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acks, no.900 (1)
설사 다시는 태양이 뜨지 않게 되더라도 별의 시간은 변함없이 앞으로 흐른다.
하여 역사는 관찰자의 시선 아래 과거가, 현재가, 미래가 된다. 그 적막한 기록의 틈에 소장된, 죽은 별이 남기고 간 작은 기계인형 역시 자신의 역할이 있다.
지독한 정체에 빠진 별은 흐름이 멎어 고이다 끝내 빙점을 넘은 물처럼 얼어붙었다. 생명은 더 이상 순환하지 않게 되어 땅은 황폐해지고 물질은 병들었다. 천년의 시간을 들여 이룩한 눈부신 문명과 기술이 있다 자랑한들 별의 침묵 아래에서는 고작 초대 황제가 이룩한 백여년짜리 제국과 다를 바 없었다. 새롭게 그어진 부조리가 지독할수록 옛 부조리의 막대들은 다른 길이임을 잃는다. 공평하게 그들은 삶의 부조리에 내던져졌다.
불완전한 존재들은 그 늪에서 공멸을 바라는 것처럼 싸웠다. 아아, 이것은 좋지 않아. 세상을 지켜야 해. 누군가 그리 탄식했던가? 마음의 불씨를 잃지 않은 존재들은 미약한 빛을 모아 나아간다.
그 발버둥이 정작 그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불씨는 끝내 열화처럼 타올라…사라졌다. 이 별이 모르는 세상으로.
거기까지 200년이 걸렸다. 남겨진 등불들이 꺼지지 않음을 본 고요한 관망자는 적극적 개입자로의 결정을 내렸다. 별 바깥에서 온 거대한 존재는 그 자체로 도시이자 방벽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탑이 사라져버린 모르도나의 빈 터에서 깨진 돌 틈을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던 둥근 기계인형을 주웠다. 완전히 망가진 자동 인형의 몸체를 열었더니 깨끗하게 보존된 노란 깃털이 들어있다. 그 작은 짐승이 수명을 다 하였던 때를 생각하면.. 대단히 놀라운 상태였으나 대기에 노출된 이상 곧 흩어질 것 같아 표본으로 굳혀 보관하기로 했다. 고장 난 회로를 교체하고 더 이상 방전되지 않을 전원으로 교체해 기동시킨 이후, 기계인형은 아주 오랫동안 그 깃털 곁에 머물러 침묵했다.
희망의 곁에는 언제나 절망이 함께인 법이다. 선의 역시 악의가 곁에 있어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듯이 모든 상대적 개념은 바람만큼의 좌절이 동반되어야 하는 필연을 가졌다.
아득히 긴 시간이 지났고 용의 신체 위에 건설된 도시의 인간들이 새로운 평화의 성력을 선포할 무렵, 한때 한 사람을 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희망은…딱 그만큼의 절망이 되어 사람의 도시를 번영시켰다. 하나의 도시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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