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의 꽃 :: 캄파뉼라와 함께 춤을

1. 그 가게의 네 번째 새벽

:: 놀라운 경험은 조용한 시간으로부터 ::

우리의 마음을 담아,

달빛 아래의 캄파뉼라가 평안하기를.


안녕하세요,

어딘가를 여행하시다 흘러 들어오게 된 분!

도시를 조사한 오늘의 모험은 재밌으셨나요? 부탁받아 찾는 사람은 찾으셨고요?

아, 아직이라고요… 그래요. 그럴 수 있죠, 뭐! 어때요, 삶은 원래 실패의 연속이라잖아요? 

음, 이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었나… 아직 인간의 감성 같은 걸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헤헤.

아무튼요, 아직 더 돌아볼 곳은 있으신 모양이고 여정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분명 목적을 달성하고 다시 떠날 수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어서 주무셔야죠?

건강한 삶은 좋은 체력을 뒷받침해 주는 요소 중 하나랍니다!

저 사람이요? 걱정 마세요, 손님을 재우고 나면, 주무시라고 할 테니까요! 그런 다음엔 저도 잘게요.

네? 정말인데요! 에이, 그럼 약속할게요! 자, 여기 새끼손가락 걸어요. 도장 꼭꼭… 복사… 코팅……

후후, 좋아요.

그럼, 좋은 새벽 되세요……


그 가게의 네 번째 새벽

놀라운 경험은 조용한 시간으로부터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낱말을 너에게 주겠다.

/서덕준, 우주행 러브레터 中

카페 안은 꽤 어두웠으나 다행히도 한 치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커튼이 쳐지다 만 창문의 한쪽으로, 조용하고 푸른 새벽을 머금은 달빛이 어슴푸레 기어들어와 고요한 가게 내부를 살며시 밝혀주고 있었다. 가느다란 빛으로 알아볼 수 있는 가게의 내부는 정리되지 않은 의자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고, 주방 쪽에선 수도꼭지가 오래되기라도 한 것인지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가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마룻바닥에 늘어져 보이는 어중간한 길이의 그림자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창가 근처에 앉은 단발의 인영이었다.

푸른 새벽빛과도 같은 색의 단발머리를 한 사람처럼 다들 아무 말 없이 앉아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게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장식용 랜턴을 킨 몇몇 사람들은 창가 저 멀리에서 자리를 잡은 채 두런두런 작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건 정말로 몇몇일 뿐이었다. 이런 시간에는 모두 잠을 자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으니까.

“오늘도 다시 여명이 밝아오네요.”

푸른 단발의 인영이 창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캄파뉼라는 아름다웠다. 신에게 축복받은 외모라 해도 진실일 것만 같은 모습은 이목을 한 번에 끌기 쉬웠다. 층이 쳐진 단발 사이로 보이는 짙은 쌍꺼풀의 눈동자는 벚꽃과도 같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고, 슬쩍 열린 창문 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씩 휘날리는 단발 속으로는 시크릿 투톤의 짙은 푸른색이 언뜻언뜻 보였다. 머리칼을 어지럽히는 바람이 불 때면 그가 머리 장식으로 한 하얀 꽃장식에 매달린 금실들도 따라 흔들리곤 했다.

 “여명이 밝는다, 라… 나쁘진 않네요. 진짜 나쁘진 않은데……”

그런 바람과 함께 누군가 캄파뉼라의 옆에 앉으며 말을 이어주었다. 작은 한숨을 쉬며 혼잣말에 대답해주는 상대가 누군지 보기 위해 캄파뉼라는 옆을 조금 돌아보았다.

새벽빛을 받아 구불거리는 은빛의 긴 머리칼이 반짝이는 모양새가 마치 이른 아침햇살을 받고 부서지는 파도를 연상케 하는 상대는 그런 아름다운 순간이 잘 어울리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눈, 그 눈동자에는 수많은 꿈들을 떠오르게 하는 오묘한 빛깔들이 한데 어우러져 자리하고 있었다. 다채로운 색들은 보면 볼수록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으나 그것이 눈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어쩐지 더는 들여다보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은 왠지 모르게 당신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으니. 그러기에 마치 신의 섭리가 빚어낸 사람인 것 같다만, 그 말의 내용은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걸어온 대화이니 받아주는 게 응당 맞다. 캄파뉼라는 혼잣말하듯 대꾸했다.

 “생각해보면 시간의 섭리 아닐까요? 황혼이 저물고 난 후에 밤이 드리워지고, 밤이 끝나갈 즈음 여명이 밝아온다는 것이요.”

 “밝아오죠, 그렇죠…… 전 정말 그런 걸 좋아하거든요. 거스를 수 없는 것에 굴복하고,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치에 순응하는 것들 말이에요. 그런걸 보는 게 재밌어요. 나약한 자들이 어찌 되었든 따른다는 게 귀여우니까요. 근데… 그거랑은 조금 별개의 한숨이에요…”

캄파뉼라의 대답에 상대는 아까보다 조금 더 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 말에 캄파뉼라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가 누구든 간에, 캄파뉼라는 방금의 대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게의 주인에게 막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로 대답을 하기보다는, 잠시 가다듬고는 이내 찬찬히 답했다.

“좋든 싫든 억지로 따라야 한다는 점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요. 나약한 이들에게도 선택할 권리는 있으니. 그런데…”

“음, 맞아요! 나약한 이들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있어야죠! 그래도 뭐,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 강자 앞에선 통용될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겠어요? 마치… 인간이 신탁을 듣는 것 같은, 그런 거죠. 이건 뭐랄까, 인간이 애완 곤충을 키우는 거쯤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근데, ‘그런데…’라뇨?”

 이 사람은 새벽을 싫어하는 건가? 먼저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난 캄파뉼라는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잠시 흐렸던 말끝을 이었다.

“당신은 그다지 새벽을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아……”

이어지는 질문에 상대는 꽤나 오래-캄파뉼라는 그렇게 느꼈다-동안 탄식만을 흘렸다. 대답을 고민하는 게 눈에 여실히 보일 만큼, 그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에, 음… 그게, 새벽을…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에, 또… 그게, 그… 오늘, 다녀오신 곳 말이에요……”

사장이 입을 때고 어떻게든 운을 띄웠으나 본론조차 꺼내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며 우물쭈물거렸다. 그런 상대를 캄파뉼라가 지긋하게 바라보다 그전에 했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뗐다.

“신…이란 말이죠. 그런 강자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는 그 정도 유흥거리밖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자신의 정의만 절대적이고 밑의 고통을 몰라라 하는 신이라면….”

거기까지 말하던 캄파뉼라는 말도 끝마치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말해봤지 싶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굳이 이 사람-사실 사람인지도 좀 의문이었고-에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싶은 기분도 단단히 한몫했으리라. 무엇보다도 그런 한없이 강해서, 약자를 제멋대로 쥐고 휘두르는 것들은 제 입에 담기조차 싫었다. 그러니 더 말할 이유는 없겠지. 그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오늘 다녀온 곳이라면, 태초의 도시 말이죠. 그곳과 무언가 관련이 있나요?”

“있다마다요! 그 왜, 아까 보셨을 것 같은데… 그, 남자 있잖아요? 여러분께 엄청 무례하게 굴었던 걔…”

걔, 라는 발음은 어쩐지 개, 처럼 들렸으나 캄파뉼라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사장은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일부러 화제를 돌리려고 했던 높은 자리의 강자, 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신과 그 너머의 아득한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로 변해있었다.

“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거보다 더 높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물론 모두가 놀이로 보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렇지만 역시 신은… 잘 모르겠네요. 이것도 다 어쩔 수가 없어요. 저도 아직 활동 중인 현역이라고 자부하긴 하는데, 그래도 역시 나이를 먹으니 아래 애들 생각은 당최 알 수가…… 아.”

말이 끊기긴 했지만, 아무것도 유추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추측은 했으나 역시 인간이 아닌 모양이었다. 입으로는 순수한 인간이니, 뭐니 하면서 열심히 떠들어봤자 이제까지 보여줬던 온갖 기행(?)들을 생각해보면 그건 절대로 인간의 몸으로 소화해낼 수 없었다. 신을 ‘아래 애들’이라고 불렀으니 역시 그걸 말하는 걸까 싶어진 캄파뉼라는 끊어진 말의 꼬리를 물었다.

“신보다 높은 존재라면…… 오늘 통신을 통해서 들었던 신 위의 신, ’만다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자기 나이는 17살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나이를 가늠해보려 해도 도통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저보다 어려 보이는 게……

결국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우주의 신비쯤이라도 되는 모양인 셈 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모르겠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잘 모르겠다는 마음이 담긴 의문의 표정을 지으며 그가 말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는 건 저도 마찬가지네요. 인간 역시 사고하는 존재인데, 굳이 태생으로 위아래를 나눠서…… 아.”

캄파뉼라는 말하다 멈추었다. 아까 사장이 말했던 질문의 답이 불현듯 떠오른 탓이었다. 기억이 나자 불쾌감도 같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엄청 무례했었는데.

“그 백금발의 남자… 이거 그 사람 얘기인가요?”

“그렇죠, 만다라! 오늘 만나신… 개 같은 사람! 맞아요, 그런 놈이 처음 만난 만다라라서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첫인상이 확 나빠질 거 같아서 저 진짜 엄청나게 걱정했거든요.”

묘하게 개, 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처럼 들렸으나 캄파뉼라는 수긍했다. 행실만 본다면 그는 정말로 자리 분간조차 하지 못하는 금수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뭐, 다른 손님들처럼 돌아다니시는 동안 이것저것 들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살짝… 말 좀 얹어드릴까요?”

어디까지나 손님이 원하신다면 말이죠. 사장은 그렇게 말을 끝맺었으나 그 표정은 마치 물어봐 주기를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나으리라. 그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좋아요, 괜찮다면 당신이 아는 데까지 말해주세요. 혹은 말해줄 수 있는 데까지라도. 그나저나…”

캄파뉼라는 무수한 별 아래의 화려한 도시에서 만났던 백금발의 남자를 떠올렸다. 대단히 가벼워 보였던 그를 떠올리자 불쾌감이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깊게 생각할 것 없다, 어차피 두 번 다신 만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캄파뉼라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운을 뗐던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럼 그 사람이 만다라였다는 건가요? 첫인상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 지인인 것 같으니 말을 아끼죠.”

“아하하… 감사, 하다고 해야겠죠? 어휴… 그런 난봉꾼을…… 더 까도 돼요! 막 양파 까지듯이! 호박씨 까듯이! 그런 애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면 아무도 반기지 않았겠죠. 잘 모르겠네요, 그런 짓을 하려고 권력을 좋아한 건지, 아님 권좌에 오르고 나니 그런 게 눈에 들어온 건지…아무튼요, 오죽하면 별명이 ‘멍멍이’겠어요. 하는 짓이 다 그러니 그런 별명은 자업자득이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어디서부터 말해볼까… 역시 처음부터 짚어 나가볼까요? 도시, 예쁘지 않았나요? 돌아다니시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터… 말하는 걸로?”

“도시는, 네. 아름답다고 생각했죠. 웅장하고 끝없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마치 한 나라의 중심지……”

어쩐지 마음에 차지 않는 표현이었다. 다른 좋은 말이 없을까?

캄파뉼라는 잠시 고민했다가, 이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는지 말을 고쳐 대답했다.

“우주의 중심지, 그런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남자의 별명은… 정말 잘 어울리고요. 그가 마저 덧붙였다.

얼굴이 아까울 지경이라니까요~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말을 잘하는 걸까요? 잘 모르겠네요. 언제나 똑같은 패턴인 것 같던데… 뭐! 그런 이상한 사람 계속 신경 쓰기에는 우리가 너무 아깝네요! 그래서, 무슨 얘기 중이었더라… 아 그래, 우주. 
사장이 지난 대화를 더듬어 기억해냈다.

“우주의 중심, 이라… 그거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그래요, 그런 거죠. 일종의 시작점. 그러니 그곳에 사는 우리, 도 다들 그렇답니다. 세습 받을 수도, 갑자기 차지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모두 근원이죠!”

가게의 주인은 연신 말하며 끊임없이 팔을 움직여 이런저런 동작을 곁들였다. 그 동작들은 마치 그가 무대 위에서 연극을 펼치는 배우처럼 보이게 했다. 살짝 과장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몸짓이 함께하니 설명이 생생하기 그지없다고 캄파뉼라는 생각했다. 저 말대로라면 보이는 나이에 비해 조금 어울리지 않는 말들도 이해가 갈 법했다.

“우리, 라는 말은… 당신도 만다라라는 뜻인가요? 지금 생각해보니 당신을 닮은 조각상을 본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럼 당신도 무언가의 근원이란 뜻이겠네요.”

캄파뉼라의 대답에 상대는 만족했는지 박수를 크게 한 번 쳤다. 환하게 웃으며 긍정하던 얼굴이 이내 밝은 빛에 의해 찌푸려졌다.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르고도 남을 시간이 지나 있던 까닭이었다.

“흠, 커튼을 쳐야 할까요? 아, 아니다. 햇빛 좀 쐬어야지, 다들. 그냥 우리가 음침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죠!”


가게의 주인은 반쪽만 쳐져 있던 커튼도 마저 걷어내고는 먼저 구석 쪽으로 자리를 이동한 캄파뉼라의 뒤를 따라왔다. 계단 바로 아래에 놓여있는 붉은색 소파는 꽤 큰 편이라 다리를 쭉 펴고 앉아도 자리의 여유가 남을 만큼 길고 넓고, 캄파뉼라는 그저 앉기만 했을 뿐인데도 몸이 파묻히는 착각이 들었다.

“아이고, 편하다……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그래. 개에 대해서 말했나?”

개? 뭘 지칭하는 건지 몰라 잠깐 멍하니 있던 캄파뉼라는 이내 그것이 도시에서 만났던 백금발의 남성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그 사람이요… 글쎄요. 말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들이대는 끈기는 인정할 만하더라고요… 평범한 얼굴이 아니긴 했지만.”

마지못해 인정하긴 했다만, 확실히 그 사람의 용모는 뛰어났다. 입만 가만히 다물고 있었으면, 분명 호감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캄파뉼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다 이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파뜩 알아차리곤 작게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떨쳐내는 시늉을 했다. 캄파뉼라가 그러는 것을 어느새 옆에 몸을 파묻고서 가만히 저를 바라보던 가게 주인이 작게 웃으며 맞장구치듯이 말했다.

“끈기…… 그래요, 그거라도 있어서 먹고사는 걸까…? 바보는 행동이 우직하다니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지도요? 우후후.”

상대의 말에 캄파뉼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지만 상대의 말은 꽤나 가차 없는 평가에 속했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닌 건가? 의문은 잠시 끌어안아 두고,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려 보았다. 다행히도 잊지 않으신 모양인지, 대답은 곧바로 날아왔다.

“조각상… 광장에 있던 것들 중에서 닮은 거라면 역시 그 분수대 위에 있는 걸 말하시는 거겠죠? 분수대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유일의 대표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죠. 만다라는 모두 만 명, 전부가 제각기 다른 근원이랍니다. 전부 제멋대로인 이들이니 그런 양반들을 통제하려면 아무래도 압도적으로 강한 힘이 제일 좋겠죠? 저처럼요, 후후.”

웃음으로 끝맺어진 말에는 기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가게의 주인은 정말로 이상했으니 이 기분도 분명 눈앞에 있는 이 사람 탓인 게 틀림없다. 
사실 이 사람이 뭐 평범한 게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굳이 짚어보자면…… 흠, 없는 것 같다.

 사실 가게 주인은 처음부터 기묘했다. 성姓도 없이 달랑 루예나, 라는 이름만 내놓질 않나, 자기는 무조건 17살의 팔팔한 청소년이라 하질 않나, 아무튼 평범한 인간이라고 주장하질 않나… 
백금발의 남자만큼이나 믿음이 가지 않게 행동했지만, 어쩐지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거라 느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나이의 인간은 보통 어리지 않은가? 그래 놓고는 가게의 주인이라느니, 차원과 시공을 뛰어넘는 문을 만지질 않나… 아무튼 평범함의 범주는 이미 온몸으로 뛰어넘었음을 여실히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더 인간 같지 않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캄파뉼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면, 그 사람에게 꽤 가차 없으시네요. 지인이라고 하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닌 건가 봐요?”

“아, 뭐… 원래 친한 사이일수록 더 그렇지 않나요? 신랄하게 서로를 까대는 게 일상이죠, 암. 그리고, 걔는 그래도 싸요. 손님도 알고, 저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뭐 어때요?”

루예나가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완전히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대부분이 맞는 말이긴 했다. 캄파뉼라는 그만큼 친하게 지낸다고 할 만한 사람이 제 주변에 있나 돌이켜 보았으나 이내 쓸데없는 짓임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그만큼 친하게 지낸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말끝은 흐렸으나 대충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는 의미를 담은 고갯짓을 하자 루예나는 작게 웃었다. 그런가 보군. 캄파뉼라가 수긍하며 할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아까 한 말, 당신이 만다라의 대표라는 건가요? ………솔직히 말해 제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직위 같은데, 이곳에서 굳이 가게를 운영하시는 이유를 묻는 건 실례일까요. 만 명이나 되는 이들을 관리하려면 보통 바쁜 게 아닐 텐데.”

그가 잠시 상대를 호기심과 경계 섞인 시선으로 보며 뜸을 들이는 동안, 루예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다 이해한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었다.

“종족이나 그런 걸 지위만으로 가늠하기에는… 세상에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있는 법이죠. 머리가 아프다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도 좋죠, 고작 만 명이라고. 나라 단위를 책임져야 하는 것보다는 낫죠, 아하하.
무엇보다도, 대표가 같은 만다라를 봐야 하는 경우는 좀… 문제가 생겼을 때 말고는 굳이 보고 싶지도 않고요. 모든 만다라들이 이런 곳들을 관리하기 바쁘고, 그건 저 역시도 그래요. 선택하지 않는 한은 영생을 살 수 있는데 그럼 너무 심심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게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괜찮아요. 무엇보다도 전 쪼그만 걸 좋아하거든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루예나는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 같아 보였다. 선악을 가릴 줄 모르고 제 좋을 대로만 행동하면 그만인 아이. 정말로, 이 사람은 이상했지만 캄파뉼라는 애써 넘기기로 했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도 있는 법이니까.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마치 나라 하나라도 통치해본 경험이 있으신 듯 말하시네요. 원래 작은 단체를 이끄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인데…”

말을 뱉고 보니 어쩐지 이 사람이라면 그래 봤다고 할 것만 같았다. 설마, 싶은 마음이 조용히 있으라는 마음과 교차하는 것은 한순간이었고 캄파뉼라는 그냥 모른 체 그랬나 보군, 하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네요. 신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래, 한낱 인간이니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지요. 영생이든, 신이든, 나라의 통치든. 그렇지만 일종의 휴식을 원한다는 건 어찌 보면 인간답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만다라라 한다고 해도 그리 완벽한 존재는 아닌가 봐요?”

마지막 말은 제가 들어도 어쩐지 도발처럼 들렸다. 괜한 소리를 한 건가, 싶어졌지만 그런 것에 두려워 이런 작은 말조차 하지 못한다면 내가 한 몸 불사르는 사지에 뛰어들 일도 없었겠지.
고민이 무색해지도록 루예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미소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나거나 언짢아 보이진 않았다. 그 얼굴에는 궁금증이 가득해 보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가? 하는 표정은 그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어쩐지 돋보이게 해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흠… 친구가…… 없을 수도 있죠, 그렇죠.”

그리고 튀어나오는 말도 마찬가지였고.

“인간은… 짧은 것 같아도 살날들이 많으니 언젠간 알게 되시겠죠, 뭐! 그러니 나라를 하나 만들었던 것도 다 옛날 일이랍니다. 아주, 아~주 오래전의 일이니 지금 꺼내기엔 꽤 부끄러울 정도네요, 후후. 그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지 않나요? 무언가를 이끄는 데에는 결국 사람이 필요하죠.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다 알고 보면 인맥과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걸요.
마치, 산다는 것과도 같은 일이죠. 재능과 재력뿐만이 아닌, 그걸 뒷받침해 줘야 할 것들도 있는 게 좋잖아요? 그래서 저도 죽도록 노력했을 뿐이에요. 남들은 내가 재능과 출생만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며 수군거리지만요.
자, 만다라의 본질이 이러니 신도, 인간도, 다른 모든 것들도 어딘가 하나쯤 삐걱거리는 것, 이란 발상은 어떠신가요? 보세요, 윗물이 흐릴 수도 있는데 저 아래도 마냥 맑을 순 없겠죠! 물론, 윗물이 흐리는 늙다리 주범들도 있으니까요.”

흠, 루예나의 말이 끝나자 캄파뉼라가 처음으로 내뱉은 소리였다. 그건 어쩐지 그의 말에 긍정하는 것 같지 않은 뉘앙스였다. 그것이 무엇의 부정인지를 알은 루예나는 가만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캄파뉼라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그냥… 미래의 일은 모르는 거로 해둘까요.”

“원하신다면야.”

그가 어깨를 한 번 으쓱여주자 캄파뉼라는 다시 작게 흠, 하고 입을 열었다.

“인맥과 능력, 이라…… 인간이 사는 데나, 신이 사는 데나 크게 다를 건 없는 모양이네요. 한때 그런 말을 본 적이 있지요.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불완전한 존재가 불완전한 존재를 낳고, 그것이 또 불행을 낳는다면, 과연 세상에 옳은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요, 그런 세상에 그런 신이라면…… 뭐, 그렇게 죽도록 노력해서 원하는 건 이루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때로는 노력도 배신할 줄 아는 법이니……”

“아! 세상에! 다른 사람이랑 대화하면서 이렇게까지 즐거운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우후후, 흥분도 되고… 아, 좋아라! 노력? 다행히도 전 배신 당하진 않은 것 같네요. 제가 말했던 거 같은데, 기억나시나요? 만다라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난 거랑 후천적으로 되는 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저 역시도 후천적이랍니다. 처음 나고 자랄 때부터 남들은 제게 ‘그 정도면 안주해도 돼’라고 했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 거로만 능사 해결될 수 있던가요. 그 누구에게도 무너지지 않을 힘이 필요해서 손에 넣기 위해 부단히도 힘을 썼답니다. 제 작은 자랑이라면 자랑이죠!”

루예나는 많이 신난 모양인지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이 어디 있겠나요! 그런 게 있었다면 아마 제가 관장하는 것 중 하나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겠죠, 생각해보세요! 이런 저도 누군가에게는 악당이지 않겠어요? 마치, 다수가 굴리는 이 사회는 약자에게, 힘없고 궁핍한 자에게 자비 없는 것처럼요. 마치… 흑백이 한자리에 모인 회색처럼, 말이죠.”

드디어 그의 열변이 멈추었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은 일단 다 쏟아낸 모양이었다. 그의 즐거움에는 따라갈 수가 없었고, 딱히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좀 색다른 기분은 들었다. 캄파뉼라 스스로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제가 루예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진 것을.

“즐거운 건, 모르겠지만… 조금 솔직해지는 것 같긴 하네요. 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하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함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무기 중 가장 재미난 게 아닐까요?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제 윗세대들보단 당신 같은 인간이 훨씬 나아요. 후후, 인간에게서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다니… 그거 재밌는 칭찬이네요, 고마워요?”

루예나가 캄파뉼라에게 손키스를 보내는 시늉을 하며 긍정했다. 말끝을 흐렸던 캄파뉼라는 상대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안도했음을 깨닫고 떨치기 위해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이런 말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 같네요. 저 역시도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조금은 부럽네요,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셨고,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셨으니. 그리고… 회색이라 하면, 일종의 “중립”을 관장하는 신, 아니…”

아직은 만다라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인지 캄파뉼라는 고쳐 말했다.

“만다라, 인 건가요? 그래요, 당신 말대로 완벽한 선인은 없어요. 아무리 선한 가면을 쓰고 있다 하더라도 내면까지는 바꿀 수 없죠.”

말하다 말고, 누군가 생각나기라도 한 모양인지 그가 입술을 잘게 씹었다. 여기서 그 예쁜 입술 상한다고 하면 분위기 별로일까, 고민하던 루예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에겐 나쁜 추억 같아 보였으니. 솔직해진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솔직한 모습도 보여주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군, 그가 생각하며 능청맞게 입을 열었다.

“어쩜…… 누가 생각나기라도 하신 모양인가 봐요? 방금 생각한 사람처럼, 저도 누군가에겐 그렇게 비춰질 거라고 생각하니 정말 너무 흥미롭네요. 네, 정말… 인간이란! 너무나도 알기 힘들고 그래서 파면 팔수록 더 흥미로워지고…!”

그 말을 하는 루예나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흥분이 정말로 가득해 보였다. 캄파뉼라는 순간적으로 그것이 광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려고 하고 나니 광기는 있지도 않았던 척, 금세 사라져 보이지 않아 어쩐지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말았다.

그런 캄파뉼라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모를 루예나는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양팔로 자신을 한 번 감싸 안아주었다. 그러고 나니 좀 진정이 된 모양인지 그거 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느긋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목표, 라… 제가 그런 목표를 가지게 된 건 꽤나 단순한 편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을, 내가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주는 그런 것들에 나는 집착이 강하거든요. 그러니 절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당연하겠죠? 그리고 당신도 알 거라 생각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힘은 세계가 다르고 차원이 달라도 어디서나 통하기 마련이고요. 그래요, 그래서 회색이랍니다!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것, 뭐든지 할 수 있는 편인 게 좋죠. 생각해보세요! 착한 사람이 갑자기 나쁜 짓을 하면 비난받기 마련이고, 나쁜 사람이 착한 일을 시작하면 의심받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죠?”

루예나가 양팔을 넓게 벌리며 동의를 구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캄파뉼라는 그 말에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의견에 동의하긴 했으나 어쩐지 온전히 찬성하기에는 찝찝한 느낌이었다. 그의 말은 이상적이기만 한 편에 가까웠다. 안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캄파뉼라는 어딘가 한구석이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종족이 달라서 그런 걸까, 그가 생각하며 제 의견을 천천히 말했다.

“당신 말에 의하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 회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통…… 그런 걸 불쾌해하지 않나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에 회색, 맞는 말이죠.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착한 척하면서 중립을 지킬 거라면, 그건 위선이죠. 그리고 의도가 어떻든 결국 다들 악으로 판단해왔잖아요? 수많은 이야기들의 선례가 대개 그렇고, 세상은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당신도 익히 아는 것들이겠죠, 사는 건 생각보다 가혹하다는 걸.”

그 말에 캄파뉼라의 입매가 잠시 굳었다가 풀어졌지만, 그것은 정말로 빠르게 지나친 한순간이었다. 루예나가 그것을 못 본 건지, 아니면 그런 척해주는 것인지는 알 길 없었겠지만.

“그, 러, 니! 마냥 착한 사람인 척하다가도 바로 발을 뺀 채 나 몰라라 하며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게 중립의 재밌는 점 아니겠나요! 오호호!”

우스꽝스러운 몸동작과 함께 곁들인 과장된 말투였으나 내용은 전혀 희극의 소재로 쓰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루예나의 내용은 갈수록 도를 지나치고 있었고, 그것은 인간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어휘의 선택이었다. 당신과 대하는 게 나라서 다행인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해봤자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신이었다. 그러니 제 방식대로 하면 될 일이다. 아무튼 이 사람을 상식만으로 이해하기엔 무리인 것 같으니까.

“인간적이라는 게 칭찬이라니, 의외군요. 당신 혹시 동료들 사이에서 유별나다는 소리 안 듣나요? 고나리질 같은 것도 듣는다 하셨으니…”

“에이, 인간의 기준으로 봐야죠! 손님도 인간이잖아요? 유별, 유별나게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어느 쪽이겠어요? 뭐, 저처럼 좀 유별나게 인간 좋아! 하는 부류도 있긴 하죠. 구성원이 다양, 하……진 않더라도 일단은 과거보다는 좀 나은 편이거든요. 이젠 꽉 틀어막힌 놈들만 있진 않으니까요!”

그가 으쓱하며 캄파뉼라의 말에 대답했다. 제국이 그랬다면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무심코 들었지만 이제 와서 기대하기엔 너무 멀리 왔고,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더 변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서 캄파뉼라는 불꽃을 조용히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이 사람 앞에서 꺼내게 되는 때가 올 수 있다 쳐도 지금은 아니었다.

“알기 힘들어서 흥미롭다고 한 말, 제가 당신에게 돌려드려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캄파뉼라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상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알기 힘들다고 말한 건, 뭐랄까…… 아, 그래.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그런 느낌에 가까워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우물을 파는 거죠. 그런 맥락이에요.”

그건, 어쩐지 루예나의 ‘우리’들은 인간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들렸다면 그런 거겠지. 캄파뉼라가 조용히 생각을 흘려보내며 입을 열었다.

“목이 마르셔서 우물을 파려고… 우물 팔 힘을 얻은 것처럼 들리네요. 잃고 싶지 않아서 힘을 추구했다, 라. ………살짝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잃어본 적이 있기에 힘을 찾고 있으니.

그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이다시피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천방지축 돌아가는 카페의 일상소음 안에서 묻혀버릴 소리와 함께 뭐라고 했냐며 반문할 정도의 작은 속삭임이었으나 루예나는 이미 확실하게 듣고 난 후였다.

벌써 늦은 오후의 시간이 한참 흘러가고 있었다.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무언가를 먹는 사람들, 혹은 가게 안에서 장난을 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그 사이의 순간에서 두 사람은 있었다.

루예나는 어느새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선 채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 기묘한 눈빛이 그를 부드럽게 사로잡듯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캄파뉼라도 아무 말 없이 제 상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올곧게 타오르는 불꽃을 감춘, 소리 없는 아우성의 진심과도 같았고, 루예나의 것은 더 이상 오를 수도 없는 권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포식자의 창과도 같았다. 마치, 그곳에 두 사람만 있다는 것처럼 둘은 조용히 서로의 눈을 보았고, 루예나가 먼저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누구나 처음부터 시작하죠.”

루예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기이한 높낮이를 오락가락했고 캄파뉼라는 그저 묵묵히 들었다.

“유명인사도 무명이었던 시절이 있기 마련이죠. 흔히들, 개구리가 올챙이였을 적 생각 못 한다고 하죠? 아, 이건 빈정거리는 비유였으려나…?
 아무튼요, 요지는 처음부터 잃지 않고 시작하는 게 어딨겠느냐는 거에요. 다들 계기가 있으니 발판 삼아 도움닫기를 하고 자라나잖아요? 흠……”

거기까지 말한 루예나가 갑자기 캄파뉼라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

“제가 궁금하세요, 혹시?”

놀란 캄파뉼라가 잠시 벙쪄있다 대답하려 입을 열려는 찰나, 루예나는 그에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근데 말이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늦었네요! 벌써 밤이라구요? 그리고 이매 씨는 아직 못 찾았으니까, 오늘도 2층 다녀오셔야죠, 그쵸?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나서 마저 말해도 되니까.”

그쵸? 루예나가 웃으며 한 번 더 물었다. 벌써 밤이었고, 사장의 말이 맞았다. 어쨌거나 왔던 이유는 직원의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으니까.

자, 그럼. 나중에 봐요?

인사를 끝으로 2층 계단 앞에선 루예나가 큰소리로 가게 안 손님들의 주목을 이끌기 시작했다. 밤은 깊어져 가고, 사장은 인도를, 손님은 축제에 다녀올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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