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베

불용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것들의 나열-더 나아가서는 일부의 수용.

상록 by 수림

물론, 타인의 필요는 나의 기쁨이야. 보통은 말이지……. 그리고 혼자 어딘가에 틀어박혀 책에 쓰여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편이 훨씬 더 즐거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감각도 선명하고 눈에 확실히 보이는 변화가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덧붙이는 건, 아무렴 큰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의미에서야. 그리 덧붙이는 것은 확연한 의사의 표현을 위해서였다. 그리 하지 않는다 하여 청했던 도움을 아주 강렬히 거절할 상대는 아니었으나, 종종 그런 친절-때로는 대가가 아예 없어 보이는-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더러 있었으니. 무게를 덜기 위해 내어주는 손길이 오히려 무언가를 짓누르는 무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어지는 상대의 농담에는 장난스레 제 팔을 쓸어내린다. 음, 깜짝 방문은 사절이라는 건가? 혹시 때리더라도 기절할 정도로만 부탁할게. 그리 이야기하는 것 역시 농담이었다.

그래. 언제 네가 가진 힘이 필요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너를 부르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10년이나 지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어. 너무 1:1의 비율로 돌려주는 것에 집착하지는 마. 응당하지 않는 값이라고 해도 나는 기쁘게 받아들일 거야. 마구 말해서, 네가 방문한 김에 마을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학자나 기술자의 입장에서 방문한 마을에서 방문자 대접을 받는다는 건 제법 즐거운 일일 것 같거든.

아,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대단한 학자가 될 수는 있을까? 농담처럼 덧붙이나 아주 속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바다에 대한 탐구와 이해, 그것만으로 인정받은 재능이라지만 여즉 그는 스스로를 바다의 포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물처럼 느끼고는 했으니! 괜스레 눈동자만 굴려 땅을 구르는 작은 돌멩이를 바라본다. 어쩌면 제 이해는 그 정도의 수준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르는 노릇이 아니던가-그리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상대의 목소리가 그 사고를 절단했다.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며 새로운 길을 창조하는 것 역시 자신답다는 이야기에는 눈웃음만을 띄워 보냈다.

대부분의 학자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해내는 일인데, 뭐. 그래도 확실히 새로움이 가득한 나날들이기는 하지. 정말로 졸업하는 그 날까지도 이 곳이 새롭게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야. 매일같이 본 이 곳도 늘 새로운데 이 바깥으로 나아간다면 얼마나 새로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길들을 개척하게 될까.

이렇게까지 감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슬슬 줄여야 할텐데! 졸업이라는 상황도 그렇고, 꼭 이렇게 하지 않으려던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니까. 스스로에 대한 가벼운 불평을 늘어놓고는 괜스레 제 뒷목을 짓누르듯 쓸어내렸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길의 가장자리에 선 채, 길과 길이 아닌 것의 경계 위에 서서는 땅만 내려보는 통에 상대의 기웃거림을 눈치챌 겨를은 없었다. 이후로도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로 걸었다. 비로소 고개를 들어올린 것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상대의 입 바깥으로 나온 때였다.

나 희망할 지어니 너도 희망하라. 아주 낙천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절망적인 상황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네. 참 모순적인 것 같아. 인간은 절망 속에서야 희망을 찾고, 희망 속에서는 절망을 떠올리며 두려워하고는 하니까. 그래도 그러한 한계에 부딪히고 절망과 희망을 반복했기에 인간들은 하늘을 올려다볼 동기를 가지고 바다 너머를 궁금히 여길 수 있게 된 것이겠지. 땅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절망 속에서야 다른 길을 개척할 희망에 다다른 것일테니까. 이리 생각하면 절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지 않아?

그리 이야기하고도 제가 내뱉은 말이 아주 보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인지, 눈치라도 보듯 상대의 쪽에 시선을 한 번 두었다. 상대의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는 듯 급히 말을 이어갔다.

왜, 너는 벌써 이렇게 좋은 대화 상대인데? 우리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 온 길을 좀 봐, 걷기 시작했을 때의 달의 위치에 비해 지금 달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도 생각해 보고.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잖아. 꼭 지식이나 앎의 수준이 대화의 수준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아는 것이 많은 것이 무조건 좋은 대화 상대였다면 나는 사람보다는 책을 좋아했겠지! 하지만 나는 부정확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더라도 역시 사람 쪽에 더 마음이 가. 적어도 책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지는 않잖아.

그런 점에서 난 네가 좋아, 너와 하는 대화도 그렇고. 조금 더 자주 이런 순찰을 했으면 좋았을 수도 있겠네……. 그리 덧붙이고는 멋쩍은 기색 하나 없이 맑게 웃음이나 띄워 보낸다. 아쉬워한다 하여 무언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연하나, 그럼에도 사람에게는 감정과 마음이라는 것이 있지 않던가! 그러한 아쉬움을 인정하되 크게 후회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퍽 최근에서야 깨달은 탓에, 그 정도의 담백한 감상만을 남긴 채 상대가 이야기하는 그 마을의 이야기를 귀에 담았다.

네 말마따나,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것도 같네. 어른들이 아이들을 끔찍이 아낀다는 사실마저 말이야! 나도 어렸을 적에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고는 했는데, 사실 이제 와서는 조금 그리운 것 같기도 해. 이제 어느 마음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건지를 알 것도 같아서 그런가 봐.

그리 이야기하며 제 뒷머리를 가벼이 쓸어올렸다.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이라. 그리 되뇌이며 입술을 작게 오므린다. 돌이켜 보면 저는 반항이나 거절이라 할 것 하나 없이 자연스레 제 주변의 것들을 받아들이고는 했으니-물론 그 역시 몇 차례의 의문을 가지기는 했으나 끝내는 모든 것을 포용하거나 인정하고 마는 성정을 지니고 있음은 확연했다. 새삼스레 '어떻게 이렇게 되었더라?'에 대한 혼잣말과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당장에 정답을 구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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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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