크를 꼭 껴안아 주었다. 


“어휴, 이 둔감탱이! 당신을 사랑하던 내내 고통받던 내가 바보죠!”


“그래도 괜찮다고 했으니, 봐주십시오.”


“내가 바보지! 그리고 사랑해요!”


하우윈은 포옹을 풀더니 말했다.


“나도 가서 내 직원들과 선원을 모아올게요.”


“같이 갑시다.”


그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츠베토크와 함께 자신의 회사가 있던 곳으로 갔다.


“하우윈 님, 무사하셨군요!”


“네, 닐사민로사에서 마법을 배우고 왔어요.”


그리고 하우윈은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선원들에게 연락해 사람들을 더 모았다. 끌어모은 사람들은 여러 성별과 여러 나이대였지만, 한가지만큼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엘프가 지배계층인 슬라브니에서 이등시민인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여러분. 나는 우리를 차별하는 이 나라와 맞서 싸워서, 나라를 바꾸는 힘을 얻고 싶어요. 동행하고픈 자 여기 있나요!”


하우윈이 그렇게 말하자 여러 사람이 합창하는 듯한 “네!”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츠베토크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혁명이 성공한다면 지금 제국의 80퍼센트를 이루는 엘프 외 종족은 나라의 의사를 결정하는 투표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 반대 의견을 내는 정치인들은 모두 의문사 당했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찾아내어 그들의, 혹은 유가족의 증언을 확보하여야 합니다”


하우윈과 츠베토크, 모두가 손뼉을 쳤다.


혁명단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실종된 정치인들의 시신을 찾아냈다. 


“여러분, 우리들의 단체명을 ‘자유 슬라브니 투쟁단’으로 합시다.”


사람들은 열띤 함성으로 긍정했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직접 대면할 필요가 있는데, 같이 가실 분 계십니까?”


하우윈은 유가족들을 찾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슬픔을 회복하고 나시면 저희의 힘이 되어주시겠나요?”


“네, 당연하죠. 제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 복수하겠어요.”


그리고 속속 하우윈의 선원과 회사 직원들이 도착했다. 


“예마 님! 오랜만입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하우윈은 미소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아주 좋아요. 여러분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혁명을 위해서예요. 엘프가 아니더라도 온전한 시민 취급을 받는 세상을 만들려고 해요.”


그때 선원들도 도착했다.


“예마 님! 저희도 왔습니다! 우리는 예마 님께 목숨을 바칠 각오도 되어있습니다!”


하우윈은 고개를 젓고는, “목숨 같은 것, 함부로 걸지 마요. 살아서 바다로 다시 돌아가야죠.”


“역시 예마 님이십니다!”


“사람이 꽤 모였군요. 혹시 이 주변에 보안이 될 만한 여관이 있을까요?”


하우윈의 물음에 유가족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제 아내가 운영하는 ‘돌고래의 춤’이 있습니다. 물론 아내는 입이 무거운 사람이고, 제 편입니다.”


“그럼, 그곳으로 가서 역할 분배를 하고 몇 박 묵읍시다.”


마침내 역할 분배가 이루어졌다. 먼저 피켓 제작자, 두 번째로 무력 진압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 담당, 공격 담당, 치유 담당 이렇게 넷이었다. 부족한 역할군을 채우기 위해 츠베토크는 사비를 털어 용병을 고용했다.


방어 담당으로는 방패를 든 팔라딘과 방어계 마법사로 배치했고, 공격 담당으로는 총기 사용자와 공격계 마법사를 두었다. 또한 츠베토크가 모두에게 응급처치법을 가르치고, 의사와 치유계 마법사가 협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시위자들에게 공격이 가해질 경우, 즉 황제와 하우윈 일행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할 때 투입될 예정이었다. 


거사를 준비하며, 하우윈과 츠베토크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데이트를 즐겼다. 츠베토크는 딸기를 정말 좋아했고, 하우윈도 싫어하지는 않았기에 고급 딸기 뷔페에 왔다. 딸기 타르트, 딸기주스, 딸기 가향 홍차, 딸기에이드, 설탕을 입히고 냉동한 딸기 꼬치, 순우유 딸기 케이크, 크림치즈 딸기 케이크, 딸기가 들어간 초콜릿들 등이 풍성하게 놓여있었다. 하우윈은 음식의 모양이 아름다워 감탄했고, 츠베토크는 딸기의 단맛을 아이처럼 좋아했다.


“츠베토크, 지금 츠베토크 표정 엄청 귀여운 거 알아요?”


“예? 내가 귀엽다고요?”


하우윈은 츠베토크를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그런 점이요.”


그들은 근처 백화점에서 쇼핑하기로 했다. 츠베토크는 성에서 가져온 주얼리들을 팔아 하우윈에게 값진 옷을 사주었다. 하늘하늘하고 선명한 파란색 실크 드레스는 하우윈의 눈색과도 잘 어울렸다.


“츠베토크의 선물은 정말 고마운데, 나는 보답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하우윈은 하우윈이 살린 선원들을 볼 때 뿌듯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뿌듯했죠. 돈 대 사람이면 무조건 사람이죠.”


츠베토크는 푸스스 웃었다.


“그래서 내가 하우윈을 좋아하는 겁니다.”


하우윈은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요.”


츠베토크는 이어서 짙은 파란색 토파즈로 만들어진 화이트 골드 목걸이와 실크 스타킹 몇 벌, 구두를 사주었다.


“그러고 보니 들어갈 때랑 나올 때 옷차림이 엄청나게 달라졌네요. 고마워요, 츠베토크.”


츠베토크가 미소했다.


쇼핑을 즐기고 나서는 뮤지컬을 보았다. 뮤지컬의 내용은 ‘데만토이드 그라나트’라는 사이코패스 청년이 교회의 마법사 혐오로부터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우윈은 “우리에게 씌워져 있는 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죠?”라고 말했고, 츠베토크는 명확하게 긍정했다.


뮤지컬을 본 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실은, 며칠 전에 이 특별한 시간을 위해 예약해 두었습니다.”


“세상에 대단해요. 츠베토크 너무 로맨틱한 사람 아닌가요?”


“하하, 뭐 이런 걸 가지고요.”


미디엄 레어로 구운 스테이크에 구운 방울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와인이 섞인 소스의 조합은 간도 잘 되어있고 너무나도 맛있었다. 두 사람은 고급 요리와 과일 맛 치즈, 와인을 함께 먹고 마셨다.


그날 밤.


하우윈은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호텔 발코니에 서 있었다. 그런 하우윈을 츠베토크가 꼭 끌어안아 주었다. 내일부터는 연인보다 혁명의 동지가 될 두 사람이었다.


거사 당일. 다양한 색깔의 피켓이 슬라브니아 중앙 광장에서 모였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황제 포스포필라이트의 퇴진’.


그뿐이었는데, 군인들이 출동해 사람들을 무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유 슬라브니 투쟁단 중 무장한 이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교전했다. 마법사들은 총기 사용자들과 함께 원거리 공격을 시작했다. 근거리에서는 검사들과 방패를 든 팔라딘, 방어계 마법사들이 각자 명령받은 위치에서 할 일을 했다. 츠베토크는 사람들이 결국 싸우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겼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우윈이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부군과 혁명군은 아직도 대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선의 앞쪽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뭔가… 불길한 기분인데.”


하우윈의 목소리였다. 츠베토크는 전방에 있는 통신병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서펜틴, 서펜틴, 계십니까?”


“정부 측에서 ‘플로리스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생체병기를 전선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플로리스 다이아몬드는 오직 적군의 파괴가 목적인 듯 적군 마법사 하나를 기계 팔로 잡아 으깨버렸다. 또한 남은 두 개의 기계 팔로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해 상대를 넘어뜨리고 기계 팔로 뭉개어버렸다. 직선으로 무속성 마법 레이저를 발사하기도 했다. 


혁명군은 예상치 못한 생체병기의 존재에 사기가 떨어졌다. 소문에 밝은 이들은 저 병기가 죄책감을 억눌린 채로 탄생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포로 고문을 하기도 한다는 소문을 전장에 퍼뜨렸다. 유사시 고통을 멈추기 위해 모두에게 청산가리 잼이 들어있는 사탕을 받았다. 그들은 정말 그럴 정도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 사탕, 가능하면 절대로 쓰지 말아요. 나는 츠베토크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그럴 이유가 없도록 열심히 싸웁시다.”


직전 전투에 참여한 자들은 의용병이 대다수였다. 그들과 하우윈, 그리고 츠베토크는 야영 준비를 했다. 모닥불에 투명화 마법도 걸어놓고, 고구마나 감자 등을 그 모닥불에 얹어서 익기를 기다렸다.


“여러분은 뭐 때문에 이 혁명군에 들어오게 되었나요?”


하우윈이 묻자, 누구나 다 대답하고 싶어 했다.


“제 고향은 제국에 의해 합병된 곳입니다. 우리의 글과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지원했습니다.”


“제 아들은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잊지 않고 복수하고 싶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제국의 식민지입니다. 온대 지방에서 나는 모든 특산품을 제국에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하우윈은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면. 혁명이 끝나면 무얼 할 생각이에요?”


“우리의 글과 문자를 기억해 내 후손들에게 가르치겠습니다.”


“더 이상 굶지 말고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싶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슬픔과 애절함이 깃들어 있어서 하우윈을 눈물짓게 했다.


“꼭 성공합시다. 반드시 성공해요.”


전투의 양상은 플로리스 다이아몬드가 지배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워낙 빨라서 흠집조차 내기 힘든 생체병기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급한 관심사였다. 하우윈은 간신히 플로리스 다이아몬드의 기계 팔에 번개 마법을 걸 수 있었다. 그러자 기계 팔이 주인의 마음을 듣지 않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도 잠시, 플로리스 다이아몬드는 두루마리를 풀어 주문을 외우고는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갈지, 언제 돌아올지 혁명군은 감을 못 잡은 상태에서, 한 사람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부상을 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저자가 돌아오기 전 상대하면 될 거라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시위대의 전선은 황궁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황제의 친위대 앞에서는 갈려나갔다. 수많은 희생을 치른 후 혁명군 측에 남은 자는 고작 10명. 열 사람은 황제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다가 여덟 사람이 희생되고 하우윈과 츠베토크 둘만 남았다. 그들은 황제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황제와, 놀랍게도 플래티나가 있었다.


“너… 왜 대체 여기에 있어?”


플래티나는 악랄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난 이제 아나뎀 따위는 필요 없어. 나는 포스포필라이트의 양녀가 되어 더 큰 권력을 손에 넣었어. 그리고 황제 폐하는 황세자를 연합국에 도둑맞았으니, 대를 이를 양자를 만들 내가 필요했고.”


하우윈은 동정심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권력을 얻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구나. 나는 ‘우리’가 힘을 가질 방법을 알고 있는데. 너는 너 자신만을 위해 그걸 뿌리쳤구나.”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고. 내 마법을 겪어봐. 반란 따위는 실패할 테니.”


츠베토크는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녕, 우리 부자가 꼭 싸워야 합니까? 전투하게 되면 피를 보게 될 텐데, 키워주신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하지만 이곳에 무기를 들고 온 의상 너희를 반역죄에 처한다.”


“아버지…”


감상도 잠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플래티나는 번개 마법을 쏘았고, 황제는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정신 제어 마법을 쓰고, 츠베토크는 치유 마법을, 하우윈은 불 마법을 쏘았다. 그런데 황제의 기술이 심상치 않았다. 황제는 마치 두 수 앞을 내다보는 듯이 대응했다. 다행히, 가까스로 플래티나를 쓰러뜨렸다.


“반… 반드시 너희는 혼자서 돌아갈지어다…”


플래티나는 두 사람을 저주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하우윈은 츠베토크의 치유 마법이 들어오지 않음을 느꼈다. 츠베토크가 마지막으로 쏜 번개 마법이 츠베토크를 감전시켜 사지를 떨게 한 것이었다. 


“안돼!!!”


하우윈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이 쓸 수 있는 미약한 치유 마법을 퍼부었으나 츠베토크의 맥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하우윈은 황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순간이동 마법의 두루마리를 읽었다.


닐사민로사의 초원 한가운데로 떨어진 하우윈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츠베토크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갔다.


“우리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하우윈과 함께 한 시간은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하고 서서히 죽어갔다.


하우윈은 울먹이며 말했다.


“사랑해요, 츠베토크.”


“사랑합니다, 하우윈.”


츠베토크는 그대로 눈을 감고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우윈이 오열하는 소리가 넓은 초원에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슬라브니와 연합군 간의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


하우윈은 전쟁기념관 앞에 섰다. 오늘은 하우윈의 전쟁 증언을 마도 촬영기로 촬영하는 날이었다. 하우윈은 우리들은 패배했지만, 제국과 맞서 싸운 국민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촬영이 끝나고, 하우윈은 츠베토크의 무덤 앞에서 푸른 장미꽃을 두었다.


“잘 지내요, 츠베토크? 나는 잘 지내요. 요즘에는 츠베토크가 좋아했던 딸기 철이라 츠베토크가 생각났어요. 산들바람만 맞아도 츠베토크가 생각나 괴롭지만, 우리가 이루고 싶었던 일을 이루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에요.”


“잘 있어요,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사람.”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바람이 휙 돌아 불었다.


하우윈은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