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상실

오감상실, 레드파파, 미끄키바, 범죄표현, n금랑


금랑은 소리를 낼 수 없게 되었다.

성대의 문제라는 진단은 금방 나왔다. 심인성 증상일 가능성이 높으며 스트레스에 주의하라는 말도 들었다. 아니, 낫지 않는게 스트레스인데 어떡한담. 금랑은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성대를 떨어 만드는 울림이 아닌 숨을 뱉는 소리 따위는 낼 수 있었다. 금랑은 담담하게 스스로의 증상을 받아들였고, 짐과 리그에 보고했다. 관장의 이변을 알아야 하는 단체들이었다.

무엇보다 곧 챌린지 시즌이 개막한다. 금랑은 8번째 관장이고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는 도전자는 적지만, 그게 금랑에게 배정된 배틀을 미룰 수 있다는 뜻는 아니다. 금랑은 개회식에 챔피언 단델과의 액시비전 매치를 치뤄야 했다.

당연한 순서로 리그는 뒤집혔다. 배틀 상대를 바꿔야만 했다. 단델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짐리더를 들쑤셔 보았지만 모두는 금랑의 상태를 더 걱정했지 배틀 상대가 되고싶어 하지 않았다. 금랑은 이틀 정도 대답을 하지 않다가, 엔트리를 바꾸겠다는 통보만 내주었다. 개회식을 망칠 수는 없다. 기술을 지시할 수 없는 금랑이 챔피언의 라이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리그 위원회는 차라리 금랑이 처절하게 지는 장면을 활용하자고 결정했다.

금랑이 알리기 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금랑은 조정을 계속하느라 제대로 업로드 하지 못했던 SNS에서 폭주하고 있는 질문을 보고 조금 고민하다가, 온후한 단어를 고르고 있는 계정에 답을 주었다.

금랑님 정말로 말할 수 없게 되었나요?
ㄴ맞아! 엔트리도 전략도 조정하고 있으니까 기대해 줘~

포기하지 않는 거냐고 폭주하기 시작한 답신들을 무시하고 금랑은 귀를 기울였다. 포켓몬들의 호흡과 지면이 울리는 정도를 제대로 들어야만 한다. 말로 지시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패널티를 지니는 거지만, 금랑은 할 수 있음을 알았다. 금랑이 손가락을 튕겼다. 로톰이 곧바로 볼륨을 높였다.

일반적으로 스타디움에서 관중과 중계가 내는 소음 데시벨을 재현한 상태에서, 금랑이 혀를 똑딱이거나 손을 튕기는 소리는 코트 위의 포켓몬에게까지 닿을 수 없다. 2m에 육박하는 거구는 충분한 땅울림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금랑의 신체 조건으로 몇 번이나 전력으로 발구름을 하면 체력적인 문제가 생긴다. 지시의 텀, 금랑의 체력과 체격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시합 한 번으로 무릎이 나가버려서야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상대 트레이너마다 대처를 모두 외우게 하는 것은 포켓몬에게 무리를 강요한다. 지시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더해 포켓몬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배틀이다. 금랑은 가장 오래된 파트너들을 믿었다.

하지만 금랑 자신이 따라갈 수 없다. 가능한 피하고 싶었던 방법 외엔 난관을 넘어설 실마리가 없었다. 미적거리며 뒷순으로 미뤄왔던 대가를 치루는 것이라고 금랑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대망의 개회식 날에야 금랑을 볼 수 있게 된 야청은 등짝을 때리며 걱정했다. 금랑은 크게 휘청이다 한 번 엎어졌다. 멜론이 건넨 손을 잡고 일어난 금랑은 정말로 말 할 수 없느냐는 기자들의 외침에 검지로 입술을 꾹 눌렀다. 손가락을 떼어내며 가장 크게 소리치려 했지만 역시 바람빠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눈썹을 늘어뜨리며 어깨를 으쓱이는 모양이 생방송으로 송출되었다.

액시비전 직전까지 SNS는 물론 장내의 외침으로도 포기하라느니 다른 관장에게 양보하라느니 하는 말이 많았다. 금랑은 모두 무시했다. 할 수 있는데 왜 양보해야 하는지 금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금랑은 거부하는 대꾸 대신 늘 하던대로, 오늘이야말로 이기겠다며 셀피를 찍어 올렸다. 머스타드는 감탄했다.

첫 포켓몬은 킬가르도와 미끄래곤이었다. 금랑의 스타트는 미끄래곤일 수밖에 없었다. 볼에서 나온 미끄래곤은 관중석의 한 방향을 향해 인사했다. 금랑이 뒤늦게 제 머리를 치며 같은 쪽으로 인사했다. 단델은 눈썹을 들어올리며 킬가르도에게 초격을 지시했다.

금랑의 스마트로톰이 경기내내 그의 곁을 떠도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지만, 이번에 그 화면에 비치는 것은 데시벨 수치였다. 금랑은 틈틈히 그것을 살펴야만 했다.

뜻밖에도 경기는 금랑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 미끄래곤은 단델의 액스라이즈까지 쓰러트리고 리타이어했다. 금랑은 길게 숨을 뱉어내고 코터스를 꺼내들었다.

코터스는 곧장 회전했고 회피를 지시한 단델에 의해 둘의 포켓몬은 위치를 바꿨다. 코터스가 금랑을 정면으로 보고 행동지시를 이해할 수 있는 태세였다. 단델은 곧장 이 포지션을 이해했다. 단델은 금랑이 리그를 통해 공개한 행동지시 모션들을 읽지 않았지만, 금랑이 무슨 지시를 내릴지 순식간에 이해하며 대응했다.

단델의 드래펄트는 코터스를 쓰러트리고 모래바람을 일으킨 플라이곤을 교체시킨 다음 폭거북스에게 쓰러졌다. 단델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관중들도 확신했는데, 금랑의 패널티는, 포켓몬이 첫 기술로 반드시 자리를 교체할 수 있는 종류의 물리기로 나오게 만들었다.

일진일퇴의 상황에서 금랑은 에이스를 불러냈다. 두랄루돈은 거대코뿌리를 순식간에 쓰러트리고 교체되었다.

플라이곤이 다시 나왔을 때, 금랑은 첫 기술로 물리기를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 금랑은 로톰을 확인하고 관중석을 재빠르게 훑었다. 단델의 지시는 그 살펴봄의 시간에 튀어나왔다. 금랑의 대처는 없었다. 플라이곤이 큰 타격을 받고 뒤늦게, 금랑은 코트를 볼 수 있었다.

금랑은 이 실수를 만회할 수 없었다. 거다이맥스는 금랑을 자그맣게 보일 만큼 커다랗고, 금랑이 최선을 다해도 지시를 넘기기 힘들었다. 쓰러진 것은 두랄루돈이었다. 금랑은 두랄루돈이 쓰러지고도, 잠시간 그를 볼로 되돌릴 수 없었다. 단델의 승리가 고함처럼 외쳐지고도, 금랑은 레이저를 쏘지 않았다.

“금랑?”

금랑은 단델을 돌아보지 않고 로톰을 봤다. 말 할 수 없는 그는 로톰에게 대답을 듣기 위해 패드를 두드려야만 했다. 로톰이 무언가 빠르게 알렸고, 금랑은 두랄루돈을 볼로 되돌리고 단델에게 다가갔다.

“너 괜찮아?”

단델이 두 번 묻고 나서야 금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그가 로톰을 두 번 건드리자, 로톰은 단델에게 텍스트가 적힌 화면을 보여주었다.

[금랑의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로톰.]

어째서?

단델은 곧장 금랑을 병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금랑은 모든 대응을 끝내고서야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금랑은 인터뷰에서 천천히 말해달라는 요청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로톰이 말을 옮기고 금랑 자신도 기자들의 입술을 잘 관찰해야 했다.

SNS는 말 할 수 없음에도 그동안의 배틀에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준 금랑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금랑이 확진을 받기도 전에, 플라이곤을 다시 내보낸 때의 영상이 슬로우 클립으로 떠돌며 금랑의 청력에 대한 확신이 되었다. 금랑은 밤늦게서야 진찰결과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대정답~~~ 귀도 들리지 않게 되었어! 지시를 들을 수 없는 건 상대랑 똑같아졌으니 상관 없을까? 미끄래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건 좀 슬프네~>

귀에 대한 진단 역시 목소리와 똑같았다. 심인성 장애로 추측되며 단지 진동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금랑의 고막과 성대는 떨리지 않는다. 기능에 문제가 있거나 신경이 훼손된 것은 아니므로,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 스트레스에 주의하고 일상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대처였다.

그리고 여론은 금랑에게 관장을 관두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저 단델을 상대로 경기 도중 들리지 않게 됐음에도 크로스카운터, 말할 수 없게 된 초반에는 오히려 몰아붙였는데도 그렇다. 과연 이런 거구나. 금랑은 여론을 파악한 뒤 로톰을 허공에 던져주었다. 실컷 떠들라지, 금랑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했다.

챌린지 시즌은 대파란의 사태에 이르렀다. 금랑은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너클에 도전하는 챌린저를 차례차례 격파했다. 어떻게 상대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지시를 소리칠 수도 없는 상태로 이겨가는 것인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이전까지라면 모두 대응했을 너클 짐 리더는 문을 걸어잠궜다. 챌린저가 있을 때만 그들은 금랑을 볼 수 있었다.

금랑은 파란의 주인공과의 배틀에서 시력을 잃었다.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고 말을 건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금랑은 무릎을 꿇고 땅에 딱 붙었다. 드디어 저 금랑이 무너지는가, 떠드는 캐스트를 누가 노려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금랑은,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두랄루돈은 그에 호응했다.

금랑이 이 사태를 예측한 것은 아니었다. 단델과의 배틀에서부터 금랑은 엔트리를 교체할 수 없었다. 금랑의 지시가 몸짓언어에 가까워진 뒤, 그것을 충분한 의도로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었던 엔트리는 오래된 파트너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출했던 지시사항들이 모두 분석되고 예전의 영상까지 모두 해체당해 가장 많은 대응책이 나돌았지만, 금랑은 모두 격파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파트너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금랑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교체도 할 수 없었다. 보통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땅의 진동과 직전까지 보였던 위치, 사용하는 것 같은 기술의 타이밍과 상대 포켓몬의 전력, 자기 포켓몬의 전력, 경기장의 위치, 흙이 날리는 냄새 따위로 금랑은 레이저를 쏘았다. 두랄루돈과 플라이곤을 교체하고 금랑은 우리의 마지막 포켓몬까지 불러냈다.

그래도 졌다.

금랑은 담담한 것 같았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이 몬스터볼의 개폐스위치를 누르지 못했지만, 몇 번 더듬어 레이저를 쏘아내는 방향은 정확했다. 금랑은 로톰을 통해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배지를 건넸다. 자동수정기능은 이상한 오타를 만들었지만 로톰이 슬쩍 수정했다. 배지를 건네주는 손이 다른 방향을 향했지만, 우리는 다정하게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일련의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 금랑은 잠시 체육관을 닫았다. 쉴 때가 되었다는 여론이 많았다. 목소리를 잃고 나서 차근차근 오감을 상실하면서도 금랑의 배틀은 여전했다. 새로운 챔피언과의 배틀에서 주먹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진동을 전달했던 것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과연 단델의 라이벌이라고.

정작 그 단델은 너클 짐이 문을 닫고서도 일주일 뒤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배틀 타워가 신설되었고 그 오너로서 단델는 정말 너무 바빴다. 챌린지 기간이 아닌데도 금랑을 볼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단델이 본 뉴스의 타이틀은 너클 짐 휴관 소식도 아니었다. 금랑이 새 시대를 맞이하여 내놓은 새 시스템에 대해서였다. 너클 짐에 새로운 트레이너로 불려온 아가씨는 어여뻤고 금랑의 무릎에 안겨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단델 이전에 내게 패배를 가르쳐 준 사람이에요.]

금랑이 수화하는 걸 보며 단델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제대로 하고 있나? 아무튼, 루미는 내가 처음으로 진 트레이너에요. 고용하면서 비공식 배틀을 여러번 했는데, 내 승률이 좋진 않아요. 짐 전의 난이도 조절은 훈련을 받아야겠지만, 뛰어난 트레이너죠.]

루미는 눈을 휘어 웃으면서 금랑의 손에 뭐라고 말을 적었다. 금랑이 몸을 움츠리고 로톰을 불렀다.

[내가 지금 사투리로 수화했대요! 그냥 로톰으로 할게요. 아직 잘 모르겠네.]

여전히 금랑의 솜씨는 오타 투성이었지만, 로톰은 익숙해졌는지 오타 하나 내지 않고 금랑의 의사를 전달했다.

[루미는 뛰어났어요. 하지만 첫 뱃지 전에서 지고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갔죠.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뒤 내 로톰이 늘 데시벨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단 거 기사가 여럿 나갔다면서요? 웬만한 소음으로는 환호성 사이에서 지시를 건넬 수 없어요. 짐전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불리해요.]

금랑은- 말할 수 없거나, 들을 수 없거나, 볼 수 없거나, 걸을 수 없거나, 손을 쓸 수 없는 다양한 장애에 대응하는 배틀 시스템을 제안했다. 상당히 많은 지방의 박사들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이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장애인에게 지급될 스마트로톰의 지원에 매크로코스모스 뱅크가 나선다. 적절한 인증이 있으면 여행을 시작하는 장애인은 시스템이 이식된 스마트로톰을 통해 행동지시만으로 체육관전에서도 대응할 수 있다.

루미는 그 시스템을 사용해 보았다며 상세히 후기를 남겼다. 소통의 어려움에 있어 일반인이었던 적이 없으니 난이도가 같은지는 알 수 없다면서, 가장 난제였던 것은 금랑과 배틀할 때였다고 한다. 시스템이 미흡했던 초기에는 각자의 스마트로톰이 혼선을 일으켜 지시가 반대로 적용될 때가 많았다. 금랑은 깔깔 웃으면서 미끄래곤에게 화염대전차 지시가 넘어간 걸 나중에야 알았다며 박장대소했다.

기자는 지금 금랑이 어떻게 의사소통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금랑은 천천히 질문을 되짚어보고 파카를 걷었다. 팔뚝이 온통 붉었다.

[로톰의 전기기술에 의지하고 있어요. 정전기 수준의 스파크로 점자속기를 남겨주면 그걸 내가 해석하죠. 반응이 좀 느려요. 점자는 루미가 가르쳐줬고요. 관동의 논문은 점자로도 나와있어서 참고가 됐어요.]

금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곧 촉각도 잃을 거고 그러면 이 의사소통도 막히겠죠. 알로라의 박사님들과 에스퍼 포켓몬의 도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엔트리도 전략도 조정하고 있습니다. 단델, 배틀타워에서 기다려라!]

금랑은 새로운 시스템을 즉각 도입한 배틀타워에서 단델과 맞붙었다. 도중에 그는 촉각을 잃었고, 또 한 발자국 모자른 패배를 겪었다. 스마트로톰과의 소통수단을 잃은 금랑이 어떻게 계속 배틀했는가는 미스테리로 남았다. 금랑은 인터뷰에 대응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감각을 잃어버리자 로톰이 미끄래곤의 개폐스위치를 눌러주었고, 금랑은 남은 배틀 시간 내내 미끄래곤에게 거의 안겨있었다.

금랑은 여전히 SNS를 사용했다. 대응은 전혀 할 수 없으니 혼잣말에 가까운 것이 많았다. 처음에 금랑이 와일드 에어리어에서 셀피를 올렸을 때 야청은 기겁해서 그를 찾으러 갔었다. 미끄메라 사이에 푹 파묻혀 점액 투성이로 찍은 사진에 금랑은 힐링중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야청이 찾아냈을 때, 금랑은 비바라기로 샤워 중이었다.

금랑은 체육관을 다시 열었다. 새로운 트레이너는 대부분의 도전자를 쳐냈다. 금랑은 이따금 플라이곤이나 미끄래곤이나 두랄루돈에게 안겨 다녔는데, 어쩌면 그에겐 지금 이동 중이라는 인식이 없었을 수도 있다. 금랑은 거의 지하에 있었다. 이따금 챔피언이 찾아오면 금랑은 사무실로 챔피언을 안내했다.

금랑은 두루지벌레의 텔레파시에 의한 의사소통으로 배틀에 개입하는 시스템을 새로 내놓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배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인터넷을 달궜지만 누구도 금랑에게 소식을 전하지는 않았다. 금랑은 거의 집에 머물렀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단델과 배틀했다. 단델은 드물게 SNS에 금랑은 여전히 대단하다고 투샷을 올렸다.

금랑은 다시 배틀타워에 올랐다. 챔피언을 이겼을 때, 금랑은 미각을 완전히 상실해서, 제 입술에서 피가 나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새로운 챔피언과 배틀타워가 완전히 안정되고서, 다시금 금랑의 관장직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졌을 때, 금랑이 SNS에 두서없는 글을 남겼다.

[누구 한가한 사람 좀 와줄래?]

[내 집 아는 사람 중에 지금 한가한 사람은 없나? 지금 몇 시지? 별 일은 아닐 거 같지만]

[조만간 와타루씨가 방문한댔으니 괜찮을지도. 지금 몇 시지?]

[아 로톰이 사진을 올리면 되려나? 하지만 어떨지 모르겠어 안 좋은 장면이면 어떡하지? 한가한 사람 없어?]

[있잖아 피냄새가 나지만 그렇게 심한 건 아니지만 만약 내 포켓몬이 다친 거라면 내가 대응할 수가 없으니까]

[와줄 수 있는 사람 있어?]

[아마 괜찮을 것 같지만]

[괜찮은 것 같아 이제 피냄새도 안 나]

두서없고 빠르게 올라오던 글은 수십분 멈췄다가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으로 끝났다.

[얼라, 아닌가? 나 후각도 없나?]

제일 먼저 금랑의 자택에 찾아온 건 두송이었다. 욕실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피를 흘리는 건 금랑 본인이었다. 유리와 거울 조각이 손을 완전히 망가뜨렸지만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두송은 의료진을 부르고 포켓몬들을 금랑에게서 떨어트렸다. 미끄래곤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응급처치가 이루어지는 사이 멜론이 도착했다. 금랑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 느리게 숨을 쉬었지만 어떤 반응도 없었다. 로톰이 얘기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근처에 꼭 붙어 있었지만 손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야청이 뛰어들어온 다음 요란스레 착지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문을 빠갤듯이 밀치고 들어온 것은 붉은 상의를 입은 남자였다. 검은 머리칼에 검은 눈, 반바지와 반팔, 손가락이 드러난 장갑과 빨간 포인트의 모자, 관동의 전설은 재빠르게 의료진을 물리고 금랑을 살폈다.

“레드.”

와타루가 뒤따라왔다.

“그린이 말한대로 같아. 수치는?”
“확인되지 않아. 혈액샘플을 살펴야겠지.”
“그런 건 잘 모르는데. 팬텀!”

팬텀은 불려나오자마자 금랑의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플라이곤이 소리쳤지만 레드가 고개를 저었다.

“의사소통을 위해서야. 에스퍼 포켓몬을 데려오지 않았어. 그린은 언제 오지?”
“알로라에 들른댔어.”

난천이 코트를 벗으며 들어왔다. 멜론과 두송에게 우선 인사한 난천이 코트를 한카리아스에게 넘기며 마임맨을 꺼냈다.

“의료진이 있으니 다행이네. 혈액샘플을 좀 채취해 주시겠어요? 곧 연구자가 올 거에요. 그는 괜찮아?”

팬텀이 깔깔거리며 레드의 주위를 뛰어다녔다. 레드는 모자를 팬텀에게 씌워주며 조금 웃었다.

“아주 괜찮은 모양이야. 드래곤 타입답게 씩씩하네.”

그 말을 듣고서야 두송이 몸에서 힘을 빼냈다. 야청이 자리에 주저앉았고 멜론이 그녀를 쓰다듬었다. 레드는 품에서 작은 캡슐을 꺼내 금랑에게 먹였다. 자극을 전혀 수용할 수 없게 된 금랑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것은 고난이도의 작업이었다. 레드는 거의 포켓몬을 다루는 솜씨로 금랑을 다뤄야 했다.

“그건 뭐죠?”

멜론이 물었다. 레드는 으음, 하고 고민하다 대꾸했다.

“진정제 같은 거야. 금랑씨가 아픈 건... 성장통 같은 거라서.”
“성장통...?”

레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드래곤 타입 전문가들은 대부분 드래곤 타입만큼 튼튼하잖아. ‘닮아가는’ 모양이야. 금랑씨는- 옛날에 한 번 붙어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드래곤 타입’이고.”
“여전히 말을 못하는구나.”

난천이 한숨쉬었다. 와타루가 수습했다.

“드래곤 타입 전문가에게 흔히 있는 성장통입니다. 다만 그는 거다이맥스 개체를 다루며, 지하에 플랜트를 둔 체육관을 지키는 관장이었죠. 가라르 입자의 영향으로 과소반응을 보인 것 같습니다. 오감을 잃어가는 것은 그의 몸이 드래곤에 가까워지려는 영향 때문이고, 방금 먹인 캡슐은 그를 인간으로 고정시킬 방법이에요.”
“왜 그가 오감을 잃었던 거죠? 드래곤 타입 전문가가 비상하게 튼튼한 편이란 건 알지만, 그런 케이스는 들어본 적 없어요.”

멜론이 물어왔다. 난천이 머리를 정리하며 대꾸했다.

“포켓몬은 포켓몬이라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사람에게 포켓몬처럼 받아들이라 해도 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사고는 드래곤 타입 포켓몬의 사고력을 따라갈 수 없죠. 신체가 정신을 지키기 위해 드래곤처럼 받아들이려는 자극을 모두 차단한 거에요. 드래곤과 동일하게 세상을 느낀다면,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뇌가 타버릴 걸요.”

레드는 그린에게 연락하는 동시에 미끄래곤이 금랑을 껴안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정신차리는 기미가 보이면 침실로 데려가서 점액으로 둘러싸라는 지시에 미끄래곤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천은 마임맨을 통해 금랑의 포켓몬들에게 증상의 무거움을 확인했다. 문득 미끄래곤이 두랄루돈의 도움을 받아 급랑을 옮겼다.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단델과 챔피언이 도착했다. 그린이 오고 나서야 금랑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이 해명되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