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언제 죽을 지 몰라 써본 유서
가장 어릴 때 기억은 유치원을 막 들어갔을 때 긴장을 하면 배앓이를 하는 습관 때문에 아침마다 엄마가 나를 안고 유치원 버스가 올 때까지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러주셨던 기억이 난다. 장난도 많이 치고 사고도 많이 쳤지만 억울하게 혼났던 기억이 아직 많다. 하지만 그건 엄마도 아직 너무 어리셨고 육아가 처음이시다 보니 감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맞벌이를 하시면서 두 딸을 키우셔야 했던 부모님 매일 새벽마다 일을 나가시고 밤늦게 들어오시던 아빠 홀로 문구사를 운영하며 홀로 아이 둘을 키웠던 엄마 나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 같은 일이다.
우리 집은 적게 벌고 적게 쓰자 라는 생활습관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생일날에는 케이크, 크리스마스날에는 선물 등 해줘야 할 것,
남들이 하는 것은 어떻게 서든 해주셨다. 하지만 늘 돈문제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계속 지켜볼 때마다 나는 참는 법을 먼저 배웠고 언니의 등록금 때문에 자주 싸우시던 그 시절 나는 절대 대학을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7살에 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가 초반에 적응을 못하고 자퇴를 생각했을 때 좋은 타이밍에 친구들이 다가와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지만 남들보다는 빨리 성장하고 싶었던 나는 대회를 준비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수업대신 학창 시절의 절반을 계속 대회준비만 했었다.
그것 또한 추억이고 경험이지만 고등학교 때 반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못 쌓은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빨리 돈을 벌고 싶은 욕심에 19살에 취업을 했고 그렇게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창 시절까지 나는 사회에서 보냈다. 빨리 돈을 벌어 독립해 부모님이 돈으로 힘들어하시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길 바랬고 못난 언니보다 잘났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버스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같이 퇴근을 할 때는 왜 그리 속상한지 내가 선택한 일인데 그냥 뭔가 울컥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그래도 돈을 버는 건 중요했다. 한 달에 100만 원씩 적금을 들면서 언니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부모님의 속만 썩이고 그 비싼 등록금으로 대학을 나온 뒤 취업도 안 하고 알바만 하며 징징거리는 언니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관심은 늘 언니에게 먼저 가있었고 언니가 고등학생 때는 중요시기여서 관심을 받고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서 기숙사 생활로 또 관심을 받고 졸업 후 취준생, 공무원준비생으로 모든 관심은 다 언니에게 갔다. 애정이던, 분노, 잔소리 등 나보다 늘 언니에게 가있는 것이 미웠다. 첫 취업 후 축하보다는 사실 집에서는 언니가 취업준비생으로 예민한 시기라고 티 내는 걸 조심스러워해야 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리 속상한지 난 알아서 취업도 잘하고 대학문제로 속도 안 썩이고 건강하고 몸무게 관리도 열심히 했는데
그냥 늘 언니가 아픈 손가락이라고 부르셨던 부모님은 날 그저 지켜봐 주시기만 했다. 그게 좋을 때도 있었지만 사실 외로움이 컸다. 이 집에 있으려면 나는 쓸모 있어야 하고 돈이 많이 들면 안 되고 욕심부리면 안 된다. 이 생각은 계속 쌓여갔다.
20살이 되던 해 사회생활에 지친 나는 잦은 회식, 저질스러운 술자리 문화에 너무 지쳤고 그러면서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회식참여에 자주 빠졌더니 내가 없는 단톡방이 생기면서 사적인 이야기로 대화에 낄 수 없었고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도 많이 받으며 외적인 부분도 많이 지적했다. 이 악물고 1년 넘게 버텼지만 도저히 출근하다가 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적금도 만기 되고 퇴직금도 받아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계획을 세우다가 대학이 생각나 늦지 않았다면 가고 싶다 생각했다. 내가 번 돈도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능시험도 안 보고 수시도 놓쳤던 내 고등학교 성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몇 개 없었다. 그때 한번 후회란 걸 해보면서 인생이 망한 거 아닐까 생각했었다. 무슨 대학 안 간다고 인생이 망한다고 지금 생각해도 좀 많이 어렸다. 7월에 퇴사해 수시 1차를 놓쳐 추가 모집 2차를 지원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내가 지원한 학과에 고등학교 친구들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안정도 왔고 같이 입학하게 된 친구도 있어 혼자 다니진 않겠구나 안심했다. 하지만 또 찾아온 부모님과의 마찰 돈 문제로는 속상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등록금은 내가 지불하고 한 달마다 용돈을 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가 큰 소동이 일어났다. “돈 욕심이 왜 이리 많냐 “, ”니 돈쓰기 아깝냐 “, ”이기적인 년“ 모든 말로 상처를 주셨던 엄마 그때 엄마도 속상했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그냥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응석을 받고 싶었고 용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녀보고 싶었고 그냥 언니처럼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날 아빠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주며 대학 합격한 걸 축하한다고 해줬지만 그냥 내 방에 올라가 대학합격증을 찢어 버렸다. 그때는 엄마가 너무 미웠고 실망했었다. 나는 왜 언니보다 잘했는데 나에게만 아까워하시는지 억울했다. 내가 돈을 안 벌고 자식으로 있어 쓸모가 없어진 걸까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해 등록금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렸다. 내가 열심히 번 돈을 등록금으로 전부 쓰고 싶지 않았다. 수업, 과제, 시험 나름 열심히 하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연애도 친구도 많이 사귀면서 해보고 싶은 건 전부 해본 것 같다. 연애도 해보고 누군가에게 사랑도 받아보고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날 좋아해 주면 그냥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자존감을 채워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나를 못 믿는데 누굴 믿을 수 있었을까 의심은 커지고 결국 의심이 현실이 돼해보고 싶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그러고 미친 듯이 또 학교생활에 집중하다가 새로운 인연이 오고 순조롭게 취업에도 성공했다. 내가 제일 같이 일해보고 싶었던 기능대회를 같이 준비했던 고등학교 선배가 취업제의를 주시면서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내게 가장 힘든 경험이었다.
20대 젊은 직원, 텃세가 심한 문화 사내 왕따 등 내 첫 회사 보다 더 심했고 팀 내부에서도 상사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아 힘들었다. 능력 없는 과장, 이기적인 직속상사 대리 나를 부하처럼 부려먹으며 나를 위하는 척 늘 뒤에서 내 욕을 하고 정치질을 하며 업무에 지장을 줬었다. 1년을 버티는 게 지옥 같았고 운전을 하며 출근을 할 때 누가 내차를 사고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컸다. 사람에 모든 게 지친 나는 결국 퇴사를 하고 대학 2년을 채워 서울로 취직하자 맘을 먹었다. 사실 나는 너무 쉽게 내가 포기해 버린 모든 것들을 후회했다.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성급하게 도망쳤을까 늘 생각하면서 다시는 도망치지 말자 버티자 하는 맘으로 대학에 다시 돌아가 야간대학을 다니며, 낮에는 직장일, 밤에는 야간대학, 새벽에는 외주 등 내가 쉽게 포기했던 모든 것을 만회하기 위해 1년을 죽어라 살아봤다 그러면서 내가 해보고 싶은 취미 배우고 그때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본 시기가 아닐까 지금도 생각이 든다. 나도 할 수 있구나를 스스로에게 증명하며 힘들어도 버텼다. 이렇게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보면 열심히 살았구나 계속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늘 쫒기 듯 살았지만 그건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에 혼자 올라와 취업한 지 벌써 8개월을 넘어간다. 혼자 살 수 있을까 서울에서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름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몆 달 전만 해도 생전 처음 느껴보는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 잠도 못 자고 도망갈 곳도 없고 살아야 할 이유조차 계속 못 찾았었다. 그냥 먼저 떠나버린 친척 동생이 대단해 보였고 나는 그런 용기조차 없다는 걸 알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었다. 약도 먹어보고 상담도 조금 받았지만 사실 근본적인 내 어릴 때 부 터의 생각을 한 번에 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게 많이 외로웠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계속 스스로 망치는 기분도 들면서 난 뭐가 문제일까 쓸모없는 사람인가 또 우물만 팠다 그래서 몸이라도 힘들면 괜찮을까 하고 회사에 집중했지만 아무리 야근을 해도 나아질 기미는 없었고 그저 아프기만 했다. 혼자 있는데 아플 때 그냥 뭐 별거겠어 다들 이러고 사는 거지 하며 스스로를 안 챙긴 것에 벌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입맛도 떨어지고 이참에 다이어트도 해보자 하고 살도 빼며 다행히 평생 안 될 것 같은 몸무게 숫자에 가까워지고 그나마 몸을 보며 스트레스를 줄였다. 사실 아직 많이 외로운 것 같은데 이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보니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목표를 만들었다. 내 가족을 만들자 사람은 못 믿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가족을 만들기로 했다.
어떤 아이와 내 평생을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금전적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1년 동안 열심히 준비할 예정이다. 내 한 몸 못 챙기는 나를 챙기게 만들어줄 가족 내가 아프면 안 되는 나랑 같이 살 내 가족 이목표로 1년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돈을 열심히 벌고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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