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망치기
너와는 질기고 질긴 악연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피를 나눴다는 이유로 널 떼어내지 못 한다는 것이 끝없이 비참하다. 너는 그 특유의 성격과 천재성으로 예전부터 나를 상처 입혔고, 네 주변을 괴롭혔다. 허나, 그건 네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발언이 다른 누군가에겐 심장에 강하게 내리꽂히는 화살이 된다는 걸 알지 못 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그러나 타인이 느끼기엔 악의적인 행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과도한 고통을 받은 나는 너에게서 마음을 닫고 거리를 두었다. 나 혼자만이라도 도망쳤다. 겨우 기워놓았으나 아직도 너덜너덜한 속을 다시 백만 갈래로 찢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마치 잔뜩 움츠러든 소동물처럼 슬쩍 다가오고는 안 될 것 같으면 알아서 저 멀리로 도망갔다. 나는 그 간격이 불편하면서도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5분의 차이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심리적 거리는 별과 별의의 거리만큼 벌어져 있었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널 밀쳐낸 결과였다.
오늘은 로젤리아의 레슨이 없는 날이었고 너는 아침부터 스케줄을 나간 듯 했다. 어제까지 스튜디오에서 맞춰 보았던 부분을 연습하다 휴식을 취할 겸 거실로 나와 티비를 틀었다. 우연찮게도 네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띄워졌다. 자신들의 색과 맞춘 듯 화사한 옷을 입은 5명이 동물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동물원’이 들어가는 어떤 말을 했었는데. 자세히 듣지 않았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왠지 기운이 빠진 널 거실에 내버려두고 방에 들어온 것만이 자꾸만 떠올라 괜스레 소파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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