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베

주석

바다가 아닌 건조한 땅 위로 흘러들어 온 몇 조각의 언어, 큼지막한 흐름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중요한 갈래로는 남으리라.

상록 by 수림

나의 소중한 친구, 하츠카 헤르츠, 테티스, 혹은 달, 외의 수도 없이 많은 별칭에게.

안녕, 헤르츠. 물살도 없는 실내라지만, 이런 식으로 네게 편지를 전하고 싶거든 지금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유리병 안에 담아 보았어. 정말 바다로 띄워 보내거든 네 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를 않았거든……. 이렇게 적어내려가는 글자들이 내 손에 움직임으로 남아 영영 기억에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네가 보낸 편지를 읽고, 일본과 그리스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지구본 위로 손을 얹어 봤어. 두 대륙의 한 끄트머리와 끄트머리를 잇는 거리이다 보니 내 큰 손으로도 한 뼘 하고도 반 정도의 거리가 나오더라고. 비행기를 타고 건넌다면 10시간 정도의 긴 비행이겠지만, 달리 이야기하면 마음을 먹은지 하루도 되지 않아 서로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기도 해. 정말 즐거운 일이지 않아? 꿈을 한 번 꿀 정도로 짧은 시간에, 우리는 별이 지나는 길을 거슬러 서로에게 닿을 수 있을지도 몰라. 꼭 서로를 그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느끼고 있겠지만. 나는 그 탑에서 달을 올려다 볼 때마다, 너는 파도의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리고, 세이지의 도움을 받아 나름의 둥지를 찾아가고 있다니 다행이야. 몇 글자로 나타낼 수 있는 확실한 주소를 남기고, 비로소 너의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 장소에 머무르기 시작하면 비로소 너는 네 삶의 틀을 온전히 너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스스로의 삶의 항해에 있어 방향키를 자신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 퍽 멋진 일이야. 어떤 사람들은 커다란 자유에는 수많은 책임이 따른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바라봐 온 바, 너는 서투를지언정 그 바다 위를 잘 항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끝내 하나의 작은 섬으로 자리잡게 되거든 내게 알려 줘. 그리고 네가 자리를 잡은 그 작은 둥지에 무엇이 있는지, 나의 탑만큼이나 많은 돌을 밟아야 하는 곳인지, 그 곳에서는 어떤 별자리가 보이는지도 알고 싶어. 네가 나의 족적과 흔적을 궁금해하듯 나도 네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될 원고지에 아주 큰 관심이 있거든.

그 때가 되면 너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츠카 헤르츠, 테티스, 달, 그것도 아니라면 자유로이 허공을 끌어안는 아이테르? 어떤 이름이 되었든, 다시 만나는 너와도 지금처럼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어.

다른 몇몇의 아이에게도 남겨 두었던 말이 있어. 바다는 늘 그 자리에 남아 있으니, 그것을 이해하거나 만나기 위해 성급히 굴 필요는 없다는 말. 네가 나의 존재를 기억하거든 나는 늘 네가 기억하고 있던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거야. 오늘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너의 친구인 채로. 내 공상의 조각을 공유하는 소중한 친구, 함께 바다를 가로지르며 내 옆을 비추어 주었던 작은 달빛, 그리고 내게 역시 이해자였던 네게 작은 약속을 남길게.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 때까지 기억할게.

아쉬움과 기대를 눌러, 포이베, 시리우스, 혹은 네가 기억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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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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