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녀의 운명
운명 합작 백업
타탁, 타닥. ……타닥, 타타닥.
노트북의 납작한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이어지다 끊기고, 다시 이어지다 끊기길 반복하며 두 사람만 있는 거대하고도 호화로운 집무실 안을 맴돌았다.
방주인인 에르아는 도대체 이게 뭐 하자는 일인가 싶었다. 30분 전쯤에 쳐들어온 동생은 옆구리에 하늘색 케이스를 씌운 노트북을 낀 채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이렇게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 나 작업 좀 할게!
왜 멀쩡한 자기 집이 4채나 있는데 전부 버려두고 여기에 기어들어 와서 저러는 걸까? 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굴렸다. 타닥, 간헐적으로 들리는 자판 소리가 에르아를 한층 더 짜증 나게 했다. 아니, 대체 왜? 에르아는 아까 실패한 내쫓기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고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거대한 시간의 집무실 안을 가로질러가 노트북을 펼치고는 낑낑거리며 앉아있는 첫째 동생, 루예나 앞에 제 정무용 책상을 두고 마주 섰다.
“야,”
저도 알고 있는 제 더러운 성질머리를 꾹꾹 눌러 참으며 던지듯 불러보았으나 상대는 노트북에 코를 박다시피 들여다보며 낑낑거릴 뿐,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결국, 에르아는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노트북을 획 뺏어들,
“아, 니 집 가서 하라니까?!”
려고 했으나 노트북은 너무 무거웠다. 와, 시발. 아령이냐? 너 이런 걸로 운동하냐? 에르아는 욕을 쏟아내며 화면을 보았다.
노트북이 눈앞에서 사라진 순간, 번개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이 그의 언니인 에르아임을 확인하더니, 그 긴 은빛 폭포수와도 같은 머리칼을 한 번 쓸어 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엥?”
에르아가 언뜻 본 화면을 보고 의문을 표하려는 순간, 루예나가 순식간에 제 것을 다시 뺏어 들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깐이었지만 분명 똑똑히 보았다. 화면 안에서 새하얗게 켜져 있는 문서 프로그램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아, 집에선 집중을 못 하니까 방 좀 빌리자고 했잖아. 비싼 건데 좀 소중히 다뤄줄래?”
평소답지 않게 얌전한 반응을 보이며 루예나는 다시 언니의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동생의 말을 듣기나 한 건지, 에르아는 이상하다는 듯 다른 내용을 말했다.
“아니, 아니. 아무것도 없잖아? 너 막 작업은 사실 핑계고 그런 거?”
뭐래? 루예나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제 상대를 올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본인도 말해놓고는 대답이 부실하다고 느낀 모양인지 이내 대답을 덧붙였지만.
“생각이 안 나서. 계속 썼다 지우는 중이야.”
“뭐를?”
“그런 게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상황은 아까 전으로 돌아갔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세상모르고 씨름하는 루예나와, 그걸 못마땅하게 내려다보는 에르아.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빈 화면만을 노려보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그는 어쩐지 상대를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완벽한 미래 같은 거라도 쓰냐?”
“……………어?”
어? 한 박, 아니 세 박은 늦는 저 반응에, 덜떨어진 것 같아 보이는 표정. 반응이 이상해서 들여다본 동생의 얼굴은 이상하게 구겨진 모양으로 놀라있었다.
“진짜야……?”
이, 이렇게 대놓고? 진짜로?
뭐, 미래라는 것은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 언제나 에르아는 생각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정말로. 누가 알았겠어, 엉망인 집안을 9살에 가출한 아이가 신전을 집으로 삼고 커피나 홀짝이며 여유를 만끽할 줄. 이런 걸 두고 인생 역전했다고 하던가? 딱히 인(人)생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사실 루예나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가 직접 우주의 모든 이야기가 저 너머의 어떤 세계에서부터 시작된 창작물이며 루예나 본인은 세계의 주인의 대리자 같은 거라는 걸 알려준 직후, 그 사실을 강하게 부정하기도 하고 화도 내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나 결국 생각 끝에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유용하겠다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저 애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이야기는 결국 전부 현실이 될 것이다. 에르아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치느냐일 뿐,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정확히는, 미래를 위해… 밑 작업 같은 걸 하는 건데……”
루예나는 머뭇거리다 한숨을 깊게 내뱉고는 말을 하다, 말았다. 그게 뭐에 관한 작업이냐 물어봐도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뗐다 닫는 것을 반복했다.
성격대로 바로 냅다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그보다는 궁금증이 더 컸기에 에르아는 얄팍한 인내심으로 성질 머리를 다시 한 번 꾹꾹 눌러 참아가며 루예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아는 한 자신의 동생은 재촉하면 더 답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평소에는 아주 신난다는 얼굴로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그렇게도 잘하던 애가, 고민으로 머뭇거리며 설명을 할지 말지를 재고 있는 모습은 꽤 색달랐다. 에르아는 한 손가락으로 의자를 부려 바로 제 뒤까지 대령했다.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다리는 우아하게 꼬고, 한 손으로 능숙하게 핸드폰을 하며 다음으로 이어질 동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뭐… 좋아,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말… 하면 괜찮겠지…?”
마침내 입을 뗀 루예나는 그 말을 시작으로 노트북 자판 위에 올려져 있는 손가락을 빠르게 놀리며 동시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리키는 그냥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삶이 불우한 그런 아이 중 하나.
다섯 살에 연고도 없는 천애 고아가 되어 이리저리 구른 끝에 도적단에서 허드렛일이나 하게 된, 그런 불우한 아이.
기억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아이는 이미 감옥 같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끌려 나와서 체인 용병단이라고 하는 곳에 들어왔지만, 실상은 그냥 용병단의 탈을 쓴 도적단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 곳이 아이에게 알려줄 것이라곤 지저분한 잔재주,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 중 거친 것들뿐이었으니, 때로는 시키는 대로, 때로는 자의로, 좀도둑질하고 남는 시간에는 온통 용병단을 뒷바라지하는 일이 삶의 전부였다. 아이는 그렇게 컸다. 한창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배우고 느껴도 모자랄 시기에 구박받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을 좀먹는 삶. 목표를 찾기는커녕, 스스로 원하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는 삶.
리키는 8살에 처음으로 우주를 나갔다. 리키가 살던 세계는 우주와 연결된 차원이었기 때문에 우주인, 외계인 등의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리키가 사는 차원에 출입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했기에 리키가 있던 체인 용병단은 큰일을 맡을 때면 우주로 나가곤 했다.
리키가 처음 본 우주의 모습은 새까맣지만, 또 마냥 그런 것은 아닌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처음 보고한 생각은 저 별은 다른 빛나는 사람들이고 자신은 저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라는 것이었다. 분명 8살짜리가 할 법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리키는 그런 걸 몰랐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고, 리키는 처음 보는 온갖 풍경에 계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연령대의 아이라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용병단에는 그런 걸 이해하고 기다려 줄 만큼 멀쩡하거나 착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만약 그날, 주변에 정신이 팔려 일행을 자꾸 놓치는 일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그날, 부두목이 그렇게 못 따라올 거면 그냥 저 가게에 앉아서 얌전히 단 거나 처먹으며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돈을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그날, 광장을 두리번거리는 그 멍청한 얼굴에 말을 걸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청 대단한 머리 모양의 이상한 아이. 그 애의 멍청한 얼굴을 보니 그저 골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리키는 정말 그뿐이었는데, 같이 있던 그 순간은 점차 이제까지 겪은 것 중 제일 즐거운 순간으로 바뀌어 갔다. 이상하네, 그냥 처음 가는 곳으로 데려가서 좀 골려주고 그렇게 장난 좀 치다가 어떻게든 돌려보내 주려고 했는데… 왜, 뭘 해도 괜찮은 것 같지? 왜, 뭘 해도 다……
리키는 그 감정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은 그에게 있어선 신세계의 향연과도 같았다. 무엇을 해도 어떻게든 되는 천부적인 운, 그런 운을 책임져줄 눈에 드러나는 힘의 재능, 그리고 힘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을 해결하는 금전의 여유, 그러면서도 어딘가 초탈한 것 같은 사고방식. 권력자의 모습이 되, 권력자가 아닌 모습.
결국, 빈민에 가까운 서민인 리키도 용병단의 영향을 받긴 받았기 때문에 은연중 권력자를 싫어하는 사고가 조금 있었다. 그 생각이 머리에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 만난 그 ‘멍청한 얼굴’의 아이가 리키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꾼 것이었다. 같이 지내는 동안 리키는 정말 행복했지만, 아이가 외지의 사람임을 일깨워주듯 그 사람의 일행을 만난 순간 리키는 이 행복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싫어, 이대로 보내버리면 혼자여야 하잖아. 이젠 용병단도 없어, 갈 곳도 없는데. 그래서 리키는 전보다 더 힘들고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줄 알았다. 그 사람의 일행 중 한 명이, ‘네가 믿음을 가지고 산다면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희망찬 말, 하지만 정말로 이루려면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할 만큼 거대한 말. 하지만 이제는 버릴 것조차 남지 않았는데, 도전해봐도 밑져야 본전 아니겠나. 소녀는 결심했다. 무엇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다시 우주에서 재회하겠노라고.
그렇게 리키는 금세 혼자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그 멍청이랑 함께할 때 생겼던 돈을 본인이 가지게 되어서 잠깐은 먹고 살 걱정이 없게 되었다. 좋은 일이었으나 그 정도의 돈이나 이제껏 해온 좀도둑질이 미래를 책임져주진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리키는 앞날을 연명하기 위해 일을 찾아 나섰다.
수도를 떠돌던 리키는 겨우겨우 어떤 집안의 하녀로 취직했다. 자꾸만 뻗치는 머리는 물로 내리고, 예의 없다고 지적받는 모양은 날쌘 움직임으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주로 나가려면 일단 돈이 필요했으니까.
아이의 인생은 10살에 뒤바뀌었다.
우주에서부터 먼 길을 찾아와 저택까지 온 어린 손님에게 배정된 리키는 금세 손님과 친해졌다. 또래의 여자아이와는 정말 말이 잘 통했고 둘은 금세 좋은 친구가 되었다. 저택의 사용인 중에서도 유난히 어렸던 리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고, 또 다른 헤어짐을 마주하게 되자 크게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 손님은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그러면 같이 가지 않겠냐, 는 말을 해준 손님에게 리키는 그 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답했다. 정확히는 할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 따라갈래요. 소녀는 운명이 준 기회를 첫 번째 기회를 낚아챘다.
하녀로 만났으니 데려가는 것도 친한 하녀를 두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틀렸다. 무엇보다도, 같이 가자고 해준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된 비서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우주에서 온 손님이니 냉큼 낚아챈 기회였지만 속사정까지 생각해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사실 그게 정상이지. 10살이면 그런 건 잘 몰라도 된다.
보통 이런 나이에 험한 일을 겪은 아이들은 빨리 어른스러워지기 마련이었고 리키도 그중 하나인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워낙 활발한 성격을 끝까지 억누를 수는 없었으나 어떻게든 리키는 착한 척, 말 잘 듣는 서민 아이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자신을 데려온 실리아도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하녀로 쓰기 위해 자길 데려온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우린 오늘부터 친구인 걸!”
뭔가 이상한데.
“사실 진짜 친구는 될 수 없을지도 몰라.”
거 봐, 그럴 줄 알았지.
“왜냐하면… 내가 너를 후원해주는 식으로 우린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거거든. 이제부턴 나랑 똑같이 생활하는 거야. 알겠지?”
아니야, 역시 이상해.
“나랑 똑같이! 식사도 하고, 잠도 자고, 놀고, 그리고 공부도… 아, 맞아 넌 시공여행자가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 공부부터 하겠다.”
뭐지, 이 끝없는… 호의?
이래도 되는 건가? 처음엔 자길 어디에 팔아넘기려고 하는 줄 알고 리키는 경계했으나 그 말을 들은 실리아는 리키가 무안해질 정도로 굴러다니며 웃어댔다.
“내가 널 가르쳐서 어디에 팔아! 그렇게 따지자면 너에게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못 판다구! 아, 웃겨…… 정말, 그런 생각이라니, 세브릭도 분명히 웃을 거라구! 아, 세브릭은 내 쌍둥이 동생이야. 알겠지? 걔가 동생이야!!”
실리아는 리키에게 아주 다정히 약속했다. 이 얘기는 네가 마음에 안 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전에 일하던 곳에서 언뜻 네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래서 사실은 동정심에 데려온 것도 있다고. 하지만 널 후원하는 것은 네가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해줄 거라고. 나는 네가 정말 좋다고.
오래 안 사이도 아닌데, 이런 무한한 호의를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리키는 계속 의심했으나 이내 그 생각은 집어치웠다. 만나고 싶은 사람, 우주 어딘가에 있을 사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은 이런 지원이 필요했다. 다른 곳에 가면 돈의 문제로, 겉모습의 문제로 트집 잡히고는 문턱에 발도 올리지 못한 채 쫓겨날 게 뻔했다. 그러니 사실은 이쪽이 날 이용하는 거라도, 일단은 전부 받아들이고 나중에 도망치든지 해야겠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우주에 온 둘째 날, 리키는 실리아에게 집을 소개받고, 실리아가 동생이라고 우기는 쌍둥이 세브릭을 소개받고, 쌍둥이의 비서인 리셀과 에드가브를 소개받았다. 실리아의 전용 비서인 에드가브는 친절한 남자였고 실리아를 챙겨주듯 리키도 챙겨주었다.
가끔 세브릭이 묘한 눈빛으로 리키를 보곤 했으나, 단지 그뿐이었기에 리키는 대수롭지 않게 그 일을 넘겼다. 애초에 후원이란 명목으로 얹혀사는데, 저 약간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담긴 눈빛 좀 받으면 어떤가? 구정물에서 발로 두들겨 맞는 것도 아닌데.
이래저래 같이 살며 공부도 하고 그러던 중, 어느 날 리키는 질문을 받았다. 리키, 그 이름뿐이냐고. 누가 했던 질문이었지? 산수 선생님? 역사 선생님? 운동 선생님? 아마 언어 선생님이나 예절 교육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어떤 과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그 빈정거리던 말투만큼은 아주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얹혀살며 후원받는 주제에, 같은 뉘앙스였지? 그 말을 그대로 실리아에게 해주며 이름을 꼭 지어야 하냐고 묻자 실리아가 노발대발 화내며 당장 선생을 바꿨던 일은 아직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역시 돈이 최고지, 암.
실리아는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리키는 대체 실리아가 왜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그 쫓겨난 선생 쪽일 테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단순히 이름만으로 그런 반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안 리키는 사실 좀 충격이었다. 그래서 사과에 대한 말 대신, 이름이 이러면 안 되냐는 말을 역으로 질문해버렸다. 실리아는 당장 이름을 새로 짓자며 차라리 그게 나을 거라고는 엄청 무언가를 빠르게 말하며 리키를 끌고 서재로 갔다. 수많은 책을 펼치고는 둘이서 그걸 뒤적이며 실리아가 했던 말은 사실 조금 부럽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자기가 지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다고.
그가 말하길, 쌍둥이의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준 것인데,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볼 수도 없어서 별로 그렇게 정이 가진 않는다고 말하며 사전을 뒤적이던 실리아의 옆모습은 어쩐지 좀 쓸쓸해 보였다고 리키는 생각했다.
이름이 길고 성이 있으면 대부분은 대단한 사람인 줄 알 거라며 실리아는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이름, 미들 네임, 부여받은 이름, 성 씨, 이런 여러 단어의 조합이 있어 보이게 만드는 거라 중요한 거라며 실리아는 너도 이름을 길게 지으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지어? 그래서 사전을 뒤지는 거잖아! 리키의 물음에 고개를 처박고 마구 책들을 누비며 건성으로 대답한 실리아는 무언가 생각난 듯 퍼뜩 고개를 들어 리키를 보고는 물었다. 하고 싶은 이름이나 단어 같은 거 있어? 그런 건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당장 보고 싶은 그 사람의 이름도 희미한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가만히 생각하던 실리아는 조심스레 물어봐 왔다.
“그럼… 성으로는 미스트리아, 어때?”
어디서 왔는지 모를 신비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덧붙인 실리아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리키를 보았다. 별로 나쁜 느낌도 아니었고, 리키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래, 해버렸다. 좋아! 그럼 이제 이름을 짓자! 실리아가 손뼉을 짝 치며 말했지만 리키는 그 부분에 대해선 마냥 동의할 수 없었다. 멀쩡히 써오던 이름이 있는데, 굳이 왜!
“그냥 지금 내 이름은 안 되는 거야? 리키 미스ㅌ,”
“안 돼!”
지금 너는 있어 보이는 이름을 짓는 거라구. 리키는 여자애들 이름으로 안 써!
너무 단호한 실리아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리키는 울적하게 사전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내 이름이 좋은데…… 끝까지 그 말을 중얼거리는 리키를 보고 실리아는 정말 못 이기겠다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는 말했다. 그럼 미들네임으로 하자. 좀 있어 보이게, 리키어. 어때, 됐지? 이제 미들네임이 무엇인지 아는 리키는 그 정도라면 타협할 수 있었고 리키는 그러기로 했다.
사전과 책들을 얼마나 보았을까, 지루해진 리키는 책장에서 은근슬쩍 다른 책을 꺼내 보았다. 하이첼라라는 어떤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정말 멋졌다.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서 자신의 머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랑을 쟁취하는 그런 이야기는 리키의 마음을 쏙 뺏어갔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문득 든 생각에 리키는 이 사람으로 하기로 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따온다면 분명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이 품고 있는 이 마음도 그런 사랑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리키는 후다닥 책을 들고 실리아에게 갔다. 둘은 이야기 끝에 오늘을 기념하기로 해 이름 뒤에 레인을 붙이기로 했다.
하이레인 리키어 미스트리아, 그럴싸한 이름이 탄생했다. 만족스러움과 씁쓸함이 교차했지만 계속 살다 보면 씁쓸함은 사라지겠지. 그래도 역시 리키는 리키라고 불리는 게 좋았다.
리키가 12살 때, 실리아는 이젠 그만 공부해도 된다며 리키를 시험장으로 끌고 갔다.
시공여행자 자격 증명 시험. 통행패 등급 조정을 위해 열리는 재시험과는 다르게, 오히려 본시험이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통에 이제껏 기다려 왔는데, 이전 시험은 리키가 실리아와 살 게 된 지 1주일 만에 열렸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실리아는 오만 가지 욕을 다하며 당장 통행관리부에 쳐들어가 시험이 열리는 주기 좀 바꾸라고 깽판을 치겠다며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집안의 모두가 실리아를 뜯어말려야 했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시험공부를 했으니 리키로써는 어쨌거나 다행인 셈이었다.
리키는 적당히 B급으로 시험을 치뤘고 실리아는 드디어 리키와 합법적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세브릭은 이 집에서 가르쳤는데 못해도 S급은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뭐라고 했지만, 실리아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단칼에 잘라버렸다.
“너는! 얘를 우리가 사는 거랑 비교하면 안 되지! 우린 S급이 나올 실력이면 집안에서 버리고 그러니까 그래 보이는 거고, 일반인은 보통 B, C급으로 산다고! 그리고 얘는 원래 일반인이고!”
우리랑 같이 사는 게 무슨 일반인이냐고 구시렁거리던 세브릭은 결국 실리아가 던진 화분을 피해 살려달라며 방 밖으로 달아났다. 그런 사소하고도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리 없다는 걸, 리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리키가 14살이 되던 해에 그 문제가 드디어 터졌다.
세브릭이 리키에게 주던 눈치를 실리아가 다른 때처럼 넘기지 않고, 걸고넘어진 것이었다. 결국 쌍둥이는 리키가 보는 앞에서 싸웠고 리키는 가만히 있었으나, 만약 부모가 있었다면 아이가 자신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가 지금 이런 마음일까 싶어졌다.
세브릭이 후원을 명분으로 싸고돌며 퍼주다간 집안 살림도 남아나지 않아 본가에서 다 알게 되겠다며 소리 지르고 나간 뒤에야 실리아는 리키를 돌아보았다. 형용할 수 없는 표정에 리키는 그저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어떤 말이든 지금 할 말은 아니었다. 이미 지친 실리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으니까.
실리아는 왜 네가 미안해하냐며 도리어 사과했고, 리키는 대체 실리아가 왜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자신일 테니까.
몸을 잘게 떨며 눈물을 흘리지만, 울지는 않고 차분하게 실리아는 쌍둥이의 집안에 대한 사정을 가볍게 설명해주었다. 비록 그 내용은 가볍지 않았지만 담담하게 말하는 실리아의 모습은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가만히 서서 실리아의 말을 다 들은 후에야 리키는 그 방을 나서 제 방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방문 옆에는 세브릭이 기대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못마땅하게 보는 표정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쩐지 리키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붙어먹으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리키도 알고 있었다. 실리아는 이미 너무 많이 베풀어주었다. 실리아는 괜찮다고, 상관없다고 했지만 정말로 그럴 리가 없다. 봐, 지금도 이렇게 세브릭이 눈치를 주잖아.
실리아와 세브릭의 집안은 시공여행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거대한 상단이었다. 상단이라고 부르는 건 판타지 계열 출신의 여행자들 쪽에서나 부르는 말이라며 공통 단어인 기업이라고 부르라던 언어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대기업 중 하나인 집안이지만 쌍둥이의 부친은 쌍둥이의 모친인 전 부인과 억지로 이혼하고 지금의 부인을 들였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어떤 사정으로 다시 이 집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모친을 알던 모두가 쌍둥이를 반겼으나 가장 가까운 가족인 부친과 그의 현 부인, 그리고 현 부인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들만 둘을 반기지 않았다고 했다. 이목이 있어 생활비를 주긴 하지만 같이 살지는 않는 자식들, 그게 실리아와 세브릭이었다.
아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리키는 처음으로 실리아에게 원망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이럴 거면 그냥 데려오지 말지, 그깟 동정심이 뭐라고 진짜 가족이라고 느낄 서로에게 상처만 되는 일을……
아무리 봐도 자신은 후원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었다. 명백한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 리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분명, 이쪽이 날 이용하는 거라도, 일단은 전부 받아들이고 나중에 도망치든지 해야겠다던 그 생각이 있었다.
실리아는 자신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키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실리아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뒷골목에서 한때의 추억만 생각하며 전진했을지도 몰랐던 삶에 손길을 내밀어준 것만으로도 실리아는 이미 인생 하나를 구제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집을 나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깨달은 리키는 당장 내일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돈…이 필요하긴 했지만,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다못해 말로만 듣던 그 파이널 마그나라는 곳에라도 가면 뭔가는 있지 않을까? 이젠 정식 시공여행자니까.
“네가 갈 곳이 어딨다고 어딜 가!”
실리아가 비명처럼 토해낸 첫 문장이었다. 다음 날, 리키가 나가겠다며 말을 꺼내기 무섭게 실리아는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물론 갈 곳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제 길을 나서 보겠다는 말도 했는데 이렇게 붙잡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아예 예상 못 한 반응은 아니었다. 실리아는 자신을 싸고돌다시피 했으니까. 일단 차분히 말해보자, 설득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건만, 실리아는 완고했다. 2시간을 넘게 똑같은 내용만 반복되는 모양새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서로 양보하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는 모양새와도 같았다.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니, 비약이 심하잖아!”
“틀린 말도 아닌데 왜 자꾸 그래? 밖에 나가본 적도 없잖아!”
“그럼 나가서 알고 올게!”
“너 자꾸,”
“마침 나가고 싶었으니 나가면 딱이겠네!”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진짜–!!”
실리아가 뭐라고 더 말한 것 같은데, 리키는 듣지 않고 그대로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혹시라도 실리아가 잡으러 올까 두려워, 리키는 미리 싸두었던 짐도 챙기지 않은 체 집 밖으로 나왔다. 짐은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돈도 없는 것도 아닌데!
돈이 없다.
짐을 쌀 때, 그 안에 지갑도 같이 넣었던 걸 완전히 까먹었다. 있는 거라고는 달랑 주머니 안에 있는, 어제 에드가브와 같이 식자재를 사고 대신 받은 잔돈뿐이다. 아, 큰일 났네. 이 돈으로는 어디에 있을 수도 없다. 기껏해야, 식사 두 끼 해결할 정도…? 무작정 우기며 뛰쳐나온 과거의 자신이 조금 원망스럽긴 했는데, 이대로 평생 실리아의 얼굴을 안 볼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조금만 있다 들어가면 되겠지?
이래서야, 결국 자기 멋대로 움직인 철부지가 되었건만, 뭐 어떤가. 살다 보면 이런 일 한 번 정도는 있을 수도 있지. 리키는 속으로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하며 닿는 대로 발을 움직였다. 그의 꼬락서니는 마치 철부지 아이가 부모랑 싸우다 집 밖으로 뛰쳐나온 것 모양새와도 같았으나 리키는 죽어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부루퉁한 표정 그대로 땅바닥을 보고 걷던 리키는 바닥의 흙이 점점 사라져가며 길이 투명해지는 동시에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리키가 살던 곳은 우주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져 우주를 부유하는 인공 도시 같은 곳이었기에 행성의 자연환경과 똑같은 환경이 재현되어 있었다. ‘유랑 도시’라 불리는 그곳은 낮이면 햇살과 함께 푸르고, 밤이면 별과 달이 빛나며 검푸른 하늘을 밝혀주었던 것이 몇 년간의 전부였다. 리키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눈앞의 풍경을 보았다.
새까만 공간을 비추는 것은 각자의 색으로 빛나는 별의 향연이었고 그중 유달리 더 밝게 빛나는 것들은 우주에서의 원활한 이동을 위한 캡슐과 비행선, 그 밖에도 여러 탈 것들이 우주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주는 끝이 없었고 소녀는 그 광활함에 압도되었다. 무한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아마도 이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발만 바쁜 게 아니라 고개도 바쁘다.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리키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은 힐끗힐끗 보았지만, 그는 그런 걸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우주에 이렇게 나오는 건 사실 인생을 통틀어서 3번째였고 마지막으로 우주에 나왔던 때조차 4년 전이었으니 아이 입장에선 오래전이라고 느낄 만도 했다. 가슴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마음을 헤집고 자리 잡는 기분이었다. 우주에 가장 처음 나와 봤던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던가? 모르겠다, 그 시절의 기억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아니지, 그게 왜 안 중요해. 물론 잊고 싶은 게 수두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애를 만났던 일마저 잊고 싶진 않았다. 그 애를 만났기에 현재의 자신이 있다. 분명, 그 애를 다시 보기 위해 한 선택들이었다. 지난날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싫더라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드넓은 세상 어딘가에 분명 그 사람이 있을 테니 나는 반드시 만나러 가겠다.
근데… 다 좋은데, 뭘 하지?
리키는 수중의 액수를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어딘가에 그냥 앉아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어디로 가보자니 아는 곳이 없고.
사실 실리아는 틀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리키가 어딜 나가 보기나 했어야지, 주변에 크게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 세상 물정을 모를 수밖에. 그의 생활은 실리아와 세브릭이 사는 그 작은 유랑 도시가 전부였다. 우주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그저 공부로 배운 지식이 다였다. 우리가 사는 이 대우주 위 어딘가에는 태초의 도시가 있고, 우주 행성들과 차원의 경계를 넘어가면 행성이 있는 또 다른 소우주가 나타나고, 모든 차원의 경계 안쪽에는 시공여행자들을 위한 쉼터라 불리는 마그나가 있고, 대우주에는 여러 행성이 있는데 그걸 분류하는 말은 우주 행성이고…
찬찬히 손가락을 접어가며 아는 장소들을 생각해보던 리키는 이내 관두었다. 아는 장소가 많으면 뭐 하나? 갈 곳이 없는데. 리키는 괜히 서러워졌다. 집이, 아니 있을 곳이 없다는 게 이런 기분인 걸까? 물론 자기가 제멋대로 집을 나온 경우이긴 했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리키는 생각했다. 그는 잠시 멈추었던 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 한복판에 우뚝 서서 고민해봤자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더 갔을까, 그는 갈림길 정중앙에 놓인 이정표를 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마법의 지구 입성장(入星場), 파이널 마그나 동부, 엔스파일 입성장, 앤블라썸드 입성장, 나르베나 입성장. 시공여행자관리국 본부, 아템폴 입성장, ……….
관리국 본부라는 곳과 태초의 도시에 있는 파이널 마그나를 빼고 나면 남은 것들은 전부 행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주에 행성만 있는 것도 아닌데, 리키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우주 행성이 많다는 소리기도 했다. 당장 갈 수 있는 곳은 많았으나 어떤 세계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행성에 갇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자 리키는 저 표지판들에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아졌다. 거대한 이정표를 올려다보던 리키는 결국 갈 곳이 없다고 판단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눈앞에 한 표지판이 들어왔다.
< 한가름 광장 - 8546번 >
광장? 우주에 광장? 잠깐 그의 사고가 정지했으나 이내 배운 것을 떠올렸다. 유랑 도시처럼, 시공여행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지형물이 우주에 떠 있고 그중에는 분명 광장도 있었다. 일단 가보자. 리키는 표지판이 광장이라며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 많이? 시간도 모르고 걷던 리키의 시야에 낯익은 정경이 보였다. 정경. 말 그대로 조용한 풍경이었다. 광장이라는 이름치고는 꽤 조용했기에 리키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왜 이곳이 낯설지 않은지 기억이 났다.
8살 무렵에 처음으로 우주에 나왔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용병단과 함께 왔던 장소가 여기였기에 그렇게나 눈에 익었던 걸까. 하등 쓸모없던 곳이었지만 이런 점에서는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누가 했던 말인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조용한 곳이라 이목을 덜 끌 거’라던 말을 했었다.
그래, 원래부터 조용한 곳이었네. 잠시 떠올린 예전의 기억과 아는 곳, 익숙한 곳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 합쳐져 리키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의 기억 속에서도 가게들은 광장 한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여전히 그렇게 자리하고 있는 단층 건물들의 앞을 천천히 리키는 거닐었다. 조금 걷자 카페가 나타났다. 리키가 얌전히 용병단을 기다리던 그곳이었다. 그때의 생각을 하자 자연스럽게 그 애를 만났던 기억도 났다. 첫 만남의 장소였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억들이었다.
같이 있을 때, 뭐라고 했더라?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던 그 애의 얼굴은 아주 담담했으나 목소리에 담겨있던 감정은 호기심과 기대감, 그리고 즐거움이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할 건지, 누구랑 사는지, 뭐가 좋은지, 어딜 가보고 싶은지…… 뭐라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막상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니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기억할 수가 없어, 한참을 선 채로 낑낑대던 리키는 결국 자신에게 항복했다. 도저히 기억이 안 나! 얼굴 따위의 생김새라던 가는 그럴 수 있겠다만, 이름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아 그는 잠시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내가 만난 건 다 환상이었나?
그럴 리 없지. 그랬으면 여기에 있을 수도 없다. 리키는 마음을 다잡으며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기억도 안 나는 걸 애써 억지로 기억할 필요는 없지.
마법의 지구에 가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차원을 가도 97%는 지구가 있다고 했다. 보통의 지구는 마법이 없지만, 대우주의 지구에는 마법이 있다고 했지. 위대한 만다라의 대표라는, 이름보다는 시공여행의 창시자라 불리는 경우가 더 많은, 루예나께서 지구에 마법을 내려주었다고 했던 어느 날의 수업이 뇌리에 아직 박혀있었다.
나와서 살 게 된다면 마법이 있든, 없든, 분명 어떤 지구에는 한 번쯤 들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김에 한 번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리키는 아까 이정표에 있던 마법의 지구 방향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그나마 운이 좋다고 리키는 생각했다. 지갑은 까먹었으나 통행패는 주머니에서 잔돈과 함께 고이 모셔져 있었고 그는 무사히 마법의 지구에 입성했다. 갈 곳도 없는데 혼자라니, 그런 생각이 들자 리키는 우울해졌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실리아와 같이 와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면서 구경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비록 실리아 앞에선 인정하지 않았지만, 첫 외출이나 다름없는 건데! 이렇게나 우울하다니…
울적한 마음도 잠시였고, 리키는 이내 양팔로 제 몸을 감싸 안았다. 내가 진짜로 나라를 착각한 게 아니라면 여기가 대한민국이 맞는데, 이 나라는 대체 왜 이렇게 춥지? 사실 북극 지대에 세운 나라인가?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고 배운 거 같은데? 도대체 왜?
아까처럼 가만히 서서 생각하기엔 리키의 옷이 너무 얇았다. 추워, 추워! 차라리 기온을 고정해줘! 우주처럼!
리키는 그런 생각과 함께 정처 없는 발걸음을 계속했다. 사람이 정말 많다. 우주보다 더 많은가? 그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도 들 정도로 사람은 많았다. 반쯤은 인파에 쓸려 다니던 리키는 강한 바람이 부는 순간 모든 생각을 멈췄다. 아, 가을이라며!
이젠 아무래도 좋다, 어딘가에는 들어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발걸음이 인도한 곳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저기라면 나 하나쯤 들어가도 상관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들어간 그곳에는 온통 책뿐이었다. 책, 책, 책, 책. 여긴 도서관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둘러보는 그의 눈에 한 단어가 보였다. 서점. 이렇게 큰 서점이라니, 주인이 누군진 몰라도 대단한 책 사랑가이신 모양이군. 그저 대형 브랜드의 여러 체인점 중 하나인 곳이었지만 우주에서 온 리키가 그런 자세한 사정을 알 리가 없다.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공부했다면 이미 지구에서 혼자 살겠다고 했겠지.
기왕 들어왔으니 책이라도 볼까 싶었다. 서점의 사람들 중에선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언어에 자신이 없던 리키는 그림이 많은 것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도 배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글을 배울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배우길 정말 잘했다. 그림이 많으니 보기도 편했다. 리키는 정신없이 만화책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리키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책에 코를 박을 정도로 열중하던 고개를 들었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으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저깄다. 거대한 디지털시계가 곧 있으면 저녁때라며 깜빡이고 있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난 것은 아니었기에 리키는 안도하며 다음 권을 집어 들었다. 아주 재밌는 내용이었다. 도둑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이라니! 범인은 누구지?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책을 펼친 리키는 말 그대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리키는 그 만화책에서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만든 한 캐릭터를 보게 되었다.
범인은 유명한 괴도였다. 아주 멋진 솜씨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동에는 뛰어난 마법 실력이 있다고 묘사되는, 잘생긴 사람. 이건 뭔데 이래? 말도 안 돼, 내가 어릴 때 좀도둑질하면 다들 싫어했는걸! 그렇게 생각해도, 책을 보면 알 것 같았다. 미모와 실력과 그리고 성격이 좋았다. 잡으려는 공권력과 주인공 탐정을 피해 달아나면, 괴도의 팬들이 괴도에게 잡히지 말라며 응원을 보내는 모습은 그야말로 꿈과도 같았다.
리키는 어떤지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한다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찌 보면 안일한 생각이긴 하다만, 당장 리키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안 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는 눈앞의 것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었다.
아, 까짓거 한번 해보면 되지!
뭐야, 운 좋게 인생 역전한 인간이 다시 시궁창으로 가려는 이야기잖아.
에르아가 말을 끊고 감상평을 중얼거렸다. 루예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미소지었다. 그 웃음을 제멋대로 해석한 에르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뗐다.
“아, 정말. 왜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 그 정돈 네가 굳이 그렇게 일일이 머리 쥐어짜지 않아도 알아서들 살 거라고!”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루예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였다. 에르아는 그 반응에 한숨을 푹 쉬고는 책상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그래~ 힘내라~”
“어머. 가게?”
“어, 난 누구처럼 인간 하나하나 섬세하게 이야기 짜 줄 시간 없는 바쁜 사람이라.”
하하, 정말로 재밌다는 웃음이 에르아의 빈정거리는 말에 답했다. 그는 동생과 똑같은 금빛의 브릿지가 가닥가닥 섞여든 제 보랏빛 머리를 쓸어넘기며 별빛으로 장식된 거대한 집무실의 문을 나섰다.
루예나는 조용히 제 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문이 닫히자 다시 코앞의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문서 프로그램에는 방금까지 저 너머에서 읽고 있을 사람이 본 내용 전부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르아는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루예나는 말하는 도중 단 한 번도 이것이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한 적 없었다. 그저 인간을 싫어하는 그의 언니가 그렇게 단정 지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루예나는 이미 단서를 주었다. 실리아와 세브릭, 부유한 상류층에서라면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가족사에, 집안에서는 홀대받는 아이들이지만 쌍둥이 탐정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 얼굴들. 뭐, 주의 깊게 듣지 않은 언니 탓이지.
그리고 루예나는 말했던 대로,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뭐든 미리 구상을 해둬야 나중에 이야기가 엉키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언니인 에르아가 그의 형부 될 사람인 숄레이를 처음 만난 것만큼, 동생인 오스카가 니케를 처음 만난 것만큼, 맨날 풍문이나 몰고 다니는 윤수민이 조혜린을 처음 보고 반했을 때만큼, 그리고 루예나가 자신의 반려인 민재윤과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만큼이나.
루예나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리키가 8살 때 만난 그 멍청한 얼굴이라는 사람은 에르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리아테 판도라 시엘퍼 아벨라이트.
우주 너머의 세상을 자각하는 존재 아래서 영원히 인간을 수호할 신으로 점지받은, ‘뮬 셀레’의 마지막 합류자.
영원의 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찾게 되는 것, 이라고 루예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시기가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이게 그 애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이미 시작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맺어질 인연이었던 거야.
누군가는 그랬다, 캐릭터를 만들고 나면 갈수록 점점 통제할 수가 없어진다고. 결국엔 다들 제멋대로 나아가니까. 리키도 그런 경우였다. 제멋대로,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는 경우. 그리고 루예나는 이런 경우를 아주 사랑했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도, 보라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그러니 된 게 아닐까?
앞서 서술했다시피, 리키는 그 멋진 모습에 반해 스스로 멋진 괴도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리키가 괴도를 하겠다고 생각한 이유에는 단순히 멋짐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책 속의 괴도는 아주 멋진 사람처럼 나왔다. 다시 그 애를 만난다면 한 번쯤 이런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분명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는 자신에게는 이 방법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리키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무엇보다도, 훔치기라니. 실력이 좀 녹슬었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자신있는 것이었다. 좀도둑질을 할 때,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던 것을 떠올리자 역시 이거라는 생각이 더 불붙으며 타올랐다. 그러나 일단 이것만 보고 당장 하겠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얄팍하게 알기만 걸로 뭘 하겠다고?
그래서 리키는 일단 괴도가 나오는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초능력을 쓰고, 여긴 그냥 다른 능력 없이 손기술과 장비로만… 여긴 또 마법을 쓰고, 여긴 마술사가 괴도 일을 해서 마술로 탈출 하는 구나. 갑자기 그의 자신감이 사라졌다. 뭔가… 하나 같이 무언가에 일가견이 있었다. 남들은 따라오지 못한 손기술이라던가, 남들에겐 없는 초능력이 있다던가. 그리고 자신은 그저 오래 전에 좀도둑질이나 했던 B급이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는 막연하게 손에 책을 그대로 펼친 채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긴 돈 얼마나 벌까? 그 순간, 멍하게 아무 생각이나 하던 리키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어떤 생각이 치고 지나갔다.
아. 그래. 그거다. 그거야!
그는 들고 있던 책을 닫아, 그대로 제자리에 잘 내려두고는 빠른 걸음으로 서점을 나갔다. 내가 마법을 배우면 되지! 왜 이렇게 간단한 걸 생각도 안 했지? 마법을 배우면 마법사로써 일할 수도 있잖아! 실리아한테도 그렇게 말하면 되는 거고! 그럼 독립에 관한 것도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을 거야. 괴도 같은 건 입도 뻥끗하지 말고, 잘 말해보자. 아까처럼 무작정 우기지 말고, 싸우지 말고. 그럼……
빨리 돌아가야지! 벌써부터 미래를 그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리키의 발걸음은 산뜻해보이기 그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벌써 실리아의 허락 하에 마법을 배우고 그 집을 나가서 살고 있는 리키 본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마법을 배우고 나면 바로 나오는 거야. 어디에 취직을 하든, 뭘 하든, 하면서 준비를 하자.
그러면………
하이레인 리키어 미스트리아.
비 내리는 날의 대괴도, 팬텀 미스트 레인의 역사가 마침내 정점을 향해 한발 내딛은 것이다.
그렇게 마법 학교에 다녀 졸업하자마자 실리아가 그에게 작은 상단을 하나 주고, 괴도가 된 가까운 미래에 세브릭에게만 들키며 그 사실을 모르는 실리아는 팬텀 미스트 레인을 잡겠다며 리키와 세브릭의 앞에서 선언하지만 어물쩡 넘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멀지 않은 미래니까.
그러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루예나가 생각한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였다.
종국에는 신을 사랑하는 대괴도가 온 우주의 반짝임을 훔쳐 사랑하는 ‘영원한 인간의 신’에게 바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준 신은 그 반짝임을 받고는 연인의 꽃다발을 받은 것처럼 얼굴을 저도 모르게 붉힐 모습에 신을 사랑하는 모두가 기뻐하겠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멋진 인생의 이야기에 이런 사랑이라니, 그야말로 리키가 하이첼라의 이야기를 봤을 때 같지 않은가! 아아, 하이첼라에게 인사라도 해드려야 할 판이군. 뭐, 아무래도 좋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만들게 해주었으니, 예전처럼 님 자를 붙여, ‘아이고, 하이첼라님 덕분에 좋은 이야기를 썼네요, 감사합니다!’ 하고 불러주는 일도 한 번쯤 해주면 나쁘지 않은 보상이겠지? 루예나는 눈을 감고 제멋대로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그래, 그는 이런 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루예나가 지나온 모든 삶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이야기였다. 주어진 것만으로 정해진 길을 살아야 했으나, 그러지 않고 험난함을 넘어서 뒤바꾼 제 삶은 역대 최강의 만다라라 불리는 지금의 루예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험난한 길을 가겠다 선택한 것이 마치, 제 연인과 똑 닮은 행보를 마치 따라 걷는 듯해 보이는 아이가 하고 있지 않은가.
운명을 만드는 게 바로 자신이라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마치, 미친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야밤에 집을 나온 꼬마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이름의 낭떠러지 끝을 걸어가던 학생이 구애를 받은 끝에 지금의 연인과 사귀게 된 것처럼, 루예나를 처음 본 순간 미래가 뒤바뀐 그의 연인처럼.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그저 걷기만 하지 않고 갈고 닦기까지 한 다음에야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만든 길을 나아간다는 건 말뿐만일지라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운명이란 건 개척하는 편이 재밌다.
루예나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