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단금

리퀘스트


하나. 모닝콜을 해줘

금랑은 잠이 얕은 편이어서 조금만 자세를 트는 소리에도 깨곤 했다. 단델과 함께 지내는 것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단델이 야근하고 돌아와도 깨지 않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델은 경계가 심한 드래곤타입이 마음을 놓는 것에 감동하는 조련사들에 심하게 이입했었다.

주말출근만은 할 수 없다고 무리해서 일을 끝내고 왔더니 곧 동이 틀 무렵이다. 단델은 금랑의 스마트로톰에게 알람을 끄도록 지시하고 조심스레 침대에 걸터앉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긴 것 같다. 피부가 매끈했다. 호흡은 깊고 느리다. 옆으로 누워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것은 맞는 사이즈의 침대가 없었던 청소년기의 영향이다. 특주품으로 발을 뻗고도 남는 침대를 마련하고서도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다음에 꼭 우르털을 잔뜩 사서 둥지모양 쿠션을 만들어줘야지. 스마트로톰으로 찍어주면 분명 금랑은 SNS에 자랑할 것이다.

단델은 이불 안쪽으로 손을 넣어 평소보다 따뜻한 금랑의 발목을 매만졌다. 잠든 사람의 체온이라기엔 낮은 것 같았지만 냉증이 도진 금랑의 손발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생각하면 아직 양반이다. 손가락 끝으로 피부를 쓸어도 털은 하나도 걸리지 않는다. 따가운 뿌리조차 없는 매끈한 다리를 단델은 사랑했다.

“금랑.”

몸을 수그려 머리카락이 뺨에 닿으면 금랑은 푸스스 웃으며 간지럽다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준다. 단델은 그렇게 웃는 금랑을 사랑했다. 남의 손길이 닿기도 전에 퍼뜩 일어나 경계하는 남자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드는 것도, 단델은 어떻게 금랑을 사랑하지 않을지 그 방법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고, 영영 무지하기를 원했다.

단델은 금랑이 머리카락을 내리고 있을 때, 그 사이로 톡 튀어나온 금랑의 귓바퀴를 사랑했다. 얇고 모양좋은 귀는 접혀있거나 젖혀있지 않고 옆을 향해서, 반다나에 가려져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단델은 금랑의 귓바퀴에 입술을 댔다. 금랑의 어깨가 떨렸다.

“빠빠빠 빠빠 빠빠빠 빠~”

굿모닝, 하고 반복하는 소리는 금랑의 스마트로톰이 가진 알람소리였다. 금랑은 눈을 질끈 감더니 파학하고 숨을 터뜨렸다.

“으하하학하! 단델~!!”

금랑은 아직 종아리를 만지는 단델의 손을 떼지 않고 팔만 뻗어 단델을 껴안았다. 단델은 손을 떼고 금랑의 머리 옆을 짚었다. 금랑이 눈을 둥글게 휘며 단델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나 아직 안 씻었어, 금랑. 옷도 갈아입어야..”
“싫어. 나랑 자.”
“금랑..”
“낮에 혼자 자느라 외롭게 만들지 말고, 응? 나님 두 번 자고 싶고~ 응?”

투정을 부리는 일이 적은 금랑이 졸라대면 단델은 저항할 방법이 없다. 금랑이 이불을 확 젖히고 옆으로 조금 옮기더니, 여기 누우라고 손바닥으로 시트를 팡팡 내리쳤다. 단델은 웃으면서 외투만 벗어 바닥에 떨구고는 그 옆에 누워 팔을 뻗었다.

금랑은 고개를 들고 단델의 팔베개를 받는 상태가 되자 다시금 몸을 웅크렸다. 단델의 가슴팍에 고개를 처박고 긴 팔다리를 접어 안겨들면, 이게 금랑이 제일 좋아하는 자는 자세였다.

“따뜻해~”
“역시 실내온도를 더 높이자.”
“안 돼, 미끄래곤.. 건조해, 지니까.”

온기에 휩쓸렸는지 아니면 킁킁대며 맡는 단델의 냄새에 안심했는지, 금랑은 빠르게 어투가 무너지더니 금방 눈을 감고 깊게 숨을 쉬었다. 역시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단델은 금랑을 끌어안았다. 숨쉬기 불편할까봐 조심스럽고, 잠에서 깰까봐 조용한 몸짓이었다.



둘. 팬케이크 주문은 면밀하게

단델이 깼을 때 품에 금랑은 없었다. 단델은 천천히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더니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침실 문을 열었다. 달콤한 냄새가 났다. 리자몽이 콧김을 뿜으며 단델을 맞이했다. 입가에 묻은 음식의 흔적을 보자니 포켓몬들은 이미 거하게 먹은 모양이었다.

“금랑.”
“일어났어, 단델?”

금랑은 짧은 바지와 널널한 스웨터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긴 다리에 미끄래곤의 점액이 흐르고 있어 단델은 눈을 돌렸다. 포켓몬들의 식사를 챙겨주고서야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금랑의 습관이었다.

“네~ 거기 앉으시구요, 주문은?”
“5단.. 복슝열매.”
“크림은?”
“맡길게..”

금랑은 콧노래를 부르며 단델의 팬케이크를 구웠다. 복슝열매로 만드는 소스의 달콤함이 비강을 채웠다. 단델은 소다를 마시면서 겨우 금랑이 단델의 모닝콜을 따라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렇게 웃겼어?”
“두송한테 말했더니 뒤집어지더라.”

금랑의 스마트로톰이 포케스타그램을 켰다. 두송의 페이지에서 기타로 친 모닝콜이 나오고 있었다.

“너무해.”

금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단델의 투정을 무시했다. 진짜로 너무해서 한 소리는 아니지만 단델은 눈꼬리를 떨어트렸다. 입꼬리는 어쩔 수 없이 올라가서 금랑이 걱정해주진 않겠지만.

금랑은 생크림을 단단하게 올렸다. 단델의 앞에 접시가 먼저 놓이고, 크림이 바닥에 뿌려졌다. 어? 단델은 금랑의 눈치를 봤다. 팬케이크가 한 장 놓이고 제법 두껍게 크림이 발렸다. 두 장. 크림. 세 장. 크림. 네 장. 크림. 다섯 장 위에야 복슝열매 소스와 열매들을 올리고 옆에 크림을 잔뜩 짜 준다.

“맛있게 드세요?”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주었지만 단델은 뒤늦게 깨달은 제 실수에 시무룩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금랑에게 맡겼으니 투정부릴 수도 없다. 금랑은 단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남은 크림과 반죽을 섞어 제 몫을 수플레로 굽기 시작했다.

소스의 힘으로 두 장을 해치우고 나면 금랑이 손을 뻗어 접시를 빼앗아갔다. 세 장짜리 수플레 접시는 크림이 작게 두 덩이 올려져있고 복슝열매 소스가 가득 준비되어 있었는데, 금랑은 그것을 단델의 앞에 두었다.

“주문 어떻게 하기?”
“면밀하게.”
“좋아!”

단델은 함박웃음으로 수플레 팬케이크를 베어먹었다. 약간 짠맛을 가미한 것은 달콤한 소스와 부드러운 크림과 어우러져 너무 맛있었다. 금랑은 늘 단델이 가장 좋아하는 조합을 알고 있으면서, 단델에게 직접 듣고 싶어했다. 말로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얘기한다.

“금랑. 진짜 좋아해.”
“응, 나님도 내가 좋아!”

뜬금없는 고백에는 늘 얄밉게 넘기지만, 금랑은 틀림없이 애정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라 단델도 같이 웃었다.



셋. 머리카락은 나만!

금랑은 단델에게 많은 걸 양보해준다. 끔찍하게 맛없는 카레를 대령해도 엄청난 맛이라고 웃으면서 조미료를 더해 먹어준다. 단델이 리드하고 싶어하는 데이트에선 길을 잃어도 오붓한 산책같아 좋다면서 몇 시간이고 걸어준다. 왜 그렇게까지 해주냐고 물으면 늘 사랑하니까라고 대답해서, 단델은 어쩔 수 없이 금랑의 애정에 녹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금랑은 절대 자기 머리카락의 손질을 단델에게 맡기지 않는다.

“자지 마, 단델.”
“..네 손 기분 좋단 말이야.”
“고개가 움직이잖아.”

금랑이 늘 단델의 머리손질을 돕는 건 아니지만, 한가한 주말엔 가끔 머리를 감기는 것부터 말리며 케어하는 것까지 신경쓰곤 했다. 스스로 투블럭의 아래쪽을 민 다음, 자기 머리는 감는다보다 빤다가 더 어울리는 솜씨로 헹궈놓고, 얼른 수건을 감아 올려놓고는 단델의 머리카락에 몰두하는 것이다.

긴 손가락이 손톱이 닿지 않게 두피를 문지르며 마리카락을 쓸어올리면 단델은 어쩔 수 없이 나른해졌다. 힘을 주어 마사지하고 부드럽게 쓸어올리는 것이 너무 기분 좋다. 따뜻한 물로 헹궈주는 손길에는 포켓몬이 된 것만 같다.

단델이 한다면 샴푸로 끝나는 과정은 금랑의 손길 끝에서 네다섯 개의 제품을 더 사용해야 끝난다. 섬세하게 다룬 머리카락은 쥐어짜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 수건을 몇 개나 사용해 물기를 털어낸다.

“오늘 어쩔래?”

젖은 상태에서 쓰는 제품을 골고루 바른 다음 거실 소파로 이동하면 금랑은 스케줄을 묻는다. 단델도 스마트로톰을 열어 날씨나 일정을 확인한다. 금랑의 로톰은 업소용 드라이어기에 들어가 온도를 조정했다.

“음, 오늘은 와일드에리어에 소풍이라도 갈까?”
“배틀 안 하고?”
“아~ 하고 싶지만, 모처럼이니까 둘이서만 지내도.”

금랑은 콧소리를 내더니 단델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한동안 단델이 말을 걸어도 대꾸해주지 않는다. 와일드에리어의 날씨나 무언가 다른 마을의 이벤트를 찾아보아도 마땅한 것은 없었다.

금랑은 반쯤 말린 머리에 또 무언가를 바른 다음 빗을 동원하여 말리기 시작했다. 단델은 길게 하품했다.

“바우마을에 가자.”
“야청? 약속 있었어?”
“아니. 티켓은 구해놨거든. 야청이랑 아킬이 비공식 배틀을 할 거야.”
“몰랐어!”
“비공식이니까.”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배틀은 아니었다. 야청과 아킬은 일방적인 라이벌 선언과 두 사람의 캐릭터성 덕분에, 단델과 금랑에 버금가는 라이벌전으로 흥을 돋구곤 했다. 대개 그쪽은 야청의 일방적인 연패행진 중이었지만.

“저녁엔 스파이크야. 두송의 공연이 있거든.”
“몰랐어!”
“음악에 관심 있으면 그 모닝콜은 안 나오지~!”

금랑은 또 웃음이 터졌는지 깔깔거리며 단델의 머리카락을 높이 묶어주었다. 이건 틀림없이 단델이 오늘 옷장을 열 수도 없는 기미였다.



마지막. 아주 많이 키스해

아킬과 야청의 시합은 굉장했다. 야청은 이번에야말로 벼르고 있었는지 기술배치를 조정해 왔다. 쾌청과 비바라기를 오가는 날씨변화에 금랑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야청은 불리함을 전부 상쇄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마지막 한 마리까지 서로를 몰아갔다.

“굉장했지~ 라이벌전~!”
“정말로! 굉장하구나, 아킬도, 야청도! 흥분했어!”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조정된 기술배치와 전략에 대해 떠들기를 한참, 금랑이 슬쩍 단델을 이끌어 빠져나왔다. 야청은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했다.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제스쳐가 커진 단델을 금랑은 눈부신 듯 보고 있었는데, 단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이 곱게 휘어 접히고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 차 보는 것은 누가 봐도 연인을 향한 것이었고, 단델이 직시하면 곧장 얼굴을 붉히며 손을 마주잡아올 것이다. 금랑은 단델이 눈치채기 전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식사는 스파이크 쪽에서 하자. 와인이 맛있는 스테이크 집을 알아.”
“오, 난 좋아!”
“그래, 그래. 진정해, 오너님.”

금랑은 단델의 머리를 헤집어주면서 아머까오 택시를 불렀다. 두 사람의 사이즈를 생각하면, 큰 객실을 가진 택시의 배정까지는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금랑.”

정오가 지난 햇살의 따사로움 아래에서 금랑의 눈을 보면, 단델은 어떤 충동에 시달리곤 한다. 저 오묘한 파랑의 가장 오래된 이름이라는 터쿼이즈로 금랑의 눈을 지칭하면, 마치 너클 시티의 유구한 역사와 그 산증인인 보물고를 지키는 금랑 자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챔피언의 왕관을 지켜온 용처럼.

“왜? 단,”

단델은 앞꿈치로 발을 디뎌 금랑의 눈가에 입맞췄다. 금랑이 말을 삼키고 멈춰서서 눈을 살풋이 내려감는 순간을 좋아한다. 금랑이 온순하게 고개를 내려 단델에게 허락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잘 조련된 용처럼 구는 것을, 단델에게 허락은 필요치 않단 것처럼 내어주는 것을. 단델은 눈가에, 광대뼈의 위에, 안와골을 따라서, 콧등에 키스의 비를 내렸다.

콧잔등에 키스하고 입술을 쪼아먹듯이 굴면 금랑은 푸스스 웃음을 흘린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모양을 사랑한다. 아주 조금 혀를 내어 잠깐만 이어진 다음에 떨어지면, 금랑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단델, 뭐야 갑자기.”
“아니, 야청의 시합을 보고 났더니, 네 눈이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었어.”
“아하하.”

금랑은 유쾌하게 웃더니 스마트로톰을 띄우고 단델과 어깨동무를 한 다음 사진을 찍었다. 금랑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남기곤 했으므로, 단델은 자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여겼다.

아머까오 택시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델의 스마트로톰이 울렸다. 금랑은 SNS를 만지는 것 같아 단델도 스마트로톰을 손에 쥐었다.

[금랑> 오늘의 미션 성공 축하드립니다~]
[금랑> 돌발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단델은 YES의 스탬프를 보냈다.

[금랑> 오늘 밤 포켓몬들은 볼에서 재우자]

단델이 돌아보면 금랑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늘 금랑은 반다나를 하지 않았고, 단델은 금랑의 귓바퀴를 아주 사랑했다. 그게 빨갛게 문든 순간에는 참을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금랑.”
“응.”

금랑은 꿋꿋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단델은 웃으면서 앞을 보고 금랑의 손을 꼭 잡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바닥에 손가락을 얹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검지가 은밀하게 손금을 따라 움직이자, 금랑이 손을 퍼들이며 떨었다.

“와인 너무 많이 마시지 말자.”
“...응.”

미지근하고 안온하게 사랑을 나누는 날들을, 단델도 금랑도 충분히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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