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레이멜리사] Merry Christmas

ⓒ유엘쓰(@Scarlet_Express)

*크리스마스 휴일 시점 (서사 상, 1943년의 크리스마스)

* 레이멜리사가 파자마 파티 하는 얘기(근데 잠은 안 자는)―인데 급하게 쓰느라 ㅈㄴ 얼레벌레인 점, 사과드립니다. (꾸벅

* 본 글을 멜리사 오너, 카렌 씨에게 바칩니다.

  대부분 제멋대로의 캐해에 날조라서 미안합니다.

Merry Christmas

ⓒ유엘쓰(@Scarlet_Express)

레이시 스칼렛은 크리스마스와 친하지 않다. 친하지 않다고 해야 할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크리스마스에 딱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썩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레이시는 크리스마스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럼, 왜 레이시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목전에 두고 있는가 하면.

이 이야기는 자그마치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리스마스 휴일을 앞둔 호그와트는 부산스러웠다. 휴일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짐을 챙기기 바빴고 호그와트에 남는 아이들은 휴일 동안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 지 수다를 떠느라 바빴다. 그 사이에서 레이시만이 이도저도 속하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었는데, 소외되었다기 보다는 본인이 합류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휴일에 집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어차피 돌아가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그렇다고 호그와트에 남아서 크리스마스를 챙기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레이시는 이 크리스마스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마냥 미워하지도, 마냥 좋아하지도 못하는 약혼자 덕분에 그동안 소란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왔던 레이시 입장에선 당연한 얘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사자이신 약혼자, 알파드 블랙은 무슨 연유인지 레이시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올해는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나 레이시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기분이 가라앉을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레이시는 혼자가 익숙한 사람이었으므로 이게 더 좋은 일이었다.

…그랬을 텐데. 인적이 드문 복도의 창틀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던 레이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영을 보고 놀람과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멀리서 멜리사 칼렌이 걸어오고 있었다. …저 선배가 왜 나한테 오지?  너무 놀란 나머지, 레이시가 도망칠 생각을 못하고 놀란 얼굴로 가만히 굳어있을 동안, 멜리사는 레이시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녕, 레이시.”

“…안녕. 선배.”

“레이시, 혹시 크리스마스 일정이 어떻게 돼?”

멜리사가 제게 말 거는 것도 놀랄 일이건만, 크리스마스 일정을 묻는 것은 더 놀랄 일이었다.

멜리사와 레이시는… 참 애매하고 이상한 사이였다. 알파드 블랙이라는 구심점으로 만났으나 그들은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물론 멜리사 칼렌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미지수다.―단지 친구 미만이지만 남이라기엔 친한 사이였을 뿐이다. 남이라기엔 친한 것은 두 사람이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다 조용한 것을 선호했고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그랬음에도 친구 미만이었던 것은 레이시와 멜리사 둘 다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고 두 사람 사이엔 대화를 나눈 일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들 사이에 대화가 없었던 것은 거의 일방적으로 레이시가 멜리사를 피해다녔기 때문이라, 멜리사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었다. ―기분 상하게 한 일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말하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걸 모르진 않는 지라 레이시는 제 입장을 고집하는 대신 멜리사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딱히 일정은 없어. 근데 내 일정은 왜?”

“응. 혹시 약속이 없으면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

“…초대한다고? 나를? 선배 집에?”

레이시의 반문에 멜리사는 친절하게도 다시 말해주었다. 응. 초대하고 싶어. 레이시를. 우리 집에. 그 말이 레이시에게 얼마나 낯설었는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나서라도 제일 이상했던 것은, 왜 레이시 자신을 초대하는가 였다. 알파드는 둘째치고.

“…말포이는 어쩌고?”

그 인간이 이런 기회를 놓칠 인간이 아닌데. 아브락사스 말포이를 떠올리며 레이시가 무심코 미간을 찡그리자 멜리사는 그저 웃었다. 레이시와 아브락사스의 사이가 안 좋은 것은 호그와트 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므로 멜리사도 그 태도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아브는, 선약이 있대.”

“그 인ㄱ, 아니. 말포이가?”

그 아브락사스 말포이가 멜리사 칼렌을 두고 선약이라고? 레이시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제 귀를 의심했다. 그 인간이 그럴 리가 없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던 레이시는 차분한 멜리사의 태도를 보고 멜리사가 따로 설명해주진 않았으나 제가 생각하는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브가 선약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레이시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안될…까?”

뒤로 이어진 말이 레이시의 생각을 뒷받침 해주었다. 다만 그 말이 레이시에게 다른 충격을 주어서 문제였지. 오늘 참 놀라고 황당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고, 레이시는 생각했다. 멜리사 칼렌이 레이시 스칼렛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한다는 게, 어디 쉽게 믿길 말이던가?

평소의 레이시였다면, 만일 저 말을 한게 알파드였다면. 레이시는 헛소리 하지 말라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알파드도 자연스레 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멜리사였다. 알파드도 아니고, 적어도 멜리사가 이런 일로 농담을 하거나 장난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레이시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선배는 나랑 크리스마스를 보내도 괜찮겠어?”

“응. 레이시면 좋겠어.”

이어지는 멜리사의 미소를 본 레이시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한동안 피해다녀서 잊고 있었다. 자신이 멜리사의 웃는 얼굴에 약하다는 것을. 아니, 미인이 웃기까지 하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어디 있어? 레이시는 이게 비단 자신만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스스로에게 세뇌하며 입을 열었다.

“…갈게. 초대해줘서 고마워, 선배.”

멜리사가 눈이 환해지게 웃는 것을 보며 레이시는 제 미래를 직감했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휴일이 되기까지 아브락사스에게 좀, 많이 시달리게 될 것 같았다. 그 인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거기에 알파드라는 개 한 마리가 추가될 것 같기도 하고.

레이시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휴일을 앞둔 그 며칠 사이. 그 며칠 내내, 레이시는 멜리사를 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이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을 놓는 아브락사스에게 시달려야 했다. 거기에 더불어 왜 레이시만 초대하느냐고 묻는 알파드는 덤이었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수락한 내가 문제지, 그래.’

아무튼 그렇게 레이시는 멜리사의, 칼렌의 저택에 초대받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크리스마스 이브의 새벽.

레이시는 칼렌 가 저택의 연회장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누가 부잣집 아니랄까봐 트리 장식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정작 제 가문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건 잊은 모양이다. 제 키를 훌쩍 뛰어넘는 트리 앞에 서있던 레이시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시.”

“선배.”

“와줘서 고마워.”

“아냐. 나야말로 초대해줘서 고마워.”

타인의 집에 초대받기는 처음이라 답지 않게 조금 긴장한 레이시가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것도 파자마 파티라니. 친구라 부를 사람이 마땅치 않은 레이시에겐 이마저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새삼스레 제 인간관계가 좁다는 것을 깨달은 레이시가 속으로 탄식을 삼켰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라 누굴 탓할 래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기사 멜리사와의 친분도 어떻게 쌓았는지 모르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레이시가 속으로 자조하는 사이. 멜리사가 레이시를 불렀다. 후배님. 일단 올라갈까?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저택 곳곳이 크리스마스를 위해 장식된 것이 보였다. 시야에 닿지 않는 복도 끝 마저 조각상으로 장식해놓은 것을 보니 어지간하다, 싶었다. 멜리사가 레이시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침실이었다. 멜리사를 닮아 순수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제 침실과 정반대인 분위기에 레이시가 신기해하며 둘러보자 멜리사가 부끄러운지 귀를 붉혔다. 조금 지저분해서 부끄럽다니. 이게 지저분한 거면 길거리는 얼마나 지저분한 거란 말인가. 레이시는 멜리사가 적당히 겸손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붉은 방을 떠올린 레이시는 침실 한 켠의 트리를 발견했다. 작은 트리 밑에 놓여진 선물을 보고 레이시가 질문했다.

“이건 누가 준 거야? 뭐… 말포이겠지만.”

“아닌데. 아브가 준 거 아니야.”

“아니라고?”

그 인간이 선물을 안 줄 리가 없는데.―당연하게도 아브락사스는 선물을 보냈다. 다만 그것이 레이시의 예상보다 크고 많아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지 않았을 뿐.―레이시의 생각이 훤히 보이는지 멜리사가 작게 웃으며 그 생각을 부정했다. 그거 후배님 거야. …응? 뭐라고?

“그 선물, 레이시 거라고. 내가 레이시한테 주려고 준비한 거야.”

“…선배가 날 위해서 준비했다고? 이걸?”

“응. 받아줄래?”

그런 얼굴로 물으면 누가 거절해. 아브락사스가 들었으면 거절한 사람을 묻어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선물받은 레이시를 일주일 간 괴롭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레이시도 묻지는 않아도 좀 괴롭힐 거 같기도 하고.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 레이시가 멜리사의 기대 어린 시선 아래, 선물을 뜯어보았다.

멜리사가 준비한 선물은 파자마였다. 아마도 오늘 그들이 모인 목적이 단순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아니라 파자마 파티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시가 평소 입는 파자마를 챙겨오긴 했으나 설마 파자마를 선물할 줄은 몰랐던 지라 상당히 놀란 기색을 띄었다. 멜리사의 선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기쁜데 파자마라니. 종종 바꿔 입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레이시가 파자마를 살펴보며 웃었다.

“고마워, 선배.”

“별말씀을.”

명색이 파자마 파티인 만큼 멜리사도 파자마 차림이었는데 멜리사에게 어울리는, 부드러운 소재의 긴 원피스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얼마나 잘 어울렸냐면, 알파드가 종종 자랑하곤 했던 슬리데린 기숙사 휴게실의 풍경이 절로 그려질 정도였다. 멜리사의 침실과 같은 하얀 파자마를 보며 레이시는 진지하게 멜리사가 사실은 천사가 아니었을지 고민했다.

멜리사의 배려로 레이시가 파자마로 갈아입고 나왔다. 가지고 온 파자마 대신 멜리사가 선물한 파자마를 입었는데, 평소에 입던 것이 아니라 그런지 행동이 좀 어색했다. 레이시는 평소 위아래가 따로 있는, 바지 파자마를 즐겨 입었으나 멜리사가 선물한 파자마는 아래로 긴 원피스 형태의 파자마였던 것이다.

어색하는 레이시를 바라보며 멜리사가 미소지었다. 제 눈 앞의 후배님은 그리핀도르의 고양이라고 불리며 예민하기로 유명했으나 그녀의 눈엔 그저 귀여운 후배로 보일 뿐이었다. 레이시가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은 그것대로 아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레이시가 싫어할까 싶어, 차마 붙잡지 못했던 지난 날을 떠올리던 멜리사가 잠시 씁쓸하게 웃었다.

칼렌 가 집요정이 파티를 위한 케이크와 기타 디저트들을 내오는 사이, 레이시가 창 밖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잠겼다. 알파드 블랙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다. 레이시가 의도하진 않았어도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늘 알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긴. 생일 선물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받을 수 있었겠어?’

그 알파드에게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웃겼는지 레이시가 작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멜리사는 정말 천사가 분명했다. 명색이 약혼자인 알파드도 안 챙겨주는 선물을 챙겨주는 사람이니까. 그걸 깨닫고 나니 자신이 준비한 선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스칼렛 가문도 나름 부자에 속하는 편이었으나 레이시에겐 자각이 없었다.

“무슨 생각해, 후배님?”

“…아무것도. 근데 선배. 우리 둘 밖에 없는데 이건 좀 많은 거 아니야?”

레이시가 눈 앞에 놓인 다과회 테이블 위의 디저트들을 가리키며 물었고, 멜리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친구들을 초대할 때는 늘 비슷하게 다과회를 즐겼기에 멜리사는 큰 특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 모습에 레이시가 단호하게 말했다. 응. 많아.

“다 못 먹어도 괜찮다면, 난 상관없지만.”

“응, 물론이지. 남겨도 돼.”

멜리사의 제안에 레이시는 수락했고 멜리사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준비한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준비된 케이크는 딸기 쇼트 케이크였다. 예전에 레이시가 지나가 듯이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감동 받았는지 레이시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에 멜리사가 레이시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레이시?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하자 레이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레이시 본인이 자주 다치거나 아프기는 했다만, 이렇게 아무런 전조없이 아픈 편은 아니었다. ―알파드 블랙이 들었다면 어이없어 했을 이야기였다.― 아무튼 멜리사가 더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레이시는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멜리사가 알파드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두 사람 사이엔 대화가 없었고 그 어색함을 못 견딘 레이시가 이리저리 떠돌았으니 멜리사의 안부를 알 수 있을 리도 만무했다. 멜리사는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언젠가 지나가며 보았던 선배―크리스티나 레이븐스. 안타깝게도 레이시와는 큰 접점이 없다―와 같이 호그스미드에 갔던 일이나 아브락사스와 데이트를 했던 일에 대한 얘기였다.

멜리사와 같이 다니는 선배에 관해서 레이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호그스미드에 가서 뭘 했는지 까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선배 이름이 크리스티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슬리데린에는 다 멜리사같은 사람만 있는 건가, 싶다가도 발부르가 블랙이나 아브락사스를 떠올리고 정정했다. 그냥 멜리사가 좋은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아브락사스와의 데이트에 대해서도 레이시가 할 말이 없었다. 공공연하게 모두가 다 알 정도로 아브락사스와 사이가 좋지 않다 못해, 서로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이였지만 적어도 그가 멜리사를 얼마나 좋아하고 아끼는지는 잘 알기에 레이시는 굳이 무어라 말을 얹진 않았다. ―다만 그 아브락사스가 멜리사 앞에서 헤실헤실 풀어지는 것을 보고 얼굴을 구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생각해봐야 나만 손해지.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떨쳐낸 레이시가 멜리사를 힐끔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 미리 죄송해요. 응?  레이시는 선물을 오랫동안 고민했고 결국 선택한 것은 바로 소원권이었다. 레이시가 들어줄 수 있는 일에 한하여, 멜리사가 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소원권. 멜리사의 성에 찰지는 알 수 없으나 레이시에겐 이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

멜리사의 반응은 예상하기가 어려워 반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레이시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자 의아해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멜리사를 바라보았다. 역시 맘에 안 드는 거겠지, 싶었으나 정작 멜리사는 고민에 잠긴 듯 보였다. 그래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짐작했던 레이시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얼이 빠졌다.

“선배? 멜리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아… 난 또 별로인가 했어.”

“별로라니. 엄청 마음에 드는데.”

분명 레이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다 들어줄 수 있다고 했지? 확인하 듯이 재차 되묻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으나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가 활짝 웃는 것은 좋았으나 소원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준비할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멜리사니까 레이시가 곤란할 소원을 빌진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정말 고마워, 레이시. 그렇게 웃는 멜리사를 보며 레이시도 옅게 웃었다. 멜리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괜히 남자애들이 미모 순위로 제일 먼저 멜리사를 뽑는 게 아니었다. 자신이 입은 파자마의 옷자락을 만지작 거리며 나중에 알파드에게 자랑해야 겠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멜리사가 알파드에게 선물을 주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간에 대화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시침도 어느덧 자정을 넘어 있었다. 이브가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12월 25일. 머글세계에선 한 신이 태어났다는 성탄절. ―솔직히 마법사들이 그 신의 생일을 챙기자고 크리스마스를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절로 눈이 마주치고 먼저 멜리사가 인사를 했다. 그 뒤로 레이시가 작은 목소리로 따라 인사를 건냈다.

“Merry Christmas, Laicy.”

“…Merry Christmas, Kallen.”

…사실, 크게 내색하지 않고 되려 인정하지 않으려 마음 한 켠으로 밀어두었던 것이 있다. 레이시에겐 그것이 달가운 일인지 달갑지 않은 일인지 분간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이리 기분이 좋은 것을 보니 필히 달가운 일이 될 것이다.

레이시는 앞으로 제게 크리스마스가 좋은 날이 될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전적으로 순순히, 멜리사 칼렌의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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