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사제

공방의 어떤 날, 축제에서

요즘 주류 박람회가 많이 열리죠

4273자 / 플롯 문제로 이 이상 퇴고해도 나아지질 않아서 방생.


"으음~? 작년보다 참가자가 줄었는데?"

"...이게요?"

오가는 사람들에게 살짝살짝 치이던 티스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블랑이 그렇다고 단언했지만, 티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작년에는 과일도 곡식도 작황이 좋지 않았으니까, 그 여파일까?"

"그렇지 않을까요. 수확량이 줄면 주조에 쓸 분량부터 줄이니까요."

두 사제는 늘어선 가판대들을 구경하며 잡담을 이어나갔다. 오늘 공방 스테파노티스는 오래간만의 휴점. 그리고 공방을 운영하는 블랑과 티스는 주류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마을로 나온 참이다. 블랑의 설명에 따르면 여러 해 동안 반복해서 열리는 동안 유명해져서, 이제는 대륙 끝에서까지 애주가들이 찾아오는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승님은 왜 참가하지 않으셨나요? 이만한 축제면 거래처를 늘리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응~. 그건 그렇긴 한데~. 축제잖아? 느긋하게 즐기기도 해야지."

평소처럼 태평한 대답이다. 티스가 대놓고 한숨을 쉴 때, 누군가가 블랑을 불러세웠다.

"여어, 블랑. 오랜만이네!"

"응~. 오랜만이네~. 올해도 참가했구나?"

"매년 참가했는데 빠질 수 없지! 그런데, 네가 다른 사람이랑 함께 참가한 건 처음 같은데?"

"내 제자야~. 티스~."

"안녕하세요."

지인인 듯, 친근하게 말을 건 상대가 티스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 바른 친구네! 아, 이번에 새로 개발한 게 있는데..."

가판대로 잠시 돌아갔던 블랑의 지인은, 곧 돌아와 시음 잔을 한 잔씩 건넸다. 티스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블랑은 다들 이걸 노리고 오는 거니 편하게 마셔도 괜찮다고 했다. 블랑의 지인도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맛있네요, 이거."

"응. 마음에 든다~. 몇 년 전부터 심기 시작했다는 은포도 맞아?"

"오, 역시 바로 맞추네. 작년부터 먹을만한 열매가 달리기 시작해서, 올해는 술에도 좀 써봤는데..."

대화에 끼기도 뭐해서 티스는 받은 술잔만 홀짝거렸다. 그걸 본 블랑의 지인은 잘 마신다고 좋아하며 몇 잔 더 건네더니, 아예 술 한 병을 안겨주었다.

"그거 마음에 들어?"

"네. 달지도 텁텁하지도 않네요."

"잘됐네~. 아, 저쪽에도 가보자."

이번에도 블랑을 반겨주는 가판대 주인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이번에 출품한 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블랑 옆에서 티스는 건네받은 시음 잔을 홀짝였다.

"이건... 노란 쑥인가요? 레몬이랑."

"어머나! 맞춘 사람은 처음이네! 어떻게 안 거야?"

"티스는 약초에 해박하거든~."

활짝 웃는 블랑 옆에서 티스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직접적인 칭찬이 쑥스러운 눈치였다.

"역시! 이번에 조합해본 약주인데 쓴맛을 줄이려고 고심해 봤어. 어떤 것 같아?"

"부드러워서 마시기 편해요."

"그러게~. 약초 향이 좋네."

"고민한 보람이 있네. 다음에는 여기서 셰이드 잎 대신 실란 열매를 써볼까 하는데 어떨까?"

"그럼 떫은맛이 강해지지 않을까요? 실란 열매는 처음에만 단맛이 나니까요."

"그럼 키이 꿀에 절였다 넣으면..."

갑자기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티스가 정신없이 대답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관심 있게 듣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버벅거리는 티스를 본 가판대 주인이 깔깔 웃고, 블랑은 어째서인지 우쭐해지고 있었다.

"아하, 아하하하! 블랑 씨, 제자가 귀엽고 유능하네! 좋겠어!"

"그러엄~. 티스는 유능하고 성실하거든."

"그만 물어볼 테니까, 한 잔씩 더 마셔!"

엉겁결에 또 받은 잔을 한입에 털어 넣은 티스는 블랑을 반쯤 잡아끌며 자리를 떴다. 느긋하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건넨 블랑이 가고 싶은 방향을 가리켰다.

또다. 티스는 속으로 탄식하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대화를 반쯤 흘려들었다. 아무래도 블랑의 지인은 도처에 깔린 모양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가판대 세 개를 지나치면 그중 하나에선 꼭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받은 잔에서는 사과 향이 솔솔 올라왔다.

"이건 그냥 사과로 먹으면 별로겠어."

"덕분에 저는 좋지요. 안 팔린 건 아내가 전부 제게 주거든요. 올해도 500병 정도 나왔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거야?"

"아내는 매년 의기소침해하지만... 품종을 바꿀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리니까요. 제 취미가 술 담그기라서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이 가판대의 주인은 정식 공방이 아니라 취미로 작게 술을 담그는 사람인 모양이다. 가족들의 안부가 오가고, 안주로 먹으라며 사과 한 알도 받았다(들은 대로 묘하게 퍼석한 게, 그냥 먹기는 애매한 사과였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사과주 가판대 주인이 티스를 돌아봤다.

"이런, 미안합니다. 오랜만이라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제자 분이 지루하실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이 사과주, 맛있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블랑 씨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요."

"그렇지 않아~. 잘 만든 사과주인걸."

시음잔 한 잔을 더 받고, 작별 인사를 나누자마자 다른 곳에서 또 붙들렸다. 티스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건네받은 벌꿀 주를 홀짝였다.


효과적으로 말벌 내쫓는 법에 관해 토론하던 블랑이 문득 티스를 돌아봤다.

"어라? 티스. 취했어?"

"...괜찮습니다."

"여기서 안 취한 사람들은 가게 주인들뿐 밖에 없잖나?"

블랑의 빈 잔을 채워주던 벌꿀 주 가판대 주인이 한 마디 얹었다. 그런가? 싶어 블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후도 중반에 접어들어서인지, 다들 얼굴이 벌게진 채 돌아다니고 있긴 했다.

"거기다 블랑 군이랑 함께 다니면 시음용 술만 마셔도 과음하게 될 텐데? 안 취하는 블랑 군이 특이한 거라네. 자네 대체 주량이 얼마나 되는 건가?"

"으음~. 취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이런이런. 티스 군이 고생하겠군그래. 물 필요한가, 티스 군?"

"...네."

"취한 거 맞지 않아, 티스?"

"...네."

"조금 전엔 안 취했다고 하지 않았어?"

"...네."

"그럼 취한 거야?"

"...네."

대답이 반박자 느렸다. 벌꿀 주 가판대 주인이 물을 한 병 쥐여주었지만, 그것도 들고만 있을 뿐이었다. 잠시 티스를 들여다보던 블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때 버리라고 한 나무토막 돌아갈 때 도로 주워가도 돼?"

"...네."

"어라. 아까 사지 말라고 한 사과꽃 과자 한 박스 사도 돼?"

"...네."

"어어? 티스가 고장 났어!"

멍하니 서 있는 티스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봐도 별 반응이 없다. 당황한 블랑이 일단 물부터 먹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블랑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어, 블랑 맞았네! 올해도 왔구나. 우리 쪽엔 왜 안 왔어?"

"뒤쪽부터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어~. 이번엔 어디에 자리를 받았는데?"

"아아, 반대 방향이구나. 우리는 저쪽. 조금 있다 와야 해! 올해도 술이 맛있게 빚어졌거든."

"응~ 이따 봐~."

체감상으로는 3분 정도였나. 인사를 나누고 뒤를 돈 블랑은 티스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 어어?"

주변을 돌아봐도 하얀 머리는 보이질 않았다. 블랑은 옆에 있던 벌꿀 주 가판대 주인을 붙들었다.

"티스가 없어졌어! 어디로 갔는지 봤어?"

"미안하군. 손님이 오셔서 눈을 떼고 있었네."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또 손님이 찾아오고, 블랑에게도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 이거 시음해 볼 수 있을까요?"

"블랑 아냐! 오랜만이야!"

직감이 알렸다. 찾으려면 오래 걸리겠구나.

"아, 그 사람이 티스야? 아까 저쪽에서 땅콩을... 꼭 생땅콩이어야 한다고 하던데. 아무튼 한 자루 사더니 광장 쪽으로 갔어."

해가 조금 기운 뒤에야 블랑은 티스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안주류를 파는 구역 근처에 자리한 지인이 티스를 알아보았다. 헐레벌떡 달려간 광장은 인파가 조금 한산한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한쪽에만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저기이~."

"엄마! 저 하얀색이랑 분홍색 머리 오빠는 공주님이야?"

"그냥 먹을걸 줘서 좋아하는 게 아닐까?"

웃음기어린 아이 엄마의 대답에 블랑은 아이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쪽인 것 같았다. 공연 같은 게 열린 건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작게 새 소리와 날개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이~. 저 사람 일행인데~. 잠시만~."

광장 벤치, 벤치 주변의 땅, 그리고 근처의 나무 위까지 새가 가득했다. 새들은 정신없이 땅콩을 주워먹고 있었고, 벤치에 앉은 티스는 새들에게 둘러싸인 채 졸다, 땅콩을 뿌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옆에 서 있던 사람이 대답을 해 줬다.

"저 사람이 앉아서 땅콩을 뿌리니까 새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던데? 무슨 재주라도 있나."

"그건 아닐걸..."

새 떼에 둘러싸여 졸고 있는 티스는 꽤 안락해 보였다. 평소에는 별로 안 좋아하더니 지금은 편해 보이네... 라고 중얼거린 블랑은 저걸 어떻게 깨워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티스의 머리 위에 앉은 새는 구룩구룩 소리를 내며 저녁 시간이 다가옴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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