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2

이곳은 10년 뒤의 미래라고 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 말을 들은 즉시 미요는 그렇게 대꾸했지만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옆에 후우타가 있었던 탓이다. 미요 누나, 나 후우타야. 수십 분 정도 후우타의 얼굴을 뜯어보면서 몇 가지 질답을 거친 후에 미요는 인정했다. 그는 사와다의 집에서 종종 마주쳤던 꼬맹이 후우타가 맞았고, 그는 10년 동안 착실히 성장한 끝에 미요보다 훌쩍 커져 있었다.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희망 따위 희박하기 그지없는 10년 뒤의 미래. 하지만 미요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어쩌다 미래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도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럼 어떡해?”

“단서는 있어.”

미요의 말에 비앙키가 대답했다. 이리에 쇼이치. 이리에 쇼이치, 비앙키가 꺼낸 이름을 미요는 입안에서 한 번 중얼거려 보았다. 이름은 예쁜 것 같은데. 그가 이 모든 사건의 흑막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근거가 있어? 이대로 못 돌아가는 거 아니야? 미요가 반쯤 투정을 섞어 투털거리자 사와다가 무거운 맹세라도 하듯 대답했다. 어떻게든 꼭 돌아가게 해줄 거야. 그 말을 듣고 나니 더이상 사와다에게 짜증을 낼 수 없어서, 미요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 시선을 앞으로 돌리자 쟌니니가 있었다. 미요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10년 전 과거에서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본인을 기술자라고 소개한 쟌니니는 미요가 가져온 가방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고쿠데라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비록 아직 미요는 가진 적도 없는 서류 가방이지만, 10년 뒤의 미요가 그 가방을 갖고 있었다고 하니. 하지만 10년 뒤의 자신이라는 말은 너무 막연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에 가깝게 느껴졌다. 쟌니니와 후우타가 가방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다. 미요 누나가 이 가방만 열고 바뀌었다면 좋았을 텐데. 후우타가 농담을 던졌지만, 미요는 겨우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이 벙커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조심스러웠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그렇다는 건 미요의 목숨도 딱히 안전한 상황은 아닐 텐데, 그들이 미요에게 알려준 정보는 얄팍하기 짝이 없었다. 미요는 쫓기고 있고, 미요를 쫓는 사람들과 사와다 일행이 싸우고 있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니 앞뒤를 맞춰보려는 시도는 하지도 않았다. 애초 앞뒤를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고. 미요는 단 한 가지만 물었다. 내가 왜 쫓기고 있었는데? 그 질문에는 리본이 대답했다. 네가 그 사람들을 배신했거든.

나는 왜 그 사람들을 배신했을까? 그것도 목숨을 걸고서. 거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10년 뒤의 마츠미 미요, 본인뿐일 테다. 그러나 10년 뒤의 마츠미 미요는 차라리 타인이라고 해야 옳다. 결국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미요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재빨리 치워버린 다음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미요는 10년 뒤의 미래에 있었고 이 기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미요가 난생 처음 보는 것 투성이였다. 그러니까, 이건 어떤 의미에서의 기회였다.

미래니 과거로의 귀환이니, 목숨을 건 싸움 따위는 잘 알지 못한다. 알려준대도 관심 없다. 과거로 돌아가든 돌아가지 못하든 미요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영원히 진지해지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장치와 기술들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미래로의 시간 여행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은가? 설사 그게 편도 티켓일지라도. 미요는 그 사실에 괜히 가슴이 뛰었다. 미요는 표정이 상기된 것을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슬쩍 손을 들어 쟌니니를 불렀다. 저, 쟌니니 씨? 다시 한 번 모두의 이목이 미요에게 집중됐다. 미요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 가방은 제가 갖고 있어도 될까요?”

“네? 하지만….”

“저도 기계나 장치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편이고,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 그 장치도 제가 만들었을 것 같고. 저도 그 가방을 살펴보고 싶어서요.”

제가 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미요가 희망 사항을 덧붙였다. 애써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몇몇 사람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요가 그 가방을 살필 근거는 충분했다. 고쿠데라가 말했다시피 그것은 미요의 것이었고, 미요가 만들었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의 사람이긴 해도 본인이 직접 살펴보는 것이 효율이 좋을 테니까. 미요가 눈을 빛냈다. 사흘, 아니, 이틀만 살펴보게 해주세요. 목소리는 얼핏 당당했지만, 사실 그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자신은 없다. 하지만 살펴보고 싶다. 약간의 속임수를 써서라도. 그런 마음이 도저히 사그러들지 않았다.

문제는 묘하게 미요를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시선만 교환할 뿐, 딱히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리본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상관없잖아. 마츠미 미요는 마츠미 미요인 걸.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였으나 리본의 그것에는 언제나 묘한 힘이 있었다. 본질을 보게 해주는 듯한 힘. 단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힘 같은 것이. 리본의 그 한 마디로 가방은 다시 미요의 손에 들어왔다. 묵직한 서류 가방의 무게가 처음 이 가방을 들었을 때와는 짐짓 다르게 느껴졌다. 가방을 돌려받은 미요의 얼굴이 언제보다도 밝았음은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

미요는 적극적으로 굴기 위해 노력했다. 첫 번째는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두 번째로는 낯선 미래와 미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섞이기 위해서. 그 두 가지 일은 전혀 다르면서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다. 미래의 사람을 제외하면 미래의 지식을 알려줄 사람도 없으니까. 고쿠데라를 제외하면 과거에서 미래로 온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고쿠데라와는 원래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미래의 사람들이다. 비앙키나 후우타, 쟌니니 같은 사람들. 미요는 과거에서도 그들과 썩 친밀하지 못했다. 미요만 모르는 시간을 함께 쌓아온 사람들의 틈새에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때면 결국 행동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기계와 함께 틀어박히는 것이 그것이다. 단순한 서류 가방이 아니라는 사실은 첫째 날부터 알 수 있었다. 그 가방은 보기보다 복잡한 기계 장치였고, 확실히 미요가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데다가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점에서 그랬다. 미요는 몇 번이고 세상을 잊은 채 가방에 몰입했다가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면 방에서 나와 조언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반복했다. 그 사이 이틀은 금방 지나가 버렸지만 미요를 독촉하거나 가방을 뺏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아마 미요를 아주 모르지 않는 이들의 배려일 거라고, 미요는 뒤늦게 깨달았다.

어쨌든 그 배려는 헛되지 않은 셈이었다. 사흘째에서 나흘째로 넘어가던 시각, 드디어 가방이 열렸으니까. 필살염이라는 에너지를 인식하여 열리는 구조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잠시 불안해 하기도 했으나 가방은 순수한 기계 장치였다. 그 점에서 미요는 분명 미래의 자신이 만든 가방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오로지 금속으로만 구성되어 물리법칙에 따라 작동할 뿐인 완벽한 기계 장치였다. 미요는 이런 것을 좋아했다. 보다 더 첨단에 가까운 기술이 있었더라도 자신이 사용할 물건이라면, 또 중요하기까지 하다면 그저 기계 장치에 모든 것을 걸었을 터다.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을 부분이란 사실이 괜히 뿌듯했다.

덕분에 가방을 여는 손짓은 가벼웠다. 가방이 열리며 나는 달칵이는 소리도 경쾌하게만 들렸다. 가방의 무게는 죄 보안을 위한 기계 장치에 쏠려 있었는지 내용물은 빈약했다. 데이터 칩으로 보이는 것 서너 개, 통신 기기로 추정되는 물건 하나, 그리고 편지 한 장이 전부였다. 미요는 가장 먼저 편지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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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즐거운 친칠라

    글 전개 방식이 깔끔하고 잔잔해서 보기 좋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호두의 글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가타부타 필요없는 말이 없어서 이런 식으로 써도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쓸 수 있구나, 하고 배워가는 느낌. 명급리 드림 때부터 그랬지만, 주인공의 감정 흐름에 이질감을 느껴서 항상 글을 다 읽고 나서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때가 있었어요. 저랑 호두는 여러모로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글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달까.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라서 저렇게 생각할수도 있구나 싶었던 쪽. 이건 내가 마츠미 미요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도 생각했는데, 미요는 인간친화적인 캐릭터는 절대 아니거니와 협조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니까. 어떠한 상황에서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는 이유나, 단체의 최우선 목표보다 개인의 흥미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어요. 15살의 중학생답게 미성숙한 모습이 도드라져서 이 캐릭터에 대한 연구를 정말 많이 한 게 보여서 좋았어요. 글에 캐릭터가 끌려가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글을 이끄는 느낌. 잘 만든 캐릭터는 스스로 움직인다고들 하잖아요. 미요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이 될 지, 미래의 미요의 서류 상자는 어떻게 과거의 미요를 도울지 궁금해집니다. 재밌게 읽었어요!^ㅅ^

  • 놀라는 토끼

    역시 호두 글은 현실적인 문제나 이야기랑 판타지랑 그 경계 중간선에 서 있다는 느낌을 줘서 좋은 것 같아요... 내 글은 판타지에만 확 치중됐다는 느낌을 주다보니까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호두 글은 적당히 현실과 판타지가 융합되어 있어서 훨씬 더 몰입감을 주는 것 같음... 그리고 미요가 10년 후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타인처럼 분리해서 생각했는데도 그 10년 후 자신이 만든 가방 장치를 분석하면서 역시 10년 후에도 그런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부분을 좋아해요...... 그리고 봉고레 기지의 사람들이 미요를 경계하는 부분... 이해가 가면서도 마음이 아팠는데 역시 리본... 한 마디로 미요에게 신뢰를 실어주는 부분도 좋네요ㅜ... 그리고 오늘의 가장 좋았던 부분. 미래로의 편도행 티켓이라고 할 지라도 그 미래의 기술을 엿볼 수 있다면 좋다고 한 거...... 이 부분이 진짜 미요를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귀여워... 복복복. 다음편도 얼른 보고싶네요... 일주일 얼른 안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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