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그
전력 주제 : 편지 (엽서) 연리지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나무들 스티븐은 마크와 한 몸을 공유하게 되면서 이전의 관행을 버리기로 했다. 숨어다니는 또 다른 인격이 그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기에 여전히 발목에 가죽 수갑을 차고, 침대 아래에 모래를 뿌리고, 현관문에 테이프를 붙이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으나 평범
전력 주제 : 금붕어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늑함을 유지하는 이부자리와 켜켜이 쌓인 책들, 언제 변할지 몰라 관심을 주기에 적절한 영국의 날씨, 대도시에서의 삶이라는 흔한 표현.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 듣는 이도 없는데 나직하게 중얼거린 스티븐은 어릴 적부터 배를 차갑게 해선 안 된다던 어머니의 말을 따라 여
밀워키에서 보낸 추수감사절은 꽤 즐거웠다. 아끼는 헌팅캡을 쓰고, 잘 보관한 가죽장갑을 끼고, 블레이저 위에 코트를 걸치고, 목도리를 두르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전날 자란 수염을 깎지 않으면 충분히 청년으로 보였다. 목요일, 혹시나 도망칠 경우를 대비해 근처의 길을 익히기 위해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금요일, 콘슈와 그
약국에서 사무보조일을 마친 토요일. 제이크는 서둘러서 돌아와 집 정리를 했다. 만일을 위해서, 라며 후견인이 주었던 총기류는 물론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으로 보일 만한 것들은 다 치웠다. 그러고는 스티븐을 위해 여분의 담요도 꺼내놓았다. 약속했던 여섯 시가 다 되어가자 제이크는 과연 스티븐이 마크를 잘 달래고 올지 궁금했다. 어쩌면 마크가 영악하게도
스티븐은 순진하고 착한 녀석이다. 치안에 대해 오르내리는 지역에서 낯선 자신과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개미 구경을 했을 때처럼 기본적으로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모른다. 그 역할은 마크가 다 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스티븐의 태도가 워낙 무던하기에 제이크는 그를 스티비라는 유치한 애칭으로 부를 만큼 놀리고 귀여워하며 형제처럼 대했다. 마크에게는 그렇게
Bruised Fruit 멍든 과일 알 카포네가 한때 시카고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시카고 사람이면 모를 수가 없더랬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겐 흔적을 지워야 할 역사였으나 '일부' 시민들에겐 자랑스러운 사실이 되기도 했다. 시카고는 겉으로 보기엔 번쩍거리며 미시간 호수를 곁에 두고 있는 아름다운 대도시였지만 여느 도시가 다 그렇듯 빛이 들지 않는 곳도
스티븐은 어머니의 집에서 떨어진 동네에서 혼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 그의 자취방에서 입을 옷이나 양말 등을 가지고 왔다. 검은색 계열의 옷가지가 많은 건 마크의 취향과 다를 게 없어 보였으나, 요상한 패턴의 셔츠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패션 감각이 영 형편없다는 스티븐의 주장에 납득한다. 마크 자신도 옷 입는 감각이 없어서 옷장을
어머니의 집으로 가는 길에 스티븐은 오히려 아버지가 없는 편이 낫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 빨리 꺼져줘서 오히려 고마운데." "나도 아빠를 봐도 기쁘다는 생각은 없었거든. 마크 너는 안 그래.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마크는 싱긋 웃으며 피곤할 스티븐의 손에서 가방을 들어 주었다. 삼십 년 만에 만났다고 스티븐의 입은 멈출 줄을
이상하게도 초조함이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별생각이 없던 마크는 시카고에서 런던으로 이어진 여덟 시간의 비행을 마친 뒤, 인파와 함께 우르르 몰려오는 긴장감에 정신을 다잡으려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아마 시차와 낯선 환경에 심장이 놀라서 날뛰는 걸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가슴속을 진정시키려고 코로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뱉는다. 이방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