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辨明)
: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그 까닭을 말함.
“마르티나, 내일부터 자리를 비워야겠어.”
“어째서인지 설명을 해야 할 거야. 중요한 날이니까.”
팔티잔에서 중요한 기념일과 같은 날이었다. 모두의 결의를 다지는 날이기도 하고 내년의 목표를 세우기도 하는 날이기에 작전에 항상 참여하는 그는 더욱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축 처진 눈썹과 눈꼬리로 머뭇거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의 상태가 요즘 들어 더 좋지 않다고 연락을 받았거든.”
“확실히, 곤란하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다음을 기약하면서 네 목표를 미리 들어볼까?”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를 응시하고서는 피식ㅡ,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의 미소에 고개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저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느끼면 오소소, 소름이 돋고 불쾌해 지기까지 한다.
“하하···, 목표, 목표···. 아, 그래. 마르티나랑 이렇게 팔티잔에서 많은 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해. 이왕이면 오랫동안.”
“그건···.”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라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쉽사리 말이 꺼내지지 않았다. 마치 이 말은 뱉었다간 분명히 후회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게워내듯 뱉어버릴 것 같은 말을 삼키고 또 삼킨. 잠깐의 침묵을 가진 뒤에서야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랬으면 좋겠네.”
에둘러 비슷하지만 다른 말을 내뱉고서야 불안함으로 뒤엉킨 감정이 가라앉고 헛구역질이 날 것 같은 불규칙한 숨이 아닌,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그 말이 뭐라고. 우리 사이에 뱉지 못할 말이 무엇이 있다고 이런 변명 같은 말을..
“그렇지, 아무튼 다녀올게.”
“그래, 아버지가 쾌차하시면 좋겠어.”
“그래.”
동료들과 짧은 인사를 마치고 그는 아침이 되기도 전에 떠났다. 메싱이 말하기로는 그의 모든 짐이 사라졌다고 했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리듯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고 정리되어있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그와 새해의 목표를 정하기도 전에 헤어지고 새해가 되어 서로 다른 신념과 목표를 따라 지독하게 끔찍한 악연으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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