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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ring our vintage misery(no, i think it looked a little better on me)

에스마일>프러드

트리거/소재 주의: 죽음/자살 관련 사고 외 다수. 전반적으로 캐릭터의 사고방식이 불건강합니다… 마지막에 뭔가 변화했는데 좀 완화된 건지 더 불건강해진 건지 오너도 현재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둘 다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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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가

나의 모습처럼 난

흑연과 강철의 괴물이니까

외로운 괴로운 발걸음은

넌 없어도 되니까 없어야 하니까

이젠 가 날 두고 떠나가

너는 빛을 담는 요람이니까

-LUCY,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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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둠 속에서 빛을 가장 갈망하게 되므로. 배신당할 때에서야 신뢰가 존재했음을 가장 잘 체감하고는 한다. 그는 당신의 표정이 묘해지는 것을 본다. 더는 수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또다시, 벽력처럼 세상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데쟈뷰가 스친다. 열일곱 살 할로윈의 이야기를, 당신의 안전과 그의 안정을 위해 더는 연락하지 말자 체결했던, 우리 사이의 오래된 계약을 지금 어째서 꺼내는가. 하지만 당신이 그를 붙잡았고 그래서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당신에게 돌아왔던, 그 학년말과 작년 초겨울의 이야기를 어째서. 당신이 아니면 누가 그런 마음을 지킵니까? 안 돼, 제발.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제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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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세상은 이미 무너지지 않았나? 그는 순간 가빠지던 숨을 진정시킨다. 천성적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주위의 수많은 이들에게서 “모방”해 낸 다정하고 조금 자애롭기까지 한 미소를 짓는다. 손을 뻗어 당신의 울음을 달래고, 당신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고개를 저으려 한다. 얼마나 안도했는지 높게 웃음을 터트릴 뻔한다.

그는 더 이상 단원이 아니니까. 당연히도, 불사조 기사단이 있어야 기사단원도 있는 것이니. 죽음을 먹는 자들의 적이 될 필요가 없다. 그 협력자들의 경계 대상이 될 필요가 없고, 어느 쪽도 아니지만 멀리 서서 그를 염려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앞에서 애쓸 필요가 없다. …당신에게는 더더욱, 어떤 것도 안 될 말이다. 그는 당신으로 인해 자신이 지난 일 년여를 살아남았음을 이해했고, 그 과정에서 당신이 마모되었음을 눈치챘고, 결국엔 정당화해내지 못한 살업의 행렬이 동시에 자신을 조금 더 천천히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독약의 달콤함을 기억하며 쓰디쓴 뒷맛은 잊는다. 결국에는 그들이 패배했으니까. 그는 그 대가를 치렀고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으니까.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을(못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의 마음 같은 문제는, 그의 가족을 죽이고 동지들을 죽이고 고문하고 아즈카반에 보냈으며 그 자신의 혀를 자른 이들과 당신이 한 패가 될 것이라는 문제 같은 것은 사소하다.

그래서 레아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악의를 보여주었을 때 그랬듯이.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다고. 당신을 용서한다고, 혹은 사실 미안해할 것조차도 없다고 말하려 한다. 당신은 그에게 상냥했으니까. 쥘이 첫 번째 팜플렛을 썼을 때 그랬듯이, 힐데가 나는 너와 싸울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랬듯이 그는 한 번도 붙잡지 않는다. 그가 당신을 붙잡거나 설득하려 하면 당신은 그것을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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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늘 도망치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다. 사실은 당신들이 무섭다고 말하면, 이해가 가지 않고 실망스럽고 이따금은 정말로… 정말로 증오스럽다고 하면. 당신들은 상처받을 것이고, 실제로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파편에는 이따금 그렇게 상처받았고. 충분히 반복되면 분명 당신들을 잃을 것이라.

그저 결국에는… … 결국에는. 그가 당신들보다 물러서, 당신들이 그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그가 당신들을 훨씬 더 필요로 했을 뿐이고, 그것은 언제나 의심할 바 없는 세상의 진리였다. 그렇지 않으면 왜 결국엔 모두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되거나 그 방관자가 되고, 함께 싸우기를 거부하고, 세상은 왜 그를 죽이게 될 쪽으로 계속해서 굴러가겠는가? 유감은 없다. 다만 받아들일 뿐이다.

(곁에 있을 자격이라니. 마치 그가 존재하는 것조차 당신들의 자비에 의한 것이 아닌 것처럼.)

얼굴 없는 적들 사이에서 똑같이 얼굴을 감추고 목숨을 걸면서, 정작 옆에 있는 오래 알아왔던 사람들이 그를 거부하는 것은 무서워서, 그는 말했었다. 기사단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개인보다 커지는 것이라고. 그는 그것을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며, 익숙한 위험과 죽음 사이를 걷고, 그렇게 하며 죄책감도 불안감도 느끼지 않되… 그것으로 인해 미움받는다면, 기사단을 나가지 않는 이상은 정말로 조금도 그가 어찌할 바는 없게 되는 편리한 방책이다. 그리하여 기사단은 동시에 그의 분노이고 우울이며 동시에 타협이고 수용이었고.

그는 민중이 기사단을 구원하리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죽지 않게 도와 달라 요구하지 않았다. 사실 당신들은 전부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부 듣고 있었다. 그래서 아파하고 있었고. 어쩌면 분노하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모른 채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교훈을 또다시 망각한다. 그것이 “괜찮지 않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변화하라 요구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갸냘픈 부탁이나 애원과는 다른 것이다.)

당신은 자신을 포함해 에스마일 시프 주변의 모든 사람이 몸만은 살아달라 요구하는 일에 대해 어리석다고 생각하나,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말했으니까. 죽음에 대해 당신들에게 말한다면 슬퍼할 것을 알아, 그의 재에서 당신이 눈을 돌려야 할 것을 알아 위험을 모르는 척 하거나 혹은 들킨다면 괜찮은 척 했다. 살아남을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둘 모두의 연기에 실패해 자주 울고 두려워하며 아파했다. 그래도,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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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깨달은 것은, 뒤에 남겨두는 것이 너무 많다.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사실 누르는 그를 구하고 싶어했다. 사실 줄리아는 결국 저주를 그칠 수 있었다. 사실은, 레아는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헨도 세실도 각자의 대의에 몸바치느라 개인을 “볼 수 없는” 이들은 아니었다. 핀갈 모레이였던 인면어마저, 쥘 린드버그마저, 그가 사랑했으나 그 대가로 사랑받는 줄 몰랐던 모든 이들이 그에게 죽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가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를 거부해, 보지 못하고 있었던 모든 것들이.

아. 당신들은 나를 친애하는구나. 최소한… 최소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을 만큼은.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할 수도 있을 만큼. 그 이상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 걸려고 하는 것은 어차피 거기까지이니, 그는 그 면전에 자신을 내던진다. 이미 한참 전부터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으나 그 혼자서 그것을 숨기고 부정하려 했던. 가장 마지막 판돈이다.

그는 불사조 기사단일 것이다. 그 이름이 패자들이자 반역자들의 것인 한. 그 이름이 사람이 죽을 이유가 되는 한. 어쩌면 후회하게 될 자비로, 그가 여전히 마법 세계를 반쪽의 자유로 거니는 한. 바라는 대로 스스로의 고통을 숨기지 않으면서. 그 아래에서 조용히 소란하게. 그는 펜을 쥔다. 첫마디를 써내린다.

“프러드 허니컷. 당신은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느릿느릿 고백한다. 그는 결국 더 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이제 어떡할 거냐”고 수많은 이들이 물을 때 그는 그것을 떠올렸음을. 당신이 지켜야만 그가 살아남을 비밀이다. (그 밖에는 더 앗을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이제 세상은 그 정도로 어두우니까.)

“그리고 저는 끝까지, 몇 번이고, 요구할 겁니다. 당신의 햇빛 속의 삶을, 자연스러운 논리와 절차를 따라 겨우 얻어낸 입지를 포기하라고. 당신은 오만하고, 어리석고, 비열하다고 비난할 거에요. 프러드. 저는 당신을 놓지 않을 거니까, 당신을 믿기를 멈추지 않을 거니까, 만약 당신이 그것을 바란다면 제 곁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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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성자는 되지 못할 사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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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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