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End Credit

Winter End Credit 4

271 by hampun

“…알겠어, 수고하고. 무슨 일 있으면 말해.”

“네, 형. 형도 수고하세요.”

“그래.”

배세진은 통화가 종료된 스마트폰의 화면을 잠시 바라봤다.

[류건우(박문대)] 18:44 통화 종료

우웅-.

곧이어 들어오는 메시지 하나.

[류건우: 세진 형은 크게 영향이 없으실 테니까]

[류건우: 변경 사항 있으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류건우: 파이팅 (주먹을 위로 들어올리는 강아지 이모티콘)]

강아지… 여전하네.

[배세진: 그래 (햄스터가 끄덕이는 이모티콘)]

[배세진: 너희도 힘내]

[차유진: ofc 😎 ]


박현우의 아르바이트도 슬슬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일정은 여전히 강행군이었으나 눈칫밥 신세를 면할 정도는 되었다.

땜빵으로 들어갔음에도 적응이 빨랐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거의 발로 뛰다시피 했는데, 이세진의 출연이 확정된 후로 그의 촬영날이 되면 어째선지 현장 분위기가 덜 부산스러웠다.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인기 배우다 이건가… 상전이다.’

소시민 일반인 박현우의 생각은 거기까지밖에 닿지 못했다.

배우 이세진이 초반 2주일 정도를 감독과 상의 하에 스태프들과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힘썼다는 사실을 일개 땜빵 스태프가 알 길은 없었다.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던 소식을 들은 배세진은 그야말로 불도저였다. 본인이 개선할 수 있는 건 바로 부딪혔다. 하지만 고작 말단 스태프인 박현우는 태평하게 ‘업무 환경 좋고~’ 따위의 감상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 배세진은 자신이 몸 담근 현장에 이런 태평한 생각을 하는 노동자가 있음에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비록 그 사람이 제 친구일지라도….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안 쳐다보네?’

초반에는 틈만 나면 제 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탓에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싶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잡담도 안 하고 싶었다. 물론 배우와 스태프가 얘길 나눌 기회는 그다지 없긴 하지만, 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타입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혹시 모르잖아. 그냥 마음에 안 든단 이유로 사사건건 시비 거는 사람-정확히는 예체능인-을 많이 봐 온 터라 본능적으로 숨어댔다.

너무 예민했나? 그냥 이쪽을 쳐다본 것일 수도 있고, 나한테 할 말이 있었을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핑곗거리를 하나씩 늘려주고 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익숙하단 듯이 저를 쳐다보냔 말이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가 하면, 이따금 이전의 사건처럼 음료를 건네준다거나, 신발끈이 풀린 걸 말해준다거나, 또래 스태프들과 유행하는 노래와 아이돌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슬쩍 쳐다보고 간다거나 하는 식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맞다, 소현 씨. 그거 들었어요?”

“응? 뭔데요?”

“이세진 배우님, 아이돌 프로그램? 방청 갔다던데. 의외죠.”

“오… 인맥이 있나?”

“…아는 동생들이 있어서요.”

“우왓!”

깜짝이야. 그러시군요….

……정적.

이세진은 머쓱한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큼. 잘 부탁드립니다. 투표도 해주시면 좋고… 애들 다 착해요.”

그, 그렇군요….

진짜 뭐지?

경험 상 이런 눈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나 보이는 건데. 학교 다닐 때 몇 번 겪어봤다. 그리고 불현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간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네, 누군지는 기억이 안 나. 그냥 그런 감각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꿈인가?

물론 이세진은 그런 뉘앙스는 아닌 것 같긴 했다. 일반인을 상대로 그럴 것 같은 허술한 이미지는 아니었고, 그냥… 음……

결론 짓자면 뜬금없는 사람이다.

살면서 이런 ‘해석이 안 되는 사람’은 오랜만이어서 신선했다. 어제 본 길고양이가 오늘도 나와줄지에 대한 딱 그정도의 호기심. 그러면 사인은 해주실 거냐고요. 부탁하면 해줄 거 같긴 하다. 상상을 하다가 괜히 지는 기분이 들어 생각을 멈췄다.

하여튼, 박현우는 마지막 주차 촬영 일지를 건네 받고 식대 신청서와 출근 대장을 새로 갱신했다. 출연 배우들과 감독들이 한창 연말 시상 관련해서 스케줄이 빡빡해질 터이니 일정이 번복되거나 예민하게 나오더라도 양해를 바란다는 업계 선배들의 충고를 막 들은 참이었고, 이세진은 이런저런 ‘신비주의’ 이미지를 벗어나 몇 번의 기행(?)을 보이며 연예계에 다시금 녹아드는 중이었다.

저런 사람이랑 친구 하면 재밌을 거 같긴 해. 보는 재미는 있을 거 같잖아.

왜인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세진은 박문대… 아니, 류건우로부터 일련의 계획을 통지받았다.

그나저나 박문대도 참 열심히 산다 싶었다. 어떻게든 아이돌로서의 삶을 이뤄내고 돌아갈 거라니. 언젠가 남겼던 감상이 오늘로 다시금 떠오른다. 천부적인 재능, 하늘이 내린 엔터테이너. 아마 자신이 평생 카메라 앞에 서길 바라듯, 박문대 역시 삶 자체를 이 일로 채우고 싶어하는 열망이 가득할 것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동반된 상황이라 해도 선택과 의지는 박문대 본인에게 있는 것 아닌가. 아마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체계가 사라지더라도 박문대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평생을 노래하고, 사랑받고, 춤을 추고, 웃음을 보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배세진도 더욱 의욕이 샘솟았다. 간만에 동생들이 보고싶어졌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하며 자신은 뒤처진다고 생각해왔다.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왔다. 잘하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이만큼 악을 써가며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려고 노력한 건 처음이었다. 그게 아이돌로서의 배세진의 삶이었고, 의미였고, 끝내 자신의 강점이 되었다.

이 세계에서는 이미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버렸기에 동료로서 함께하지는 못하겠지만,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고 싶어 생전 앉아보지도 않은 비공개 스튜디오의 방청석에도 앉아보고 인하트에 글도 직접 써서 홍보했다. …사실,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동생들도 전부 ‘그만하면 됐죠, 감사합니다’로 적당히 자신을 위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고 아마 이 세계에서의 조력은 자신보다 이세진-자이롭이라는 그룹으로 먼저 데뷔를 했더라-이 더 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세진도 참 이세진 답다…. 아이돌이 아닌 이세진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란 생각을 끝으로 배세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스케줄, 소속사 재정비, 그리고……

‘연말 무대, 합동 공연, 시상식.’

모든 건 그 끝에 결정된다.

아, 이젠 끝이구나.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배세진은 30분 정도가 빈 스케줄표를 머릿속에 그리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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