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여름
유료

피한(避寒)

준호한나

by 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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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른 앤솔로지 <행복한나를>에 수록된 "지나간 여름"의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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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가 무탈하게 지나가고 있음에 안도한다.


 언제부터인지 제 자리에 멈춰 서서 항상 같은 시간을 바라다보는 것은 조금 속이 쓰렸다. 오늘보다 미성숙했던 시간의 자리가 여태 남아있는 만큼 조금씩 데이고 화상을 입었다. 겨우 스물 몇 살이나 먹은 대학생들 여럿이 모여 할 이야기는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았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통로 벽에 등을 딱 붙여가며 좁디좁은 술집 의자에 되는대로 들어가 앉아 흥청망청 소주나 막걸리를 따라서 넘기면 취기에 올랐던 덜 떨어진 흥은 금세 꺼져버린다. 무엇 에든지 피가 끓고 설레는 마음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살근거린다. 이야깃거리가 바닥이 나면 조심스럽게 저마다 하나둘 속에 남겨 둔 이름을 꺼내어 보았다가 어긋나버린 연정을 씹는 것으로 변질하였다. 개중에는 허세가 다량으로 쏟아 부어져 있어 야유받기도 했다.


 저절로 할 말이 사라져 입을 다물고 다른 이들을 따라 천천히 술잔을 기울여봐도 도통 취하지 않는 머리통이 매번 지루하다. 허름한 실내 귀퉁이에는 술집의 기름때가 앉은 작은 브라운관으로 시기를 놓쳐버린 유행가 비디오 몇 편이 열악한 화질로 지나가고 대학 농구 중계가 흘러나왔다. 코트를 밀어내는 공의 탄성이나 한 목소리인 듯 외치는 응원 구호가 반가웠지만, 술독에 빠진 동기가 음률이 엉망진창 튀어 나가는 대로 여가수의 노래를 따라 고함을 지르는 탓에 얄팍한 고립감마저 날아갔다. 경기 해설을 새겨 들어 보기도 전에 귀청이 떨어지는 게 먼저 일 듯싶었다. 유리잔 표면에 맺힌 이슬만 맥없이 훑어보다 공기에도 알코올의 쓰디 쓴 냄새가 배어 있어 답답함에 겉옷을 들고 일어선다. 안주 또 나올 텐데 어디를 가냐며 채근하는 소리에는 건성으로 담뱃값을 흔들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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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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