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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 당신의 푸른 장미가 지는데

에스마일>핀갈

너는 왜 그렇게 혼자서

너는 왜 그렇게 용감하고

너는 왜 그렇게 아름다워서

나는 왜 이렇게 남겨져

나는 왜 이렇게 비겁하게

나는 왜 이렇게 무너지는지

-뮤지컬 최후진술, <캄포 데이 피오리>

“...핀갈, 저는, 많이 두려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송했을 때, 있잖아요. 당신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제 기억이 곧 사라질 거라는, 이 모든 문제에 관해서도 아직 몰랐을 텐데, 쥘이 준 돈으로 여관에 가서 짧게 일기 같은 걸 썼더라고요. 어딘가 남겨 놓고 싶었는지. 정말로, 너무 무서웠다고... 옆에 세실이 같이 있었는데 세실도 무서워 보였고, 그 안이 전부 조용했어요. 사실 그 안의 아무도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차마 도망칠 수는 없어서, 그건 제가, 우리가 선택한 길이었고, 우리가 선택한 결말이었으니까… 그래서 제가 뭐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 제가 있다고, 듣고 있냐고 아주 많은 사람한테 묻고 싶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많이 들었더라고요. 별 상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이건 그런 이야기다. 당신이 들어 주면 좋겠지만 듣지 않아도 괜찮은.)

당신이 제 친구고, 저를 산보다도 큰 폭풍우와 거대 크라켄 스무 마리에게서 구해준 그런 은인이라는 것과 동시에 아주 많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도살자라는 건, 마왕의 개, 인면어, 혹은 그보다 더 나쁜 명칭으로 불렸고 불린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어요. 당신께 무언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할 때도, 당신께 제 파수꾼을 부탁할 때도 알았고, 제가 당신의 손에 묻은 피의 색깔을 잊었다고 해서 제가 제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당신이 사람이라고 말하려면 부정할 바가 없는 악인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제가 동정할 이유가 없고, 동정할 필요도 없고, 제가 사랑한 동료들의 핏값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겠죠. 정의를 행해야겠죠. 그 모든 원념과 세월을,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당신은 그에 적합한 인간이라는 건 알아요. 죄와 죽음에 대한, 당신이 제게 원하는 바에 대한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가끔 주저하는 도살자라는 건, 게다가 저에게는 아주 많이 주저하던 도살자라는 건, 최소한 저에게는 의미를 가졌어요. 만약 당신이 누르가 죽을 때 거기 있었다면, 우리 둘 다 기적처럼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는 건-비록 당신이 그 과정에서 적잖은 희생을 입어야 했겠지만-제가 이따금 불가능한 세계를, 그애가 아직까지도 살아서… 같이 나이가 들고,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어쩌면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줄 또다른 조카가 생기는 미래를 그리는 이유가 되게 했습니다. 꼭 저와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을 본 것은 아니에요. 당신은 늘 약자에게 다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존중했고, 어둠의 마법을 일관성 있게 배척했고, 어떤 상황에서든 이기심이나 비열함이나 탐욕 같은 것은 보인 적 없이 스스로 정한 규범과 도리를 진실하게 지키려 했고-

하지만 저 또한 결국 주저하는 살인자였는걸요. 물론 규모에서나, 정당성에서나, 방식에서나, 어떤 면에서든 당신과 등치시키려 하는 것은 모욕적일 정도의 비약이겠지만, 만일 모르간 로즈웰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깨닫고 저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면, 저는 저의 이유가 있으니 그것을 방어할 수 있을지언정 그애를 설득하려 들어서는 안 되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설득하려 들지 않았으리라는 자신은 없습니다. 그 아이가 저를 쓰러트렸을 때, 어떤 비겁한 방식이라도, 심지어 울면서 무릎을 꿇고 빌어서라도 살고 싶다고 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요. 저는 제가 연약하고 무결해서 사는 게 아니니까. 제 연약함은 자주 제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되게 했지만, 그냥 그래도, 그래도 죽는 건 무서웠으니까. 사랑받고 싶고, 살고 싶었으니까...

물에 빠졌을 땐 헤엄을 치라고 당신이 가르쳐 주셨고, 저는 뭐든지 한번 하면 끝까지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저는 당신을 보면서도 당신이 주시지 못하는 걸 원하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서 아주 추한 발악을 원하고,아주 뻔뻔한 자기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게 지금, 호크룩스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죽음 혹은 아즈카반이 저에게만큼 당신에게도 가능한 운명으로 보이는 지금, 당신을 발버둥치게 만들 수 있다면...

... 하지만 그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죠. 저도 알아요. 당신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다른 무엇보다도 강한 긍지와 자존심이 있고, 생사가 갈리는 상황에서도 명징한 합리에 따라 움직이는, 제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라, 그게 누구든 패배할 만한 상대고 상황이라면 기쁘게 패배하실 사람이니까. 어쩌면 당신은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셨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때는 당신도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셨지만 그게 제가 잊은 시간들 속에 남겨져 버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기쁘게 하니까- 그리고 그게 옳으니까, 저는 최선을 다해 당신과 맞설게요. 그게 당신이 보기에는 여전히 미련이 가득해 보인다면, 망설이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아마 사실이겠지만, 그건 제가 당신이 악하지 않다고, 당신을 적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믿어서가 아니에요. 그게 제 최선인 거에요.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저는… 당신을 패배시킨 승리자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에요. 당신은 저의 승리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당신을 끝내 돕지 못한 세상의 일부로… 당신의 군락을 죽이고, 당신을 배제하고, 혐오하고, 수치를 주고 끝내는 죽여버린 세상의 일부로 저 자신을 기억할 겁니다. 그게 제가 우리를 기억하는 방식일 거에요. 당신은 저의 슬픔으로 저와 함께 갈 겁니다. 만일 저희가 승리한다면….

왜냐면 핀갈. 당신은... 제가 아는 누구보다도, 기사가 되었어야 했어요.“

(이것은 당신의 별을 빼앗지 못하리라고 그는 믿는다. 사실, 빼앗더라도 도리는 없다. 이것은 그가 살아남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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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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