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신의 종

노맨즈랜드 by f3t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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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슈 더 스탬피드의 거취에 대한 정보가 도박판에 올랐다.

그 목 하나에 붙었던 현상금이 무려 600억 더블 달러! 로스트 줄라이, 피프스 문… 뜬소문처럼 들려오는 행적들은 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다지만, 제 명 깎아먹는 일인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이 척박한 노맨즈랜드에도.

피프스 문으로부터 자그마치 2년. 애초에 인간 태풍의 모든 행적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거니와,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면 자신에게도 인생 대역전 찬스가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꿈을 품은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울프우드가 보기엔 헛된 꿈이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여든 불나방 중 현상금 사냥꾼의 손에 죽은 것이 절반. 그 절반 중에서도 8할은 도박중독자의 손에 명을 달리했다. 마침내 추려져 도박장에 들어선 건, 고작 여섯. 쓰레기 같은 인생, 단 한순간의 스릴에 목숨을 맡긴 정신 나간 것들 다섯, 그리고 기묘한 차림새의 성직자 하나. 그런 여섯이 한 자리에 모여 할 도박이란 대체로 정해져 있는 법이다.

다시 벽에 피가 튄다.

노인은 꼭 손톱을 세워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신 나간 자식. 울프우드가 사납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 시선을 일별한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바닥에 엎어진 남자에게 다가가, 힘 빠진 손에서 리볼버를 뺏어 들었다.

 

“다음은 당신 차례군, 목사님.”

 

정보상이라던 노인은 제법 악취미적인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도박에 참여한 이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게 그것이었다.

첫 차례는 600억 달러의 현상금에 흥미를 가진 현상금 사냥꾼이었다. 전설의 건맨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인간, 특수 시술을 받은 자신의 사이보그 신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을 거라고 떠들어대는 인종이었다. 이 도박을 끝내고 현상금을 향해 달려가겠다며 자신만만하게 방아쇠를 당긴 남자는 피를 뿌리며 절명했다. 사이보그도 관자놀이에 총을 맞으면 죽는군. 울프우드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 다음에 리볼버를 받아 든 자는 도박중독자였다.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얻고 목숨을 내건 도박에 삶을 쏟고 있다는데, 그 탓인지 왼쪽 눈과 오른손이 없었다. 죽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눈을 가늘게 뜨고 웃던 미치광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끌끌 혀를 찼다. 목사 양반, 만약 당신이 살아남는다면 나가서 이 자의 장례라도 치러 주게. 당신이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흉악범은 별 감흥도 없이 창문 밖으로 밀어 버리더니. 울프우드는 대꾸 대신 길게 담배 연기를 뱉었다.

그리고 세 번째. 마침내 리볼버가 울프우드에게로 넘어온다. 낡은 가죽 손잡이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말로는 자긴 운이 좋네 자긴 죽어도 좋네 했어도 관자놀이에 총구가 닿으면 생리적으로 두려운 모양이지. 노인은 울프우드가 총 손잡이를 쥐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그런데 목사가 도박판에 앉아 있어도 되나?”

“이미 둘이나 죽었는데 이제 와서?”

“이거 순 불량 목사였구먼? 그 십자가도 실은 십자가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라던가.”

 

가볍게 건네는 말에 뼈가 있었다. 미카엘의 눈은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꽁꽁 숨겨진 비밀 조직은 아니었다. 그 실체는 추악할지언정 바깥에서는 번듯한 교회나 다름없었으니까. 저 놈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울프우드가 코웃음 쳤다. 정보상이라더니, 길게 휘어진 눈동자가 번들거리는 게 뭐라도 털어 보려는 심산이 가득했다. 굳이 대답해줄 이유는 없지. 내가 죽으면 뜯어 봐라.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역시 신의 종께선 호락호락하지 않군. 그럼 마지막으로 기도할 시간이라도 주지.”

“걱정 마라, 나는 내일 아침에도 신께 기도 올리고 있을 테니까.”

 

담배를 입에 문 채 울프우드는 리볼버를 들어 올렸다.

 

이 도박판 위에서조차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니콜라스 D. 울프우드가 운명과 거리가 먼 인간이건, 미카엘의 눈이 사이비 종교 단체건… 그가 신의 종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교회에서 자라 교단에서 훈련받았다. 신을 향한 그의 믿음은 의심할 바 없다. 설령 미카엘의 눈이 숭배하는 것과 그의 신이 조금은 다른 존재일지라도, 그는 등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기도문을 외는 목사였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을 모으던 순간도,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순간도.

솔직히 좀 불량한 종이라는 자각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마음 깊이 믿음을 품고 기도하기만 되는 일 아닌가. 체팰을 비롯한 그 작자들도 성직자랍시고 떠들고 다니는데 그가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화답하듯 그의 신은 결정적인 순간에 늘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의 종을 고난 속에 내던질지언정 그가 진실로 원하는 일만큼은 이루어지리라는 것처럼, 가깝게는 그 자신의 생존부터 사랑하는 자들의 행복과 안전과 안식까지.

그러니 이 길이 진실로 신의 뜻이라면 거룩하신 아버지께서는 나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리라.

내가 가야만 하는 길로, 내가 찾고자 하는 그 자를 향해.

 

방아쇠는 당겨졌다. 방 안은 여전히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손을 비비던 노인이 눈을 크게 뜨더니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제 차례를 기다리던 세 사람의 표정이 파래졌다가, 하얘졌다가…, 이윽고 안타까울 정도로 절망에 사로잡혔다.

애초에 이런 도박은 승자가 정해진 순간 남은 자들의 숨을 빼앗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아니면 빈 약실이 남지 않은 총을 관자놀이에 대고 쏴대거나. 죽음을 각오하고 도박에 임하는 것과 죽음을 목전에 두는 건 다르다는 건가. 참 우스운 작자들이었다.

그러나 울프우드는 그 꼴을 보면서 리볼버를 내던졌다. 판을 벌인 노인이 즐거워 보이니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자, 너희의 차례가 오기 전에 이 성직자의 손에서 도박이 끝났음은 필히 신의 자비일 터이니 앞으로 이딴 판에는 끼지 말고 정의롭게 살지어다.

어울리지 않는 기도문까지 외었더니 노인은 거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었다. 눈치를 살피던 세 놈은 이내 방문을 박차고 꽁지 빠져라 도망쳤다.

그리고 마침내 희미한 어둠 속에서 울프우드가 판돈을 받는다. 낡아빠진 지도가 가리키는 것은 동쪽의 작은 마을. 때마침 그 마을로 향하는 버스가 있었다.

자, 목적지는 정해졌다. 신께서 인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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