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레오]구속의 미학

마피아 스티븐과 수습 기자 레오나르도의 이야기

해수의 깊이 by 해수
15
0
0

현세와 이계가 교차한 도시, 헤르살렘즈 롯. 그곳의 금요일 밤은 여느 다른 도시들과 같이 활기로 넘친다.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과 이계인이 뒤섞여 거리의 열기에 함께 취해 있다는 것일까. 낮보다 서늘한 밤의 기온 탓에 밖으로 몰려나온 인간들과 이계인들은 거리에서, 술집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금요일 밤의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네온사인과 전광판들이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혔다. 마치 제2의 낮인 것처럼 밝은 불빛 아래 사람들은 나방처럼 몰려 들어 열광하며 광란의 축제를 벌였다. 당연히 도로에도 아직 차들이 씽씽 달리며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수많은 차체들 사이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달리는 낡은 흰색 스쿠터가 한 대 있었다. 그 위에 앉은 견습 기자 레오나르도 워치는 시간이 흘러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 차들을 보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신문사 하나에 간신히 들어간 레오나르도는 일단 특종을 하나 잡아서 기사를 써와 보라는 조롱 같은 제안을 직속 상사에게 들었다. 낙심한 채로 거리를 걷던 그는 우연히 어느 바에서 마피아 간부들의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정보를 듣고 지금 부리나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교통상황을 보아하니 제시간에 그곳으로 가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레오나르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 도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신문사에 들어가야 했다. 마피아라니 위험할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하였지만 이 소중한 기회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잠시 좌절감을 느끼며 스쿠터에 기대어 있던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들고 손잡이를 쥔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리고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외쳤다.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포기하지 말자!! 미셸라 오빠가 꼭 이거 잡아서 네 눈을 돌려줄게!!'

결심을 굳힌 레오나르도는 계속 빵빵거리며 제자리에 멈춰 있는 차들 사이를 누비며 겨우 막힌 도로를 빠져나갔다. 죽기 살기로 운전한 끝에 몇 분을 남겨두고 아슬아슬하게 거래 장소인 술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좁은 뒷골목에 스쿠터를 주차한 레오는 고개를 조금 내밀어 입구 쪽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문이 닫혀 있어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그의 성능 좋은 의안은 그 두껍고 삼엄한 경계를 뚫고 그 뒤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어피스를 꽂고 총을 든 무시무시한 경호원들이 문 양옆을 지키고 있었고 바의 깊은 안쪽 룸에서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 둘이 와인을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수상한 철제 가방이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거래 물품일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모든 정보를 알아낸 그에게는 이제 들어가서 그 장면을 포착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도저히 들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저 삼엄한 경비를 피해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다. 음... 레오나르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퍼뜩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지갑을 뒤져 신분증을 꺼냈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번쩍거리는 카드에는 자신의 사진 옆에 인적 사항이 작게 적혀 있었다. 레오나르도 워치, 19세 남성. 그렇다. 사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는 성인이었고 지금 저 바에 들어가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냥 순수하게 술을 마시러 들어가는 척해 보는 것도 시도해 볼 만했다. 깊이 심호흡을 한 레오나르도는 주머니에 카메라를 숨기고 한손에 신분증을, 반대쪽 손에 핸드폰을 들고 비장하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술집 입구를 향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문을 열자 거구의 남자 둘이 그를 의심스럽게 노려보며 시비를 걸었지만 최대한 순수하게 웃으며 술을 마시러 왔다고 신분증을 보여주자 할 수 없이 물러났다. 술 마시러 온 고객을 협박하는 건 그들을 자칫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 있기에 쉽게 비켜준 모양이다. 의외로 쉽게 들어온 레오나르도는 근처의 좌석에 자리를 잡은 후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한숨을 돌렸다. 웨이터에게 추천받은 저알콜 칵테일을 주문한 후 그는 아까 봤던 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그 입구에 무서운 인상의 남자 여럿이 서서 철저하게 출입을 막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힐끔 쳐다보자 그들은 시선을 끄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눈빛으로 보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매서운 시선을 계속 받기가 거북해서 레오는 눈을 다시 칵테일 쪽으로 돌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기사는커녕 사진 하나도 제대로 못 건질 것 같았다. 조명에 비쳐 붉은색을 띈 음료를 빨대로 휘휘 저으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번 건 무리였나 보다. 괜히 욕심냈다가 위험해진 건 아닐까 살짝 후회되기 시작했다. 마피아와 연루되면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무시무시한 일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며 그의 불안감을 점점 심화시켰다. 납치는 기본이고 인신매매, 장기 탈취까지 점점 잔혹한 장면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런 현상들은 이곳 HL에서 이미 많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결코 자신이 당하고 싶진 않았다. 이렇듯 깊은 상념에 빠진 레오나르도는 방금까지 자신이 감시하던 룸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걸어 나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남색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에 긴 흉터가 있던 남자는 경호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레오나르도의 방향으로 눈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의 레오나르도라면 이런 것 쯤은 재빨리 눈치채고 그 자리를 벗어났겠지만 지금의 그는 생각에 잠겨 주변을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가 서서히 걸어오는 사이에 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섬주섬 갈 준비를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로 그때,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강하게 잡으며 그의 움직임을 제지했다. 얼굴에 흉터가 있던 남자였다. 얼핏 보기에도 잘생긴 그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레오나르도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소년. 혹시 우리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얼굴이 꽤 낯익은데."

레오나르도는 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꼈다. 분명 남자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타고난 감이 이 사람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절대 엮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마음속으로 경보음을 마구 울려대고 있었다. 잠시 공포에 질려 말을 꺼내지 못하던 그는 애써 억지웃음을 지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아뇨, 초면인데요.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것 같아요. 저, 죄송한데 이제 가봐야 해서요... 제 어깨 좀 놔주시겠어요? " 

하지만 남자는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힘을 주며 그를 압박하듯이 말했다. 

"아니,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될 것 같은데. 난 지금 자네랑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어떤가? 술은 기꺼이 사줄 테니, 우리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 " 

그러고는 레오나르도의 귀 쪽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니, 협박했다. 

"자네가 아까 우리 룸을 계속 훔쳐봤다는데, 왜 그랬을까? 혹시 그 주머니에 있는 건 카메라인가? "

아, 망했다. 레오나르도는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이건, 변명할 여지도 없이 들켰다. 거짓말을 해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아니, 아마 안 될 것이다. 마치 얼어붙은 듯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의 몸에서 유독 남자가 잡은 어깨가 차갑게 느껴졌다.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빨리 뛰는 심장 소리가 귓속에 메아리치며 그의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공포감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못했던 레오나르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필사적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여기서 사실대로 털어놓는다면 자신은 끌려가서 실종될 게 뻔했다. 아마 헤르살렘즈 롯의 뒷골목 어딘가에서 얼굴 없는 시체로 발견되겠지.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들키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말한다면 운이 좋게도 안 걸릴 수도 있겠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레오나르도는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즉흥적인 거짓말이었다.

"아, 사진 찍는 걸 취미로 하고 있어서요. 항상 들고 다녀요. 그리고 그쪽을 쳐다본 건 우연히 시선을 돌리다가 경비원이랑 눈이 마주친 거에요. 저 이런 데 처음 와보거든요! 신기해서 구경하고 있었던 거에요."

그는 이 환경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속으로는 제발 믿어라, 제발 통해줘... 라며 울기 직전까지 긴장해 있었다. 당장 자신의 생명이 지금 이 순간의 말 한마디에 달렸다 생각하니 절로 긴장감이 생겨날 수 밖에.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의 갈색 눈에서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에 마주하는 얼빠진 실눈은 황급히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 중이지만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상대방은 이미 모든 걸 파악한 뒤였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굽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는 한참 동안 서 있던 레오를 강제로 끌어서 아까 그 자리에 앉혔다. 물론 그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도망칠 수 없도록 막았다. 웃으면서 웨이터에게 음료 두 잔을 주문한 후 다시 그를 보는 얼굴에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차가운 얼굴이 자리 잡아 있었다. 그는 몸을 레오 쪽으로 기대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한데, 혹시 소년의 카메라를 잠시 구경해도 될까? 취미로 찍는다길래, 얼마나 잘 찍었는지 보고 싶어졌거든. "

레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이미 그의 직감은 여기서 카메라를 넘겨주면 다시는 못 찾을 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돈 모아서 겨우 산 카메라였는데, 이렇게 쉽게 잃어버릴 줄은 몰랐다. 남자에게 그것을 넘겨주자 그는 전원을 켜고 사진을 넘기며 흐음- 소리를 냈다. 

"꽤 잘 찍었는데, 소년. 헤르살렘즈 로트의 풍경을 잘 담아냈어. 아 그런데, 이 소녀는 누구지? 혹시 자네 가족인가? 좀 닮은 것 같은데. 아, 혹시 여동생? "

레오나르도를 보며 묻는 그의 표정에는 먹잇감을 찾은 뱀의 것과 같은 교활한 눈빛이 번뜩였다.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태연한 표정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던 레오는 미셸라가 언급되자 움찔했다.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웃으며 변명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그의 얼굴을 살피던 남자가 그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는 것을 보고 씩 웃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색하게 굳은 얼굴을 한 레오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으면서 왜 이런 위험한 일에 관심을 가진 걸까, 소년? "

분명히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였으나 지금은 소름 끼칠 뿐이었다. 분명 무언가 대꾸를 해야 하는데 목구멍이 막힌 듯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대답이 없는 레오를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 이런 비밀스러운 일은 알거나 보는 것 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그걸 염두에 두지 않고 무작정 염탐하러 온 소년의 행동은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

협박에 가까운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날리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그는 누가 보면 그저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면 공갈과 협박이 99.999% 인 대화이지만. 

"뭐, 어느 쪽이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소년이 나를 보게 된 이상 나는 소년이 이 일을 발설하지 않을 정도로 믿음직한 사람인지 검증해 봐야 하거든. 그러려면 우리가 상당히 진실된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소년? "

남자는 눈꼬리를 휘며 그를 향해 웃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갈색 눈동자가 빛을 머금고 싸늘하게 번뜩였다. 그늘진 얼굴 위에 길게 생긴 흉터가 더욱 선명해져 그의 차가운 인상에 두려움을 더했다. 

그의 눈길을 받고 있노라면 누군가 발끝부터 서서히 자신을 얼리는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 차갑고 어두운 눈빛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위압감으로 짓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그 험악한 눈길 아래서는 꼼짝도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레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늑대 앞에 선 토끼마냥 두려움에 떨며 못 박힌 듯이 멈춰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레오는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며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도를 모색하고 있었다.    가게의 출입구는 남자가 앉은 쪽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자신과 그를 뒤에서 감시하고 있어 탈출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오가 누구인가. 그 험하다는 헤르살렘즈 롯에 처음 와서 무려 2달 동안이나 살아남은 그였다. 분명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레오는 필사적으로 고장 난 듯한 뇌를 쥐어짜 탈출 방법을 고민했다. 어떤 것이라도 남자의 관심을 끌어준다면 출구로 뛰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죽어라 달리면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술집에서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는 몸싸움이라든가, 소매치기라든가... 제발, 아무거나 좋으니까... 어서 이 사람의 시선을 집중시켜 주길..

레오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남자는 부하들에게 손짓하며 그들을 불렀다. 검은 양복들이 위협적인 기세로 점점 다가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주변을 탐색하던 그의 의안은 흰색의 작은 털 뭉치 하나를 포착했다. 흰색 음속원숭이었다. 원숭이는 남자가 한 손으로 들고 있던 그의 사진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낚아채고 반대 방향, 술집의 더 깊은 안쪽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손에 들린 물건이 사라져 남자가 당황한 그 순간, 레오는 의자에서 뛰쳐 나가 입구를 향해 달렸다. 입구를 지키던 거구의 사내 둘이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작은 체구의 레오는 쏜살같이 그들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문밖으로 내달렸다. 한참을 달린 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레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한번 쓱 뒤를 돌아본 레오는 이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벽에 기대어 쭈그려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여기까지는 못 쫓아오겠지... 하아, 진짜 아슬아슬했네. 죽을 뻔했어... " 

다시는 특종 잡겠다고 이딴 짓 하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하며 무거운 다리를 일으킨 레오나르도는 그 순간, 핑 도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누군가 망치로 한 대 친 것처럼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주저앉은 레오는 갑작스러운 두통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머리가 특별히 아프거나 한 적은 없었다. 약물 같은 걸 먹은 적도 없-

잠깐. 약물? 설마 아까- 

아까 술집에서 남자가 음료를 건네주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자신이 마셔본 음료였는데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맛을 자세히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설마 그때, 술에 약물을 탄 건가? 사실 애초에 그런 수상한 남자가 주는 술을 마시면 안 되었다. 멍청하게 그걸 받아먹고 지금 이러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며 레오나르도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점점 심해지는  두통에 골이 울리는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스쿠터를 찾아야만 했다. 일단 찾고 나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든, 추격전을 벌이든 어떻게든...

지끈거리는 머리와 함께 눈앞의 시야가 고장 난 전구마냥 깜박거렸다. 기절시키는 효과가 있는 약물이었는지, 레오나르도는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내디딘 발걸음이 무색하게 현재 그의 몸은 머리 먼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눈앞에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아스팔트를 보며 레오나르도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렇게 죽길 원치 않았는데. 이 험악한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렇게 발악을 했는데, 결국 여기서 끝인 건가... 미셸라, 미안해. 약속을 지키려 했는데, 안 될 것 같네. 미안해, 미셸라. 미셸라....

앞으로 힘없이 고꾸라지는 그의 몸을 남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받아들었다. 그 작은 몸을 들쳐업은 그는 골목에서 나와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 리무진에 올라탔다. 긴 검은색 차체는 소리 없이 도로를 달려 헤르살렘즈 롯의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낡은 스쿠터는 주인을 기다리는 채로 같은 자리에 아침까지 방치되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