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글

연리지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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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주제 : 편지 (엽서)

연리지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나무들

스티븐은 마크와 한 몸을 공유하게 되면서 이전의 관행을 버리기로 했다. 숨어다니는 또 다른 인격이 그들과 어울릴 생각이 없기에 여전히 발목에 가죽 수갑을 차고, 침대 아래에 모래를 뿌리고, 현관문에 테이프를 붙이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으나 평범한 삶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의 외로운 인생을 지탱하게 해준, 엄마라고 여겨온 불필요한 존재를 지우기 위해 마음의 정리부터 시작했다. 본인도 만들어진 존재인데 머릿속에서 또 엄마를 만든 것에 대해 한탄하고 당시에 감당할 수 없던 진실에 눈물을 보였다. 거울 속의 마크는 오른손을 들어 스티븐이 흘린 눈물을 닦아주고 왼쪽 팔뚝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살아 돌아온 날 이후부터 담아두고 있던 감정들이 해소됨을 느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혼자가 아니니까.

엄마가 물려주었다고 생각한 집을 마크가 마련해준 보금자리로 여기고 생일선물로 받았다고 착각한 책들에선 내리사랑이 느껴지지 않고 한낱 도서로만 생각했다. 밖에서도 통화하는 척을 하거나 휴대전화의 메모 기능을 이용하여 마크와 대화를 나눴다. 관행을 하나둘씩 버린 스티븐은 막 둥지에서 벗어난 새끼 새와 같았으나 그렇기에 둥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이건 풍경이 예쁘지만, 볼수록 비참해지니까 다 버릴래."

금붕어들이 헤엄치는 어항을 비롯해 벽면 곳곳에까지 붙은 엽서들을 보며 스티븐이 말했다. 유리면에 비치는 마크도 굳이 무엇이 비참해질지 묻지 않고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다. 스티븐은 그동안 마크가 써서 보내준 엽서들을 한 장씩 떼어내며 테이프 자국이 남은 곳을 검지로 문지른다. 원래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데 버릴 일만 있다.

"역시 있다가 없으니 허전하긴 하네."

스티븐이 집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새 엽서라도 사려고?"

"다른 걸 붙여 볼까?"

"어릴 적 내 방에는 <스타워즈>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 생각해보니 음반을 사고 덤으로 받은 록밴드 포스터도 있긴 했네. 방문에는 동생이 스티커들을 덕지덕지 붙였고."

스티븐은 기억 속에서 헤매다 들어갔던 마크의 방을 떠올렸으나 왜곡된 기억 속의 본인 방은 어땠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덧칠된 기억의 칠을 긁어내자 정말로 머릿속에서 잊혀져가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 큰 것들을 붙일 공간이 없겠는걸."

마크가 농담처럼 말했다.

확실히, 자잘한 것들만 버린 데다 온통 플랫을 차지한 책장들 때문에 무언가를 붙여 추억이나 애정을 간직할 수가 없다. 가짜였긴 하지만 엄마의 흔적이 치워지니 주위에 마크 말곤 아무도 없다는 고립감마저 느껴진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스티븐은 그렇게 말하며 푸른빛을 내는 어항으로 다가섰다. 마주 보는 마크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뭐냐고 묻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엽서를 써주는 거야! 그걸 붙여둘래."

"그게… 좋다고?"

"지금은 친한 사람이 마크 너밖에 없으니까 그러고 싶어."

"어……."

마크는 잠깐 입을 닫았다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라일라한테도 받을 거지? 왠지 나만 쓰면 부끄러워서."

"우와, 그러면 좋겠다."

스티븐의 대답에 마크는 어림도 없는 소리, 라며 한 손을 들어 코끝을 세게 꼬집었다. 스티븐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코를 문질렀다.

"장난이야. 라일라도 좋아할 거야."

"아무튼 써주는 거다? 나 진심이야."

"그러지, 뭐."

그리하여 스티븐은 한가할 적에 거리로 나가 엽서 두 장을 산 다음 대로변의 카페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주문하고, 셔츠 윗주머니에 꽂았던 펜을 손에 들고 뭐라 쓸지를 고민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걸. 차를 한 모금 마신 스티븐은 혹시나 마크가 보고 있을까 봐 자기로 된 찻잔을 손에 든 채 얼굴을 비춰본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도 반사면은 스티븐의 얼굴만이 보였다.

마크가 흉내 냈던 엄마의 엽서엔 다양한 풍경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어딜 여행 중이라든가(마크가 콘슈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가 있던 곳이었다), 언젠간 우리 아들과 함께 와보고 싶다든가 하는 상투적인 말들이 적혀 있었다. 적적한 곳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가 한 제안이었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창피하다. 그래서 첫인사는 마크를 따라 하기로 한다. 사랑하는 마크에게.

"뭘 이리 거창하게 썼어? 글자도 작아서 엄청 빽빽하네."

며칠 후, 마크가 우편함에 꽂혀있던 엽서를 뒤집으며 말했다.

"진심을 담아서 쓴 거였다구."

긴말이 적힌 엽서를 다시 읽는데 혀가 멋대로 움직였다. 스티븐이 말한 것이다.

"근데 어쩌냐. 배달되다가 비를 맞아서 자국이 남았네."

마크는 피식 웃으며 테이프를 조금씩 뜯은 다음 붙이고 싶은 곳에 엽서를 붙였다. 금붕어들이 뛰노는 어항 한쪽 면에 스티븐이 보낸 엽서가 삐뚤하지 않은 각도로 붙여졌다. 어항의 반사면에서 스티븐은 괜찮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니까."

"그렇지."

"넌 언제 보내줄 거야?"

스티븐의 물음에 마크는 어항에 비치는 똑같은 얼굴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쓰고 싶을 때."

"그것도 좋아. 서프라이즈잖아."

스티븐이 두 손을 가슴께에 올려둔 것을 본 마크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외출했다가 돌아오는데 우편함에 무언가가 꽂혀있는 걸 보았다. 마크가 집으려하는데 스티븐이 손의 주도권을 차지해 잽싼 손짓으로 먼저 집어 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마크는 몸의 주도권을 스티븐에게 넘겨주었다. 모르는 새에 마크가 써서 보낸 엽서를 읽은 스티븐은 웃으면서 어항으로 다가가 마크가 엽서를 붙인 면의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엽서를 붙였다.

그 모습을 본 마크는 이러면 반대쪽에서 엽서 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스티븐은 어차피 똑같은 그림이니 상관없지 않냐고 말했다. 중요한 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니까.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하자 마크도 웃었다.

사랑하는 마크에게.

네 덕분에 태어난 세상은 재밌는 일이 많아. 잠시 우리의 운명이 휘둘리긴 했어도 서로를 믿어서 다행이야. 이 기구한 인생도 함께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계속 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 엽서 그림의 연리지 나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에 감사하며. 스티븐

네가 내게서 눈을 떴을 땐 너만 행복하길 바랐었지. 이제 같이 눈을 감을 때까지 우린 행복하기만 할 거야.

너의 친구 마크

"음… 다시 읽어봐도 마크 네가 쓴 거 너무 비장해."

"하고 싶은 말을 쓰라며? 이제 죽을 때까지 같이 살 테니 행복해야 좋지."

"좀 돌려서 말해주지……."

"그걸 쓴 나는 더 부끄럽거든…."

"그나저나 이건 누가 보낸 걸까?"

"엽서야? 광고지인 줄 알았는데."

"스페인어로 적혀있는 걸 보니 잘못 온 건가…? 그치만 받는사람 란에 우리 이름이 적혀 있어."

"스티븐! 우리가 한 몸인 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

"아……! 그럼 대체 누가―“

마크와 스티븐에게.

너희들의 행복한 삶에 나도 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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