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6

어린 시절 마츠미 미요의 삶은 지루했다. 학교 수업도,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도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수업은 너무 쉬웠고 또래들의 놀이는 너무 하찮아서 저절로 코웃음이 나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도 지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미요가 그 누구도 상대하지 않아 지루했다면, 집에서는 그 누구도 미요를 상대해 주지 않아서 지루했다. 어른들은 늘 알 수 없는 이유로 언성을 높이느라 미요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열 살 터울의 오빠는 거의 항상 집에 없다시피 했다. 오빠가 가끔 집에 들어와봤자 또 언성이 높아지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반갑지 않은 것은 똑같았다.

미요는 그들이 만들어 내는 소음이 끔찍하게 싫었다는 것 이외의 기억이 없을 정도로 가족과 별 접점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접점인 소음도 듣고 싶지 않아서, 집이 시끄러워질 때마다 미요는 자신의 방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오빠는 가족이 싸울 때마다 미요가 귀를 틀어막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는 미요의 옆에 워크맨을 던져두고 나갔다. 귀만 틀어막고 있지 말고 음악이라도 들으라는 뜻이었을 터다. 인사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던 오빠가 어째서 갑자기 그런 호의를 보였던 걸까? 그가 주고 간 워크맨은 겉면에 흠집이 많았고, 누가 봐도 손때가 탄 중고품이었다. 그래도 영 더러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누군가가 아끼는 물건인 태가 났다. 어린 미요가 그런 생각까지 하지는 못했으나 그 낡은 물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음악을 듣지도 않고 그 작은 기계에 푹 빠져버렸을 정도로.

그 워크맨은 카세트 하나가 꼭 맞게 들어가는 크기였다. 세련된 은색의 몸체 옆면 이어폰 구멍이 뚫려 있었고, 카세트테이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까만색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한참 동안 워크맨을 살피던 미요가 조심스럽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어폰을 타고 알아듣기 힘든 팝송이 흘러나왔다. 미요는 궁금해졌다.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는 걸까?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엔 건전지를 교체하는 뚜껑을 열었다가 닫아보았다. 건전지를 뺐을 때 방금까지 흘러나오던 음악이 뚝 끊겨버렸을 뿐, 질문의 답은 알 수 없었다. 어른들에게 물어본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신, 미요는 신발장 안쪽의 플라스틱 상자에 공구함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언젠가 라디오가 고장 났을 때 아빠가 드라이버로 라디오 후면의 상판을 열었던 것도 기억해 냈다. 미요는 그 길로 드라이버를 찾아와 워크맨을 분해했다. 드라이버로 열 수 없는 것은 안간힘을 써서 뜯어냈다.

끝내 워크맨의 작동 원리를 알아낼 수는 없었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오빠에게 눈물이 날 만큼 욕을 얻어먹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시끄러웠던 집이 조용해진 것도 느끼지 못했을 만큼.

그날 이후로 미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언가를 분해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조립도 할 줄 알게 되었고 나이를 먹으며 손끝이 여물기 시작하자 회로 없이 움직이는—어떤 면에서는 원시적이고 비효율적인— 물건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정확히는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지각기관이 둔해지고 세계에 사람이 아닌 것만이 남은 듯한 감각이 좋았다. 일견 이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이 좋았다. 그런 때면 더 이상 인생이 지루하지 않았다. 마츠미 미요가 기계를 사랑하게 된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목구멍 너머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거친 숨을 들이쉬는 목 안쪽이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처럼 아팠다. 신선한 가을인데도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고, 헐떡거리는 호흡은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미요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아내면서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넘겨 버렸다. 날씨가 조금만 건조해져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스스하게 떠오르는 주홍빛의 얇은 머리카락은 미요의 사소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땀에 푹 젖은 머리카락이 목덜미나 이마, 뺨에 달라붙는 것은 다른 의미로 거슬렸다. 골목 모퉁이 어귀에서 머리를 고쳐 묶은 미요가 조심스레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대부분 집 밖에서 일과를 보내고 있을 시간이라 주택가에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미요가 손목에 낀 장치를 조작했다. 시계처럼 생긴 장치가 띄워낸 홀로그램 화면 위로 주변 지도가 떠올랐다. 지도 위에 추격자들의 위치가 점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미요가 지나온 방향에 서너 명 정도가 머물러 있었고, 그 외에는 뿔뿔이 흩어져 마을 곳곳을 뒤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가야 할 방향에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어 보였다. 링과 필살염을 감지하는 탐지기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연막탄이 조금 더 시간을 끌어주기를 바랐지만, 추격자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니 연막탄이 그들을 붙잡아주길 기대하는 것도 이젠 끝이었다. 미요는 헐떡이는 숨을 애써 눌러 참으며 몇 번 깊게 호흡했다. 물을 챙겨왔으면 좋았을 텐데. 추격자들이 숙소에 들이닥치는 것은 예상 범위 내의 일이었으나 그녀는 그에 대비해서 언제나 짐을 챙겨두는 요령을 부리지는 못했다. 그 탓에 식량이나 옷가지 같은 짐은 죄다 잃어버렸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서류 가방은 챙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미요는 지금도 품에 끌어안고 있는 서류 가방의 겉면을 매만졌다. 이 가방을 잃어버리면 이탈리아에서 일본으로까지 도망쳐 온 것도 무용지물이 될 터였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허리를 세우고 숨을 고른 미요가 골목 모퉁이를 돌았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이 골목의 끝엔 누가 있을까. 나미모리에 잔뜩 퍼져 있는 밀피오레의 수하 중 몇 명이나 미요를 쫓고 있을까? 목덜미에서 흐르는 땀이 식은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행동에 옮길 작전은 미요의 마지막 도박이 될 것이다. 봉고레의 흔적을 찾기 위해 준비한 패가 전부 허사로 돌아간 지금, 미요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미요는 더 이상 봉고레를 찾지 않을 생각이었다. 밀피오레가 전력을 다해 달려들어도 찾지 못한 봉고레다. 그런 봉고레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고, 당연히 봉고레를 찾지 못하게 된 경우의 대비책도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각오쯤은 이미 이탈리아에서부터 하고 온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숨을 가다듬은 미요가 눈앞의 길목으로 발을 디뎠다.

 

그 어린 시절 미요의 인생을 뒤바꾼 워크맨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담임의 강권으로 참여했던 어느 경진 대회에서였다. 미요는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여전히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었지만, 담임은 미요가 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를 바랐다. 담임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미요의 흥미와 관련 있는 경진 대회를 제안한 것이었으리라. 그 제안이 귀찮고 성가시긴 했어도 담임은 좋은 사람이었다. 미요가 끝내 경진 대회에 참석한 것도 그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아서였다.

미요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워크맨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CD 플레이어, 아니면 MP3를 선호했고 미요도 MP3를 썼다. 하지만 드물게 여전히 워크맨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경진 대회에서 미요는 오랜만에 워크맨으로 노래를 듣는 사람을 발견했다. 미요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였다. 동갑인지 연상인지, 경진 대회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워크맨만큼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은색의 몸체에 까만색 유리창이 달린, 끝내 원리는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래서 더 잘 알게 된 그 워크맨이었다.

그 남자애는 그날 경진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미요는 정말 드물게도 먼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이리에 쇼이치, 워크맨으로는 린드버그의 ‘BELIEVE IN LOVE’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미요처럼 나미모리에 있는 학교에 다녔으며 기계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이리에는 경진 대회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편이어서 미요가 경진 대회에 나가면 거의 항상 이리에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친해졌고, 이리에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에도 간간이 메일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이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미요는 이리에를 따라 미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는 동안 미요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못하고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이란 늘 존재했다. 그때 만났다. 백란이라는 사람을. 백란과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웠다. 어쩐지 꺼림칙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지식의 보고 같은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었고 미요가 골머리 앓던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이리에의 절친이기까지 한 그와 가까이 지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미요는 이리에, 백란과 자주 어울렸다.

백란과 이리에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탈리아에 젯소라는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면서, 미요에게도 함께할 것을 권했다. 미요는 백란이 가진 지식을 더 알고 싶다는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조직의 정체가 마피아인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것은 여전했다. 대단한 정의감도, 책임감도 없던 미요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 간단한 행동 원리를 지키며 미요는 3년간 온갖 시스템과 병기를 개발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폭음이 진동했다. 콘크리트가 흙바닥처럼 가볍게 박살나는 것을 본 미요는 순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을 뻔했다. 미요가 개발한 것들이 고향에서 중학교 시절 알고 지냈던 친구들을 죽이는 데에 쓰이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었겠지. 이렇게 목숨 걸고 폐허를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번개의 필살염으로 한층 강화된 도끼가 콘크리트에 깊게 박혀 있었다. 미요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다시 달려야 했다. 여기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잡았나?”

“젠장, 연기 때문에 안 보이잖아. 살살 좀 하라니까.”

“짜증난다고! 별것도 아닌 게 쥐새끼처럼 도망만 치고…….”

자꾸만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체력이 부족해서인지 공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미요의 각오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죽을 각오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미요가 각오라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껏 사선에 서본 적 없는 사람의 헛소리였다. 미요는 죽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개죽음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만이 또다시 미요를 달리게 했다. 밀피오레를, 백란을 배신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미요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 두 개뿐이었다. 죽거나, 살거나. 죽고 싶지는 않으니 미요는 살아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숨이 턱 막혀왔다. 성인이 된 이후, 미요는 하루 6천 보나 걸으면 다행인 개발자였다. 최선을 다해 체력 단련을 게을리한 업보는 이런 식으로 돌아왔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달리고는 있으나,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연막탄은 다 떨어진 지 오래고, 필살염 사용을 방해하는 교란기의 전원도 슬슬 바닥을 보였다. 이젠 정말 나와주어야 했다. 누가 나와주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봉고레가 나와줘야 했다.

봉고레를 찾지 못했을 경우의 대비책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찾지 못한다면 불러내자. 지금 나미모리는 밀피오레의 일본 거점지였지만, 따지고 보면 나미모리의 진짜 터줏대감은 봉고레 10대였다. 그들은 나미모리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다. 지금도 잔존한 봉고레 세력이 나미모리에 숨어 지내고 있단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니까, 골자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찾지 못했으니 호랑이 굴을 온통 들쑤셔 놓자는 계획이다.

물론 죽을 위험이 수반되는 계획이었으므로 끝까지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미요가 택할 수 있는 것은(자의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죽느냐 사느냐 뿐이었고 미요는 죽지 않을 노력이라도 하다가 죽는 것을 선택했다. 살고 싶어 한 선택이었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 보였다. 교란기에는 딱 한 번 작동시킬 수 있을 만큼의 전원만 남았다. 밀피오레의 기밀이 담긴 서류 가방을 희생시키면… 백만분의 일의 확률 정도로 한 번은 구사일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미요의 앞에 남은 기회는 한 번이거나 두 번이다.

시내에서 멀어지면서 추격자들의 공격은 더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다음 공격에 맞으면 전투 능력이라곤 없는 일반인 마츠미 미요의 인생은 그대로 끝장날지도 몰랐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막다른 길이 보였다. 미요는 직감했다. 여기가 자신의 생사가 결정될 장소였다. 미요가 품에서 교란기를 꺼냈다. 이번에도 봉고레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높은 확률로 미요는 죽는다. 그러니까 제발 나와주라.

우악스러운 굉음과 함께 추격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요가 떨리는 손으로 교란기의 마지막 작동 버튼을 눌렀다. 미요를 쫓는 동안 잔뜩 성이 난 추격자들의 호흡도 거칠었다. 조금의 틈도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순식간에 도끼가 또다시 미요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미요가 반사적으로 눈을 꾹 감았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한 열기 어린 바람과 흙먼지가 끼쳐왔다. 그러나 예상했던 소리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미요를 향한 비난이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한 공격 같은 것이 날아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대신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미요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 사이로 사람의 인영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뒷모습을 알아본 순간, 미요는 참았던 숨을 힘없이 뱉고 말았다.

 

***

 

마츠미 미요, 나미모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고 취미는 무엇이든 만들거나 분해하는 것. 미요는 자기를 소개하라고 하면 그렇게 소개할 테지만, 정작 그 자기소개를 입밖에 꺼낸 기억은 단 한 번뿐이었다. 외톨이인 미요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취미를 물어보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그 단 한 번뿐인 소개마저도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자기소개는 아니었다.

미요가 직접 만든 물건을 학교에 가져갔던 날이었다. 그날은 정말이지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직 미완성인 물건이라, 학교에서 소소하게 손을 볼 생각이었는데 운 나쁘게 풍기 위원에게 걸려 물건을 빼앗길 뻔했다. 결국 풍기위원으로부터 도망치던 와중 그 물건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미요는 바로 그 물건을 찾고 싶었지만, 수업종이 치는 순간 평소 미요를 예의주시하던 선생에게 걸리는 바람에 꼼짝없이 교실로 잡혀 들어가야 했다. 미요는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제대로 수색을 시작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크기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미요는 예상외로 금방 물건을 찾을 수 있었는데, 꽤 요란한 소동이 일어난 덕분이었다. 아니, ‘덕분’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그때를 떠올린 미요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 상황은 그야말로 소동, 아니면 개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했다. 미요가 잃어버린 물건은 소형 트랩이었다. 나무 덩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지만 딱히 사용할 구석은 없어 완성만 된다면 영원히 방구석에 처박혔을 물건이다. 운 나쁘게도 거기에 누군가가 걸려들어 한바탕 시끄러운 소란이 일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 누군가는 사와다 츠나요시였다. 학교의 유명인들이 잔뜩 몰려 있었으므로 정작 중심에 있었던 사와다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사가와 남매나 야구 유망주인 야마모토 타케시, 불량아로 유명한 고쿠데라 하야토까지, 하나같이 소문에 무관심한 미요라도 모를 수 없는 면면들이었던 탓이 컸다. 미요의 등장으로 사와다를 포박시킨 함정은 금방 해체되었다. 그러나 소란은 잦아들지 않았고, 결국 풍기위원장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 혼란의 도가니에서 누군가가 물었던 것이다. 너는 누구야? 미요는 서툴게 대답했다. 자기소개가 익숙치 않았던 탓이다. 마츠미 미요. 2학년. 짧고 퉁명스러운 소개였는데도 대부분 환하게 웃으며 답인사를 해주었다. 그 얼굴들이 낯설면서도 어쩐지 반가워서, 그래서. 그다음 날도 똑같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사와다를 미요는 무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애들과 어영부영 어울리기 시작한 지도 몇 개월째인 지금, 사와다를 비롯한 너덧 명의 아이들은 전부 이틀 연속 결석이었다.

의아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미요는 혼자 지내는 데에 익숙했다. 짝을 짓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체육 시간이나 운동장 귀퉁이에서 혼자 하는 식사, 다른 아이들이 모두 교실을 떠날 때까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하교 시간, 그리고 다음 날의 해가 뜰 때까지 세상과 괴리된 작은 방에 갇혀 외로이 보내는 시간 같은 것은 아무렇지 않게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있던 것이 사라진 뒤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몇 명이 오지 않았을 뿐, 여전히 학생들로 북적이는 교실이 이토록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 그랬다. 고작해야 몇 달 전으로 돌아갔을 뿐인데 주변에 내려앉은 적막이 낯설었다.

그새 그 애들한테 적응하다 못해 익숙해져 버리기라도 했나. 쌀쌀한 가을 날씨를 타고 감성에 젖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평생 혼자 감내해왔던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다니. 미요는 노을 진 주택가를 멍하니 바라보며 걸었다. 저 앞에 사와다를 비롯한 남자애들이 앞서가고 있으면, 뒤에서 조금 천천히 따라오던 쿄코와 하루가 미요의 팔을 잡아당겨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미요는 혼자였고 쓸쓸했다.

미요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이대로 애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 애들과 어울리는 것은, 솔직히, 즐거웠다. 덕분에 학교가 조금 즐거워졌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겨서 기뻤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돌아오지 않을 리 없겠지만, 반드시 돌아오겠지만…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만약에 그 애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난 다시 혼자인 건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실에 가슴이 덜컹였다. 멈춘 발이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왜 발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 그 이유를 생각하던 미요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 애들이 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내가 외롭다는 이기적인 이유일지라도 어쨌든 그 애들이 그리운 것은 정말일지 모르겠다고. 그게 미요의 결론이었다.

낯설고도 묘한 기분에 젖어 있는 그때, 미요의 발치에 무언가가 굴러와 닿았다. 보라색 공이었다. 아니, 공은 아닌 것 같았다. 공이라기에는 발에 와닿은 감각이 묵직했다. 데구르르 굴러와 미요의 낡은 운동화에 부딪힌 그것을 향해 미요가 무심코 손을 뻗었다. 확실히 문제를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가까이에서 본 그것은 구형의 무언가일 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은 아니었다. 주변에는 보랏빛 가루가 흩어져 있었고 땅과 닿은 면에서 스멀스멀 작게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뭐지. 희미한 의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뜨겁지는 않았다. 그러나 보랏빛 연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면서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시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은 바로 이런 느낌일 터였다. 일그러졌던 시야는 얼마 후 원래대로 돌아오는 듯하더니 이내 어딘가에 쑥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이 희미했다. 제대로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그저 어딘가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감각만이 선명했다. 미요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단단한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미친 듯이 흔들리는 시야 때문에 꾹 감고 있던 눈을 떴고, 아까와는 다른 장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신종 화학 테러인가? 납치?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탓에 시야가 얼룩져 있었다. 덜컥 겁이 난 미요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까 그거, 마약성 최루탄 같은 거였던 거 아니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기절했다 깨어난 거라면 대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미요는 뒷걸음질을 치는 동시에, 팔을 들어 올려 자신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건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가 미요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몇몇 개는 머릿속에 남아 서로 뒤엉켰다. 그러나 다행히 그 패닉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미요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익숙했던 덕분이었다.

익숙하다 못해 그립기까지 했던 얼굴들이다. 사와다와 고쿠데라, 야마모토가 미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미요가 느낀 것은, 안도였다. 애들이 돌아온 것이든 미요가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온 것이든, 어쨌든 애들을 만났다. 그 사실만으로 미요는 묘한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러나 미요의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주변은 난장판이었다. 공장처럼 보이는 건물의 벽은 반파되어 있었고, 세 사람의 뒤편에는 다친 것 같은 사람 몇 명이 뒹굴고 있었다. 쉽사리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 미요는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눈만 굴렸다.

“일단 피해야 합니다, 보스.”

가장 먼저 침묵을 깨고 이야기한 것은 고쿠데라였다. 보스니 형님이니 하며 동네 양아치 놀이를 하더니, 정말로 깡패랑 엮이기라도 한 것인지. 그렇게 말하는 고쿠데라의 말투는 진지했다. 이상한 점은 사와다와 야마모토까지 굳은 얼굴로 그에게 동조했다는 점이다. 고쿠데라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서류 가방을 하나 주워 미요에게 건넸다.

“네 거야. 네가 들어.”

미요는 가방을 받지 않았다. 그야, 그 서류 가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요는 서류 가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고쿠데라는 막무가내로 미요에게 가방을 떠넘겼다. 너랑 실랑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냥 받으라고. 어쩐지 고쿠데라가 분노를 애써 참고 있는 것 같아서, 미요는 결국 가방을 받고 말았다.

 

산을 오르는 것이 어려웠다. 세 사람은 익숙한 듯 산을 탔지만 미요는 그러지 못했다. 가뜩이나 체력도 좋지 않은데 길이라고 할 것도 없는 산을 오르고 있으니 슬슬 숨이 차올랐다. 미요가 정신을 차린 직후, 세 사람은 미요를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설명은 일절 없었다. 사와다에게 단 한 가지 사실을 통보받긴 했다. 너 지금 쫓기고 있어. 그래서 널 지키려고 온 거야. 실제로 나미모리 외곽에 있는 공장지대에서 숲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몇 번 양복을 입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고 네 사람은 그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레 움직여야 했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학교도 안 오고.”

볼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훔쳐낸 미요가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산에 들어선 뒤로 내내 흐르던 침묵을 깨뜨린 것이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역시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미요의 질문에 고쿠데라와 야마모토는 미묘한 침묵을 지켰고, 사와다만이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말하자면 좀 긴데.”

“요약도 못해?”

“하려면 하겠지만….”

“그럼 해줘.”

“말하기 쉬웠으면 진작에 했겠지! 너, 보스께 성질 좀 부리지 마.”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고쿠데라였다. 너야말로,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미요는 가까스로 그 말을 참았다. 안 그래도 고쿠데라는 평소보다 더 짜증이 많은 상태였다. 고쿠데라와 다퉜다가 낙오되기라도 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미요 뿐이었다. 고쿠데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짜증 났지만, 견뎌야 했다. 미요는 서류 가방을 고쳐 들며 고쿠데라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게 되기만 해 봐라. 저 뒤통수를 딱 한 대만 갈긴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릴 테다.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다행히 미요가 당장 고쿠데라의 뒤통수를 갈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별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던 야마모토가 고쿠데라를 제지해준 덕이었다. 속 편한 야구 바보 자식. 고쿠데라가 욕인지 불만인지 모를 것을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고쿠데라의 짜증은 한결 수그러든 듯했다. 미요는 야마모토를 향해 작게 고개를 까딱였고 야마모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은 미요가 기억하는 야마모토 그대로라, 미요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것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혹은 누군가의 속임수인 것인지 혼란스럽던 참이었다. 매사 쉽게 짜증을 내는 고쿠데라든 성격이 쉬운 건지 좋은 건지 모를 야마모토든 누구라도 미요가 아는 모습 그대로인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와다는 미요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언가 죄라도 지은 사람 같다고 해야 할지, 혹은 무거운 짐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 사람 같다고 해야 할지. 사와다는 묵묵히 앞을 보고 걷기만 했다. 가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해야 하기에 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걸 알고 사와다에게 따져 물은 것이었으니 눈치 빠른 고쿠데라가 사와다를 감싸고 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눈치가 없는 야마모토는 거기까지는 몰랐던 것 같지만. 사와다가 조금 이상하긴 해도 다른 사람들은 미요가 기억하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미요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걷고 걸어 도착한 곳에는 지하 벙커가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그런 의문으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동안 세 사람이 익숙하게 지하 벙커의 잠금을 해제했다.

벙커는 아직 완성이 덜 된 것인지 그들은 콘크리트나 철골이 그대로 노출된 길을 얼마쯤 지났다. 다시 한 번 잠금 장치가 달린 출입문이 나타났고, 그곳을 지나친 그들은 미요를 회의실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미요가 이 벙커에 도착하는 동안 시간이 지난 탓에 꽤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익숙한 얼굴과 처음 보는 얼굴이 섞여 있었으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복을 입은 꼬맹이었다. 그 꼬맹이는 익숙한 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사와다의 집에 놀러갈 때마다 항상 있던 녀석이었으니까.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챠오스. 오랜만이네, 마츠미 미요.”

꼬맹이, 리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인가? 이삼일 정도 그들을 보지 못했으니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다. 슬슬 내내 꿈처럼 붕 떠 있었던 감각이 현실에 발을 붙이러 내려오는 듯했다. 미요는 비현실이 아니라 비정상인 상황에 있었다. 비정상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몰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 100 퍼센트 불가능한 일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1 퍼센트, 하다못해 0.001 퍼센트의 확률로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마는 것이 세상이다. 네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오자 주위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인사를 건넸다. 리본, 비앙키, 어딘가 익숙한 인상의 남자, 각각 처음 보는 여자와 남자가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미요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는 사람에게만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미요에게 인사를 무시당한 익숙한 인상의 남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왜 저래? 미요는 이유 모를 미소를 외면했다.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무던히 머리를 굴렸다. 사와다를 비롯한 일행이 무사히 귀환한 덕인지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으나, 모두가 경직된 자세로 초조하게 미요를 살피고 있었다. 미요는 보이지 않게 니트 조끼 끝단을 매만지는 척 손을 쥐었다 폈다. 심상치 않다. 익숙한 얼굴이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고작 몇 달의 인연으로 신뢰를 갖기에 미요는 너무 오래 혼자 살아왔고, 아직도 남들과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였다. 큼. 미요가 처음 보는, 양복을 입고 주변에 전자 기기를 잔뜩 가져다 둔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그럼, 일단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그가 기기를 조작하여 뒤편의 화면에 여러 자료를 띄웠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장면에, 미요는 잠시 주변의 분위기조차 잊고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그러나 그 감탄도 오래 가지 않았다. 그 화면에 떠오른 것이 다름 아닌 마츠미 미요, 본인의 사진이었던 탓이었다.

“최근 10년 동안의, 마츠미 씨의 행적에 대해 조사해봤습니다.”

뭐? 네가 뭔데 나를 조사해. 그런 생각이 스친 찰나, 위화감이 들었다. 사진 속의 미요는 미요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린가 싶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미요가 알고 있는, 미요가 찍힌 사진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미모리 중학교 교복이 아닌 다른 교복을 입고 어느 대회에서 상을 받고 있는 모습이나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몇 장 보이다가, 뒤로 갈수록 사진 자료는 점점 적어졌다. 사진을 대신하여 모습을 보인 것은 논문과 연구 자료, 기계 도면 같은 것들이었다.

“대학 시절까지는 투명합니다. 이리에 쇼이치와 같은 경진대회에 출전한 이력이 있고, 백란과 이리에 쇼이치와 대학 동문이라는 걸 제외하면 이상한 점도 없어요. 그러다 갑자기 밀피오레, 당시의 젯소 패밀리에 가입했죠. 그 뒤로는 찾을 수 있는 정보량이 급감합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밀피오레 본부의 시스템을 마츠미 씨가 전담했다는 것뿐입니다.”

“나름 간부였겠군.”

“그랬겠죠.”

처음 보는 남자와 여자가 짧게 말을 주고 받았다. 화면에 띄워진 자료를 보며 침묵하던 여자가 침묵을 깨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온 거지? 그 말에는 사와다가 대답했다. 회의실에 들어온 이후로 사와다는 미요의 곁에 서 있었다.

“밀피오레를 배신했다고 했어.”

“내 말은, 저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믿냐는 말이다.”

“우리 앞에 있는 건 중학생 마츠미 미요야. 참고로 이때의 마츠미 미요는 마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인이다.”

이번에 대답한 것은 리본이었다. 뭔진 몰라도 감싸준 거겠지. 리본의 표정은 변화가 없어서, 늘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여자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리본에게 대꾸할 말도 찾지 못한 듯했다. 잠시 탐색하듯 미요를 훑어본 여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찮은 일이 생긴다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 여자는 미요를 지나쳐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것을 기점으로 해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몇몇 사람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몇몇 사람은 남았다. 미요는 이번에야말로 사와다를 확실히 붙잡았다. 그리고 요구했다. 설명해. 그 짧고 단호한 말에, 사와다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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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라는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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