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종결 (2019. 02. 02)

Savina&Drones- Stay / 의식의 흐름 기법(?)


 

 인간을 이루는 세포의 구성물질은 생분해가 가능하다. 우리 세포는 매일 부서져 내리고 다시 재구성되는 것을 DNA의 명령대로 반복하고, 모든 것이 녹아내림에도 남아있는 DNA는 차회의 재구성을 그저 묵묵히 명할 뿐이다. 종결 속에서 유일하게 종결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니는 기억이란 무엇일까.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다가오는 종결 속에서 DNA가 차마 놓지 못한 스트레스에 의한 상흔과 변화가 지워지지 않는 것이 기억이다.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인간이 놓고 싶은 상흔을 영원토록 끌어안고 가야만 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울부짖을 수 있고. 변화가 끔찍하다면, 차라리 변화 없는 삶이 좋다고 갈구하는 모습 뿐이라면. 상흔도 변화도 무용하니 제발 나에게 망각을, 달가운 종결을 달라 울부짖는다면. 그것은 생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가 인간의 세포와도 같이 녹아내려 사라지는, 끝내 개인의 망각을 불러오는 개인의 생의 종결이다.

 그러나 인간의 상흔과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다면, 인간은 왜 생을 이어가는가. 자기 전의 하루가 끔찍할지언정, 세포의 종결 후에 재구축되는 내일이 혐오스러울지언정. 상흔을 딛고 일어나, 변화를 수용해 종결을 그저 담담히 맞이하는 인간 역시 존재한다. 망각을 갈구할지언정, 평안을 목 놓아 부르짖으며, 부르짖으며 행동하며 움직이며 상흔을 늘여가고 변화에 휩쓸려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며 잠들기 전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공허한 울림을 내뱉을지언정. 현상의 종결을 달가이 여기지 않는 개인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흔을 울음으로, 분노로, 기쁨으로, 슬픔으로, 감정으로, 이성으로 받아들여도. 인간이 변화를 분노로, 우울로, 슬픔으로, 기쁨으로, 이성으로, 감정으로 받아들여도. 상흔과 변화가 결코 종결이 되지 않음을 알고 있는 인간들이. 확률적으로 미약하더라도 수적으로는 결코 미약하지 않은 인간들이.

 너희를 닮은 인간들이.

 만류를 뿌리치고, 그것이 기억으로 형상화 될 정도의 상흔을, 변화를 끌어안고서도 현상의 종결을 치가 떨리도록 싫어하는 인간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출신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기대들이. 상흔을 꺼려해도 회피하지 않고, 변화에 조심스러워도 그에 대해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 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착실히 나아가려 발버둥치는. 그런 닮은 꼴들이 수 없이 많이 있는 세상이라서, 아직 내일이 기대되는 듯 싶다. 오늘의 종결이 지나가면, 내일은 좀 더 다른 곳에서 종결지어지겠지. 너희와 다르게 나는 미약해서 별달리 하는 일은 없지만. 작은 움직임이 한 발자국이 되길.

 한 발짝 앞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것은 종결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임을 숙지하고 있길. 움직임에 따른 상흔도 변화도 언젠가는 돌이켜볼 수 있는 종결이 되길. 나 또한 용기를 낼테니, 너도 부디 종결을 부르짖지 않기를. 망각을 부르짖고 생의 종결을 바라지 않기를.

 잘 자. 수많은 상흔과 변화 속에서 네가 끌어안을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네가 마주할 내일의 종결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종결이 너에게는 안식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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