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글

[도미매패] 시체

황올 by 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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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디에 -> 도미매패


그것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팔 가득히 끌어안아도, 목덜미에 코를 박고 살냄새를 들이키려 해도, 여전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차라리 비린 피 냄새라도 나길 바랄 만큼이나 텅 비어서 내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만 상기시킨다. 생의 온기가 없는 가죽은 언뜻 흉내만 낸 입자 덩어리 같다가도 눈이 내리는 겨울날 두 손에 쥔 너의 볼 같기도 하다. 가슴이 닿을 만큼이나 붙어 있어도 그것에게선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서로를 마주 보면 시끄럽게 울리던 심장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따금씩 자기가 내킬 때 뱉는 말은 그토록 듣고 싶던 목소리다. 그것은 절망으로 채워지느라 다른 것이 담길 틈 하나 없는 걸 아는데, 또 모든 것 사이사이에 네가 달라붙어 있다.

부름에 고개 한번 돌려주지 않고 너의 목소리로 내 이름 한번 불러주지 않는다. 차라리 내 앞에 오지 말 것이지 잔인한 괴물은 네 얼굴을 뒤집어쓰고 찾아와서는 삐딱하게 앉아만 있다. 차라리, 저것을 몰랐으면 순순히 너의 상실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다 털어낼 수 있었을 텐데. 울면서 소리치면서 긁으면서 애원하면서 목적을 물어도 흘긋, 너와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다시 제멋대로 작아졌다. 이제 내가 하는 거라곤 자기 전마다 그것을 끌어안고 "잘 자, 에스퍼"라고 속삭이며 작은 희망 하나, 애정 한 톨 찾으려 매달리는 것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품 안에 있는 것이 네가 아닌 걸 알아도 불이 모두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이질적인 보랏빛을 담은 눈을 나는 감히 모르는 척 뒤돌 수가 없다. 꼬물꼬물 닫힌 방문을 열고 곁에 다가오는 것이 내가 자던 사이 뭐 하나라도 달라졌을까 봐, 네 이름 한번을 또 부르고. 또 실망한다. 그리고 또, 이제는 놓아줄 것이라고 다짐한 채 눈을 감아도. 나는 내일 또 다시 네 이름을 부르겠지.

수많은 너의 실패가 쌓여 만들어진 것. 수많은 나의 절망을 뭉쳐 태어난 것. 너와 나. 나와 나. 이제는 이런 망가진 덩어리에서만 너를 찾을 수 있어서.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너의 시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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