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감정을 이루는 원소들을 답하여라.

0707 당신과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

드림 조각글 가내수공업

내가 닿지 못한 세계의 모든 것들만큼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

안녕하신가요. 격조하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어느새 쌓여 모래시계처럼 뒤집힐 정도가 되었네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 글을 씁니다. 이름도, 존재도 알 수 없는 이들에게는 여러 번의 긴 편지를 보냈지만 당신에게 쓰는 것은 처음이지요. 어쩌면 이 한 글자들이 모여 당신에게 고하는 나의 감정을 들킬까 두려워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서야 고해하는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겠지요. 내가 알기 전부터, 그리고 이 감정이 탄생하려 태내에서 발버둥치기 전부터도.

어쩌면 영원히 말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단언했습니다. 영원히 눈보라가 칠 나에게 봄이라는 것은 끝이고 엔딩이며 죽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나를 천천히 녹여갔습니다. 새하얗게 물들였던 만물을 제각각의 색으로 물들이고 차갑게 얼어있던 모든 감정들을 일깨웠습니다. 그것이 미웠습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당신을 만나 나를 천천히 마지막 장으로 이끄는 것이. 당신이 내 손을 잡아 데려가는지, 당신의 손에서 달아나기 위해 내가 스스로 뛰고 있는지.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모두에게 그랬듯이 친절하게 대해줬을 뿐이고 나는 그 일순간의 감정에 넘어가 분에 넘치는 꿈을 꾸었으니까요. 나를 멍청하다고 나무라도 좋습니다. 주제도 모른다며 처벌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죄책감이어.


평생 모른척 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 그럼에도 너는 나를 배려하고자 했는지 뒤돌아서는 모른 척 해줬더랬지. 당신의 따뜻함과 상냥함에 영원토록 눈이 내리던 행성에는 언제부턴가 천천히 눈이 녹고 봄이 오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늘 차갑고 어두운 무저갱에 빠져 그저 가라앉는 것 밖에는 못 할 것이라 단언했는데. 이 마음의 이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차갑고 애정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가벼우니 나는 이것을 죄책감이라 고하기로 했다. 죄책감의 봄은 그렇게 천천히 찾아왔다.

진흙에 파묻혀 그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여 춤추고 비명을 지르듯 노래한다. 내 심장을 꺼내 바치고 나면 내 손에 묻은 피들이 덮어질 것만 같아서 수도 없이 마음 속에서 나를 죽여왔다. 그 수가 더이상 기억나지 않을 때 쯤 네가 나에게 찾아왔다.

나의 별. 항성. 나를 비추는 이정표. 그리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 나는 당신에게서 비롯되었고 당신의 감정으로부터 태어났으니 어찌 당신을 미워할 수 있을까. 아무리 뒤를 돌고 눈을 가려도 그 빛이 나에게 닿는 순간 나는 끝끝내 봄을 맞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릴테니. 내가 녹아 나의 존재조차 없어진다 해도 그 온기만큼은 잊어버릴 수 없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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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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