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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우선적으로 말씀드릴 부분은 이 사람에게 온전히 채워진 것이란 하나도 없이, 과거의 삶을 지금의 '반면교사'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이 친구는 감정을 제대로 느끼거나 인식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그래서 가장 '과거의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고자 하며, 그래서 종종 다른 사람이 보기엔 엉뚱하거나 결이 기이한 방식으로 답을 내어놓기도 하죠. 혼자 힘으로 서기엔 지식과 불안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지는 유대와 신뢰 위에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옳다'는 다소 맹목적인 인식을 갖고있어 주변 사람에게는 다소 절박해 보인다는 느낌을 주기도 해요.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어야 할 특성들이 제거된 채로 살아왔다'는 데에서 많은 행동과 표현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 자신이 살아온 일을 가치판단으로 옳고 그르기를 판단하기에는 오로지 지식 뿐, 그로 인해 피해를 입거나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나 공감은 아직 능숙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적어도 가장 기초적인 도덕을 지식의 형태로나마 입력받고 그것을 수용하였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기도 하죠. 능력으로는 완성되어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은 프로필상에서도 이미 짚어주신 부분인데, 이것을 잘 모르는 주위의 타인들은 그래서 이 사람을 대하기 어려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상쩍으면서도 의미심장한 사람으로 여기고는 해요. 대체로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의 판단이나 평가보다 타인이 하는 말을 더 크고 의미있게, '옳은 것'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어서도 더 그렇죠.
이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듣는 말들은 한 사람의 말에 맹목적으로 믿음을 갖는게 아니라 (그런 방식의 사고로 자신이 어떤 재앙을 남겼는지 이미 이전의 삶에서 충분히 겪었으니까요) 여러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칙을 이해하려고 하고, 관습을 알고자 하고,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는 기계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생각보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표현하는데에 인색하기도 하고, 깊은 관계로 타인과 친해지는걸 어려워하기도 해요.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살아갈 기반이자 지식을 온전히 갖추기 전에는 스스로를 드러내기 꺼려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로서요.
과거의 이 사람은 타인이 정해주는 방향으로 자신의 의지 없이 기반과 고려를 거치지 않으며 '임무를 처리하는 기계'였고, 그것이 무슨 방식과 행위였는지 헤아릴 수 있게 된 현재에는 그 많은 것들이 이 친구의 발목을 잡고있어요. 아직 죄책감이라는 그 감정이 형태를 갖추진 못했지만 이 사람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인식하고 이해하게 될수록 그 감정은 보다 뚜렷한 방식으로 이 친구의 삶의 방향과 태도를 정하게 되겠지요.
이 친구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타인에 의해 선택할 기회를 부여받았듯이, 누구나 변하고 바뀔 수 있음을' 믿고 타인과 협력하고 나누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사실 이 사람에게는 선악 자체가 중요하진 않아요. 자신이 무언가 박탈당한 채 살았고, 그 악몽에서 벗어날 길을 타인의 선의로 제시받았으며, 그것이 자신에게 변화를 주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일련의 사건을 이룬 태도를, 협력과 도움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상황에 가깝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더 많이 알고자 하고, 계속 실수하고 부딪히면서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자 할 거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의 공백을 채워나갈 거에요.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는데, 그건 단순히 도덕과 윤리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아는 것 이상으로,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이건 미지에 대한 탐구인 동시에, 지식으로만은 얻을 수 없는 부분을 채우고 싶다는 갈망에서 시작된 욕망이네요.
이 사람의 죽음은 정확히 말하자면 단명, 보다 본래 수명에서 한참 이른 때의 예기치 않은 것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질병이 아니며, 원한으로 인해 벌어진 살해도 아니에요. 사고도 아닌, '본인이 자처해서 죽음으로 뛰어든' 상황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주위에 사람이 많고, 자신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보이는데 막상 그렇게 행동하는 본인의 심정은 숭고하고 대단한 희생 의식이나 헌신적인 마음이라기보다 '이것이 이 자리의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이 그대로 수집하고 입력해 얻어낸 결과를 수행하는 방식으로서의 행동이거든요. 현재 나이가 10세인만큼 서른이나 쉰 사이에 맞이할 죽음으로 보이는데 그 당시 죽음을 맞이하는 감정선이 상당히 기묘해요. 아쉽고, 애달프고, 고통스러우며, '아직 이루고 알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 이 사람을 애타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분명한 확신이 존재하거든요. 앞서도 말씀드렸듯 대단한 애정이나 헌신을 이유로 이루어진 희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끼거나 도울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위해 죽음을 자처하면서 이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서야 '자신의 마음에 떠오른 감정이 타인에 대한 애정임을' 이해하고 그 사실에 만족한다는 느낌에 가까워요. 애당초 이 친구는 삶에 대한 의지나 욕망이 강력한 사람이 아니에요.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나 분명한 목적 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삶이기에,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제시되었기 벗어났고, 또 살아갔고, 그로 인해 과거라면 알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알게된 일에 가깝죠. 오히려 긴 생애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자신이 알고 겪은 모든 것들을 소중하고 무게있게 간직하여 그 누구보다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대도 틀리지 않은 상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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