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연기담

4.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


다시 현덕으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자니, 반복된 하루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일을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옷을 갈아 입지 않으니 더 그랬다. 게다가 똑같은 시간에 출발했다. 똑같은 오후 4시.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아닌 시간에 일하는 것이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많지는 않았다. 율을 포함해서 네 명 정도. 율은 문득, 이 사람들이 어떠한 사정으로 현덕으로 향하는지 궁금해졌다. 서울 외곽에 있는 작은 도시를,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애매모호한 동네로 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현덕시는 율이 나고 자란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이 얼마나 애매한 장소인지.

—율은 또한 어젯밤 꾼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또 꿈에 왜 나와가지고.’

몇 명의 요괴들이 서 있다. 율은 그들을 보며 곤란해한다. 요괴들이 그를 질타한다. 지금까지 잘해주었는데, 왜 지금와서 태도를 바꾸는 거냐며. 율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들에게 미안해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그리고 거대한, 붉은 요괴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 장면에서 잠에서 깼다.

버스에서 다시 잠들 때, 그 꿈을 꿀까봐 두려웠다. 솔직히 요괴가 무서운 것도 맞았지만, 그 존재는 일반적인 요괴를 볼때와 달랐다. 아란을 볼 때와도 달랐고, 은열을 처음 봤을때도 그런 기분이 아니었고, 하다못해 귀연산에서 본 이름 모를 귀신을 볼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요괴를 다시 본다면….

‘그만하자.’

그 생각을 끊자, 버스가 현덕에 도착했다. 다시 귀연산을 오를 시간이 되었다. 율은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귀연산 근처로 향했다.


율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첫 번째로는 귀신이나 요괴를 만나지 않아야 했고, 두 번째로는 그렇게 만나지 않으면서도 주변 요괴들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귀신을 쫓는 부적을 덕지덕지 몸에 붙이는 방법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되려 관심을 끌 것이고, 귀신들을 자극하는 꼴이 될 것이다. 무작위로 그들과 조우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냥 최대한,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은열의 이름을 대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율은 갑자기 조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만난 지 한 번 밖에 안 되는 사이인데 이름을 파는 건 좀 미안하긴 했지만, 어쨌건 은열이라는 존재는 이 요괴들의 땅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패권을 잡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인 것 같았다. 적어도 아란의 말로는 그랬다.

그렇다면 그런 은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는 자신은, 어느 정도 그의 보호를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땐 편하구만….’

성혜가 직접 알려준 건 아니었지만, 율은 그래도 머리를 썼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올라가면서 어떠한 요괴도 만나지 않았다. 창파관 근처에 거의 다다랐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율은 의아해하면서도, 계속해서 올라갔다. 가끔은 요괴들도 쉬고 싶은가 보지. 창파관까지는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이제 언덕을 하나 넘기만 하면 된다.

“야!”

어디선가 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맞기는 한가? 율은 갑자기 들린 사람의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높고 앙칼진,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뭐, 뭐지?”

“여기, 위에! 바로 위에서 난 소리도 못 듣냐!”

율은 위를 바라보았다.

창파관으로 향하기 직전의 언덕에, 큰 나무가 있었다. 그 나뭇가지 위에 사람의 실루엣이 있었다. 그 귀신처럼 기괴한 모양새도 아니었고, 자신을 해칠 것 같지도 않았다. 멀리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게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 쪽에 튀어나온, 동물 귀가 있었다.

그리고 등 쪽에 꼬리가 보였다.

요괴로군.

“네가 은열을 습격한 인간이냐!”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습격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갑작스럽게 눈 앞에 들이닥친 요괴의 실루엣. 여우 귀. 꼬리. 그리고,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

율은 순간 놀라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요괴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아까까지는 나무 위에 있었는데, 눈을 깜빡이자마자 앞으로 다가왔다. 요괴의 속도는 빠른 법이었다. 율은 그것에 대처하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인간 주제에 혓바닥이 길구나.”

여자아이의 목소리였지만 낮고 위협적이었다. 율은 순간 살기를 느꼈고, 침을 꿀꺽 삼켰다.

요괴는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서, 아주 가까이서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콱!

요괴가 팔을 짓눌렀다. 거의 부서뜨릴 정도로, 흔들림이 없는 공격이었다. 순간 느껴지는 통증에 율은 비명을 질렀다.

“윽, 흐아아악—!!”

“엄살이야, 엄살. 인간은 심장이나 간을 도려내지 않으면 안 죽는다구. 호들갑 떨지 말아줄래? 귀 떨어질 것 같으니까.”

요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율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근육을 짓누르는 격통이 느껴졌다. 뼈가 부러질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팔이 끊어질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말 자칫하다가는 팔이 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묻는 말에는 언제 답해줄 거야? 네가 은열을 습격했다던 그 인간이 맞냐고. 봐, 부적도 들고 왔네. 요괴 퇴마하려고 또 뭐 가져왔어? 응?”

말이 많은 사람이라면 경박하기 마련인데, 이 요괴는 그러지 않았다. 힘의 상하관계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령하였기 때문에, 승자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다. 율은 그를 보았다.

여우를 닮은 생김새, 붉은색 눈. 살기를 띄고 있는 얼굴에는, 즐거움마저도 서려 있었다. 율은 깨달았다. 그는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 직전까지 몰아 가지고 놀려는 심산이었다.

“어째 조용하다? 내가 네 팔을 못 자를 것 같아? 인간의 팔은 또 별미인데~”

“큭…윽……. …은열 씨를, 습격한 적, 없어요…!”

“없다고? 그럼 어제 본 건 뭐지? 은열이랑 같이 단 둘이 있었잖아. 아니야? 인간이 요괴를 찾아올 이유가 뭐 더 있어? 게다가 퇴마 도구까지 들고서?”

요괴는, 거짓말 하지 말라는 듯이 씩 웃었다. 그리고서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한 죄, 달게 받아야겠지!”

날카로운 손톱이 살의(殺意)로 번뜩였다. 율은 고개를 돌려 팔을 위로 올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큭, 이게 무슨…?! 야, 이거, 놔…!”

누가 그를 잡은 것 같았다. 율은 자신의 시선을 가린 팔을 치워, 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보았다.

은열이 그 여우 요괴의 목덜미를 잡고, 마치 귀찮은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쑥 들어올리고 있었다. 힘의 차이 떄문인지, 크기 차이 때문인지, 하여간 요괴는 은열에게 대롱대롱 들린 채로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까의 살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은열! 내가! 너를 지켜주려고 하는데!”

“그리고 나는 그런 게 필요 없다고, 백 번은 말했지.”

“으아아! 인간 퇴마사한테 퇴마당하려면 어쩌려고 그래! 아직까지도 인간을 믿냐!”

“…나를 그럴 요괴로 보았다면, 넌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겠지. 현.”

은열을 대하는 현의 태도는, 지금까지 율이 공격당한 것과 비교하자면 완전히 달랐다. 사탕을 빼앗긴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율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팔을 완전히 내려 경계하는 태세를 풀었다.

은열이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데는 없어, 율?”

그는 율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처음 본 사람인데 이렇게 걱정해주는 건가. 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괜찮다고 덧붙였다.

“귀연산에 올 때에는 갑옷이라도 입고 와야 할까봐요….”

“그 체력으로 갑옷 입고 등산을 한다면 중턱까지도 못 갈텐데.”

아무런 음정의 변화도 없이 그렇게 말하니, 유머인지 독설인지 헷갈렸다. 율은 은열의 태도를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은열은 옆에서, 계속해서 ‘현’이라고 부른 그 요괴를 타이르고 있었다. 아이를 다루는 어른 같았다.

…이대로라면 또 은열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만다.

율은 어젯밤 내내 그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상태를 확인하러 온 건 난데, 마치 자신을 풋내기 퇴마사처럼 보듯이 과정을 일일히 다 말한 은열을. 그러니까 그를 완전히, 일의 부문에서 압도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성혜보다 못할 게 없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저기, 은열!”

“아, 그렇지.”

은열은 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서 그를 내려다 보았다.

“할 일을 하러 온 거지, 그렇지?”

율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있게, 품 안에 있던 부적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마치 삿대질하듯이, 자신이 최씨 가문의 퇴마사임을 자랑하듯 꺼냈다.

“오늘은 은열 씨의 신력을 체크하고, 또 주변 요괴를 확인할 거예요! 마침 저기 있는- 뭐였죠? 저를 죽이려고 했던 분…. 현 씨였나요? 저 분에게도 물어볼 게 몇 개 있어요.”

“그거 잘 됐네.”

은열은 일이 잘 처리되고 있다는 듯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은 ‘내가 왜 너한테 답을 해줘야 하냐?’라는 듯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였지만, 은열이 현의 팔을 약하게 붙잡고 있었다.

“신력을 확인하는 건 얼마든지 해도 좋아. 하지만 이쪽에서도 부탁이 있어.”

“또 부탁이요? 예예, 주변 요괴들을 퇴마하지는 않을 거라서….”

“그거랑은 달라.”

율은 멍하니 은열을 보았다. 현도 이 사안에 대해 모르는 것인지, 은열을 보고 ‘뭐야! 나도 알려줘!’라면서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은열은 몸을 돌려 창파관의 언덕 쪽으로 향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설명해 줄 게. 현, 너도 따라 들어와.”

“왜?! 내가 왜? 내가 왜 이 짜증나는 인간 퇴마사랑 같이 은열한테 훈계를 들어야 하는 거야?”

“훈계 아니야. 요괴와 인간 사이의 일에서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려고 그래.”

“드디어 인간을 죽이기로 한 거야?”

현은 얼굴에 화색을 띄우며 은열을 바라 보았다. 소름 돋는 내용과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순진무구해보였다. 은열은 픽, 하고 비웃듯이 웃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건 스승님의 약속 때문에 안 되지.”

은열은 그렇게 말한 다음 창파관 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아무런 말 없이, 몸만 돌려서 저벅저벅 걷는 모양새가 고요하다는 말이 잘 어울렸다. 이번에도 똑같이 언덕을 올랐다. 율은 문득, 해가 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말할 게.”

은열은 앞서가며,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뭐죠?”

잠시 침묵. 현은 그게 익숙한지, 은열의 옆에서 능글맞게 웃었다. 정확히는 율을 돌아보면서, ‘이 인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구나!’ 라고 말하듯이 비웃었다.

“요괴들의 의뢰를 받을 생각, 해본 적 있어?”

율은 그 자리에 서서, 먼저 가는 은열과 현을 보았다.

아무래도 들어서는 안 되는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향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율은 급하게 달려가듯이 은열을 좇았다. 그는 그 뒤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창파관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인간일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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