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매패]

습작

황올 by 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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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소란에 눈을 떴다. 머리가 멍하고 어지럽다. 일단은 몸을 일으키려 손을 짚자 딱딱하고 거친 석재의 촉감이 느껴졌다. 바닥은 아니다. 에드워드는 원형 경기장마냥 둥그렇게 네다섯층의 관객석이 있는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 넓진 않았지만 빈자리 없이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것이 100여명은 되어 보인다. 자기들끼리 떠들며 웅성거리던 정도에 불과하던 소음은 그가 일어나자 더 커졌다. 소란을 막으려 애쓰는 이도 있지만 별 효과는 없다. 소리를 지르는 이도, 환호를 하거나 우는 이도, 물건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머리가 아프다. 여긴 처음 보는 곳이다. 들어본 적도 없다. 에드워드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 속에서도 아는 얼굴 하나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밀려드는 고통과 어지러움에 미간을 구기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상한 일이다. 내게 약물이 듣진 않을텐데. 그는 수술을 위한 마취를 하기도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기절한 채로 처음 보는 곳까지 끌려왔는데 기억도 안난다니.

두통은 있지만 그게 뒤통수를 후려맞아서는 아니었다. 이래뵈도 처맞고 사는 게 쓸모였던 때가 있었던 몸이라 그 정도는 척하면 알았다. 몇 시간이나 지났지. 이 놈은 뭐가 그렇게 바빠서 날 데리러 안 오지. 에드워드는 슬슬 저들이 지르는 비명과 환호에 귀가 아프기 시작한다. 잠깐은 놀라웠지만 이젠 지겨웠다. 납치 당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옷은 또 언제 갈아입혀놨는지 값싼 재질의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원피스라기 보다는 천쪼가리에 가까웠지만.

에드워드가 돌로 만든 재단에서 내려왔다. 재단은 180cm가 넘는 에드워드가 눕기에 넉넉했기에 길이가 못해도 2.5m는 되었다. 그에 비해 높이는 기껏해야 1m 안팎이었기에 내려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를 묶어두고 있는 밧줄이나 장치, 하물며 마법도 없었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재단을 벗어나자 남자 두 명이 헐레벌떡 그에게로 뛰어왔다.

“이, 일어나시면 안됩니다. 적어도 저 곳에 닿아계셔야합니다!”

“그럼 묶어두지 그랬어?”

“저희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같이 온 다른 남자도 함께 몸을 굽히고 에드워드를 재단으로 안내한다. 남자들의 공손한 태도에도 에드워드는 혀를 찼다. 그가 관찰한 바로는 이들은 에드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즐거운 구경거리나 구하기 힘든 재료 정도다. 귀히 여겼다면 싸구려가 아니라 비단 옷을 입혔을 테고 편히 있으라며 푹신한 방석을 뒀을 거다. 발이 시렵지 않게, 또 혹여 굴러 떨어졌을 때 아프지 않게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펫을 깔고 그 위에 또 러그를 깔았을 거고 사람이 많은 걸 싫어하니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배치했을 거다. 구경거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동안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을 예정인 사랑과 관심이 무엇인지 에드워드는 알았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다.

“됐다. 여기가 어딘지는 밖으로 나가면 알겠지.”

툭. 에드워드가 오른손을 뻗어 남자의 가슴팍을 밀었다. 가느다란 팔로 장난을 치듯 툭 하고 민게 다였지만 남자는 뒤로 넘어지더니 그대로 바닥 속으로 잡아먹혔다. 소란이 더 커졌다. 이제 대부분은 비명을 지른다. 에드워드는 남자를 잘 삼켰는지 아래를 잠시 보다가 다른 남자에게도 다가갔다.

“오, 오지마!! 미친. 도대체 뭘, 뭘 어떻게 한거야!”

“그걸 물어본다고 설명해주는 호구가 어딨냐?”

그가 에드워드를 쫓아내려 애쓰며 물건이 잡히는 대로 던져보고 휘둘러보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에드워드가 박수를 두 번 치자 바닥에서 검은 색 손들이 튀어나오더니 남자를 끌고 다시 바닥으로 사라졌다.

“아, 죽이고 나서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공허로 돌아가라였나? 내가 신앙심이 두터운 건 아니라서 거기 오래 살았어도 잘 모르겠다니까.”

1분도 안돼서 사람을 둘이나 죽인 에드워드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딱히 대화가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죄를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살인에 취해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냥 거기 서있었다. 그리고, 바글바글 가득찬 벌레같은 것들을 쳐다보았다. 에드워드는 살인을 즐기지 않았다. 누군가를 죽이는 데 흥미를 가지는 건 너무 어린애 같다. 빌려쓰는 힘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살인을 꺼린다는 뜻은 아니다. 필요하면 죽인다.

종교단체인지, 귀족들의 놀이인지. 에드워드는 뒤를 돌아 자신이 일어난 재단을 본다. 제대로 된 장식도 없다. 특징이랄 것 없는 평범한 직육면체다. 이들의 정체를 추리하다가도, 또, 다시 흥미를 잃는다. 아무래도 좋다. 벌레들은 시끄럽지만 해가 되진 않아보였다. 에드워드는 이들이 설령 악마숭배를 하며 눈 앞에서 당장 악마를 소환한다해도 관심이 없다. 지금 그에게 관심이 있는 건 제 보호자가 자신보다 우선해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뿐이었다. “머리털을 다 뽑아버려야지 그 시발놈.” 그는 한숨과 함께 욕을 중얼거렸다.

에드워드에 행동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며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내버려두고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띈 문을 열고 나갔다. 방과 이어진 곳은 그나마 앞을 보기엔 충분할 정도인 어두운 조명이 달린 복도다. 복도에 연결된 방은 꽤 많았다. 당장 보이는 것만 열 몇 개는 되어보였다. 이걸 다 열어봐야하나. 에드워드가 또 욕을 했다.

-

“에휴, 1년간 열어볼 문 오늘 하루 몰아서 다 연 것 같네.”

돌아가면 문도 네가 열라고 해야겠다. 에드워드가 큭큭 웃는다. 빙빙 돌며 겨우 찾아낸 출구는 건물의 옥상이다. 해가 지고 있다. 고작 흰색 원피스 하나만 입고 있기에는 날이 찼다. 건물은 6층 높이로 옥상의 난간은 매우 낮았다. 난간 위에 선 에드워드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자신이 이곳이 어딘지 알만한 랜드마크를 찾았다. 서쪽 방향에 시계탑이 하나 있었지만 알던 건물은 아니다. 북동쪽에 다리가 하나 있다. 저걸 건너볼까. 에드워드가 발을 한 걸음 내딛는다. 빠른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태평하다. 바닥에서 검은 손들이 튀어나왔다. 어찌나 많은 양이 길게도 나오는지 손보다는 촉수라고 부르는 게 적절해보인다. 괴상하게 생긴 손들은 에드워드를 향해 뻗더니 그를 조심스럽게 안아든다. 천천히 안전하게 바닥에 에드워드의 발이 닿았다. 손들은 다시 바닥으로 사라지기 전에 한껏 에드워드를 쓰다듬는다.

“뭐야. 데리러나 오라고.”

슥슥슥슥슥. 어찌나 열심히 쓰다듬었는지 에드워드의 머리카락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검은 손이 다시 머리를 잘 정리한다. 그러다 멈춘다. 검은 손은 에드워드의 머리카락 끝을 들어올려 그에게 보여준다.

“왜? 어, 뭐야. 짧아졌네.”

에드워드는 머리카락을 이따끔 손질만 할 뿐 20년도 넘게 안 잘랐기에 그의 머리카락은 정말 길었다. 거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였다.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기른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동의도 없이 머리카락이 짧아진 건 그를 조금 우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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