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2. 퇴마사는 등산을 한다


율은 그의 등을 보며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인간의 세계가 아닌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푸른소매는 귀연산 깊은 곳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오르고, 오르고, 오른다. 귀연산이 이렇게 높은 산일리가 없었다. 성혜가 알려준 대로라면, 푸른소매가 거주하는 곳은 원래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귀연산의 정상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은, 체감상으로 정상을 훨씬 넘어 계속해서 오르고 있기만 한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산에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힘든가?”

앞서 간 요괴가 그렇게 말했다. 율은 뒤에서 헉헉대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높이 올려다 보아 그 푸른소매를 보았다.

소매가 길고, 푸르다. 정확히는 하늘색에 가까웠다. 뒷모습으로는 푸른색 꼬리 두 개가 살랑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푹신해보였다.

“아, 아뇨…. 흐억…….”

“…힘들어 보이는데.”

“그러면, 조금만, 쉬었다가…….”

“곧 도착이야.”

꼭 등산 잘하는 사람들이 저런 반응이지! 율은 이상하게 분했다. 이렇게나 높게 올라왔는데도, 저 앞에 있는 사람은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마치 기만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요괴라지만, 좀 속도 좀 맞춰주면 안 되는 거냐고…!’

그는 언덕 위에서 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다리에 근육통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만 올라가면 된다니까! 굳게 마음을 먹고 발을 위로 올렸다.

──시야가 넓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길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작게 난 오솔길이 있었다. 푸른소매는, 평탄해진 지형을 보고서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평소 걷는 길이기라도 한 듯 오솔길 쪽으로 빠졌다. 결국 걷는 게 끝나진 않았다.

율은 오솔길을 따라 갔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몇 분을 걸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은열은 뒤를 돌아보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서와, 인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율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반면 율은 푸른소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한옥이 있었다. 자신의 집, 문화재 말고 이런 집은 거의 처음이었다. 커다란 대문 위에 한자로 창파관(蒼派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열린 대문 너머로 사랑채 마당이 보였다.

으리으리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조선식 건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곳이….

“여기가 푸른소매의 집, 창파관.”

그가 입을 열자, 율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푸른소매’라고 불리우는 요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짐작했겠지만 내가, 푸른소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불러주었으면 해.”

그리고 ‘푸른소매’는 율에게 손을 내밀었다. 율이 이해하기로는 그 손동작은 악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이렇게 인사한다지? 내 이름은… 은열. 은열이야.”

율은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 요괴가 나에게 자기소개를 한 건가?

그것도 아주 멀쩡한 방법으로? 상식적인 범주 내에서?

게다가 인간의 방식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율을 급습했다. 요괴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웃고 있다. 잠시 뒤, 그들은 율을 이용해서….

“다, 다가오지 마!”

———은열은 그 말을 듣고, 멈추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 버리고 말았다. 율은 그것을 깨닫고 놀랐다. 내가 이렇게나 무서워한다고? 요괴를? 정말로?

“진정해.”

그를 가라앉힌 건 다름아닌 요괴의 목소리였다. 아까 자신을 구해준, 신비로운 남자.

“난 널 잡아먹은 게 아니라 인사를 한 거야. …자.”

악수를 요청하는 손짓이 한번 더 흔들렸다. 율은 그 손짓이 당장 이 손을 받으라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 네, 죄송….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어, 일단은….”

그는 상당히 당황했다. 처음 보는 사람(요괴?)에게 소리를 빽 질러버린 것도 모자라, 상대가 차분하게 그를 응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열의 손을 보자니, 율의 귓속에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악수를 하지 않으면 난 평생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위하는 것 같았다.

“마,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퇴마사 율이에요. 우선은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귀신을 만나서 놀라가지고 말이에요. 원래는~! 그냥 퇴마해버리는 데 말이죠. 하하!”

율은 그렇게 말한 다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성혜는 율에게 ‘푸른소매의 상태를 확인해라’라는 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율은 일단 원연화가의 일원이었고, 힘을 봉인당한 요괴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 지 알고 있었다.

“들으신 적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최성혜의 대타로 오게 되었습니다. 푸른소매 님의 상태를 점검하고, 또….”

힘이 잘 봉인되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인간계에서 허튼 짓을 하지는 않으려는지 몇 주 동안은 길게 감시해야 한다. 그 주변의 요괴들은 어떤지 봐야 한다.

성혜가 시킨 일과, 가문의 가르침을 들은 대로 익힌 지식, 그리고 자신이 순간마다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혼자 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때 은열이 입을 열었다.

“은열이라고 불러.”

“아, 넵.”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다소 강압적인 말투처럼 느껴졌다. 역시 요괴는 요괴인 것 같았다.

“요괴들은 인간 퇴마사를 그렇게 반기지 않아. 인간들도 칼을 든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잖아. 그거랑 비슷해.”

은열의 말은 조곤조곤하고, 논리적이어서 묘하게 빠져드는 구석이 있었다. 말이 빠르지 않아서 귀담아 들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일단은, 스승님이 인간 손님은 모두 반기라고 했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율을 지나쳐 대문을 넘어갔다.

“요괴의 손님으로 초대받는 게 싫으면 지금 돌아가도 좋아. 네 전 퇴마사도 그렇게 했으니까.”

요괴의 손님.

율은 그 말을 듣고서 잠시 멈추었다.

은열에게 사람으로서의 호의를 느낀 그는, 순간 거리감을 느꼈다. 가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요괴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웃기지 마시지. 그것은 율의 안쪽에 있는, 자신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가 고뇌하거나 말거나, 은열은 계속해서 똑같은 어조로 말했다.

“성혜는 나와 계약관계 비슷한 걸 맺었었지. 서로 할 일만 하고, 그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너도 그런 쪽에 속하는 건가?”

율은 한 걸음 물러나 그를 보았다.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눈이, 이제는 조금 경계를 띄었다. 성혜가 이번 한 번만 보라고 한 건지, 아니면 앞으로도 자신이 은열을 주기적으로 찾아 와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태도를 잘 정해야 한다.

은열은 그런 그를 빤히, 고요하게 쳐다 볼 뿐이었다.

“일단은 그런 쪽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네요!”

율은 큰소리를 쳤다.

“저도 요괴의 일에 깊게 간섭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일단은 저도 성혜 ㅅ…. 아니, 성혜 씨랑 비슷하게 필요한 절차만 밟을 예정이에요. 피차 그게 편하지 않겠어요? 저는 은열 씨가 최근에 인간을 해하지 않은 것 역시 알고 있고, 현재까지 힘의 봉인을 풀 시도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알고 있으니까요.”

분에 맞지 않게 허세를 부렸다. 그가 숨기고자 했던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성혜와 가족인 것을 숨겨야 했다. 들통난다면 자신의 경력과 힘이 무시당할지도 모르니까. 둘째, 자신의 그릇이었다. 퇴마사로서 부족한 것을 말재주로 포장하고자 했다. 그리고 마지막. 현재 당황한 상태. 그는 푸른소매가, 이렇게 멀끔한 인간형 요괴일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말했다. 그게 심리전에 있어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을, 율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가.”

은열은 수긍도 부정도 하지 않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 대해서는 성혜에게 들은 듯하군. 그러면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도 없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율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율은 반사적으로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요괴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는 무심코 얼굴을 찌푸렸다. 금방이라도 그 입을 벌려, 자신의 머리가 먹힐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 같았다. 율에게 요괴란 그런 존재였다. 인간과 분리되어야 할, 끔찍한 환상의 존재.

“눈 떠.”

율은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은열의 눈은 푸르고 깊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차가운 눈매였다. 어떠한 미소도 짓지 않고, 어떠한 짜증도 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속에 어떤 감정이 있을지도 짐작되지 않았다.

“네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으면 난 네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산에서 요괴를 퇴마하고 다니거나, 쓸데없는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낮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였다.

순간 율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옛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현재 느끼는 공포다.

“…넵.”

“좋아.”

은열은 다시 율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창파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 율을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묵묵하게 있었다.

“네가 성혜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면 지금쯤 내 상태는 눈으로 봐도 알겠지. 더 필요한 게 있나? 뭐, 요술이라도 부려야 하나?”

“아니, 아닙니다! 충분히 확인했어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율은 그렇게 말하고서, 뒤로 돌았다. 어떻게 내려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창파관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창파관 대문 앞에 서 있던 은열의 존재가, 그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랬다. 율은 빠르게 걷기 시작했고, 뒤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돌아보지 않을 마음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도 은열은 그를 붙잡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무서운 사람이라고는 말 안했잖아요, 삼촌…!’

산을 내려가며 귀신이나 요괴를 만나지는 않았다. 율은 끝없는 산길을 내려가며, 방금 있었던 일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처럼,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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