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1화. 요괴들의 땅으로

창파관 by 귀연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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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6.


현덕(玄德)시에는 모두가 알고 있어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산이 있다. 귀신과 요괴가 나타났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귀연산. 최율은 바로 그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귀연산은 만만하지 않았다. 해발 800미터,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야 보이는 등산로.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은 등산화 끈을 꽉 맨 아저씨 아주머니들밖에 없다. 그마저도 산중턱에 올라서자 보이지 않았다.

“하아…. …아, 힘들어!”

하늘을 보고, 숨찬 호흡을 내쉰다. 구름이 곧 낄 것 같다. 비가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흉흉한 날씨가 말해주고 있었다. 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근처에 있나…….’

율은 부적을 손에 쥐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경계태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요괴가 있다면 퇴마하면 되는 노릇이고, 수가 많다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자신의 몸을 지킬 정도의 지식은 집에서 배웠다. 실전 경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19세, 최율의 직업은 퇴마사다. 그리고 그는 인생을 뒤엎을 의뢰를 받은 참이었다.


“푸른소매라는 요괴가 있어.”

성혜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불러내었다. 자취하는 곳 근처도 아니고, 지하철로 30분 타야 하는 곳까지 불러내다니. 율은 어른인데도 자신이 이동하기조차 귀찮아하는 성혜를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네.”

“요즘 요괴는 아니야. 옛날 요괴인데, 난동을 부려서 퇴마사들에게 한 번 힘을 봉인당한 적이 있어. 지금은 귀연산 깊은 곳에서 살고 있지. 힘을 따지자면, 평범한 요괴랑 비슷해.”

율은 성혜의 말을 들으면서 이상한 점이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없었다. ‘푸른소매’의 이야기라면 가문 내에서 어느 정도 들어본 적이 있었고, 성혜가 몇 번 다녀왔다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주기적으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러 가야 하는데…. 내가 또 가게를 봐야해서 말이야.”

“삼촌은 프리랜서잖아요.”

개인 단위의 퇴마사로 일하고 있는 율과, 더 큰 규모로 일하고 있는 친가와는 다르게 성혜는 다른 사람들의 점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 고정된 시간이나 장소라는 게 없었다.

“좀 알아 먹으면 안되겠냐.”

“또 귀찮으신거예요…?”

“그래, 귀찮아. 그러니까 용돈 줄 테니까 좀 해봐라. 아란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잖니.”

성혜는 그렇게 말한 뒤, 턱을 괴고서 율 쪽을 바라 보았다. 심드렁한 표정에 심드렁한 자세.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 네가 하라는 뜻이었다.

“현덕시까지 가야 한다면서요! 거기 지하철도 없어서, 버스 타고 굽이굽이 가야되는데!”

“그럼…. 자. 여기, 차비. 이거면 되니?”

지갑에서 만 원 몇 장이 나온다. ‘그러니까 좀 먹고 내 일 좀 대신 해주고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모욕감을 느낄 만한 일이었다. 지폐의 장수가 그렇게 두터운 것도 아니어서, 율은 그 일을 처음에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퇴마사로 일하면서 보수가 아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남들보다 어릴 때부터 이 시장(?)에 들어온 데에는 확실한 이점이 있었다. 요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니, 손님만 찾아다니면 실제로 굿을 하거나 퇴마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현상을 해결하기만 한다면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직접 요괴를 봐야하는 이런 상황은…. 껄끄럽다. 어느 정도는 말과 정보로 해결할 수 있는 현상을 정면승부해야 하는 입장이니, 리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꼭 제가 해야 할까요…? 저, 현덕시로 가면 본가에 인사드려야될 것 같은데….”

“네가 아니면 누가 하겠니. 최씨 집안 피를 물려 받은 사람이 큰일을 해야지. 특히 요괴 관련한 일이라면.”

율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탐탁지 않은 티를 팍팍 냈다.

“요괴는 아직, 좀 무서워서요.”

“그래서 퇴마사로 먹고 살겠냐.”

“이 업계가 꼭 신력(神力)으로만 굴러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삼촌이 제일 잘 알잖아요!”

성혜는 그 말을 듣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때로 대면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삼촌도 점을 볼 때 ‘친구’ 힘을 가끔 빌릴 때가 있다고 했잖냐. 그러니까, 혹시 모르지. 네가 이번에 새로운 연을 만들어서 요괴 친구가 생길지. 타로 점 봐주랴?”

“됐네요….”

“그럼 하는 걸로?”

율은 자신의 성격이 생각보다 무르다는 것을, 그리고 가족과 관련한 일만 마주한다면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혜는 그에게 지도 하나를 꺼내고, 휴대폰으로는 지도 앱을 켜서 보여주었다. 하나는 귀연산 입구로 향하는 길찾기 모드의 스마트폰 지도였고, 다른 하나는 귀연산 입구에서부터 요괴들의 땅으로 향하는 지도였다.

“이 길로 쭉 가다가, 갑자기 안개가 드리우는 지역이 있을 거야. 거기서 쫄지 말고, 그대로 쭉 가.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한 번, 쭉 직진하다가 우회전 한 번. 그러면 오르막길 나오고서 한옥이야. 거기까지가 목적지로 가는 길.”

가는 길 한 번 더럽게 복잡하네. 율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푸른소매라는 요괴가 그렇게 강하다면 이렇게 산 깊은 곳에 두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수긍이 되었다. 수긍이 되기는 했지만, 납득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 잘하면 추가수당 주세요….”

“어련할까.”

성혜는 짜증을 내는 율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본가 걱정은 하지 마. 그냥 나처럼 쌩까고 살면 얼마나 편하니.”

율의 입장에서는 그게 안 되었고, 성혜의 그러한 자유로운 부분이 율을 더 열받게 만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혜에게 대충 인사한 다음 카페에서 빠져나왔다. 휴대폰으로 빠르게 현덕시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했다.


그리하여 귀연산 중턱.

거의 지칠 즈음에 안개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요괴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증거로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공기가 바뀌고, 주변 풍경이 점점 현실 세계와는 달라지고 있었다. 일반인이 이 산을 왔다면, 곧장 돌아갔을 것이다. 조금 둔감한 사람이라면, 주변이 변한 것을 모르고 그냥 나아가다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율은 선천적으로 예민한 체질이었다.

‘진짜 요괴가 주변에 있어.’

율은 주머니에 있는 부적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당장 몸을 보호할 정도는 되는 부적이다. 요괴가 무서워도, 어느 정도는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도 공포는 어쩔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퇴마사 집안에서 태어나, 퇴마사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 요괴들을 가끔 보기도 하고 퇴마하는 장면도 보았지만…. 율은 요괴가 무서웠다. 두려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인간을 습격하는 요괴가 수도권 산에 있다면 어떤 요괴일까? 율은 생각으로 공포를 이겨내려 했다. 호랑이 요괴를 비롯한 사나운 동물 요괴라면 북쪽과 강원도에 있을 거고, 귀신이나 도깨비류는 어디에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안개를 부르는 귀신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곳의 음기가 자연현상으로 나타났을지도 모르지만….

콰직.

“으악!”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율은 재빨리 자신의 발을 확인했다. 부러진 나무는 없다. 그리고 자신은 놀랐고, 그렇게 만든 누군가가 있다.

귀신인가? 아니면 요괴인가? 율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사람이 아닌 것만은 알았다.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나는, 중대한 위험에 빠져있다고.

그것도, 아주 근처에서.

“…하, 씨. 돌겠네…!”

일단은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율은 최대한 앞으로 내달렸다.

나무들이 양옆으로 지나가고, 주변 풍경이 점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율은 그 정도 속도로 내달렸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바로 들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었다면 공포에 질려 미친 사람이 앞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율에게는 그것의 존재가 느껴졌다.

‘걸리면 죽는다, 걸리면 죽는다, 걸리면 죽는다…!’

율은 달리다가, 숨이 차오를 즈음에 부적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 꺼낸 다음, 기억 속에 있는 몇 개의 한자 어구를 떠올렸다. 귀신을 쫓는 주문. 부처님을 믿지는 않지만, 율은 항마진언(降魔眞言)을 외웠다.

“ㅅ, 소여무명(燒汝無明)! 그리고…! 그래, 맞다! 소적지신(所積之身)!”

부적은 뒤로 날아갔고, 진언의 한 어구를 외우자 그대로 화르륵 타올랐다. 그러자 뒤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율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만약에 귀신이라면,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어버릴 수 있었는데도. 요괴를 그렇게 가까이서 마주한다면 기절할지도 모르는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얼굴을 전부 덮은 검은 머리카락. 볼까지 찢어진 입.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기이한 웃음 때문에 더욱 소름 끼쳤다.

귀신이다. 눈 앞에까지 와 있는, 진짜 귀신이었다.

“아, 이런…….”

율은 단말마밖에 내뱉지 못했다.

귀신이 머리를 썼다. 사람을 놀래킨 다음, 쫓아가다가, 공격을 당하면 가짜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진심으로 공격한다. 율은 머릿속에서 귀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자신을 공격했는지 파악했다. 그는 머리가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목숨이 끊어진다면 부질없는 일이다.

율은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 죽은 자가 그의 앞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코가 닿을 거리였다.

꼬맹이 주제에 퇴마를 해?

그대로 목이 쥐어진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켁, 큭……!”

뭐하는 녀석인진 모르지만, 죽은 자의 땅에서 곱게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원한이다. 생애의 원한이 현재에 나타나 율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목이 졸리니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 요괴를 무서워하더니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구나.

시야가 흐려졌다.

“…그만해라.”

뭐?

그 말과 함께 귀신의 힘이 풀어졌다. 파이듯이 조이던 목이 풀어져서, 순간 숨구멍이 트였다.

“흐어억, 흐억…!”

흐려지던 시야가 금방 트였다. 안개는 여전했고, 빛은 보이지 않았다. 귀신 역시 보이지 않았다. 떠난 것인지 불길한 기운도 없어졌다. 대신, 율의 예민한 체질을 건드리는 요괴의 기운은 여전했다. 율은 긴장한 채로 몸을 일으키고, 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인간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율은 그가 ‘푸른소매’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늘색 꼬리 두 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머리 위에 분명한 늑대의 귀. 팔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한복의 색깔은, 역시 푸른색이었다. 하늘을 닮아 파랗고 청명했다.

고요하고 침착한, 푸른 눈동자.

“퇴마사인가.”

그는 율을 내려다보고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율은 그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남자다.

그의 인생으로 처음으로 한 생각이었다. 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와.”

푸른소매는 그렇게 말한 다음 등을 돌려 사라지려 했다.

“자, 잠깐만요!”

율은 그를 따라갔다. 안개 속으로 그가 영영 사라져버릴까봐, 다시 한 번 달렸다. 그는 점점 요괴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이 귀연산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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