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디드림

부재중전화

2015. 2. 15 / 원피스 - 상디 드림

* 현대물

과음을 하고 들어와서 그런지 속이 아팠다.어제 무슨 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더라. 최근에 야근이 너무 많아서 지쳤던 터라 토요일이라고 술이나 한잔 하자던 친구들의 권유에 알겠다며 약속장소에 나갔었다.

“일은 할만 해?”

“아주 죽을 맛이야.”

“뭐, 어쩔 수 없지.”

졸업을 하고 나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익숙하기만 했다. 그래서 분위기에 취했던 건지 안 취했다면서 멀쩡히 버스에 탔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내린 기억이 전혀 없다.

“…어떻게 집에 왔지.”

드문드문 이어지는 기억에, 어쨌든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것은 알아차렸다.버스를 탄 기억은 있는데 내린 기억은 없고, 엘리베이터를 탄 기억은 없는데 엘리베이터에 탔다는 기억은 있고, 현관문을 연 기억은 없는데 방에 들어온 기억은 있다.

“앞으로 술 마시지 말아야지….”

그러고 보면 옷도 어제 입은 그대로다. 대박, 화장도 안 지우고 잤어.내팽개친 가방을 올려놓고 씻고 나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냉수를 마시고 나니 한 숨 더 자기도 뭐했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배터리가 나간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충전기에 꼽았다.

“뭐, 아무한테도 연락…어, 라…?”

전화모양의 아이콘 옆에 떠있는 숫자들이, 다시 화면을 봐도 숫자가 바뀌지가 않는다. 얼른 통화내역을 보면….

“헐, 대박.”

다시는 술 마시지 말아야지. 절대로. 아니 마셔도 이렇게 필름 끊길 정도로 마시진 말아야지. 대박, 나 술 먹고 이상한 말 한건 아니지? 제발 그래라! 왜 전화한 기억이 없지? 나 술 마시고 진상 부린 거 아냐?

“침착해, 일단 진정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 가장 상단에 있던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난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 저…, 상디 군?”

- “네, 이제 일어났어요?”

“…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야, 필름 끊겼으면 끝까지 기억이 나지 말던가, 아님 빨리 기억이 나던가. 왜 목소리 듣자마자 생각나! 잊어! 제발 잊어!

“…저 때문에 못 주무신 건 아니죠?”

- “네, 그 뒤에 잤어요.”

“그, 어…, 죄송해요.”

- “아뇨, 괜찮아요.”

드문드문 끊겨있던 기억 사이가 서서히 채워지면서, 내가 진상처럼 전화를 걸어댔구나. 그리고 버스에서 내린 후에 (내가 잘못 눌러서) 전화가 끊기고…. 그대로 다시 전화를 걸어야한다는 생각은 못하고 울리는 데도 못 느끼고 집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속 편하게 잤구나. 이 사람한테 걱정을 끼쳐놓고….

- “무사히 잘 들어가서 잔 것 같으니깐 다행이에요.”

“네…, 너무 과음 했나봐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미쳤어! 대박! 돌았니?! 전화통화중이 아니었으면 벌써 침대에서 몇 번이고 허공에 발을 찼을 것만 같아서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괜찮으시면, 같이 점심 드실래요?”

“어…, 제가, 그 방금 일어나서….”

- “과음 했으면 속 아플 거 아니에요. 걱정 끼쳐놓고 얼굴도 안 보여줄 거 아니죠?”

“아, 어…, 네. 준비하고 갈게요.”

전화를 끊자마자 허공에 발길질을 할 틈도 없이 얼른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아무리 그래도 화장도 안 할 수는 없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데! 무엇보다 너무 미안해서 얼굴 볼 생각도 못했는데, 으아아아아!! 

“일단 사과부터 하자.”

그의 가게에 도착하자 인기 있는 가게답게 손님이 제법 많았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 직원이 아니라 그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자리로 나를 에스코트하는 그의 행동에 내색은 하지 못해도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지난 밤엔 죄송했어요.”

“아뇨, 솔직히 연락해줘서 기분은 좋았어요.”

“…네?”

“물론 중간에 끊겨서 상당히 놀랐지만요. 술에 취해서 저한테 전화 걸 정도면 제가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를 쳐다보자, 그가 미소를 머금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서 그저 눈만 깜빡이고 있자 그가 말을 이어나간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 때 나한테 전화해요. 당신의 전화라면 언제든지 받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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