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우

그림자의 파편

노맨즈랜드 by f3t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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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폭풍의 한복판이다. 문짝에 매달려 절박하게 문을 두드려댄 건 분명 밧슈였지만, 집주인이 문을 열어 주지 않는대도 그를 탓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폭풍 예고 같은 거 없었잖아! 밧슈가 비명을 지르면서 굳게 닫힌 문에 거미처럼 달라붙었다.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가 싶더니 우지끈 쿵, 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간판이 바닥에 처박혀 부서지는 소리였다. 밧슈가 그 꼴을 보고 침을 삼키건 말건, 세찬 바람은 금세 그 잔해까지 휩쓸어 버렸다.

물론 이제 와 억울하게 이를 갈아 본대도, 전직 인간 태풍이 진짜 태풍의 일부가 되기 직전이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밧슈 또한 그럴 예정이었다지만 이런 방식은 아닐 줄 알았는데! 옷깃이며 입 안으로 파고드는 모래를 털어낼 생각도 못 한 채, 정말로 이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기를 잠시. 안쪽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이봐요, 잠깐 열 테니까 알아서 굴러 들어와요! 조난 끝에 만난 구조선처럼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대답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모래를 한 움큼 먹을 만큼.

그리고 정말 문이 열렸다. 작은 틈에 불과했지만 잠겨서 꿈쩍도 않던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밧슈는 재빨리 손을 뻗어 그 틈을 약간 벌리고 안쪽으로 몸을 굴렸다. 그가 들어오도록 문손잡이를 붙잡고 버티던 사람이 다시 문을 미는 게 보였고, 밧슈는 기꺼이 그 사람을 도와 다시 문을 닫았다. 격렬한 바람에 덜컹거리던 문이 완전히 닫혀 잠기는 걸 확인하고서야 문에 기대 앉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주점 안쪽은 시끌시끌했다. 거나하게 술을 한잔씩 걸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조난자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야기는 제법 우스운 안줏거리였던 모양이었다. 밧슈가 가게 안쪽으로 굴러들어오는 모습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바닥에 주저앉자 일제히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날씨에 밖을 돌아다닌다니,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군. 웃는 얼굴들 사이로 누런 앞치마를 둘러멘 거구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 모래는 그 앞에서 다 털고, 기왕 목숨 건진 김에 가게 안으로 들어온 모래도 좀 쓸어 놓으쇼. 그 옆에 있는 우리 종업원한테 감사하는 것도 잊지 말고! 제 발로 이 태풍 속을 걸어 다니는 정신 나간 놈마저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고 소리 지른 게 저 녀석이니까.

 

다시 와하하 한 차례 웃음이 터졌다. 메이린이 바보 한 명 살렸구먼!

밧슈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제야 그를 가게 안으로 들여보낸 사람을 살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이고 그를 내려다보는 건 짧은 머리의 소녀였다. 밧슈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옷을 툭툭 털고는, 한발 늦은 감사를 전했다.

 

―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 아뇨, 괜찮아요. 아침에 가게 앞에서 송장 치우긴 싫어서 열어 드린 거니까요. 감사는 나중에 주문할 때 팁으로 받을게요.

 

당연한 말이었다. 밧슈는 고개를 주억이다가, 소녀가 건네는 실내용 빗자루를 받아들였다. 물론 받아 들기만 했다. 그는 총신 위에 올린 계란이나 와인잔 깨뜨리지 않기, 다트 던지기, 달리기, 곡괭이질이면 몰라도 빗자루질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한때 그에게 붙었던 별명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밧슈가 청소를 마치고 자리를 잡았을 때는 늦은 시간이었다. 손님들도 대체로 각자의 방으로 올라가고,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는 몇 명과 밧슈, 아까의 종업원 정도만이 일 층에 남아 자리를 지켰다. 주문을 해도 되는 건가.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눈동자를 굴리고 있으니 눈치 빠른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 아까 말한 거 안 잊으셨죠? 팁 얘기였다. 밧슈는 능청스레 메뉴판을 받아 들면서 그럼, 하고 대꾸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만 목숨값으로는 얼마를 못 줄까 하는 심정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내온 종업원이 짓궂게 그의 수배지를 내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기분 좋게 식사를 시작하려던 밧슈의 손에서 포크가 댕댕그랑 경쾌하게 떨어져 내렸다. 종업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 뭘 그렇게 놀라요,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사진도 박혀 있는데!

― 아니, 그게 아니라!

― 모르는 사람이라고 잡아뗄 생각은 아니죠? 하긴, 제 발로 태풍 속을 걸어 다니던 얼간이가 무려 밧슈 으앤히흐라니…!

― 쉿, 쉿! 제발!

 

종업원이 어깨를 으쓱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은 밧슈가 힘없이 팔을 늘어뜨렸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매번 이렇게 되는 걸까. 종업원은 그 모습을 보고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이제 가게 안에 남은 건 종업원 하나, 밧슈, 그리고 술기운에 꾸벅꾸벅 조는 술주정뱅이 셋이 전부였다. 낡은 라디오에서 뻗어 나오는 재즈 소리만이 가게에 조용히 울렸다. 밧슈는 마뜩찮은 얼굴로 종업원을 살피다가, 떨어뜨린 포크를 다시 집어 들고는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 걱정 마세요. 신고할 생각도 없고… 이건 비밀이지만, 사실 저도 지명수배자 신세인 건 똑같거든요.

― ……너도? 어쩌다가?

― 좀 사정이 긴데… 고리대금업자의 외동아들을 날려버려서요. 전신화상에 여기저기 골절로 병원 신세를 졌다던데 아직 살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전 메이린이라고 해요.

 

밧슈는 잠깐 그의 앞에 내밀어진 메이린의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걸 마주 잡고 가볍게 악수했다. 그 이름 말고, 엘릭스라고 불러. 씩 웃은 메이린이 밧슈의 수배지를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감췄다. 방주 사건이 끝난 지도 몇 년, 이제 저 수배지도 찍히지 않게 된 지 제법 되었다고 전해 들었던 것 같은데… 의문스러움을 담아 곁눈질하고 있으니 메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 그냥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거예요. 600억 달러라는 사상 최고액의 현상금에는 꽤 관심이 있었거든요.

― 지금 날 잡아 넘겨도 그 돈은 못 받는 거 알지?

― 이 아저씨가 진짜. 신고할 생각 없다니까요. 그냥 팁 대신에 이야기 좀 들을까 해서 그랬어요. 아까 당신을 그대로 밖에 둘 수는 없다고 억지를 부린 덕분에, 오늘 밤엔 마스터 대신 가게를 지키게 돼서요. 어차피 당신도 밤새도록 여기 머물 거죠? 잠들지 않게 말 상대나 좀 해줘요.

― 수배자의 얘기 들어서 어디다 쓴다고.

― 그날, 저도 옥토번에 있었거든요. 그래서요. 정 그러면 인생 선배로서 조언 몇 마디 해준다고 쳐요. 목숨값으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밧슈의 손안에서 달그락거리던 식기가 멈췄다. 메이린은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밧슈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더듬었다. 듣고 보니 어쩐지… 익숙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그 짧은 순간 플랜트를 통해 연결되었던 수많은 사람 전부를 기억하는 게 불가능했겠지만 밧슈는 아니었다. 짧은 순간이었고,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 희미한 연결이었을지언정 그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남아 있었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밧슈였다. 그래, 그 정도라면야.

메이린은 꽤 좋은 대화 상대였다. 그는 세심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솔직하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았다. 밧슈는 그런 사람과의 대화가 본심을 숨기느라 급급한 사람과의 대화보다 즐겁고 수월하다는 걸 알았다. 밧슈는 묻는 말엔 성의껏 대답을 늘어놓았고 들을 땐 귀를 기울여 들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태풍을 헤치고 걸어온 피로가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애초에 밤을 지새고, 태풍이 잦아들어 방이 나면 잠시 쉬었다 갈 예정이었던 밧슈는 상관없었지만… 메이린은 아닐 텐데. 내일도 일해야 하는데 괜히 밤을 새우게 한 건 아닐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걱정대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까닭도 있었다. 늘어놓는 이야기가 느려졌다가, 다시 이어졌다가 했다. 결국 길게 하품한 메이린이 눈가를 눌렀다.

 

― 으, 피곤해. 그래서, 그냥 별 얘기 아니었어요. 그때 절 도와줬던 목사님을 찾고 싶다는 거?

― 감사 인사라도 전하고 싶어서?

― 뭐, 그것도 그렇고… 그 사람, 헤어질 때 저 같은 사람은 금방 죽을 거라고 악담했었거든요. 그 사람 덕분에 목숨을 건지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비관적일 필요가 있나. 게다가 아직 살아 있잖아요. 그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한 거죠. 덕분에 수배자가 되긴 했어도 은인이니까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말하긴 했어도 그 은인의 행방이란 게 제법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다. 피곤한 기색으로도 밧슈의 표정을 살피는 게 그랬고, 구태여 말이 길어지는 것도 인간 태풍이 그의 행방을 알지는 않을까 하는 희망이겠지. 옥토번에서 그를 봤다면 그가 긴 세월 이 별을 떠돌아다녔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테니까. 밧슈는 대꾸 없이 매끄럽게 웃다가 문득 제안했다.

 

― 피곤해 보이는데 잠깐 눈이라도 붙이는 건 어때? 문제가 생기면 바로 깨워줄게.

― …에이, 그래도 손님인데. 엘릭스 씨는 안 피곤하세요? 여기까지 태풍을 뚫고 걸어왔으면서.

― 일일 아르바이트라고 쳐. 사실 나도 조금 피곤하긴 한데 잠들 정도는 아니라서. 그리고 난 내일도 여기서 근무할 필요가 없거든.

 

어깨를 으쓱였더니 눈치를 살피던 메이린이 다시 하품을 했다. 눈꼬리 끝에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리고, 결국 현실과 타협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운터 안쪽에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꼭 깨우셔야 해요. 거듭 신신당부하는 모습에 밧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를 끌어다 앉는 소리가 나더니, 곧 조용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밧슈는 너른 공간에 홀로 깨어 존재한다. 조금 전까지 재즈 선율이 흘러나오던 낡은 라디오에서는 이제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재생되고 있었다. 밧슈도 아는 노래였다. 노맨즈랜드로 이주한 지구 출신의 괴짜 피아니스트의 연주랬던가. 얼마 전 방문했던 홈에서 팔자 좋은 녀석이니, 그래도 노래는 좋니 하는 이야기가 떠돌았던 걸 기억했다. 고요한 피아노 선율이 한 겹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를 덮으며 흘렀다.

등받이에 몸을 기댄 밧슈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다. 선글라스는 쓰지 않고 있었으므로, 오래된 형광등 빛이 거칠 것 없이 눈 위로 쏟아졌다. 눈을 감아도 거무스름한 전등의 형상이 눈꺼풀 밑에 남도록 밝게.

일부러 이름은 묻지 않았지만 메이린이 찾는 은인이 누구인지는 짐작이 갔다. 밧슈는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드문드문 이어진 메이린의 이야기였지만, 그 조각들만으로도 누군지 훤히 그려질 만큼. 방주 사건으로부터 대략 3년 전의 일이랬으니 시기상으로도 맞았다. 오래 전의 동행에서 밧슈를 찾는 2년간 뭘 하고 다녔는지에 대한 답도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의 동행인은 대체로 목사 일로 벌어먹고 지냈다는 둥 간략하게 말을 줄였지만 아주 가끔은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과거를 회고하고는 했다.

메이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가 그렇게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파편화되어 있어서 기억해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메이린에 대해서는 버려진 마을에서 들었었는데, 뭐라더라. 터프한 아가씨를 돌봐 준 적이 있다던가. 나무 새 깎는 실력이 형편없다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이렇게 만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캐물어 볼 걸 그랬다. 밧슈가 쓰게 웃으면서 잔에 남은 술을 홀짝였다. 씁쓰름한 향이 뜨겁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익숙한 맛이다.

메이린의 이야기 속의 그는 고작해야 하룻밤에 불과했는데도 밧슈에겐 사뭇 낯선 모습이었다. 그는 확실히 밧슈의 앞에서도 기도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목사였지만 그뿐이었다. 순응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울프우드라니….

아니다, 2년 전 동행을 시작했을 무렵의 그와는 비슷한 것 같기도. 그때의 그는 밧슈가 아는 누구보다도 가장 삶에 대한 열망이 강한 남자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가 자신의 미간에 총구를 들이대고 했던 말을 잊지 못한 걸 생각하면 정작 심약한 게 누군지는 더 논쟁이 필요한 주제긴 하겠지만 말이다. 오랜 기억을 떠올리면서 밧슈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대로였던 것 같고. 본인은 한바탕 맞고 온 주제에, 뭐야 그게. 메이린이 이야기하면서 투덜거리던 걸 생각하면서 밧슈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늘 그랬다. 결국 방주에 갇힌 밧슈를 구하러 온 것도 그랬고, 그 일이 해결되자마자 그 교회로 돌아간 것도 그렇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리비오에게 한 방 먹여 주겠다고 눈에 불을 켰던 것도 그렇고. 그 소파에 기대앉아서 하던 말도 그렇고…

웃고 있는 모습이 낫다니, 그거 진짜 너무한 말이었던 거 알지. 그래 놓고 나보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니. 애써 가벼운 어조를 가장해 중얼거려도 목이 메이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가슴 언저리가 짓눌리듯이 아픈 것도 기분 탓은 아니겠지. 결국 밧슈가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다문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쿵 쿵 빠르게 뛰는 것은 내가 모르는 널 만났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의 말로 전해 듣는 널, 내가 새롭게 기억할 수 있는 널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런 것도 제법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지 못하는 네 파편에 대해 찾아다니는 것도. 굳이 멀리 갈 필요는 없을 테다. 태풍이 멎고 이스트 디셈버에 도착하면, 이번에야말로 리비오나 다른 아이들에게 그들의 형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그들이 내게 선뜻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언젠가 널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네 모습에 대해 들려주리라. 부서진 거울처럼 온 세상에 흩뿌려진 너라는 사람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찾아다녔노라고 생색도 좀 내고. 굳게 결심하면서 밧슈는 몇 가지 단어를 되뇐다.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장소, 충분한 식사, 평온한 나날. …멋진 새장. 틈새를 메워주는 삶. 주문처럼 입 안을 감도는 말들을.

 

 

버스는 주점 앞에 멈춰 섰다. 메이린은 지난밤 대신 불침번을 서준 감사를 전하면서 주점 앞까지 배웅하러 나와 줬다. 가게 안에 손님이 별로 없었으므로 가능한 이야기였다.

밧슈는 값을 치르고 버스의 문에 올라서서는, 그제야 잊은 걸 떠올렸다는 듯 돌아섰다. 아, 맞다. 메이린. 그를 배웅하고 가게로 돌아가려던 메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 네?

― 어제 네가 말한 사람 말인데, 이스트 디셈버 외곽의 교회를 찾아가서 물으면 행방을 알 수 있을 거야.

― …네? 당신 그게 누군지 알아요? 그런데 그걸 왜 이제 와서… 잠깐, 잠깐! 기다려요!

 

메이린이 경악하건 말건 버스의 문은 밧슈의 등 뒤에서 매정히 닫힌다. 밧슈는 웃는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살랑살랑 손만 흔들었다. 먼지 낀 창문 너머로 메이린이 달리는 버스를 몇 걸음 쫓아오다가 이내 멈춰 서는 게 보였다. 밧슈는 그 모습이 아주 작아져서 사라질 때까지, 훗날 진실을 안 그가 밧슈를 너무 원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밧슈는 느린 걸음으로 창가 쪽의 좌석에 앉았다. 단단한 가죽 소파에 등을 묻는다. 품에서 꺼낸 선글라스를 습관처럼 눌러 썼다. 색색의 세상이 순식간에 노랗고 붉은 렌즈 너머로 저문다.

그야 밧슈도 그가 정말 어디 있는지는 모르고, 만나지 못한 지 꽤 오래 된 데다… 이제야 그의 파편을 찾아다니러 가는 참이었으니.

그렇지? 울프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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