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은 세상

읽기 전에: 쥘이 임판데의 아들에게 자아투영을 해서 멋대로 아들의 심리를 예측하고 그걸 이용해 자기연민을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 시대착오적 여성상에 기반한 기대, 피양육자의 애정결핍, 책임 전가와 자기합리화

당신이 내뻗는 손은 미적지근하다. 수용이 아닌 거부를, 애정이 아닌 연민을 말한다. 당신의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도 이러했을까.

불현듯 세상이 오그라든다. 살이 에일 정도의 추위.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당신이 내내 외로웠으면 좋겠어요. 내내.

나는 무엇을 원하지?

여덟 살의 로간 워커. 가엾은 로간 워커…. 동화책을 읽어주기만 해도 귀를 곧잘 기울이던 작은 아이. 쓰다듬을 때 살짝 찡그리는 얼굴 위에 자리잡은 하얀 눈은 당신을 닮았다. 고개를 돌리고 본 당신은 부러 다른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다. 그는 잠시 로간 워커가 된 상상을 한다. 자신에게 낯을 가리는 어머니와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집요정을 가족 삼지도 못한 채로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남겨진 소년. 아직 덜 자란 키의 소년에겐 복도가 크고도 높다. 내가 로간이라면 어땠을까. 일찍이 체념했겠지. 거울을 보면서 당신을 닮은 구석이 있는지 찾아봤을 거야. 어쩌면 닮았기 때문에 당신이 정을 붙이지 못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면 보이는 어머니의 초상화. 다정한 말은 해주는 법이 없고 기껏해야 쌀쌀맞은 충고 뿐이지만 그나마도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어머니의 일부라는 생각에 욕심을 냈을까. 나라면 소리질렀을 거야. 저는 사실 그렇게 조숙하지도 않아요. 집요정들처럼 맹목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요.

그냥 저 좀 사랑해 주시면 안 돼요?

아, 그래. 찾았다. 내가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

그냥 저 좀 사랑해 주시면 안 돼요?

여덟 살의 쥘 린드버그가 책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온다. 답지 않게 꽤나 진지한 얼굴이다. 어머니는 독서용 안경을 벗으며 미소를 짓고,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어린 아들을 가뿐히 들어 무릎 위에 앉힌다.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에선 장미 향이 난다.

무슨 일이니, 우리 아들?

무서운 책을 읽었어요.

무서운 책?

아이의 손에 쥐여진 책을 본 어머니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친다. 이런, 이 책은 언제 가져간 거람. 국제 마법 협력부에서 일하는 포스틴 린드버그는 머글 세계에 관련된 서적을 몇 권 지니고 있었다. 쥘은 개중에서 ‘히틀러의 딸’*이라는 아동 소설을 가져간 모양이다. 내용 자체는 별 게 없긴 하지만. 부드러운 손길로 책을 가져가 책상 위에 올려두자 아이가 머뭇거리며 그를 올려다본다. 묻고 싶은 게 있는 기색이다.

제가 커서 아주 나쁜 사람이 되면 어떡해요?

그래도 사랑하겠지.

저런 사람이 돼도요?

음, 물론 슬플 거야. 혼내기도 할 거란다.

…….

하지만 아가,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머리를 쓰다듬는 손. 쥘은 발악하고 싶어진다. 약속했잖아. 약속했잖아, 언제나 사랑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 학생 땐 언제나 철없는 아이를 보는 눈으로 내가 글을 쓰는 걸 꾸짖고 성적을 가지고 타박하고 실망하고 내가 듣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한숨 쉬고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그냥 내 글을 보고 기뻐해 주셨으면 했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내가 어디서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고 칭찬받고 싶었어요.

사랑해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너도 그게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부모님이 괜찮다고 말해주시면, 괜찮지 않다며 울고 싶어지겠고. 그분들이 너를 잊으면, 너는 더더욱 괴로워하겠지. 공허한 평화와, 직접 만든 고독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겠니.”

울고 싶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쥘 린드버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로 임판데 엥겔버트 워커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 순간 그는 쥘 린드버그이자 레티와 당신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방 밖에 선 로간 조쉬 워커고 바버라 로즈워드를 죽이겠다고 울부짖는 열일곱 살의 루드비크 칼리노프스키였으며 앨리슨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소리지르는 열한 살의 줄리아 라이네케였다.

  “……미안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해서.”

쐐기를 박는 목소리. 그는 끝내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그러면……. 그러면 말이에요, 임판데. 사랑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머니가 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된 데 어머니의 책임도 있고 전부 내 잘못만은 아니라면, 나는 대체 어디에 항소할 수 있는 거예요?”

* 1999년에 출판된 소설이나, 작내 허용으로 1960년대에 발간되어 있었다고 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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