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백장

서른 살의 윤선호와 임마누엘 칸트

Ate a Wright by 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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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白藏 : '가을'의 다른 말. 또는 사물 따위를 필요한 곳에 활용하지 않고 썩혀 둠


윤선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뺨에 닿는 냉기에 화들짝 놀라며 패딩 지퍼를 끌어올렸다. 11월 22일 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쾰른은 예상보다 더 쌀쌀했다. 지도 교수인 김 교수가 그걸 보더니 칼리닌그라드의 추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되지 못한다며 호탕하게 웃곤 그의 등을 세게 두들겼다.

“칼리닌그라드요.”

“그래, 거기에 발틱 연방 대학교가 있잖냐. IKBPU.”

“쾰른 대학교는….”

“독일디지털칸트센터(Digitales Kant-Zentrum NRW)가 있는 곳이고. 내년엔 칼리닌그라드에서 할 것 같긴 하다만은.”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가을. 쌀쌀하고 메마른 바람을 맞을 때마다 윤선호는 속절없이 5년 전의 카페 에티카로 끌려갔다. 해가 지날수록 -이제는 임대 포스터를 붙여둔- 카페 에티카에 흐르던 재즈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는 늘어만 갔다. 수능. 가을. 러시아. 한파. … 칼리닌그라드. 의심. 실존에 대한 근본적 의문. 이성.

윤선호는 그 수많은 단어 무덤 사이에서 어느 날 겨울에 꺾었던 감정을 주워들었다. 곤로함. 피곤함. 도피. 회피. 마주하지 않고, 대면하지 않는……. 윤선호는 카페 에티카에 지내던 사람들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그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렇게 대해달라 청했으니 그리 대했을 뿐이었다. 모두가 그들처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 수는 없었다. 윤선호도 그랬다.

‘… 의심하지 않았어?’

‘네, 뭐, 딱히…… 의심할 거리가 되나요.’

‘…….’

‘그렇구나, 뭐! 선호 군이라면 그럴 것만도 같았어.’

직원들이 소란스레 웃음꽃을 터트렸다. 몇은 철학과라면서? 하고 웅성댔으나 윤선호가 그들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학생임을 깨닫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유연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칸트가 중얼거린다. “실망했다.” 겨울바람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실망이라니. 그 단어는 오래도록 윤선호를 따라다녔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실존에 대한 의문과 이성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엔 스물다섯 살의 윤선호가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다. 얇은 자기합리화로 덮어둔 방만한 태도는 종종 송곳처럼 장막을 뚫고 나타나 윤선호의 손톱 끝을 쿡쿡 찔러댔다. 그건 알 수 없는 죄책감, 불안함, 그리고 칸트가 지나가듯 중얼거린 목소리로 나타났다. 실망했다. 하지만 뭘?

윤선호는 정말로, 처절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들과 함께한 일 년 남짓 동안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은 대가를 몰아 치르는 것처럼 살았다. 그는 유독 언어에 재능이 없었으므로 대학원 3년 만에 지도 교수를 따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해지려면 다른 이들보다 배의 노력을 더 들여야 했다. 가끔 어휘 문제집 속 ‘실망하다’가 칸트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게 실망했다. 하지만 스물다섯의 윤선호가 그런 평가를 들을 이유도 없지 않나…….

공항까지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한국학 교수가 활짝 웃으며 그의 지도교수와 인사했다. 윤선호는 익숙하게 트렁크를 열어 -한국 차였다- 그와 교수의 짐을 밀어 넣었다. 먼저 차 안에 들어간 교수가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윤선호는 깜깜한 밤하늘을 힐끗 보다가 교수가 부르는 대로 차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퀼른 본 공항에서 퀼른 대학교까진 20분 남짓 걸렸다.

퀼른 대학교는 라인강을 옆에 끼고 있었다. 강을 역류해 올라온 찬바람이 뺨을 간지럽혔다. 패딩을 꺼낼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얇은 코트 하나로는 견디기 어려운 밤이었다. 윤선호는 옷깃을 조금 더 여미곤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얀 입김이 눈앞을 흐릿하게 물들이다 사라졌다. 쾰른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대도시였다.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전 세계의 학자가 전부 도착하려면 -그들이 일찍 도착한 탓에- 길겐 닷새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윤선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대학교 측에서 내어준 기숙사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교정 내는 첫날에 둘러보았으니 -정확히는 대학교에 도착한 다음 날 낮에- 그가 대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윤선호는 교정 내의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는 대학생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근처의 공원이라도 다녀올 셈이었다.

“… 제가 대신 결제하죠. 얼마입니까?”

“7유로.”

“여기 있습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지갑이 없어 쩔쩔매는 18세기 대학자를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독일어를 내뱉었다.

“…… 선호군?”

“좀 걷죠? 바로 옆에 공원이 있던데.”

그 공원 이름이 폭스가르텐Volksgarten인건 꽤 나중에 알았다.

파란 코트. 검은색 목도리. 파란 머리칼. 파란 눈. 그가 기억하는 5년 전의 임마누엘 칸트와 똑같았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노화는 없나? 윤선호는 저편에서 밀고 올라오는 의문을 묵살하며 길거리에서 산 커피를 양손으로 감싸 잡았다. 쾰른의 가을은 서늘하다. 커피잔이라도 쥐고 있지 않으면 손끝이 하얗게 얼어버릴 것 같았다.

“독일어를,”

“네?”

“꽤 하는걸.”

“학회 따라다니다 보니 좀 늘었어요.”

“수준급이던걸.”

“별거 아녜요. 필요하니 배웠을 뿐이고.”

프레첼 봉투를 품에 안은 칸트가 읊조렸다. “여기는 왜?”

“학회 때문에요.”

“개인적인 일로는 오지 않는 건가?”

“대학원 일이 바빠서요……. 학술대회라곤 하지만 발표하시는 건 저희 교수님이고. 저는 발표 보조 겸 둘러볼 목적으로 온 거라. 칸트 씨는요?”

“나는- … 글쎄. 가끔 종종,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야 할 때가 필요해서.”

그러면 칼리닌그라드로 갔었어야지. 윤선호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그가 모르는 칸트는 쾰른에도 베를린에도 연이 닿아있을 것이다. 그가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재단할 순 없었다.

“혼자 왔어요?”

“아니, 아렌트도 있다.”

“아, 동향 사람이었던가.”

“괜찮은 후배니까.”

“명문이죠.”

낙엽이 바스락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스러기를 남기며 허공을 너풀거리는 소리만 연신 들렸다. 기실 그들 사이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윤선호는 -철학과답지 않게- 질문이 없는 편이었고 칸트는 이런 상황에서 대화를 주도할 만큼 말주변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윤선호 앞에서만 그랬다. 생전의 그는 타인과 대화하는 것을 꽤 즐겼는데도.

윤선호는 윤선호 나름대로 곤란했다. 무슨 말을 더 하나? 왜 실망했어요? 쾰른에서 무슨 추억을 찾아요? 당신 평생 쾨니히스베르크에서만 살았잖아. 같은 질문들이 혀 아래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펄떡대다 라인강의 찬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침묵을 견디지 못한 윤선호는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쥐고 있던 일회용 컵은 적당하게 식어있었고 손은 따끈했다.

“가볼게요.”

“선호군.”

“커피 드셔도 돼요. 입 안 댄 거라.”

윤선호는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시야에 들이찬 라인강이 하늘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마치 알 수 없는 인력에 끌린 듯 윤선호는 아침만 되면 두꺼운 코트를 여미고 라인 강변을 향했다. 칸트는 늘 거기에 있었다. 윤선호는 칸트를 마주할 때마다 종종 커피를 샀고 둘은 한참 동안 침묵하며 강변을 걷다가, 언제나 윤선호가 먼저 자리를 떴다. 그건 꼭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티타임 같았다. 모자 장수, 체셔 고양이, 3월 토끼가 한데 엉켜 말없이 2유로짜리 싸구려 커피를 마시는 모습. 기실 그 티타임과 그들의 산책 중 공통된 건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벌어진다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이 기묘한 침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매일 오전 8시 반에 만나 10시에 헤어졌다. 1시간 반짜리 티타임의 손님은 메르헨적인 동물 친구들과 모자 장수가 아니라 시간에 치여 낡고 닳아진 청년과 한결같이 하늘을 닮은 학자였다.

“아, 오늘부터는 못 와요.”

“…… 뭐?”

“오늘이 아니라 내일부터구나. 내일부터 학술대회 시작이라.”

“학술대회.”

칸트는 고장 난 것처럼 단어를 반복했다. 윤선호는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벤치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시선이 느리게 따라왔다.

“네, 독일디지털칸트센터가 주최하는 칸트 학회요. 국제학술대회라 개회식 폐회식 포함해서 사흘 정도.”

“… 그런 협회도 있나.”

“유명하죠. 북미칸트협회도 이번에 온댔고.”

“그럼 쾰른엔 언제까지 있지?”

마치 쾰른 일정이 끝나면 독일의 다른 곳도 돌아보기를 희망하는 투다. 윤선호는 한국에서 김 교수가 짚어준 달력의 페이지를 떠올렸다. 11월 27일. 산책한 것도 벌써 나흘 째다. 학술대회가 끝나면 쾰른에 온 지 아흐레가 된다. 그리고 김 교수는…….

‘좀 더 지내다 올까?’

‘네?’

‘학회 일정에 맞추기엔 너무 빡빡하니까. 학회 포함해서 열흘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전달해두겠습니다.’

느긋한 성격이고…….

윤선호는 날짜를 헤아리다 긴 숨을 내뱉었다. “다음 주까지요. 12월 1일에 비행기 탑니다.”

“그런가.”

“늦겠다. 저 먼저 가 볼게요.”

“그래. … 조심히 가고.”

칸트의 침묵 속에서 많은 단어가 의미를 잃고 스러졌다. 윤선호는 그 침묵 사이를 헤매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앞으로 사흘 간 비판서의 자간 사이에 함축된 의미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해체해야 했다. 그런 건 미루면 미룰 수록 좋았다.

서른 살의 윤선호는 스물다섯 살의 윤선호보다 할 수 없는 이유가 많았다. 시간, 체력, 여유, 혹은 옆자리를 내어주거나 기꺼이 갖다 바칠 아량, 그런 것들이 5년 전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탓이다. 윤선호는 치열하게 사는 5년 내내 많은 걸 버리고 많은 걸 취했다. 윤선호의 성숙은 열정과 사랑을 태우고 남은 재로 이루어져 있고, 윤선호의 여유는 이제 그가 이름도 잊어버린 것을 버리고 남은 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이제 와 임마누엘 칸트를 마음속에 들일 수는 없었다. 그 자리는 매캐한 향이 날지언정 윤선호의 마지막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게 만들어진 건 스물여덟 살 여름이었다.

윤선호가 카페 에티카에 합류한 건 칸트가 태어난 지 삼백 년 되는 해였다. 스물여덟 살이 되었을 때 윤선호는 삼백 년 하고 삼 년이 더 지나 쌓인 수많은 연구논문들 사이에서 그에게 ‘필요한 유물을 찾느라’ 반년을 보냈다. 품이 낙낙한 반팔 셔츠와 반바지, 슬리퍼,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금성 선풍기가 그의 친구였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 이성이니 선의지니 하는 말이 눈에 들어오기만 해도 헛웃음이 났다. 김 교수가 껄껄 웃으며 분석이 끝난 논문을 책상에서 내려 치워주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체화하는 거야. 무식하긴 해도 효과가 꽤 괜찮거든.” 박사논문을 일곱 개 연속으로 분석하던 사람에게 학회지 서너 권을 더 얹어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교수님도요?”

“나 땐 한독사전도 거의 없었으니까. 독문학과 선배 붙잡고 비판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역해달라고 졸랐지.”

“세상에…….”

“덕분에 중요한 건 아직도 외우고 있지. 우리는 선험적 감성론에서 우선 감성을 고립시키겠다. 이런 일은 오성이 그 개념을 통해서 사고하는 일체를 분리하는 데서 성립한다. 이런 거?”

특유의 억양이 섞인 독일어가 유려하게 흘러나왔다. 윤선호는 그의 컴퓨터 방문 기록에 남아있을 독일어들을 아무렇게나 조합했다. 우리는 선험적 감성론에서 우선 감성을 고립시키겠다. 감정의 고립. 경향성에 휘둘리지 않고 시행할 의무가 있는 정언 명령. 선의지. 윤선호는 식사하러 가자며 부채를 부치는 지도 교수의 뒤를 따라가며 생각했다. 감정을 배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윤선호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는 연구실로 돌아와 논문과 원서와 번역서를 뒤적였다. 사랑이란 단어가 세 가지 언어로 윤선호의 망막에 새겨졌다. 스물여덟 살의 윤선호는 스물다섯 살의 그와 열여덟 살의 그가 느꼈던 사랑을 언어로 끌어내 보고자 했다.

한밤이 되어서야 윤선호는 연구동에서 오랜 추억에 이름을 붙였다. 동경이었다. 동경이고 존경이었으나 그건 결단코 사랑이 아니었다. 독일어로 쓰인 연구논문의 제목에 사랑이 들어가 있었다. 윤선호는 그 단어 위에 원과 직선과 점을 여러 번 찍고 나서야 열여덟 살의 동경을 마주해야 했다.

그러니 사색하지 않았던 스물다섯의 윤선호가 실망했다는 말을 들은 것도 당연했다. 철학가의 사랑이란 사색과 성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었으므로.

멋대로 결론을 내리자 그간 그를 괴롭히던 모든 문제가 전부 사라졌다. 윤선호는 서울의 여름밤 아래서 한껏 맑아진 정신머리로 생각했다. 뭔가 사라진 것 같았다. 어느 날의 윤선호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 사라졌다. 섧은 심정과 후련한 분위기의 부조화에 고양된 채 윤선호는 창문을 가득 열었다. 산바람이 창틀을 타고 넘어와 쌓아둔 종이를 사방으로 날렸다. 윤선호는 공중으로 치솟다 떨어지는 종이들에 뺨이 베이면서 웃었다. 이 얼마나 같잖은 일이었는가?

서른 살의 윤선호는 웰컴 푸드로 나온 주스를 들이켰다. 짧고 간략한 개회사와 함께 해가 중천일 무렵 시작된 학회는 어느 새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발표를 마친 학자가 질문(의 탈을 쓴 토론)을 받는 사이 윤선호는 옆 의자에 내려두었던 석사 논문 초고를 꺼내 들었다.

한국어와 독일어가 혼재한 메모가 질서 없이 새겨졌다가 취소선 밑으로 사라졌다. 하나 남은 철학과 대학원생이라며 온갖 학회에 다 끌고 다녔던 김 교수의 판단이 빛을 발했다. (일 년 전 김 교수는 윤선호가 제출한 초고를 훑어보고는 빨간 펜으로 첨삭하며 말을 덧붙였었다. “학회 같이 갈 텐가? 다른 사람의 시점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대학원 내내 연구 논문과 학술지에 파묻혀 산 것이 무색하게 윤선호의 철학관은 다소 경직적인 면이 있었다.

“어때?”

“돌아가면 다시 써야겠요.”

“하하, 나도 논문 쓸 때 여러 번 고쳐 써. 다 썼는데 처음부터 다시 다 갈아엎는 것보단 낫지.”

“그런가요.”

“요즘은 아침 산책 안 나가나?”

“… 학회가 9시부터니까, 시간이 좀 애매해서요.”

그 정확한 사람이 저 편한 시간에 맞추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맞추면 몰라도. 윤선호는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보고 겪은 칸트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카페 에티카에서의 칸트는 논문과 저서 속 칸트와 많은 것이 달랐다. 경직되고 조직적인 언어로 구성된 저서와 달리 본체는 꽤 허둥거린다던가, 뭐 그런……. 소소한 사념들이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김 교수의 시선을 애써 피해 빔프로젝터로 시선을 돌리자 아찔한 주제가 이어졌다. 도덕적 의무를 초월하는 사랑 - 판단력 비판에 대한 세속적 분석. IKBPU, 뮐러 발표. 시간상 오늘의 마지막 발표였다.

“이번에도 저런 주제네.”

“네?”

“뮐러 교수 유명해. 항상 저렇게 도발적이고 비판적인 주제만 들고 오거든.”

“… 싫어하시는 건,”

“설마? 이 고리타분한 학회에 저런 사람이 열댓 명은 있어야지. 올해는 저 사람 혼자인 것 같지만.”

윤선호는 가방 속 USB에 들어있는 김 교수의 발표 주제를 떠올렸다. 21세기와 임마누엘 칸트의 종교관적 결합과 해체. 이쪽도 충분히 도발적인데.

스크린 쪽의 천장 불이 꺼짐과 동시에 미려한 목소리가 울렸다. 뮐러 교수는 얼핏 보기엔 김 교수와 비슷한 나이대였다. … 사랑이라. 저명한 석학이 신랄하게 임마누엘 칸트를 까 내리는 동안 윤선호는 초고 위를 누비던 펜을 필통 안에 쑤셔 넣었다. 사랑이라. 윤선호에게 사랑. … 사랑하던 이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들은 윤선호에게, 사랑이라.

윤선호는 문득 깨달았다. 나 그 사람을 사랑했구나. 저자 임마누엘 칸트가 아니라, 카페 에티카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임마누엘 칸트를 사랑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뭘 할 수 있나?

라인 강에서 찬 바람이 불어왔다. 김 교수는 뮐러 교수와 함께 다른 학자들과 식사 자리를 갖는다고 했다. “젊은 애가 끼면 재미없을 이야기만 하니까 놀다 와. 내가 추천한 거 꼭 먹고!” 하며 지갑을 통째로 쥐여준 탓에 윤선호는 한시적 떼부자가 되어 쾰른 길거리에 버려졌다. 젠장……. 목적 없는 자유는 사람을 방종으로 이끈다 하시더니.

해가 지평선 너머로 가물대는 탓에 상가의 대부분은 몇 식당을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아 거리는 평소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그는 괜히 가로등을 노려보다 아직 문이 열려있는 펍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수도꼭지가 달린 오크통, 코르크 상자, 높은 층고에 매달린 샹들리에와 분필로 쓴 메뉴판이 한데 엉켜 퍽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웨이터가 다가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프런트 테이블이 꽉 차 있어서 혼자 이용하시려거든 잠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오래 걸릴까요?”

“네, 바로 앞 손님께서 마지막 1인석을 가져가셔서……. 지금은 2인석과 4인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야, 뭐. 잠시 기다리죠. 메뉴판 먼저 주시겠어요?”

“괜찮으시다면, 다음 손님과 합석하여 2인석에 앉으셔도 됩니다.”

메뉴판을 받아서 든 윤선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아마 나름의 독일식 개그였다.

“그 사람이 원해야 할 텐데요. 잘 봤습니다. 자리가 나오거든 불러-”

“미안합니다. 여기 혹시 1인석 남아 있습니까?”

눈앞에서 하늘이 파랗게 반짝였다.

언제부터 그를 하늘이라고 생각했지? 윤선호는 오래 전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 속 칸트는 대부분 하얀 셔츠에 검은 슬랙스 바지를 입은 직원복 차림이었지만 종종 선호가 숙소에서 ‘대화’를 끌어낼 땐 하늘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지금처럼.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를 하늘 같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러니까…….

“오늘은?”

“오늘은 일찍 퇴근하려고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 선호군~. 조심히 들어가!”

“배웅해줄까?”

“바로 요 앞에서 타는 걸요, 뭘.”

“요즘은 해가 일찍 지니까. 바래다주지.”

“정말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가을 밤이었다. 대학로는 언제나 자정을 넘어서도 소란스러운 젊음의 거리였지만 그날은 그 근방 대학교들의 시험 일정과 겹쳐 유독 거리가 한산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날 마감하며 나온 화제가 의무론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임마누엘 칸트는 책에 있을 법한 문장으로 답했고, 윤선호가 짧게 반박하는 것으로 시작한 대화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 이어졌다. 전광판의 ‘잠시 후 도착’ 칸에 윤선호가 타는 버스 번호가 나타나고 나서야 칸트가 말을 멈췄다. 선호가 그의 주장을 재반박하려는 찰나였다.

“이런,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왜- 아, 곧 오네요.”

“너무 늦게까지 잡아두는 것도 민폐니까. 오늘 즐거웠네. 내일 또 보지.”

… 그날은 유독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공해 가득했던 서울 밤하늘이 그날만큼은 유독 맑았다. 윤선호는 달빛이 반사한 청천의 시선 안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봤다. 너네 그거 아냐?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늘을 갈망하게 되어있어. 지금은 사장된 학설이지만 고대 인간들은 날개뼈에 정말 날개가 달려있다고 하지 않냐. 하늘은 인간이 맨몸으로 정복할 수 없는 장소야.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비행하는 고양감을 즐기는 거지. 그래서 스카이다이빙이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가 생기는 거고. 오래 전에 들었던 고등학교 선생님의 설명이 겹쳐 들린 이유는 모르겠으나, 윤선호는 문득 이해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칸트의 시선은 때때로 하늘을 떠올리게 만든다. 땅에 영원히 발붙이고 살아갈 한낱 인간이 그 시선 안에서 날고 싶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윤선호도, 그의 눈에서 영원히 반짝일 별들 사이를 누비고 싶었다.

무어, 그마저도 한때의 헛된 망상이었다.

똑같은 가을밤이었다. 다른 점이라곤 윤선호가 나이 들었고, 임마누엘 칸트가 알 수 없는 부채감에 쫓기고 있었으며, 누구의 고향도 아닌 곳에 있었다. 칸트가 멋쩍은 낯으로 눈썹을 살짝 내렸다. … 독일인들은 멋쩍으면 다 저렇게 하나? 아까 그 웨이터도 눈썹을 살짝 내리지 않았나. 윤선호는 너른 아량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 그가 알았겠는가? 아예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는 것보단 그래도 안면이 있는 사람과 합석하는 것이 훨 나았다.

“맥주 시키셨어요?”

“음? 아, 아니. 좋아하진 않아서.”

“그럼요?”

“글루바인을 시켰네. 날이 추워지면 프로이센에선 항상 준비해두는 거라.”

“아.”

레드와인에 시나몬과 사과를 넣어서 끓인 그거?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뒤로 기울이자 칸트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윤선호는 태평하게 저 하늘빛 머리칼로 용케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칸트는 이목을 집중시키는 외모였다. 카페 에티카도 잘생긴 직원이 있다, 는 바이럴로 유명해지지 않았는가.

착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맥주 한 잔과 -김 교수는 독일에 왔으면 무조건 소시지와 맥주를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부어스트, 감자샐러드, 초행인 것 같으니 서비스라며 준 라이베쿠헨. 칸트의 앞엔 버터 바른 빵과 글루바인 한 잔이 놓였다. 건배할래요? 농담으로 던진 말에 칸트는 와인잔을 드는 것으로 화답했다. 윤선호는 순순히 맥주잔을 들었다. 소란스러운 말소리와 음악 소리에 묻혀 잔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나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둘은, 정말로, 아무 대화도 안 했다. 할 말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몇 없는 공통 화제는 식사 자리에서 꺼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맥주와 글루바인과 부어스트로 커피를 대신한 저녁 8시의 티타임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윤선호는 잔을 채워주려는 서버를 손짓 한 번으로 거절하곤 -코스터를 잔 위에 올려두었다- 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윤선호가 식사를 마쳤을 무렵 칸트는 이제 절반 정도를 비우고 있었다.

… 윤선호는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휩싸인 채 눈을 깜박였다. 원래 겸상할 땐 상대의 식사 속도에 맞춰주는 게 예의였다. 그런 것도 지키지 못했냐며 눈앞의 상대가 뭐라고 질책하는 것 같았다. 정작 칸트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 미안합니다. 여기 한 잔만 더 주세요. 라이베쿠헨도요.”

“금방 나올 겁니다. 코스터 주시겠어요?”

“여기요.”

“선호군?”

“그냥 제가 배고파서 그래요. 점심에 뭘 못 먹어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윤선호는 오전 늦게까지 맴돌던 칸트의 잔상을 떨쳐내려고 학회실 세팅에 자원했다. 다른 사람들이랑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리마다 인쇄해 둔 발표 자료와 이름판을 내려놓다 보니 개회식이 코앞이었고 식사 때는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새 접시를 내어온 웨이터가 코스터 가장자리에 선을 하나 긋곤 잔을 새로 채워주었다.

단숨에 잔의 절반 정도를 비운 윤선호가 고개를 까닥였다. 느릿느릿하게 빵을 잘라 먹던 칸트가 눈을 깜박였다.

“아렌트 씨는요?”

“아. …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네.”

돌아갔다. 집이 미국에 있는 사람처럼 단어를 쓰는구나.

“프린스턴 대학교에요?”

“독일엔 좋은 기억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럼, 칸트 씨는요?”

임마누엘 칸트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 왜 독일에 왔는가? 왜 하필 베를린도 쾨니히스베르크도 아닌,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쾰른에 있는가? 임마누엘 칸트는 쾰른과 연이 거의 없는데도. 그건 며칠간 윤선호를 괴롭혀오던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독일에 행차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아는 임마누엘 칸트는 그랬다. … 재촉해서 좋을 것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윤선호에겐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유를 알지 못하면 영영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 같았다.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 그래, 칸트주의자라면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칸트가 다시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지극히 평범한 일인데도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펄떡댔다. 어쩌면 취기일 것이다. 윤선호는 애써 진정하려 숨을 골랐다.

“기억을 되짚으려고 왔을 뿐이야.”

“여긴 베를린도 아닌데요.”

“학술대회가 열리는 줄은 몰랐어. 쾰른은… 쾰른 대학교에서 내 연구가 활발하니까. 종종 찾아오기도 했었고.”

“그런가요.”

… 침묵. 맥주잔을 비우던 윤선호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왜 눈치 봐요?”

“뭐, 뭐?”

“눈치 보고 있잖아요, 지금. 저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취중진담인 셈 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봐요. 뭐가 문젠데요?”

“아니, 그런 거 아니다. 취했나?”

“펍까지 와서 글루바인 마시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

“웨이터, 여기 맥주 한 잔… 아니 두 잔 줘요.”

“선호군.”

“날 사랑해요?”

사랑. 도덕적 존경. … 미와 관련된 흡족의 감정. 윤선호는 어느 날 손끝으로 외운 임마누엘 칸트를 펼쳤다. 칸트철학에서 도덕적 선과 관계된 존경의 감정은 예술적 아름다움과 관계된 사랑의 감정보다 우위에 존재한다. ‘존경’은 우리에게 법칙으로 부과되는 어떤 이념과 관련하여, 우리의 능력이 이 이념에 도달하지 못할 때 갖게 되는 감정이니까. … 미는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랑은 존경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낸다. 올바름의 원칙으로 향해 있는 덕도 미에서 비롯되는 사랑의 감정보다는 숭고에서 비롯되는 존경의 감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윤선호의 사랑은 그렇게 경건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랑은 미의식과도 숭고에서 비롯된 존경과도 거리가 멀었다. 윤선호는 반쯤 본능에 따라 행동했고, 이성의 의지를 잠시 솔직함이라는 경향성 아래에 묶어뒀다. 취기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코스터 위에 두 줄이 그어지고, 텅 빈 와인잔을 가져간 웨이터가 칸트와 윤선호 앞에 맥주잔을 한 개씩 놓아줬다. 칸트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눈꺼풀이 팔락일 때마다 한때 윤선호가 날고 싶었던 하늘이 보였다. 

“…… 사랑하지.”

하지만 임마누엘 칸트가 이야기하는 사랑과 윤선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평행선이었다. 윤선호는 어절 사이에 숨은 함축적 의미를 찾아보려다 그만두었다. 방금까지 눈가에서 널뛰던 취기가 냉기로 화해 경향성 아래 묻어뒀던 이성을 들추고 있었다.

맥주 네 잔, 글루바인 한 잔, 부어스트와 감자샐러드 세트, 라이베쿠헨 한 접시, 버터를 발라 구운 빵 한 세트. 윤선호는 김 교수의 카드 대신 환전해 온 현금으로 값을 치르곤 문을 나섰다. 알코올에 달아오른 뺨이 한밤의 냉기를 맞아 사그라들었다. 이 정도 추위면 냉풍에 뺨이 붉어진 거라고 변명할 수 있을 법했다. 술 냄새는 강바람이 없애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니면 문명의 이기利器 -탈취제- 를 빌리던지.

웨이터와 몇 마디 나누던 칸트가 약간 허둥대며 따라 나왔다. “내 몫까진 결제하지 않아도 됐는데.”

윤선호는 당황한 듯 눈썹을 살짝 늘어트린 칸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른 말을 했다. “독일어로 대답하셔도 돼요. 그게 더 편하실 테고.”

쾰른 밤거리는 쌀쌀했으나 알코올이 함께하는 덕에 아까처럼 을씨년스럽진 않았다. 윤선호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안 그래도 흐리게 보이는 하늘이 더 부옇게 보였다. 윤선호는 멍한 정신으로 대학교 기숙사까지 돌아가는 길을 헤아렸다. 중간에 교통을 이용하진 않았으니 도보로 갈 수 있을 텐데 정확한 방향이 기억나질 않았다.

“… 좀 걷지.”

“네?”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것 아닌가? 우리가- … 매일 아침마다 보던 폭스가르텐 공원 옆이 퀼른 대학교니 거기까지 바래다주겠네.”

“그 정도까지는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저녁 식삿값이라고 치고.”

… 독일어 써도 된다고 한 걸 여기서 이렇게 써먹나? 윤선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 강을 따라 역류하는 찬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쌀쌀하고 메마른 바람을 맞을 때마다 윤선호는 속절없이 5년 전의 카페 에티카로 끌려갔다. 이번엔 카페 에티카, 하면 윤선호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옆에 있었다. 모자 장수의 티타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오래 전에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를 떠올렸다. 티타임 구성원은 모자 장수와 3월 토끼와…… 체셔 고양이가 이 티 파티를 같이 했던가? 생각해보니 티 타임도 아니었다. 미친 모자 장수는 언제나 티 ‘파티’ 중이었다. 3월 토끼는 머리에 지푸라기를 꽂은 채 꾸벅꾸벅 조는 산쥐를 팔걸이로 쓰고, 음. 지금 할 생각은 아니다. 취기와 찬바람과 들뜬 이성이 뒤섞여 기묘한 환각을 만들어냈다. 윤선호는 코트의 깃을 조금 더 세웠다. 라인강이 흐르는 소리와 코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겹쳐 울렸다.

칸트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사과하고 싶네.”

윤선호는 멍청하게 되물었다. “…… 뭐를요?”

임마누엘 칸트가 그에게 사과할 일이 무어가 있지. 고개를 돌리자 칸트의 파란 눈이 윤선호를 가득 담고 있었다. 윤선호는 한참 말이 없다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기실 허락의 의미보다는 체념이나 포기에 좀 더 가까웠다.

“실망했다고 말한 거.”

“…… 아뇨, 딱히, 그럴 일이 있었던가요?”

“있었잖나. 5년 전 겨울에.”

… 그리고 윤선호는, 스물여덟 살 여름에 비워낸 공간이 우그러들고 있음을 자각했다. 아니다. 공동空洞이 무너지고 있었다. 억지로 비워낸 수많은 감정들이 임마누엘 칸트가 끌어온 5년 전 겨울의 탈을 쓰고 다시 차올랐다. 윤선호는 우뚝 멈추어 섰다. … 강바람이 머리칼을 헤집고 흩어졌다가, 한데 모여 공중으로 치솟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사실 어디 사고라도 당해서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것 아닐까? 그의 뇌가 좋을 대로 만들어낸 상상이 아닌가? 스물다섯 살의 끝에 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실의와 상심을 억지로라도 이해하고자 한 스물여덟 살의 윤선호에게 주는 보상 같은 것이었나?

“… 왜, 이제 와서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이제 와서요.”

이성을 혼몽하게 만들던 취기가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윤선호는 알 수 없는 경향성에 휩싸인 채 칸트를 쳐다봤다. 쳐다봤나? 시선에 무슨 감정이 담겼는지 그는 알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윤선호는, 그리고, …….

“너무 늦었어요, 칸트 씨.”

“선호군.”

“너무 늦었다고요. 사장님 통해서 한 번 정도는 연락할 수 있었잖아요.”

“그러려고 했어. 하지만-”

“알아요, 아는데- … 적어도 당신이 그러면 안 됐죠. 어디 대학교에 다니는지도 알았잖아요. 무슨 전공으로 어디 대학원에 갈 건지도 다 같이 의논했으면서, 지난 5년 간은 찾아오지도 않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요?”

당신이 상처 입었으면 좋겠어. 스물여덟 살 윤선호가 비워낸 -어쩌면 버렸다고 생각한- 감정이 무저갱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2년 반 동안 골몰한 만큼 당신도 그만큼 고민했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아팠던 2년 반을 당신이 보상해줬으면 좋겠어, 그뿐이야. 우리 좋은 사이 아니었잖아. 되는대로 지껄인 말에 상대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매양 무덤덤하고 단조로운 낯이었던 것과는 영 다른 태였다. 저열한 만족감이 취기를 빌려 나타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저는, 저는요, 칸트 씨. 당신들이 좋아서 철학과에 간 거에요. 어쭙잖게 다른 과로 전과하느니 복수전공을 하느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대학교 이름값만 보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철학이 좋아서! 그때의 사회상, 우리 존재와 거시적 사회, 미시적 성찰, 무지에 대한 탐구, 그 모든 걸로 도출된 당신들의 생각이 좋아서 간 거였다고요. … 그런데 스물다섯 살의 나는, 그냥,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게 실망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니었잖아요.”

“…… 너,”

“당신들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단 이유가 자격 박탈 요건이라도 돼요?”

“…… 너, 날 사랑했구나.”

마음에도 서재가 있다면, 혹은 서랍장이 있다면. 윤선호의 마음에는 거대한 마호가니 서랍장이 들어있을 터였다. 동경과 존경이라고 이름 붙인 칸에 억지로 구겨 넣은 감정이 타인의 말을 빌려 명명되는 순간 칸 밖으로 터져 나왔다. 윤선호는 제 서랍장 위를 엉망으로 더럽히는 색색의 감정을 절절히 느끼며

“그만하죠?”

하고 선고했다.

무슨 정신머리였지? 지끈거리는 이마를 책상에 박고 있으니 김 교수가 그 앞에 바로 원두커피를 내려놓았다. “숙취엔 커피 마시면 좋대.” “누가요?” “뮐러 교수가.” 그러는 김 교수는 종이컵에 담긴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제 맥주 많이 마셨나 봐, 선호군.”

이제 저 ‘-군‘ 호칭도 질린다. 윤선호는 엎어진 상태로 고개만 들었다. 대학원에서 한 명을 3년 가까이 붙어다니다보니 -그리고 그가 유일한 철학과 대학원생이라- 김 교수는 이런 작은 무례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주는 편이었다.

“새 옷인데 향이 그렇게 나나요. … 세 잔밖에 안 마셨습니다. 발표 자료는요?”

“그 정돈 혼자 확인할 수 있으니까 오기 전에 내가 했지. 냄새가 별로 나진 않는데 행동이 꼭 숙취로 고생하는 사람이라서. 동석자가 괜찮았나?”

“네?”

“맥주가 혼자 마신다고 취하는 술도 아니고. 동석자가 있으니까 열이 더 빨리 돌았겠지? 마음에 들던?”

“어, ……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교환학생이었어서.”

“거짓말인 건 아니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 정언명령을 어기는 짓인가? 윤선호는 그만두자는 선고를 내뱉고도 얽혀있는 자신을 새삼스레 확인하곤 앓는 소리를 냈다. 아, 맙소사, 윤선호는 평생 임마누엘 칸트와 함께 살아야했다. 정작 학자는 거부했으면서도. 자신보다 서른 살은 어린 학생의 고뇌가 즐거운지 김 교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끝내주는 사랑이라도 했나봐.”

“그러게요. 꼭 사랑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샌데요, 학생.”

“뮐러.”

사람이 늘었어……. 윤선호는 작정하고 무례해지기로 했다. 김 교수도 딱히 말리는 태는 아니었다.

“아. … 안녕하십니까. 윤선호입니다.”

“편하게 뮐러라고 불러요. 한국어 해도 괜찮고.”

“… 유창하신데요.”

“김 교수 덕분에.”

“네?”

“연구 논문 공동저자였어. 내가 러시아 가서 박사 학위를 땄거든.”

“아.”

그러고보면 뮐러는 IKBPU 교수였다. 칼리닌그라드에 있는 발틱 연방대학교의 교수. 그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사이 상냥하게 웃은 뮐러가 시계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오늘 일정 없으면 저녁 식사라도 할까요? 12월 1일 아침 비행기로 출국하지 않던가?”

“일정이 바빠서 그리 됐지.”

“네? 아, 개인 일정은 따로 없습니다. 괜찮아요.”

“괜찮은 식당을 알아요. 같이 가죠.”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마침 천장 등이 꺼졌다. 첫 발표자가 단상에 올라가면서 넉살스러운 말을 건네자 좌중에 웃음이 번졌다. 다소 소란스러운 웃음 사이에서 초고를 꺼내자 너덜너덜해진 겉표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몇 주 전 김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던 가제에 취소선이 그여있었다. 온갖 메모가 적힌 초고가 쓸 수 없는 가제였다.

거기에도 사랑이 있었다.

학회는 다소 이르게 끝났다. 마지막 날까지도.

윤선호는 다시금 목적 없는 자유를 얻은 채 -이는 곧 그가 방종한 상태임을 말한다- 퀼른 대성당 미사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오후 6시 반 미사가 말씀 전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천주교도도 아니었고 전공 중 그리스도교 과목을 제일 못 했지만 종교와 철학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러니저러니 대한민국은 유교 국가였다. 어떤 철학은 이미 종교적인 의미로 사람의 생활 방식을 제한하고 있었고, 윤선호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사제의 나직한 목소리가 대성당을 조용히 울렸다. 단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탓에 차갑게 식은 의자의 냉기가 허벅지를 쿡쿡 찔러댔다. 윤선호는 여전히 모국어만큼 익숙하지 않은 독일어와 라틴어로 이어지는 본기도를 흘려들었다. 고작 미사 한 번으로 구원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윤선호는 들어오기 직전 안내원에게 들었던 미사 순서를 복기했다. 본기도 다음에, 그러니까.

“주보도 들고가지 않고.”

“…… 칸트 씨?”

“왜, 내가 미사에 참가하면 이상한가?”

… 경건주의 집안이라고 했었나. 윤선호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 칸트가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주보를 받아들었다. 당연하지만 독일어- … 영어 주보였다. 시선을 들어올리니 칸트가 다시 헛기침을 내뱉었다. 독일어보단 영어가 좀 더 익숙할 것 같아서, 하는 배려가 솔직히 조금 기꺼웠다. 윤선호는 주보를 무릎 위에 올려두며 한숨을 내뱉었다.

“독일어가 더 익숙해요.”

“… 그런가.”

“하도 독일어 원서만 봐서.”

지난한 사랑 고백같군. 윤선호는 한껏 내려앉은 감정으로 생각했다. 눈앞의 철학자가 독일 사람이라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았다. 의자 옆에 허리를 숙인 채 어정쩡하게 서 있던 -아마 미사를 주도하는 사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칸트는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더니 그의 옆에 털썩 앉았다. 코트 자락이 나무 의자에 내려앉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니, 사실 그렇게까지 요란한 건 아니다. 두터운 천이 내려앉는 게 무어 소란스럽다고……. 윤선호는 그가 임마누엘 칸트를 과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자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벌게진 얼굴을 추위 따위의 핑계로 둘러댈 수 있는 계절이었다.

어제 저녁 뮐러 교수가 안내한 레스토랑은 대성당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웨이터가 안내한 자리는 대성당의 높은 첨두아치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3주나 남았지만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 곧이라며 바깥이나 레스토랑 안이나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났다. 그들이 앉은 자리에도 메리 크리스마스 문구 가랜드가 걸려있었다.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독일 전통 음식을 내어오는 식당이에요.”

“괜찮습니다. 분위기 좋네요…….”

“김 교수가 좋아했던 곳이거든요. 메일로 식성이 비슷해서 좋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나서.”

남의 사랑 이야기까지 듣고 싶지 않았다. 어째선지 그날 이별을 고한 이후로 사랑만 질릴 정도로 접하고 있었다. 이거 데자뷰인가? 윤선호는 스물여덟 살 여름을 서른 살 겨울의 위로 끌어오며 얌전히 식전빵을 베어물었다. 꼭 노쇠한 부부 사이에 낀 장성한 아들이라도 된 것 같았다.

마침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저녁 8시를 알리는지 여덟 번 울렸다.

“미사 끝났나보다.” 이건 김 교수고.

“그러고보니 미사 안 간 지도 꽤 됐지?” 이건 뮐러 교수다.

서로 왜 독일어와 한국어로 대화하는지는 모르겠다. 그 종소리는 크고 우렁하여 창가를 앉아있던 그들을 지나 레스토랑 내부의 음악 소리를 묻어버리곤 조용히 사라졌다. 가로등 불빛과 달빛이 첨두아치를 비추며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느릿느릿하게 울려퍼지는 종소리가 유난하여… 윤선호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마침 눈이 내렸다.

“프랑스랑 가까운 지역이라 평소엔 온화한데. 운이 좋네요, 선호군.”

“… 그, 독일어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느 정도는 알아들어요.”

“그래요?”

“수준급이라니까. 외대 가도 잘 했을텐데.”

외대에 가도 자퇴했을 것이다. 물론 윤선호의 수시 원서 중 하나엔 한국외대가 들어있었다. 그것도 독일어과 예비 10번이었다.

“철학 좋아해요?”

“… 예?”

“그러니까, 음. 사랑하느냐고.

“…… 사랑,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으로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쉬운 결정도 아니고요.”

스물여덟 살에 끊어낸 사랑이 끈질기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윤선호는 메인 자리를 만들려 빈 접시를 치우며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니저러니 사랑이었다. 윤선호가 임마누엘 칸트에게 가지는 개인적인 감정과 별개로……. 사랑하지 않고서야 이 고루한 의무론을 서른 살까지 끌고 올 이유가 없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여름 밤에 논문과 학술지를 뒤져가며 사랑하지 않음을 명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뭘, 새삼스럽게. 철학이 어디 사랑하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학문이었던가. 다 사랑해서 시간이랑 돈 들여가며 여기까지 오는 거잖아.”

“당신은 학문을 너무 사랑해서 나까지 끊었잖아.”

“쌍방 동의였어, 뮐러. 칸트랑 나 중에 뭐가 더 좋냐고 물었을 때 칸트라고 고른 거 아직 안 잊었다.”

타인의 사랑 이야기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김 교수의 낯에 드물게 말간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그런 낯은 정말 드물었다. 종종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신선한 해석이 올라올 때만 그런 낯이었다.

김 교수는 오랜 추억을 회상하듯 의미없는 손짓을 두어 번 반복했다. 손에 들려있던 스테이크용 나이프의 끝이 테이블보를 살짝 구겼다. 눈이 내렸다. 간판 불에 반사된 눈 그림자가 김 교수의 낯 위로 드리워 기묘한 문양을 그렸다. 그게 꼭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았다.

“아가페를 선택하기엔 내가 너무 철학을 좋아했어.”

“좋아했지. 끝내줬고.”

“선호군도 그런 케이스 아닌가? 가끔 그런 학생이 있긴 하던데.”

“… 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임마누엘 칸트가 어떻게 생각하던 윤선호는, 그러니까, 스물다섯의 윤선호도 서른의 윤선호도, 그 파란 눈을 사랑해버리고 만다. 아침마다 걷던 라인 강에서, 벤치에 앉아 올려다보던 하늘에서 그 사람을 찾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에 모든 걸 걸기엔 윤선호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총량은 이미 한계였다. 사람까지 사랑하기엔 자리가 없었다.

정말?

“사람을 버리고 사랑을 취한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한 번 정도는 사람을 택해도 돼요.”

“사랑은 가끔, 뭐라고 해야 하나, 특수한 환경에서 가변적으로 변하니까.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고 그렇더라고.”

“난 왜 버렸어?”

“쌍방이라고 분명히 말했어, 뮐러.”

윤선호는 김 교수의 커리어를 생각했다. 그는 서른의 젊은 나이에 -정확히 윤선호의 나이에- 박사논문을 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유예 기간 없이 바로 대학원에 들어갔으니 스물 여덟의 박사 과정이면 충분히 이례적이었다. 석사를 스물 여섯에 마치고 바로 러시아로 갔다고 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커리어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사랑이란 대체 뭘까? 그만한 가치가 있었겠지만, 그건 쌍방이 동의해야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연인이 동시에 사랑 대신 커리어를 선택할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 임마누엘 칸트는 그를 그만큼 생각하고 있나. 윤선호는 그럴 수 있나?

스물다섯 살 윤선호가 속에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철학을 하지?

윤선호는 그때 김 교수처럼 손가락 끝으로 허벅지를 짓눌렀다. 면이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구겨지며 흉한 주름을 만들었다. 온열기를 틀어둔 모양이지만 뒷자리까지 따뜻해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뒷자리의 좋은 점은 몰래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도 안 들킨단 점이었다. 그럴 듯한 변명이 있다면 완전범죄였다. 그는 따라오는 파란 시선에 대충 휴대폰을 흔들어보이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나왔다. 광장 시계가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전히 눈이 내렸다. 윤선호는 오늘 폐회사를 떠올렸다. 쾰른에 드물게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다들 몸조심하시고 미끄러지지 마시고,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한 미사여구와 지난한 공치사. 하지만 진심이 담긴…….

“선호군.”

“… 미사 끝날 때까지 아직 45분이나 남았는데.”

손목이 붙들렸다. 윤선호는 웃었다. 5년 간 자연스레 익힌 사회적 웃음이었으나 칸트는 무어가 그리 못마땅한지 표정이 엉망이었다.

“왜 거짓말하지?”

“네?”

“이젠 나랑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싫나?”

“무슨 소리에요?”

“내가 네 진심을 들춰서 화가 난 거잖아.”

“누가 그래요?”

“네가 그렇게 굴잖아.”

어깨 위로 눈이 쌓였다. 소복하게 쌓이는 소리라도 들리는 것 같았다. 윤선호는 이례적으로 주변 환경과 임마누엘 칸트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구름에 달빛이 가려져 날이 어두웠으며, 가로등 불빛 아래서 붉어진 얼굴로 그를 추궁하는… 임마누엘 칸트. 윤선호는 직감했다. 그는 이 광경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영영 후회할 지도 모른다. “한 번 정도는 사람을 택해도 돼요.”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당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잖아요.”

“…… 그래.”

“지금 대답해도 돼요?”

“기꺼이.”

숨을 들이쉰다. 한겨울 특유의 메마르고 건조한 공기가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다만 이성은 여전히 감정 아래에 침잠해있었다. 윤선호는 지극히 차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키스해도 괜찮아요?”

임마누엘 칸트는 순순히 허락했다.

열기였다. 그렇게밖에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머리 위에는 눈이 부슬부슬하게 쌓였고 어깨나 허리를 붙잡은 손은 새빨갰지만 이상하게도 시리진 않았다. 신경 중추계가 고장난 것 같았다. 아니면 그들이 너무 뜨거웠거나….

둘은 추위가 아니라 애정에 붉어진 낯을 한 채 이마를 맞대고 숨을 고르다 다시 섞었다.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윤선호에게는 이제 한때의 김 교수처럼 커리어와 사랑 중 하나를 택할 분기점이었다. 그는 당장 선택하는 대신 손을 맞잡기를 택했다. 저 내일 아침에 출국해요, 속삭이는 소리는 건조했으나 임마누엘 칸트는 그 아래 침잠한 다정을 알았다. 알겠네. 하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흔들림 없었던 건 그 탓이었다.

겨울이었다. 윤선호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뺨에 닿는 냉기에 화들짝 놀라며 패딩 지퍼를 끌어올렸다. 12월 1일 아침,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쾰른은 예상보다 더 쌀쌀했다. 공항은 새벽 비행기를 타러 나온 사람들로 웅성였다. 뮐러 교수는 배웅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 저녁을 기하여 먼저 러시아로 돌아갔다.

“티켓은?”

“여기요. 여권도 같이 드릴게요.”

“빠뜨린 건 없지?”

“교수님께서 신경 쓰셔야죠. 항상 숙소에 뭐 두고 나오시면서.”

“나올 때 둘러보고 나오긴 했는데, 글쎄다.”

“제가 나중에 학사관리팀에 연락 넣어볼게요.”

“든든하네.”

윤선호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출국까진 두 시간이나 남았다. 부족한 잠은 비행기 안에서 채우면 된다. 이러니저러니 서른 살의 육체는 이십 대에 비해 나약했다. 어쩔 수 없는 피로가 눈가 근처에 짙게 가라앉았다. … 그를 부르는 김 교수의 목소리만 아니었어도 계속 그랬으리라.

“저 사람 너 찾는다.”

“… 누가요?”

“파란 눈인 사람. 오, 요즘 시대에 파란 머리도 드문데.”

“…… 네?”

“저쪽에. 파란 코트.”

눈꺼풀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갑자기 사라진 기분이었다. 윤선호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게이트에서부터 임마누엘 칸트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해가 뜨고 있었다. 일출은 공항의 유리창과 게이트와 콘크리트를 넘어 칸트의 뒤로 기이한 헤일로를 드리웠다. 그마저도 퍽 잘 어울렸다. 김 교수는 윤선호와 그 남자를 번갈아보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윤선호의 등을 떠밀었다.

“아침 산책 손님이지?”

“아니, 그, 맞긴 한데.”

“탑승 수속은 내가 할 테니 다녀와. 시간도 넉넉한데.”

그리고 윤선호는 뛰었다.

거리가 꽤 있었다거나, 걸어가다가는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는 변명을 덧붙였으나 다소 같잖았다. 그냥 빨리 무슨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윤선호는 한달음에 그의 앞까지 뛰어가, 거칠어진 숨을 골라내기도 전에 손을 붙잡고, 임마누엘 칸트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파란 눈 안에 엉망인 제 모습이 한가득 들이찼다. 칸트는 놀란 듯 약간 크게 뜬 눈을 깜박이다가, 다정하게 표정을 누그러트리곤, 그렇게 급하게 뛰어올 것 없었다며 웃었다. 그 선명한 애정을 감각한 윤선호도 따라 웃었다.

그들은 미약한 약속을 맺고 헤어졌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들 앞으로 유리창에 산산히 부서진 햇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었다. 윤선호는 크라브로와 공항에 내리자마자 뺨에 닿는 냉기에 화들짝 놀라며 코트를 여몄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아침인데도 이제 막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안경 너머로 닿는 쨍한 햇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말갛게 웃었다. 윤선호에게 파란을 불러일으킨 남자가 거기에 서 있었다.

사랑이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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