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3. 그 요괴, 푸른소매


귀연산으로부터 하산한 율은 바로 서울로 향했다. 성혜를 만나야 했다. 현덕으로 마중나올 법도 한데 게으른 삼촌은 서울에 있겠다고 했다.

현덕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어서, 바로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귀연산 입구에서 택시를 잡고, 터미널에서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타기까지의 과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성혜의 ‘가게’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저번에 그를 만난 카페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좁은 골목의 점술 가게였다. 표면적으로는 사주, 타로를 보는 잡상인이지만 성혜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요괴 퇴마 관련 일을 맡기기도 하는 수상쩍은 곳이었다.

2층 계단을 올라, 율은 가게에 들어섰다. 노란장판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는 성혜가 보였고, 그 뒤에는 눈이 세 개 달린 가면을 쓴 베이지색 머리의 사람이 있었다.

물론 율은 그가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다.

“뭐야, 왜 벌써 와?”

“어느정도 상태를 파악한 것 같아서요….”

“어서와, 율.”

“안녕하세요, 아란 씨….”

‘아란’은 그 말을 듣고서 가면을 벗었다. 평범한 인간이라기에는, 아란의 외모에는 너무 특이한 점이 많았다. 눈동자 주변의 흰자가 노란색이었고, 눈동자 자체에도 붉은색과 청녹색이 혼재했다. 무엇보다도 이마에 세로로 갈라진 ‘세 번째 눈’이 있었다.

“풀이 죽었네.”

“그럴만한 일이 좀 있어서요.”

“은열 씨는 좀 잘 보고 왔냐?”

성혜는 그제야 푸른소매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율은 그가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으며, 그냥 남을 골탕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장난이었다.

“왜 이렇게 말 안해준 게 많은 거에요!”

“그거야 아는 줄 알았으니까.”

성혜는 그렇게 말하고서, 오히려 자신이 억울하다는 듯한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 있던 아란은 성혜를 슥, 보더니 율로 시선을 옮겼다. 두 눈이 움직일 때마다 이마 사이에 있던 눈도 함께 움직였다.

“푸른소매를 보고서 도망쳤구나.”

율은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정곡을 찔려버렸다. 하지만 곧 다음 할 말을 생각해내고선, 자리에 앉았다. 성혜의 앞자리였다. 보통 고민상담을 하러 올 때 앉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렇지만 딱 봐도 알겠던걸요! 봉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성혜는 고개를 기울였다.

“또 뭘 봤어?”

“…네?”

“푸른소매를 보고 왔다면서.”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압박면접 같은 질문.

율은 성혜와 아란을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마치 짜 놓기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이어진 말과 질문이었다. 순간 당황하여, 초점이 흐려졌다. 이곳에서 당장이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신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또….”

“농담이야.”

성혜는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리고서 살짝 웃었다. 명백한 장난이다.

“삼초온……….”

“어차피 내가 시킨 것도 별로 없었으니까. 살아 있지? 뭐 허튼 짓 안하고? 그거면 됐어.”

아란은 성혜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그런 거지? 생사확인만 하면 되니까 날 부른 거겠지. 앞으로 거기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겠다.’

“내일도 가주라.”

“네?”

그의 말에, 율은 마음이 붕 뜨는 걸 느꼈다. 그렇게 붕 뜨다가 저 아래로 쿵, 하고 쳐박히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레 내려진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오늘은 ‘살아 있는지, 별 짓 안하는지’만 본 거잖아? 이번엔 좀 더 본격적인 일을 해보자고. 푸른소매 - 즉, 은열의 신력을 체크하고 주변 요괴에 대해서도 조사해와.”

“갑자기 일의 스케일이 불어났잖아요! 저 개인 일도 해야 하는데!”

“수주해놓은 거 있어?”

물론 없었다. 한동안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받은 게 성혜의 의뢰였다. 또 다시 일이 들어오란 보장도 없었고, 그렇게 된다면 또 편의점을 전전하다가 본가로 비굴하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얼굴을 봐야 하고.

“없죠….”

“그럼 다녀와야겠네.”

성혜는 씩 웃으면서 일을 천천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호의는 베풀어줄 수 있잖아.”

아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성혜는 시선만 굴려 그가 향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따라와.”

“아, 네.”

성혜의 가게 한편에는 낡은 서고가 있었다. 아란은 작은 불을 띄워 그 어두운 서고 안으로 향했다. 성혜가 뒤에서, 잘 다녀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율은 자신의 친척을 못미더운 듯이 노려보고선, 아란을 따라갔다.


서고 안은, 먼지로 가득해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기도 했는데, 분명 습해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다. 다만 먼지가 가득하고, 빛이 들지 않았기에,

“성혜가 짖궂게 군 건 내가 사과할 게.”

아란은 안으로 들어가며 그렇게 말했다. 율은 그의 등만을 보고 앞으로 걸었다. 생각해보면 오늘 내내 요괴의 등을 보고 걷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은열의 등을 보고 걷는 것과 아란의 등을 보고 걷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아뇨, 괜찮아요. 삼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푸른소매에 관련한 서적이 있을텐데….”

“서적이요?”

“성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테니까. 여기서 네가 해독하면 그 녀석을 대하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될 거야.”

설마 아는 사이인가? 율은 요괴와 요괴들이 서로 교류하는지 궁금해졌다.

“은열 씨를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니. 그렇지만 소문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어. 그리고 성혜가 조사하고 감시는 걸 옆에서 봤으니까.”

“그걸 어깨 너머로 안단 말이에요?”

“…나는 성혜처럼 게으르고 멍청하진 않아.”

그 마지막 말에는 힘이 확실히 실려 있었다. 율은 호오, 하며 흥미로워하는 소리를 내었다.

“여기 있네.”

아란은 그에게 책 몇 권을 얹어 주었다. 양팔로 그것을 받아내다가, 팔이 점점 내려갔다. 전부다 오래된 서적이었고, 먼지가 가득했으며, 표지에 한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소 조선시대에 적힌 책일 것이다. 마지막 책은 옛 한글로 써져 있었다. 제목은 ‘개성요괴록’이었다.

“푸른소매는 조선 요괴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어. 특히 한 이름을 여러 요괴가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지.”

“집단 같은 건가요?”

“그것보다는 이름의 대물림에 가까워.”

아란은 그렇게 말한 다음, 잠시 허공을 보았다.

“그 요괴는 특이하게, 자신의 이름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거든. 종족 내에서 그렇게 이름을 대물림했다는데…. 지금으로서는 네가 만난 ‘은열’이 유일한 ‘푸른소매’야.”

멸족인가? 율은 머릿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는 다른 요괴들보다 생각이 많고, 그에 반비례하여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남을 골탕먹이는 것으로 살아가는 요괴들도 많기에, 그런 아란의 존재는 상당히 독특했다. 율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요괴이기도 했다.

‘물론 이마에 있는 눈을 보면 무섭지만….’

지금도 아란의 세 번째 눈은, 세로로 갈라져 있는 채로 율을 응시하고 있었다.

“‘푸른 소매’는 ‘검은 안개’, 그 옛날의 ‘붉은 마님’과 같은 요괴와 동등한 힘을 가진 요괴로 알려져 있었어. 그렇게 강력하면서도 은둔하듯이 살고, 인간과 가까이 살았다는 게 특이했지.”

율은 ‘붉은 마님’이 언급되자 잠시 움찔거렸다. 물론 그 요괴에 대해서는 그가 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했다. 아란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른다. 성혜가 알려주었다면 괜찮겠지만, 아니라면….

“그렇지만 결국 일본의 음양사들에게 봉인당했어.”

“일본?”

갑작스러운 세력의 등장에 율은 의아하다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자세히는 몰라. 기록에는 그렇게 되어있고, 소문으로는…. 그 때 대가 바뀌었다나봐. 그건 아무래도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일본 음양사들의 힘으로 봉인했다면, 네 ‘음양오행술’로 알아보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야.”

아란은 율에게 서적을 건네준 뒤, 다시 율을 가로질러 서고를 나가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율 역시 책을 들고 그를 따라갔다. 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 서고로 나가는 문까지 가까이 가자, 아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자세를 돌려 율을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은열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어.”

“왜요?”

“귀연산에는…. 요괴들이 정말 많거든. 그래서 그 녀석과 친하게 지낸다면 너도 일거리를 그 요괴한테서 받을지도 모르지.”

요괴한테 일을 받는 퇴마사라니!

들어본 적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되었다. 율은 아란을 바라보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안 돼요! 그러다가 진짜 가문에서 파문당할지도….”

“성혜처럼 되는 게 무서워서 그래?”

——성혜가 파문된 퇴마사인 건 아니었다.

다만 ‘눈 밖에 난 자식’이 되었을 뿐. 실제로 율의 아버지는 길거리 점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성혜를 고깝게 보고 있었다. 율은 성혜 삼촌처럼 살겠다고 선언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했다. 당연히, 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낼 테고, 율은 그것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은열을 개인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소문 정도는 들었어. 그는 인간을 싫어하진 않을 거야.”

“저한테 경고까지 했는데도요.”

“그건 어쩔 수 없어. 인간을 경계하는 건 요괴들의 고질병 같은 거야. 그리고 푸른소매는 귀연산 일대에서 가장 강한 요괴중 하나였으니까.”

문장이 과거형으로 끝났다. 그렇다면 지금은 봉인당해서 아니라는 소리였다. 율은 은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기분이었지만, 미스터리가 갈수록 늘어났다. 왜 그는 힘을 봉인당한 걸까.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집안, 최씨 가문 - ‘원연화가’에서 관리하고 있는 걸까.

‘집안이 친일파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율은 아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눈만 내리깔아 율을 바라보았다. 웃지도 울지도 않는 게 아란이었다.

“조심해.”

그는 경고도, 충고도 아닌 기묘한 목소리로 율에게 말했다.

“다른 요괴들은 나처럼 유하지 않으니까. 모든 요괴가 성혜 같은 사람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고를 빠져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안,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렇게 인간들이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사이에 요괴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요괴가 보이는데도,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잠에 들었다.

오래간만에 붉은마님의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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