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튭 마스코트 탄생비화
[이녹두] 샤녹
'법칙'이 이 세계에 나타난 이후,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또는 사람들의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줄줄이 일어났다. 각성, 아이템창, 등급과 균열, 균열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괴수, 괴물. 처음 균열이 나타난 후로 100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것들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안도 없다는 것이다. 이녹두는 황망한 표정으로 신시아의 품에 안긴 보라색 괴수를 응시했다.
"…선배, 언제 테이머 스킬 얻으셨어요?"
"나 그런 거 없어."
"그럼 저건 왜 저러고 있는데요?"
"나도 몰라?"
신시아가 자연스럽게 보라색 솜사탕처럼 생긴 괴수를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딱히 심각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녹두는 괴수를 액체괴물 마냥 주물거리고 있는 신시아를 보고 다시 한 번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테이머 스킬 같은 건 나보다 너한테 생기지 않을까?"
신시아의 늦은 대꾸에 '진상 마스터' 이녹두는 나오려던 잔소리를 삼켰다. 그야 칭호라든가, 성격이라든가, 평소 인간관계라든가, 여러 면을 살펴도 신시아가 테이머 적성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공략을 위해 진입한 내부형 균열에 진입하자마자 괴수가 달려들어서 안겼다는 설명보다야, 적성에 맞지도 않는 테이머 스킬이 개화했다는 설명이 더 신빙성 있지 않은가? 이녹두는 비상식적인 세상에서 비상식적인 일을 맞닥뜨리고서도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하느라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어쨌든 일단은 연구소에 보내는 게 급선무겠네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얘 사람한테 안 달려들던데."
"그래도 괴수잖아요. 언제 돌변할지도 모르고."
"이런 애한테 맞아봤자 딱히 아프지도 않을 것 아냐."
완전히 녹지만 않는 솜사탕의 형상인 괴수였다. 폭신폭신한 촉감에 설탕 뿔. 이빨이 달린 입도 없는 것 같았다. 크기는 고작해야 60cm 솜인형의 크기였고. 한 마디로, 지금 신시아의 품에 안긴 저 괴수에게는 위협적이라고 할만한 구석이 아예 없었다. 이제는 아예 솜인형 취급을 하기로 했는지 괴수를 주무르고 있는 신시아와는 달리, 이녹두는 그럼에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선배, 얘 연구실에 맡겨서 안정성 검사 안하면 앞으로 제가 알바하는 카페에 출입금지에요."
"연구실이 어느 쪽이더라?"
물론 '진상 마스터'에게 이정도 땡깡 처리쯤은 일도 아니었다.
간혹 괴수를 반려동물이나 사냥개 쯤으로 키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데리고 다니는 괴수들은 필수적으로 안정성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많은 헌터가 활동하는 시대이지만 모든 사람이 헌터는 아니고, 모든 헌터가 괴수를 처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안정성 검사에서는 괴수의 신체구조, 공격 방법, 약점, 공격성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위험 등급을 매겼다. 안정성 검사에서 받은 등급에 따라 괴수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의 범위, 종류 등이 달라졌다.
결과적으로, 정체불명의 보라색 솜사탕 괴수는 안정성 검사를 가장 낮은 등급으로 통과했다. 도심 한복판에 풀어놓아도 될만큼 공격성이 없다는 소리였다. 이녹두는 찜찜해하면서도 일단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고, 신시아는 살아있는 솜사탕 촉감의 베개를 얻어서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까 선배, 그 솜사탕, 안정성 검사할 때 협회에 등록한 것 아니에요?"
"어, 맞아. 균열 몬스터는 데리고 다니려면 등록해야 한다더라고."
"이름은 뭐라고 했는데요? 선배가 뭐, 반려동물처럼 대하는 것 치곤 이름 부르는 건 못 들어본 것 같아서요."
반려동물 취급을 했다고 하기에는, 신시아는 지금도 솜사탕 괴수를 볼로 깔아뭉개고 있었지만. 천상 헌터인 이녹두의 입장에서는 괴수를 항상 곁에 두고 다니는 것이 베개 취급보다는 반려동물 취급 같았던 모양이다. 평소 이녹두의 괴수 취급을 아는 신시아는 이녹두의 괴랄한 단어 선정에 잠시 명복을 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선배 후배님의 인성에 명복을 액션빔."
"시비 거시는 건가요?"
"얘 이름은 그냥 적당히 '솜사탕'으로 했는데."
신시아는 이녹두의 살벌한 시선을 피해 다시 테이블에 드러누웠다. 여전히 신시아의 머리통 아래에 깔린 보라색 솜사탕 괴수가 '규욱'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신시아와 테이블 사이에 압축됐다. 물론 그런 애처로운 소리를 내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말 나온 김에 이름 지어볼까? 롯X월드 균열에서 만났으니까 롯X 어때?"
"고소당할 것 같은데요."
"예비 롯X 얘 샤튭에도 많이 나오고, 이름 지어주면 이름도 많이 불릴텐데. 오히려 매출 올려주는 거 아냐? 돈 안받는 뒷광고급이라고. 좋아하지 않을까?"
"정말 쓸데없는 데서 논리적이시네요."
이녹두는 영혼없는 눈으로 대꾸했다. 벌써부터 신시아의 말을 반쯤 흘려듣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녹두는 교대 직전에 본인 손으로 타온 아이스 라떼를 쪼로록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애초에 돈을 안주는데 광고를 왜 해줘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마인드에 신시아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건 그러네."
그럼 뭐로 하지? 신시아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압축됐다가 서서히 펴지는 괴수를 주물거렸다. 이런 취급을 보고 반려동물이라고 하다니, 역시 우리 녹두의 인성은 조금 안 좋은 것이 아닐까. 마치 친한 고모같은 걱정은 덤이었다.
"딱히 생각 안나면 그냥 계속 솜사탕이라고 부르세요.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니야, 슬슬 지어줄 때가 되긴 했어."
신시아의 손 아래에서 꿈틀대는 괴수를 드디어 플어 주자, 괴수는 잔뜩 괴롭힌 신시아에게서 벗어나 이녹두의 뒤로 날아갔다. 이녹두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탓에 이녹두의 뒤통수에 붙어 있으면 은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됐다.
"이번에 길드에서 제안이 왔거든. 솜사탕이 샤튭에 많이 출연해서 인기가 많아졌다고, 이참에 마스코트처럼 만들어서 굿즈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언제요?"
이 솜사탕 뭉치의 인기가 그 정도였나? 거의 샤튭의 공동 운영자인 이녹두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뒤통수에 붙은 솜사탕 괴수를 힐끗댔다.
"음, 저번주쯤? 이번주에 첫 굿즈 시안 만들어 본다고 했는데."
"그럼 이름은 짓는 편이 좋겠네요. 이왕이면 샤튭에 연관있는 단어로."
돈냄새를 맡은 이녹두의 눈이 드물게도 밝게 빛났다. 어느새 반쯤 남은 아이스 라떼까지 한번에 꿀떡 삼키고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샤튭 구독자가 한창 치솟을 때의 눈을 보는 것 같아서, 신시아는 약간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질렀다.
"길드에서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낼 정도면 거의 확정이라는 건데, 선배도 이름이나 이벤트나 굿즈 같은 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으, 응, 알았어…."
"대충 생각하지 말고요."
"응…."
생기를 담고 번뜩이는 눈에 압도당한 신시아가 절로 자세를 바로 하고 대답했다. 매사 심드렁한 이녹두가 저럴 때마다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저러고 난 직후에는 미친듯이 일을 해야 해서 무서웠다. 그러고 난 후에는 더 미친듯이 돈이 들어와서 더 무서웠다. 신시아는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저 생각했다. 당분간은 할 일이 정말 많아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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