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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서면 한없이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당신이 나를 찾지 않기를 바랐다. 당신이 손을 내밀 것 같아서. 나에게는 손길 따위 주어질 자격이 없었다, 특히나 당신의 것은. 내가 당신의 집에서 지내면서 어떤 짓을 했는지는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계실 터였다. 차라리 당신이 나를 죽이러 왔다고 했다면 받아들였을 거다. 그편이 나았다. 내가 살자고 당신을 붙드는 것보다야.
당신에게 매달리는 것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그런 짓을 한다면 죄책감에 잡아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당신 앞에서 나는 늘 죄인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분명 나를 건지려고 하시겠지... 그것이 나에게는 또다른 죄가 되는 줄을 모르시고. 당신을 안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진의를 모르겠다.
그래, 당신과 나는 이대로. 서로 알지 못하는 채 살았어야 했는데.
당신이 나를 들추려 하시니까. 그래서 당신에게 다가갔다.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이어 당신의 목을 타고 붉은 것이 올라오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능력을 알았으니 내가 사실 노린 것은 몸이 아닌 마음 쪽이었다, 어느 것이 됐든지 하나가 망가지면 사람은 한동안 정체되니까. 이전보다 더한 상처를 드렸으니 당신은 오지 않으실 테고 나는 양손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도 당신의 발은 묶어놓을 수가 없었고, 위협으로 그치려 했던 일이 잘못되어 당신이 크게 휘말렸을 때쯤에는 한계를 느꼈다. 끔찍했다... 치러야 할 죗값이 넘치다 못해 흘러 더는 가늠되지 않는다는 것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서 참지 못하고 당신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낫게 하는 건 당신 특기잖아요. 그러니까 당장 내가 보는 앞에서 뭐든 하시라고.
막바지에는 거의 애원을 했던 것 같다. 손이 됐든, 목이 됐든, 팔이 됐든 내가 남긴 흔적들은 다 없애시고 제발 나를 그냥 두시라고.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하실 필요가 없었다. 나 또한 뉘우치는 것을 제외하면 당신에게 그래야 했지만 정신을 놓고 잠깐이라도 손을 뻗는다면 잡아주실 것 같았다. 속을 보인다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나까지도 받아주실까 봐. 그래서 당신 안의 나를 부수고 싶었던 건데. 입을 열면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다.
"제가 어떤 모습이든 당신에겐 상관이 없나요?"
당신에게 함부로 대했잖아요. 아무렇지도 않으실 리가 없잖아요. 이제야 물음을 던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제가 지은 죄는 당신 앞에 엎드려 빈다고 사라질 게 아니에요. 제가 죄를 감당하는 동안 당신은 저를 감당하셔야 할 테죠. 제가 당신을 괴롭게 만들지도 몰라요."
고개를 들어올려 긴 시간 당신을 바라본다. 나가라 떠미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더 외면할까. 눈을 돌려도 당신은 나를 보고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저 또한 더없이 괴롭겠죠. 당신을 미워하는 걸 멈춘 지 오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당신이 언제 굽히신 적 있던가요. 당신 앞에서 저는 언제나 무력한걸요. 고인 것이 주륵 흐르면 방울져 턱에 맺힌다. ...제가, 잘못했어요. 무릎이 꺾이고 고개가 떨어진다. 꿇어앉은 채 끊임없이 고백했다. 잘못했다고, 그러니 저를 좀 어떻게 해 달라고. 당신의 발치에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그동안 쏟지 못한 만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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