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End Credit

Winter End Credit 3

271 by hampun

다시, 대기실.

생각을 정리해보자.

배세진은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천천히 뱉었다.

우선, 박현우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박문대가 말한 ‘호의적인 환경’이란 것이 일반인에게도 적용되는 옵션인 것 같았다. 걔가 촬영 현장에 나와서 발품 팔고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본인이 원해온 일이란 소리겠지.

‘미련 없다더니.’

배세진은 막 개통한 스마트폰을 익숙하게 만지작거렸다. 소속사 몰래 개통한 스마트폰의 액정에 얼굴이 비추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안정적인 수입과 가정을 낀 채 세트장 속을 거닐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가 경계했다. 소속사 탓인지 뭔지 뭐라도 캐내고 싶어하는 눈빛. 무슨 비밀이 있을까하는 눈초리를 보내왔었다.

‘아니야. 나는 미련이라기보단….’

‘당연한 거였지.’

그런 자리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 현장을 원한 것도 아니고. 그저,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장 익숙하고, 익숙했기에 당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좋아하기도 했고.

박현우는 티는 안 냈어도, 스무 살의 자신처럼 어딘가 헤매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이 곳의 사정이 현실 세계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확신했었던가.

…그래.

이건,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봐 준 친구에 대한 호의이자,

____ 이다.


“맞다, 전에 그 트윗 뭐야?”

“아… 그거.”

오랜만에 나온 SNS 지인과의 만남. 세 명이서 만나기로 했지만 한 명이 조금 늦는단 연락을 보내오던 차라 다른 한 명과는 시덥잖은 근황 얘기나 나누게 되었다. 하필이면 방송국 앞 카페에서, 이세진 얘기라니… 누가 듣는 건 아닌가 몰라.

“그냥 교수님이 꽂아준 알바인데, 거기 주연 배우랑 좀… 부딪혔다 해야 하나.”

“갑질 해?”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음… 뭐라 해야 하지.”

인기 주연 배우가 일개 스태프인 나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웹소설이냐고. 이런 건 나페스 소설에도 안 먹히는 설정이다.

“근데 의외다. 배우님이라길래 뮤지컬이라도 하는 줄.”

“거기는 진짜 인맥빨이야….”

이번에도 운 좋게 잡은 기회였다. 방송이나 영화 업계에서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기도 했거든. 지루한 홀 공연장 말고… 속으로 삼킨 말은 참 좋은 핑계가 되었다.

학창시절 다짐해 온 미래는 이미 흩어진지 오래였다. 어느 순간부터 촬영 현장 아르바이트나 찾아다니고 있었다. 관심만 있었지 이렇게 진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 배우, 이세진이야.”

“…이세진? 내가 아는 그 이세진?”

대한민국에 이름 석 자 온전히 돌아다니는 이세진 배우라면 아마 한 명일 테다. 무명을 제외하고는.

“어때? 이세진? 아니, 그 사람이라니까 진짜 수상한데. 뭔 정신병자 역할만 주구장창 하더니 진짜 돌아버린 거 아냐? 요즘엔 아이돌 오디션이니 뭐니 돌아다니던데.”

“악플을 달아라, 악플을.”

나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이상했던 첫만남 이후로 이세진과 별 달리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그야 그 사람은 한 컷 한 컷 따내기도 바쁜-물론 실력이 있어서 그런지 NG 없이 일사천리로 촬영이 진행되긴 했다- 배우고, 난 그냥 일개 스태프니까. 오히려 처음 만났던 그날 있었던 일이 점점 왜곡되어 내 착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지긴 하지만 별 이유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아는 얼굴이니까 봤겠지. 아니면 뭐 몰입한다고 허공을 응시한다거나….

“그냥 하는 말인데 이왕이면 친해져서 사인이라도 받아.”

너도 이세진 나오는 영화들 좋아했잖아. 프로그램이나 팜플렛에 사인 받는 것도 좋아하고. 사이코패스겠지만.

“글쎄…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닌 거 같았다. 다른 알바 스태프들이 눈빛이 쎄하네, 신비주의네 뭐네 말하긴 했지만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좀 호의적이었지 않았나? 음, 노려보는 건 그렇다 치자. 사이코패스잖아….

“그러다 친해지면 건우 소개시켜주라.”

앞에 앉은 친구의 말은 한 귀로 흘려들었다.

정말 나를 왜 알지…….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세진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주변의 스탭들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주위를 몇 번 두리번거리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이내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큼…. 저기요.”

…….

듣지 못했나 보다. 아니, 못 들은 척 하는 거 아니야? 박현우는 늘 그랬다. 못 들은 척의 달인, 못 본 척의 달인. 학창 시절에도 같은 수법으로 교칙의 구멍을 이리저리 피해다녔다. 모범생인데, 모범생 딱지를 붙이기엔 영악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소현 씨.”

그렇다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된다. 고작 남의 눈길을 피한 걸로 사흘을 고민하는 성정은 어디 안 갈 것이다.

“네? 잠시만요!”

배세진은 어색하게 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이게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여태 안 보고 지냈더니 더 낯선 기분이었다. 여기서 굳이 친목을 다질 필요도 없지만, 십대 때 느꼈던 거리감과 이십대의 거리감은 확실히 달랐다. 괜한 걸로 말을 걸면 오해 받기 쉬운 직업이기도 하다 보니 더 그랬다. 그럼에도, 말을 걸고 싶은 것은.

“…아까 다른 배우님이 아메리카노 돌리셨거든요. 근데 안 드실 거 같아서.”

첫째로는 아마 이곳의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제 친구를 향한 우려의 시선일 것이고-배세진은 때때로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약했다-, 둘째로는 반가운 얼굴에게서 느껴지는 경계의 시선이 신경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친구의 시선이 배세진의 손에 닿는다. 조금 오버했나? 하지만 배우가 스태프에게 음료를 직접 전해준다고 해서 문제될 일은 없어 보였다. 이미 커피차가 몇 번 오간 곳이기도 하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한 편이라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배세진은 그에게 작은 과일 주스병을 건넸다. 현실의 박현우가 즐겨 마시던 제품이었다. 이곳의 박소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 감사합니다.”

“그, 그럼. 수고하세요.”

배세진은 사교성과 연기력은 별개의 능력이란 생각을 하며 빠르게 뒤를 돌았다. 현실에서처럼 대하자니 너무 허물이 없고, 남을 대하듯 하자니 지나치게 어색했다. 그리고 친구에게까지 누군가의 모방을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눈 앞의 친구를 ‘친구’라 생각할 수 없을지라도.

“…배우님!”

박현우의 목소리가 들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네?”

“감사합니다~!”

박현우가 허리를 반 접어 인사했다. 예의를 차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정도 장난이 섞인 행동처럼 보였다.

…내가 아는 박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먼저 다가왔다. 낯섦이 익숙함으로 전환되는 그 순간이 기묘했다.

🐧 the best penguin… @greenapeade

얘들아 나 그분이 베지 주스 챙겨줌 이거 뭐지

202X.XX.XX 오후 16:48


🐧 the best penguin… @greenapeade

@greenapeade 근데 갑자기 왜 이러지 우리 어.사. 아니었나….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추가태그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