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웃음을 지키게 되었는가

자캐s by 등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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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사라가 중령 일 때의 일이었다. 중령은 그렇게 낮지도, 높지도 않은 직위였지만 제 목소리를 낼 정도는 되었고,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재량껏 작전을 수정하는 정도는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젊은 나이에 빠르게 치고 올라와 서른이 되기도 전에 중령이 된 사라는 제법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강해지기 위해 하는 훈련, 정의의 이름아래에 쓰러지는 해적들, 도움을 받은 민간인들의 환호성. 그 모든 것들이 사라에게는 달콤했다. 믿음직한 동기들과 동료들이 함께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 비록 간혹가다 내려오는 명령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상관의 설명은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약간의 어그러짐은 그저 머리 한켠에 묻어두고 털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복잡함 보다는 단순명료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게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 어그러짐이 쌓이고 쌓여 작은 충격에 쏟아져 내릴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터였다.

    어느날 내려온 하나의 명령이 있었다. 도망자들이 마을을 꾸려 살고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일군 사람들은 모두 범죄자이자 도망자들이었고, 사라와 그녀의 동료들은 평소와 같이 군함에 올랐다.

    마을에는 현상금이 꽤나 높은 이들도 있었기에 정찰조가 마을을 탐색하기 위해 먼저 상륙했다. 사라의 동기이자 동료였던 말리에르는 그 정찰조를 이끌었고, 그들이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토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라는 말리에르를 믿었다.

펑- 펑-

    마을에는 포격이 쏟아지고, 해군들은 칼을 뺴들고 저항하는 주민들을 죽이고, 제압해 나갔다. 사라는 그 해군무리의 선두에 있었다. 전투의 가장 가운데, 앞과 뒤 모두 적과 아군이 뒤엉킨 그곳에 있었다.

    범죄자들이 많다 한들, 현역에서 날뛰던 시절이 지났으니 해군에 비할바가 못 됐다. 전투는 치열했으나 해군측이 우세 했고, 곧이어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도망쳤다.

    사라는 도망자들을 쫓았다. 어수선해진 해군측을 말리에르가 정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숲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도망자들을 잡아오고를 반복하던 중, 절벽이 있어야 할 위치에 해변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 작은 배 한척과 말리에르가 있었다.

부시럭-

“...에르?”

    떠나는 배를 보며 손을 흔들던 말리에르가 놀라서 사라를 돌라봤다. 말리에르는 전투가 끝나고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치료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너.. 여기서 뭐하는거냐?”

    질문은 말리에르를 향해 나갔지만 사라의 시선은 작은 배를 쫓았다. 어린 아이들과 아직 열다섯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배에서 말리에르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마을에서의 전투중에 아이를 본 적이 있었던가?

    순간 사라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범죄자들과 도망자들이 마을을 일궜다면, 분명 그들의 아이들도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도망자도 아니었다. 그래도 명령은 마을의 소탕이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것이 사라가 쭉 생각해온 것이었다. 부모의 죄를 그들의 아이에게 덧씌울수는 없다. 그렇지만, 저들이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분명 저 아이들은 토벌에 휩쓸렸을 것이다.

“그래. 내가 쟤들을 빼냈어.”

    말리에르는 담담하게 말했다. 치료하지 않은 상처가 조금 힘겨운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사라는 조금 혼란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마을의 아이들인거지?”

“그래.. 정찰을 갔을때, 웃으며 놀고있는 아이들을 봤어. 아이들에겐 죄가 없잖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말리에르는 힘겹게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럼에도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멀어지는 작은 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라, 나 피곤해. 나 잘거니까 좀 안아줘”

    배는 이제 꽤나 멀어져 있었지만, 사라는 아이들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지만 평소처럼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사라는 그거면 된거라고 생각을 하며 말리에르를 안아들었다. 그녀는 이미 곤히 잠들어있었다. 사라는 군함으로 돌아가기 위해 뒤를 돌았고, 뒤이은 폭음에 얼어붙었다.

펑- 쾅-

    작은 배가 가라앉았다.

    고개를 돌린 사라의 눈에 침몰하는 돛대가 보였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이 잔상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탈출하려는 잔당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이었다. 지금 바다에 뛰어든다면 아이들 중 적어도 몇은 구할 수 있을까? 사라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충돌하고 이지러졌다.

“으음.. 사라..?”

    굉음에 살짝 잠이 깬 말리에르가 사라의 품에서 뒤척였다.

“... 쉬- 에르 괜찮아. 잔당들 처리하느라 조금 시끄러웠을 뿐이야.”

    작게 말리에르를 다독인 사라는 그녀에게 해군 코트를 덮어주고 사뿐히 내려놓았다. 말리에르는 몇번 뒤척이다 그대로 잠들었고, 사라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누구 먼저? 가장 위험한 아이? 아니면 가장 살 수 있을 만한 아이? 나이가 어린 아이? 아니면 많은 아이?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사라는 빠르게 침몰하는 배에 도착했다. 가장 수면과 가까이 있던 아이들부터 부서진 선체 조각에 매달릴 수 있게 건졌다. 그리고 구해진 아이들중 몇몇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이들을 건지는 것을 멈췄다. 여전히 깊게 가라앉고 있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이미 바다의 품에 안긴 아이들이었다.

    말리에르를 깨웠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사라로서는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아이들을 육지로 이끌었다. 일주일간 이 해변 근처 숲에서 숨어있으라고, 큰 배가 떠나는 것을 발견하면 마을로 돌아가도 된다고 당부했다.

    사라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했지만, 어느부분에서부터 사과를 해야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사라의 손을, 생존한 아이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꼬옥 잡았다.

“고... 마워요..”

    아이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고, 눈물은 뺨을 가로질렀지만 아이는 웃고 있었다. 그것이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을 넘겨서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라도 아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사라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말리에르를 안고 마을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소탕을 끝낸 동료들이 그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사라는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며 말리에르를 군의관에게 넘겼고, 잔당을 소탕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상관으로부터 귀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는 나흘이 걸렸다. 말리에르와 사라는 안도했고, 해군은 철수 했다. 그렇게 소탕 작전은 끝이났고, 사라의 고민도 끝이났다.

사라는 해적을 잡기 위해 해군이 된 것이 아니었다. 고통받는 민간인들을 위해 해군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정의를 새롭게 새겨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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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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