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유리 심장과, (2019.02.06)

Billie Eilish- lovely / 의식의 흐름 기법(?)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가 널찍한 유리로 둘러싸인 벽을 손 끝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리며 반문했다.

 "인간을 닮지는 않았죠.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인간을 닮아야만 아름다운 것 역시 아니지 않습니까?"

 여전히 손끝을 유리벽에 고정한 채로, 상체를 슬쩍 틀어 청자에게 시선을 둔 그는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유리의 내부에 시선을 고정했다. 언듯 유리벽에 비친 모습은 더없는 황홀경을 목도한 모습이라, 저것의 어느 면이 그를 이렇게도 매료시키는지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유리벽 안쪽의 그것은, 엄밀히 규정하자면 생명체가 아니었다. 아마도. 후대에 이어질 유전자를 자력으로 남기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생명체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에게 생명이 없다고 한다면 전력으로 안면을 함몰시켜 줄 인간군상이 벽 앞에 서 있으니, 입은 조심하도록 주의하며 그것에 관심을 돌렸다. 눈에는 흑요석을, 발톱 끝끝마다 금강석을, 내부에는 장기가 있는 대신 각도에 따라 생김새를 드러내는 갖가지의 값비싼 광물을. 유리벽 속에서 살지 않았다면 필시 누군가가 덤벼들어 데려갔을 그것은, 귀중한 몸체와는 별도로 느껴질 정도로 값싼 심장과 이질적인 투박한 뇌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라도 꺼낼 수 있다면 적어도 세기가 다섯 번 지날 동안 놀고먹을 수 있을 광물 사이에서 유리로 된 심장과- 중앙에 단단하기로 소문난 광물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인간으로 치자면 그렇겠지- 불명의 재질로 투박하게 조각되어 살아있는 듯 박동하는 뇌는 단연 눈에 띄었다.

 허나 내부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투명한 외관은 보호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내부의 복잡한 장치를 그대로 비춰보이는 외관은 언듯, 반수생의 거북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등껍질이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겠지. 거북의 등껍질을 닮았다고 과시하는 듯 완만하게 위로 솟아오른 곡선은 그 위에서 빛나는 기하학적인 문양만 아니었어도 볼품없었으리라. 그러나 문양은 은은한 빛을 내며 제 가치를 뽐냈다. 비록 그 가치가 그것을 보호하는 것에는 한 치의 도움도 주지 않을 테지만.

 하긴, 그러니 저 치가 저것을 아름답다 평하면서도 유리벽 안에 모셔놓는 것이었다. 혹여 바깥에서 어딘가 생채기라도 얻어올까, 누군가가 해코지라도 할까, 애지중지. 정말로 답지 않게도.

 정말로,

 "이런, 그렇다고 제 보물에 그렇게까지 매료되는 것은 지양해주셨으면 합니다ㅁ..."

 답지 않게도.

 "매료되지 않았으니 신경 꺼. 어차피 잠시 후면 보지 못할 모습이니 기억이라도 해 두던가."

 "......"

 "나에게 있어 저것의 가치는 너와 이 방에, 공간에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이미 끝이 났거든."

 준비해온 냉각기를 유리벽에 설치하고는 손 안에서 조작 버튼을 굴려보았다. 지금까지의 목표가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흘끗 스쳐보고는 버튼을 누르니, 유리에 하이얀 꽃이 피었다. 뒤에서 바르작거리는 소리가 났으나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꽃을 으스러트렸다.

 "뭐, 어쩌면 새로운 가치가 생길지도."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그것이 흑색의 광석을 굴려 내 쪽을 직시했다. 우습게도, 그때 까지 생명력이 없다 느낀 무기질적인 눈에 확연한 의지가 맴돌았다. 느긋하게, 하지만 신속하게 뚫힌 출구를 향해 걸어오는 걸음에는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걸음을 옮겨 자리를 비켜주니 그것이 절도있는 걸음으로 바닥의 버러지에 다가가 입(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크게 벌려-

 콰득,

 물어뜯었다. 약이 제대로 듣는지 작게 바르작거리는 소리와 살과 뼈가 비명지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메우는 만족스러운 음들의 향연이었다.

 살과 뼈의 비명이 남긴 잔해를 뒤로하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흑요석의 눈에 튄 잔해가 어찌 그리 사랑스럽던지! 유리벽을 당당히 나온 상대에게 예를 갖추어 무릎을 꿇고는 손을 들어 잔해를 조심스럽게 치웠다. 채 1m가 되지 않을 몸체를 그가 유리벽을 만지듯이 쓸어보고는 상대를 안아들었다. 얌전히 자리를 잡고 눈을 굴리는 것이 또 사랑스러워, 이제는 지킬 것이 사라진 유리벽과 널부러진 붉은색의 향연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가진 것이 뛰어난 안목이었음을 내심 인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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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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