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산들바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나! 위대한 세계수시여!”
한참을 기쁨에 재잘거리던 목소리는 쉬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여즉 짐도 풀어놓지 않은 채 창과 대검과, 손에 쥔 목동 지팡이와, 다른 손에 안아든 어린 양과 팔꿈치에 건 여행 가방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혼잣말하는 청년의 발걸음이 이리저리 노닌다. 굵고 단단한 뿌리 위를 거닐었다가, 이슬에 젖었던 풀밭 위를 내딛다가. 맑고도 서늘한 공기를 있는 힘껏 들이마셨다가, 종종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부산을 떠는 것이라면 부산을 떠는 것이겠고 제 감정을 주체 못하는 것이라면 감정을 주체 못하는 것이리라. 젊은이의 혈기라면 혈기겠고 순수한 티를 내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겠지.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낯선 대지를 돌아보던 이는 어느새 바닥에 탈싹 주저앉는다. 갑작스런 움직임이 불만스러웠던 것인가, 목에 녹색 리본을 단 아기 양이 매애애 하고 울었다.
“놀랐니, 피피? 하지만 이제는 나도 다리가 다소 아프구나. 게다가 더 정신없이 굴다가는 다른 분들께 폐를 끼칠 것 같은걸.”
그러니 이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이 땅을 느껴보자, 따위의 소리를 하며 청년이 눈을 감는다. 이내 조금은 서툴고도 순수한 마력이 앉은 이 주변을 맴돌았다. 바람—여리고도 부드러운 산들바람이었다.
너그러운 공기의 흐름이 발목부터 시작해 허리를 휘감았고, 굽이치는 붉은 머리카락을 흩뜨려 놓는다. 어느새 그것은 마력의 주인을 넘어 대기와 대지와 거대한 나무를 노닐었다. 진녹색 치맛자락에서 뛰어나온 양은 그 바람이 익숙하다는 것처럼 작은 울음소리를 내며 바람에 떠다니는 이파리를 좇으려 폴짝대었으며…….
“어마나.”
작은 감탄이 그 뒤를 따랐다. 눈을 감은 채 한껏 제 마력에 집중해 있던 목동이 풀빛 눈동자를 드러낸다. 얕지 않은 집중에서 그를 끄집어낸 것은 마력에 반응한 듯 바람을 따라 헤엄치던 요정의 기척이었다.
자, 이쯤에서 당신은 다소 긴장했을 수도 있겠다. 이 시끄럽고도 혈기 넘치는 젊은 청년이 세계수의 거주민에게 어떤 청각적 폭발을 선사할지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린 목동은 그 낯에 활짝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지극히 차분하고도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하, 이곳의 거주민이시군요? 만나서 반갑답니다. 저는 알레이 에버그린, 푸른들판의 알레이어요.”
“운이 좋아 최초의 대지에 발을 딛을 수 있게 된 목동이지요. 제 마력이 마음에 드셨다면, 함께 춤을 춰 보시지 않겠어요?”
키가 훌쩍 큰 이 청년이 사크라 테라에 도착한 내내 반쯤 희열에 취해 있던 것을 고려해 보자면, 이쪽이 진정한 그의 성격일런지도 모르겠군. 어투는 다정하고, 내민 손은 상냥하며, 짓는 미소가 순수하다. 격식 차린 영주 일족의 권유보다는 갓 상경한 촌자의 겁없는 부탁에 가까웠다.
프라툼 아분단티아의 학자들은 흔히 삶을 춤으로 비유하곤 했지. 그렇다면 이 수줍은 요청이야말로 많은 것을 내포하지 않겠는가?
최초의 대지에서 숨 쉬는 이여, 앳된 목동의 청을 들어줄 셈인가. 그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기꺼이 마법을 부려볼 마음이 있는가.
그리하면 이 서툰 마력이 조금은 유려해질지도 모르지.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그러나 이런 까닭이 아니어도 분명 즐거울 테다.
분명, 즐거울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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